拉普拉斯的魔女 8~10

단차 | 2023.11.28 15:35:53 댓글: 4 조회: 268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2455
 8
     

     

     

     

  건물을 나선 형사가 역 쪽을 향해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창문 너머로 확인한 뒤, 치사토는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기무라’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번호를 눌렀다.

  곧바로 연결되면서 변함없이 음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에.”

  “형사가 시어머니 쪽에 찾아왔어.” 이름을 밝히지도 않고 댓바람에 치사토는 그렇게 말했다. “시어머니가 살던 요양 시설로 직접 나왔어. 아자부기타 경찰서의 나카오카라는 형사야.”

 스톱, 이라고 그가 말했다. “당신, 지금 그 시어머니 방에 있는 거야?”

  “응.”

  “그렇다면 당장 거기서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고.”

  “왜?”

  “됐으니까 내 말대로 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치사토는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방을 나왔다. 엘리베이터 홀에 소파가 있어서 거기에 앉았다. “방에서 나왔어.”

  “그 형사에게서 뭔가 받지 않았어? 선물이라든가.”

  “명함을 줬는데 다시 돌려줬어.”

  “응, 잘했어. 요즘은 종이에도 IC 칩을 넣을 수 있으니까.”

  “무슨 얘기야? 왜 방을 나와야 하는 건데?”

  “그 형사가 도청기를 설치했을 가능성도 있잖아.”

  “앗…….”

 
 분명 맞는 말이었다. 형사는 고모리라는 직원과 함께 있었지만 방에 혼자 있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그 형사는 뭐래?” 그가 물었다. 그 말투에 동요한 기척은 없었다.

  “나를 의심하는 거 같아. 아무래도 시어머니가 그 경찰에게 상담을 했던 모양이야. 아들이 젊은 며느리에게 살해되는 거 아니냐고.”

  “오, 그렇군. 그래서 뭐지? 뭔가 문제가 있어?”

  “별문제는 없지만 일단 너한테 보고해두려고.”

  흠, 하고 코를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에서 의심을 받으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야. 경찰이 움직일지 모른다는 것도. 하지만 당신은 전혀 당황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어. 그렇지?”

  치사토는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잘 들어. 당신은 어떤 이상한 짓도 하지 않았어. 그저 보통 하는 일을 했을 뿐이야. 나이 차 많이 나는 남편과 온천지에 놀러 갔고, 명소로 알려진 폭포를 찾아 산길을 올라갔어. 카메라 배터리를 여관에 깜빡 빠뜨리고 오는 실수를 했지만 그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지. 아자부기타 경찰서의 형사가 어디를 어떻게 캐고 다니든 전혀 나올 게 없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고 다니는 짓이니까.”

  “나도 알아. 그냥 보고한 것뿐이라니까.”

  “혹시 도청을 당했다면 당신의 이 보고가 치명타가 됐을 수 있어. 주의하지 않으면 나도 곤란해져.”

  “미안. 앞으로는 주의할게.”

  “하지만 마침 잘됐어, 내 쪽에서 연락하려던 참이었으니까. 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거야.”

  “……실행 날짜가 정해졌어?”

  “거의. 장소도 정했어. 당신은 어떤 사람을 그 장소로 안내해주기만 하면 돼. 일의 절차는 전에 얘기했던 그대로야. 어때, 문제없겠지?”

  “응, 괜찮아.”

  “날짜와 시간이 정확히 정해지는 대로 내 쪽에서 연락할게. 단 혼자가 아닐 때는 착신을 거부할 것.”

  “알고 있어.”

  “그리고 미행을 조심해. 한동안 경찰이 따라붙을 수도 있어. 당신이 실수하면 이쪽 계획도 엉망이 된다는 걸 명심하라고.”

  “그것도 잘 알고 있어. 걱정할 거 없어. 나도 어렵게 손에 넣은 걸 잃고 싶지는 않아.”

  “그렇겠지. 자, 그럼 다음에.”

  “연락 기다릴게.” 치사토는 전화를 끊고 스마트폰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항상 이렇게 긴장한다.

