김학철전집4-태항산록-(수필)연극에 얽힌 사연

더좋은래일 | 2024.05.05 14:32:52 댓글: 0 조회: 64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6336


수필


연극에 얽힌 사연


1941년 이삼월경, 양자강남북안 각 전장에 분산되였던 조선의용대의 각 지대들이 황하를 북으로 건너서 태항산항일근거지로 들어가려고 륙속 락양에 집결하였다(당시 조선의용대 락양분대의 분대장은 27살의 문정일이였다).

한번은 오래간만에 한데 모인 각 지대가 어우러져 축구대항전을 벌렸는데 내가 자기의 소속한 제2지대팀을 응원하다가 보니 제1지대팀에 낯선 친구 하나가 끼여있었다. 안경을 쓴 말라괭이인데 뽈을 차지도 못하는 주제에 이리 뛰고 저리 닫고 갈개기는 홑으로 갈개였다. 내가 옆에 서서 구경하는 심성운에게

<<저기 저 안경쟁이... 어디서 난 뻐꾸기야?>>

하고 입을 삐쭉하였더니 심성운은

<<상해에 있는 황... 알지? 그 형이래.>>

하고 대답해주었다.

<<어느? 촬영소에 가 있다던? ...>>

<<응.>>

<<흠... 그치야?>>

나는 흥미를 갖고 새삼스레 그 안경쓴 말라괭이를 여겨보였다. 황은 내가 심성운이랑 같이 상해에서 지하활돌을 할 때 안 사람인데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로혁명가였다.

<<형하구 동생이 아주 팔팔결 다르군그래.>>

<<왜... 그래두 어떻게 보면 모습이 좀 비슷한데가 있지.>>

저녁녘에 그 황의 형이라는 친구와 통성명을 하게 되였는데

<<나는 김학철이라구 하우.>>

<<나는 최채요.>>

황씨가 어느 틈에 최씨로 둔갑을 하였었다.

최채와 나는 다 자기를 대단한 예술가로-거의 천재적인, 쓰다니슬라브스끼적인 예술가로-자처하고있었다. 그러한 제멋에 사는 류사점으로 하여 그와 나는 곧 사귀여 의기상투하는 친구로 될수 있었다.

문정일이 제1전구 장관사령부에 조선의용대 대표로 주재하고 있으면서 교묘한 수단을 써서 상장(上将)참모장 곽기가(郭寄崎)를 업어넘겨준 덕에 우리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무사히 황하를 건너서 태항산으로 향할수 있었다. 당시 황하를 항행하는 일체 선박은 다 국민당군대의 통제하에 있었다. 그러므로 맹진(孟津)나루를 건느는데도 장관사령부에서 직접 발급한 도하증이 절대로 필요하였다. 조선의용대가 팔로군에 합류하자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 맹진나루 도하작전에서 문정일은 력사에 남을 공훈을 세웠다. 춘추시대의 탁월한 군사전략가 손무도 <<싸우지 않고 적병을 굴복시키는것이 산수중의 상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 분대가 태항산록에 주류하고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창작의욕이 불타서 상당히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희곡 즉 각본 하나를 써내였다. 제목은 <<등대>>이고 줄거리는 탈옥을 한 정치범이 등대지기하는 형을 찾아오는 이야기를 엮은것이였다. 나는 당시 그것을 탈고해놓고

(이거 내가 쉐익스피어, 입쎈을 릉가하지 않았나?)

의심을 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내 그 <<등대>>가 <<햄리트>>나 <<민중의 적>>보다 더 멋이 있어보였기때문이다. 아마도 머리가 너무 뜨거워져서 눈에 무엇이 씌웠던 모양이다. 개구리가 캉가루를 보고

<<너도 나처럼 이렇게 도랑을 뛰여넘을만하니?>>

묻는거나 무엇이 다르랴!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던 시절의 한토막 웃음거리였다.