  나는 악마와 거래를 한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9

     

     

     

     

  “……이상과 같이 로이어는 CO2 농도가 500ppm 이하였던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빙상氷床이 발달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한편으로 1,000ppm 이상으로 추정된 시기에는 지구가 예외 없이 온난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구화학의 발상으로 CO2 농도의 온실효과와 기후의 관계에 대해 추적한 연구는 그 밖에도 몇 가지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현생대顯生代 전, 약 7억 년 전 무렵의 스노볼 어스Snowball Earth, 즉 전 지구 동결이라는 가설, 그리고 5500만 년 전의 급격한 온난화 사건, 4000만 년 전 이후의 한랭화와 히말라야의 융기와의 관계를 논한 레이모 가설 등입니다. 다만 위의 가설들은 찬반양론의 논문이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기 때문에 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수업에서는 지구화학적 사실과 그 해석을 알아보기 위해 스노볼 어스 가설과 레이모 가설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라고 말하고 아오에는 교단에서 끝인사를 건넨 뒤 출구로 향했다. 200명 이상이 앉을 수 있는 계단식 강의실이지만 수강하는 학생은 20여 명이다. 지구환경 과학 강의는 해마다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원인은 알 수 없다. 단순히 저출산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교수실로 돌아오자 책상 위에 메모가 놓여 있었다. 오쿠니시 데쓰코의 성실한 성품을 보여주는 단정한 글씨로 ‘손님이 오셨습니다. 연구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함께 붙여둔 명함은 나카오카 유지라는 인물의 것이었는데 소속과 직함을 보고 흠칫했다. 경시청 아자부기타 경찰서 형사과, 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짚이는 것이 전혀 없더라도 경찰이 왔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평온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형사과라니.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불안해졌다. 교통과라면 몇 번 신세를 진 적이 있지만.

  아오에는 강의용 자료를 책상에 던져두고 교수실을 나섰다. 연구실은 바로 옆방이다.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

  벽을 마주 보게 배치한 책상에서 대학생과 대학원생 몇 명이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빈번하게 사람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문이 열리는 정도로는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들어온 사람이 교수라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오쿠니시 데쓰코는 검은 테 안경을 쓰고 한가운데 회의 책상에서 뭔가 쓰고 있었다. 그녀도 아오에에게 일별조차 던지지 않았다. 그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낯선 인물만 그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오에 교수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아, 그…….” 들고 있던 명함을 보았다. “나카오카 형사님?”

  “네, 바쁘신데 갑작스럽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나카오카는 삼십 대 후반으로 보였다. 스포츠맨처럼 탄탄한 체형으로,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는 형사답게 예리한 사나움이 있었다. 입고 있는 양복은 그리 고급품은 아니겠지만 손질은 잘되어 있었다.

  자신에게 뭔가 혐의가 있어서 찾아온 건 아니라고 아오에는 짐작했다. 나카오카 곁에 선물인 듯한 종이봉투가 놓여 있었다.

  “그러면 제 방으로 가실까요? 바로 옆인데.”

  “그래도 될까요. 고맙습니다.” 나카오카는 힘차게 대답하고 종이봉투와 함께 서류 가방을 손에 들었다.

  교수실로 돌아온 뒤에 나카오카가 다시 자기소개를 했다. 그 참에 내밀어준 종이봉투는 묵직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와인이라고 한다.

  “교수님이 와인을 좋아하신다고 해서요.”

  “좋아한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누구에게서 들으셨습니까?”

  “이소베 씨예요, 아카쿠마 온천의.”

  “아, 그 건 때문에 오셨군요.”

  아오에는 당혹스러웠다. 대책회의가 있었던 것이 지난주의 일이다.

  나카오카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들었다.

 
 “교수님께서 그 사고의 조사를 맡으셨지요? 그것과 관련해 좀 여쭤보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바쁘실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만, 몇 가지 확인해도 될까요?”

  “그건 괜찮지만, 아, 저…….” 아오에는 다시 명함에 시선을 떨구었다. “왜 아자부기타 경찰서 형사님이 그 사고에 대한 것을?”

  “미즈키 씨의 거주지가 아자부거든요.” 나카오카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미즈키 씨?”

  “피해자입니다.”

  “아하…….”

  아카쿠마 온천지에서 사망한 사람의 성씨가 ‘미즈키’였던 게 생각났다. 이름은 ‘요시로’였던가.

  “미즈키 씨에 대해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예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오에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피해자에 대한 것이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가장 먼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제 제가 현지에 다녀왔는데 출입금지 구역이 설정되었더군요. 교수님께서 결정하셨다고 하던데요.”

  아니, 아니, 라고 아오에는 얼굴 앞에서 손을 저었다.

  “내가 결정했다기보다 대책본부 측과 상의해서 결정한 것이죠. 경찰이나 소방대 사람들의 의견도 참조했습니다.”

  타협의 산물, 이라는 솔직한 심정은 그냥 접어두었다. 그 회의에 대해 떠올리면 아직도 우울해진다. 소방대와 경찰 쪽에서는 황화수소가 조금이라도 검출되는 장소는 모조리 출입금지 조치를 내리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온천가가 거의 전멸이라서 관광산업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러면 수치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여기서 다시 말씨름이 벌어졌다. 측정 장소마다 매번 수치가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달 동안의 최고치를 참고로 한다고 쳐도 기후의 변화에 따라 또다시 달라질 터였다.

 
 결국 이번 조사에서 고농도로 나온 장소는 일시적으로 전면 출입금지, 그 이외의 지역은 최대한 출입을 자제하라는 경고문을 내거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하지만 다음 달에는 다시 조정할 예정이었다.

  “교수님은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사고를 조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황화수소계의 온천을 가진 지역에서는 크든 작든 그런 사고가 일어날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그건 뭐, 그렇지요. 실제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으니까요.”

  “언제 일어날지, 어디서 일어날지, 그런 건 알 수 있습니까?”

  아오에는 크흠 신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화산이 분화하기 전이라면 데이터상에 뭔가 이변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같은 규모의 사고를 예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아니, 어렵다기보다 불가능하다고 해야겠지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불행한 우연이 겹쳤다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사고 현장만 해도 황화수소 농도가 위험 수준에 달했던 건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지금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졌지만 그건 혹시나 해서, 라는 면이 강합니다.”

  “불행한 우연……. 그렇다면 그런 우연이 일어날 확률은 어느 정도나 될까요?”

  “확률이라고요? 아, 그건 숫자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최근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농도가 올라간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아무리 많아봐야 1년에 기껏 몇 번 정도 아니겠습니까. 실은 이건 1년 동안 측정해보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일이긴 하죠. 하지만 농도가 올라갔다고 해도 극히 제한된 구역이고 시간적으로도 한순간의 일이라서 우연히 그런 곳에 사람이 들어간다는 건 확률로 보면 거의 제로라고 해도 무방하겠지요.”

  “제로……. 즉 사고가 일어난 것이 불가사의하다는 말씀입니까?”

  “불가사의하지요. 그래서 좀 더 상세히 조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카오카는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몸을 슬쩍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면 우연이 아닐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그럴 수도 있을까요?”

  “우연이 아니라니?”

  말하자면, 이라면서 나카오카는 입술을 혀로 적셨다. “인위적으로 사고를 일으켰을 가능성 말입니다.”

  “예에?” 아오에는 형사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인위적으로 사고를 일으켜요? 어떻게?”

  “누군가 황화수소 가스를 발생시켰을 가능성 말입니다. 몇 년 전에 그런 방법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잖습니까.”

  아아, 하고 아오에는 입을 헤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일이다.

  “그런 뜻이군요. 근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니, 도리어 내가 묻고 싶군요. 형사님은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그 대답은 방금 전에 교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번 같은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거의 제로라고요. 그렇다면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죠, 그렇잖습니까?”

  “아뇨, 그건요.” 아오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가능한 일이에요. 분명 확률이 거의 제로라고 했지만 완전히 제로라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그런 일을 일으켰을 가능성은 제로라고 해도 틀림이 없어요.”