그런데 그 유명짜한 <<등대>의 연출을 담당한것이 다름아닌 바로 최채였다(그는 영하배우출신이였다). 더구나 기이한것은 작자인 나의 연출자인 최채가 다 무대에 올라가서 주역노릇을 하는것이였다. 최채는 등대지기를 하는 형, 나는 탈옥수인 그의 동생... 아마도 챠플린의 자작자연에서 계발을 받았던 모양이다. 챠플린의 <<모던시대>>는 1936년에 나오고 우리의 <<등대>>는 1941년-5년후에 나왔으니까. 최채의 안해역 그러니까 내 형수역을 담당한것은 더더구나 조선이름은 권혁(权赫)이라고 하였는데 조선의용대의 유일한 일본녀자로서 조선말, 중국말을 다 잘하였다(그녀는 해방후 나와 이웃하여 살면서 우리 젖먹이아들 해양이를 업고 좋아라고 돌아다녔다. 그녀는 아이낳이를 못하였다).

<<등대>>의 무대장치를 담당한것은 박무이고 효과를 담당한것은 리명선이였는데 박은 그후 어느 통신사의 사장으로 되고 리는 조선전쟁때 부대를 지휘하다가 인천에서 전사하였다. 박무는 광동 중산대학에서 중앙륙군군관학교로 전학을 해왔던 사람인데 무대장치를 어찌나 잘하는지 아무데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전문가의 솜씨였다. 그러하기에 나중에 마덕산이란 친구가 나를 보고 그 메기입을 실룩거리며 비웃었지.

<<임마, 네 그것두 연극이야? 무대장치가 하두 볼만하기에 그걸 보느라구 끝까지 앉아있었지... 그러찮았더면...>>

마덕산이는 그후 일본군법회의에서 총살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12명의 총수로 편성된 행형대앞에서 눈을 싸매는것을 거절하고 오연히 버티고 서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효과를 담당한 리명선의 파도소리를 고리짝뚜껑에다 녹두를 담아가지고 이쪽저쪽으로 기울여서 내는데 아주 진짜파도소리 같아서 그윽한 항구의 정취를 자아낼 정도였다.

총탄이 우박치는 전장을 이리 닫고 저리 닫고 하던 시절에 이런 연극을 상연하였던 일을 생각하면-아득한 옛날 젖먹이시절의 엄마의 자장가와 은근히 귀전을 감도는것처럼-나는 지금도 이름 할수 없는 향수에 잠기군 한다.

해방후 최채는 연변에서 일하며 <<혈투>>라는 각본을 써서 잡지에 발표하고 또 상연도 하였다. 그것은 조선의용군(이때는 <<대>>가 아니라 군)의 유명한 전투-호가장전투의 정경을 묘사한것으로서 그 주요인물 김철(铁)은 바로 나 이 김학철이였다. 재작년인가 최채가 연변에 왔을 때 연변대학 도서관에서 빌어다주어서 나는 그 각본을 처음 읽어보았다. 그 잡지의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거기에는 정명석, 채택룡, 홍성도 등 여러 사람의 글도 실려있었다.

최채가 성으로 올라가기전에 그와 나는 여러해 이웃하여(바로 앞뒤집) 살았는데 그때 틈만 있으면 우리는 장기를 어울렸었다. 둘의 장기재주는 연극재주만큼이나 없어서 멱이나 겨우 아는 정도였으나 둘이 다 성질이 가랑잎에 불붙기였으므로 윷진 애비 모양 한곬으로 파고들며 기들을 썼었다. 누가 찾아올가봐 문을 잠그고 또 전화가 걸려올가봐 수화기를 벗겨놓고 그리고 맞달라붙어서 결판을 내였다.

최: <<아불싸! 이제 그건 잘못 썼으니... 한번만 물리라구.>>

김: <<한번 썼으면 고만이지 물리는건 다 뭐야.>>

최: <<아차실수루 그런건데... 좀 못 물릴것 뭐 있어?>>

김:<<한번 안된다면 안되는줄 알아. 개코같이!>>

결국은 량편이 다 두볼에다 밤을 물고 시무룩해서 갈라진다. 적어도 한주일가량은 피차에 발을 끊는다. 그러나 한주일이 지나면 궁둥이에 좀이 쑤셔서 견뎌배길 재간이 없다. 결국은 최채가 어슬렁어슬렁 찾아와서

<<학철이 있나? 뭘 해?>>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안락의자에 엉뎅이를 내려놓는다.

<<어때... 한판 어울려보가?>>

<<좋겠지!>>

밤낮 이것을 되풀이하며 우리는 살았었다.

태항산에서 연극을 상연하는 때로부터 45년이 지난 지금도 최채와 나는 일을 하고있다. 기력이 좋아서 끄떡없이 일을 하고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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