  “그럴까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황화수소로 자살을 했잖습니까.”

  “그건 실내에서의 일이죠. 이번 피해자는 실외에서 사망했습니다.”

  “많은 자살자가 실내를 선택한 것은 제삼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그러는 게 가스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외에서도 바람 없는 날을 택해 바로 옆에서 가스를 발생시키면 중독이 되는 거 아닌가요?”

  아오에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기분이 상한 듯 “제 얘기가 우스운가요?”라며 나카오카의 표정이 좀 험해졌다.

 
 “아뇨, 실례했습니다. 우습다기보다 감탄한 거예요. 실로 유니크한 발상입니다.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무리예요. 나카오카 형사님은 황화수소 발생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인터넷에서 검색해봤습니다. 어떤 특정 입욕제와 세제를 섞는다고 하던데요.”

  “자살에 빈번하게 사용되던 입욕제는 제조 중지 명령이 떨어졌어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퍼뜨린 자들이 있다니. 어찌 됐든 형사님이 말한 대로 황화수소 가스는 기본적으로 두 종류 이상의 액체를 섞어 발생시킵니다. 거기에 또 필요한 것이 액체를 넣을 용기예요. 자, 그렇게 가스를 발생시켜 자살했다고 칩시다. 현장에는 당연히 가스가 발생하는 용기가 남게 됩니다. 하지만 구급대원들은 그런 건 발견하지 못했어요.”

  나카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그 용기를 치워버렸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어요.”

  “치웠다고요?” 누가, 라고 물으려다가 아오에도 금세 답이 떠올랐다. “혹시 부인이 치워버렸다는 건가요?”

 
 “불가능한 건 아니죠? 미즈키 요시로 씨의 유체를 처음 발견한 건 부인이니까요. 용기나 액체의 빈 병을 어딘가 먼 곳에 내버렸다면 아무도 알지 못했겠지요.”

  “부인이 왜 그런 짓을? 자살을 사고로 보이게 하다니, 그래봤자 무슨 득이 된다고…….” 거기까지 말한 참에 아오에의 머릿속에서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그렇군. 그래서 아자부기타 경찰서의 형사님이 나섰군요. 흠, 역시 경찰은 이래저래 의심을 하게 마련인 모양이네요.”

  “뭔가 짚이는 게 있으신 것 같군요.” 나카오카가 약간 김이 샌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예, 있어요. 그거잖아요, 보험금 사기를 의심하는 거.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살을 하면 보험금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서요? 그것 때문에 사고가 난 것처럼 꾸민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거군요.”

  그 물음에 나카오카는 답하지 않았다. 도리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한 추리에 대해서?”라고 대답을 재촉했다.

 
 “보험금 사기 문제라면 법학과 교수와 상담해보시는 게 좋겠지요.”

  “그게 아니라 방금 제가 말했던 방법이 실제로 가능한가, 라는 점을 여쭤보는 겁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비현실적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황화수소가 발생하는 용기에 접근하다니, 그거야말로 자살 행위예요.”

  그러자 나카오카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턱을 짚었다. “가스마스크를 하고 있었다면?”

  일순 아오에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나카오카는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는 자각도 없는지 태연한 얼굴로 학자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기는 있습니까?” 아오에가 물었다. “피해자가 자살할 동기 말이에요.”

  나카오카는 앉음새를 바로잡더니 등을 반듯하게 세웠다.

  “계속 질문만 하는 것도 죄송하니까 저도 대답해드리겠습니다. 분명히 말해서, 미즈키 씨가 자살할 이유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영화 프로듀서에 재산도 많고, 자살을 하면서까지 갚아야 할 빚 따위도 물론 없었습니다.”

  피해자가 영화 관계자였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쪽 업계라면 아오에 입장에서는 아예 딴 세상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예에, 라고 나카오카는 턱을 끄덕였다.

  “저도 자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사고는 아니라고 의심하는 것이죠. 그래서 다양한 가능성을 조사해보는 중이에요.”

  “아, 잠깐만. 자살도 아니고 사고도 아니라면 그다음은…….” 뒤를 이을 말을 내뱉기가 어쩐지 망설여졌다.

  “피해자 미즈키 요시로 씨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평소에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었어요. 그 약을 여관에서 나오기 전에 몰래 먹였다면 산속을 걸어갈 때 졸음이 덮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잠시 쉬자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면 그대로 잠이 들었겠지요. 그다음에 바로 옆에서 황화수소를 발생시키고 자신은 자리를 뜬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에 가스마스크를 쓰고 돌아와 용기 등을 처분한다……. 어떻습니까, 그건 가능하겠지요? 절대로 불가능하다, 라고 단언하실 수 없잖습니까.” 나카오카는 담담한 어조로 말하더니 어떠냐는 듯이 도전적인 시선을 던졌다.

  아오에는 입술을 혀로 적셨다.

  “경시청에서는 이번 일을 살인 사건으로 보는 겁니까? 그리고 범인은 피해자의 부인이라고? 하지만 그 지역 경찰은 그런 쪽으로는 전혀 생각도 안 하는 것 같았는데?”

  나카오카가 씨익 웃었다. “글쎄요, 그건 모르는 일이죠.”

  “의심을 하고 있으니 그런 얘기를 한 거 아닙니까?”

  “일단 다양한 가능성을 의심해보는 것이 경찰입니다. 그보다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아오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범행은 도저히 안 됩니다.”

  “왜죠?”

  “아까도 말했지만 자살 행위이기 때문이에요. 실외에서 중독사를 일으킬 정도라면 상당한 양을 발생시

 
 발생시켜야 합니다. 그런 곳에 접근하는 것은 가스마스크를 쓰고 있더라도 몹시 위험해요. 화학 방호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용기에 남은 액체는 어떻게 하지요? 그 자리에 버렸다면 나중에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틀림없이 알아봤을 텐데요.”

  아오에의 설명에 나카오카는 떨떠름한 표정을 보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닌 게 아니라 어려울 것 같네요.”

  “경찰은 정말 다양한 방면으로 의심을 하는군요.”

  “그게 우리 일이니까요.”

  “이런 질문을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동기는 있습니까? 그 부인이 남편을 살해할 동기 말입니다.”

  “그건, 네, 있긴 합니다만…….” 나카오카가 어물어물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고 보니 꽤 젊은 부인이었다고 하던데요. 혹시 유산을 노린 범행?”

  나카오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자산가가 사망하면 경찰도 참 힘드시겠네요. 간단히 처리하고 넘어갈 수 없는 모양이군요.”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이번 건은 단순히 동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의심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개인적으로 형사로서의 책임감도 있거든요. 아니, 그 얘긴 그만두죠. 교수님과는 관계없는 일이니까요. 아무튼 저는 좀 더 캐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예의 바르게 머리를 숙이고 나카오카는 성큼성큼 문으로 향했다.

 



 10

     

     

     

     

  기차가 플랫폼에 정지하기 전에 출입문 유리창 너머로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감색 방한복으로 몸을 감싸고 검은 털모자를 썼다. 게다가 두툼한 머플러까지 둘둘 감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테가 둥근 안경을 쓴 걸 보면 틀림없었다. 그걸 서로 알아보는 표시로 하자고 전화 통화 때 얘기했었다.

  출입문이 열리자 나스노는 플랫폼에 내려섰다. 예상했던 것보다 춥지는 않았다. 약간 달아오른 얼굴에 부딪혀 오는 찬 바람이 상쾌할 정도였다.

  둥근 테 안경의 여자가 다가왔다. “나스노 씨지요?”

  “예, 오늘 잘 부탁해요.”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짐, 제가 들게요.”

  “고마워요.”

  나스노가 내민 스포츠백을 여자가 받아 들었다. 손에 털장갑을 끼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자동차로?”

  “그렇습니다. 아래쪽에 주차해뒀어요.”

  “멀어요?”

  “15분쯤 걸릴 거예요.”

  플랫폼 계단을 내려가 자동 개찰기를 지났다. 역 구내를 나서자 허연 것이 흩뿌리고 있었다. 역시나 북녘은 북녘이다.

  나스노는 조심조심 발을 디디며 둥근 테 안경의 여자를 따라갔다. 인도에 눈은 쌓이지 않았지만 군데군데 단단히 얼어붙은 곳이 있었다. 이런 데서 미끄러져 골절상이라도 당했다가는 정말 꼴이 우습게 된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는 소형 RV 차였다. 렌터카라는 건 번호판으로 알 수 있었다.

 
 둥근 테 안경의 여자가 리모컨으로 록을 해제하고 운전석에 올랐다. 나스노는 뒷좌석 문을 열고 널찍한 시트에 몸을 실었다.

  여자는 시동을 걸더니 “그럼 출발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차를 몰았다.

  나스노는 창밖을 보았다. 도로 옆에는 눈이 높직이 쌓였지만 노면은 제설이 되었다. 이 차는 사륜구동인 것 같으니까 운전하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을 터였다.

  “오늘은 몇 시쯤부터 촬영했어요?” 나스노는 물어보았다.

  “시작한 건 아침 6시쯤부터였던 것 같아요.”

  “6시? 와아, 새벽부터 고생이 많네요.”

  손목시계에 시선을 던졌다. 오후 3시 반을 조금 지난 참이었다.

  “그나저나 깜짝 놀랐어요.” 나스노는 말했다. “설마 나를 불러줄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 유명한 요시오카 감독님이.”

  “그렇습니까.” 여자의 말투에는 열의가 없었다. 남의 기쁨에는 관심이 없다는 건가.

 
 “핀치히터라고 하던데, 누구 대역인 겁니까?”

  나스노의 물음에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캐스트는 알고 있잖아요. 캐스트 목록에 실렸는데 촬영 현장에 오지 않은 게 누구지요?”

  하지만 이 질문에도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자세한 얘기는 듣지 못했어요. 아무튼 나스노 씨를 역에 가서 모셔 오라고만 했어요.”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네.”

  “죄송합니다.” 앞쪽을 향한 채로 여자가 슬쩍 고개를 숙였다.

  “됐어요, 그쪽이 사과할 일도 아닌데요 뭐.” 나스노는 한숨을 내쉬며 다리를 꼬았다.

  기무라라는 남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 바로 어제였다. 영화감독 요시오카 무네타카가 신작을 촬영 중인데 출연할 예정이던 배우가 갑작스럽게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대역을 좀 맡아줄 수 있겠느냐, 라는 얘기였다. 기무라는 조감독을 맡고 있다고 했다.

 
 “필요한 조건으로 스키가 가능할 것, 이라는 게 있습니다. 나스노 씨, 학생 시절에 스키부 활동을 하셨지요? 그래서 꼭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기무라에 의하면 설산을 무대로 한 서스펜스 영화로 올 연말에 공개할 예정이라는 얘기였다.

  제대로 된 영화에 출연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설 연휴 영화라니. 출연료를 물어보니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요즘 지갑이 영 허전해서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소속사는 있지만 나스노를 위해 일을 따 올 생각은 애초에 없는 모양이다. 무단으로 일을 받아도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두말할 것 없이 승낙했다.

  “자세한 것은 만나뵙고 상의하도록 하지요. 역으로 모시러 갈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둥근 테 안경을 쓴 여자입니다. 나스노 씨는 눈길을 걸을 수 있는 차림으로만 오시면 됩니다.”

  교통비를 지불할 테니 승차권 영수증을 챙겨 오라고 기무라는 말했다.

  어떤 배역인지는 모르지만 이번 영화를 계기로 조금은 괜찮은 일이 굴러 들어오면 좋을 텐데. 멍하니 앞쪽으로 시선을 향한 채 나스노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둥근 테 안경의 여자는 말없이 운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차에 탄 뒤에도 모자와 머플러를 벗으려 하지 않았다. 두툼한 방한복 때문에 몸매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뚱뚱한 건 아닌 듯했다. 나스노는 몸의 위치를 바꿔 룸미러 너머로 여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안경을 쓴 눈매밖에 보이지 않지만 상당한 미인인 것 같았다.

  거울 속에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이신지…….” 여자가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스노는 자세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어느새 차는 좁은 도로로 들어섰다. 오른편으로 동네가 보였다. 온천가인 것 같았다.

  여자가 차를 갓길에 댔다. “여기서 내리시면 됩니다.”

  “이런 데서?”

  나스노는 밖으로 나왔다. 공기가 썰렁한 것이 역 쪽과는 전혀 달랐다. 차내에서 벗고 있었던 다운재킷을 서둘러 걸쳤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 덮인 나무들 때문에 도로가 바짝 좁아져 있었다.

  여자가 휴대전화를 꺼내 어딘가로 걸었다.

  “수고하십니다. 나스노 씨를 모시고 왔어요. ……네, 입구 쪽입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나스노 씨, 그 신발로 눈길, 괜찮을까요?”

  “문제없어요. 그러려고 이 신발을 신고 왔는데.” 나스노는 스노슈즈를 신은 오른발을 들어 보였다.

  “괜찮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저는 차를 돌려주고 올게요. ……네, 그럼 이따가 다시.” 여자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더니 “다른 스태프가 올 테니까 그 사람과 합류해주세요”라고 나스노에게 말했다.

  “합류? 그럼 난 여기서 기다리면 되나요?”

  “아뇨, 저쪽 길로 쭉 가시면 돼요.” 여자는 도로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간판이 서 있었다. <산책길 입구(온천가로 가는 길)>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다 보면 중간에 빨간 벤치가 있을 거예요. 거기까지 스태프가 나오기로 했어요.”

  “나 혼자 가라고요?”

  “죄송합니다. 저는 이 차로 다른 곳에 가봐야 해서요.”

  여자가 스포츠백을 내밀었다. 나스노 것이다.

  가방을 받아 들고 새삼 산책길 입구를 바라보았다. 방금 눈이 내렸는지 그 오솔길에는 발자국 하나 없었다.

  차 엔진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운전석에 앉은 여자가 살짝 인사를 건네고 차를 출발시켰다. 방향을 바꿀 생각인지 핸들을 크게 꺾고 있었다.

  나스노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생각했던 것보다 신발은 눈에 파묻히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걷는 게 그리 힘들지 않을 터였다.

  산책길은 완만하게 굽어 들어갔다. 눈과 나무에 둘러싸여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사박사박 눈을 밟는 소리만 귀에 들어왔다.

 
 5분쯤 걸었지만 계속 비슷한 풍경이 이어질 뿐이었다.

  꽤 머네—.

  혹시 길을 잘못 든 건가. 아니, 외줄기 길이니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아까 여자가 말했던 빨간 벤치를 깜빡 못 보고 지나쳤나. 눈에 뒤덮여서 알아보지 못한 건가.

  그런 식으로 점점 불안이 커져갈 즈음, 길이 약간 커브를 그리는 장소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귀퉁이에 빨간 벤치가 있었다. 나스노는 안도하고 하얀 숨을 토해냈다.

  손목시계를 보았다. 4시가 넘었다. 주위는 슬슬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산책길 끝으로 시선을 던졌다. 합류하라고 한 걸 보면 반대쪽에서 스태프가 온다는 것이리라. 손전등을 들고 오지 않으면 난처하겠네, 라고 묘한 것이 걱정되었다.

  다운재킷 호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한 개비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고 했을 때였다.

  온천 냄새가 났다.

 
 흔히들 말하는 대로 달걀 썩은 듯한 냄새, 라는 그것이다.

  온천지니까 이런 냄새가 나는 것도 당연한가.

  멍하니 그렇게 생각한 직후, 입에서 담배가 툭 떨어졌다.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3/12/01 06:01:08

돈많은 노인네가 죽으니 경찰들이 참 힘드네요.

역시 치사토와 기무라가 내통하는 사이엿군요.끝부분 느낌이 쎄한데.
머플러를 둘둘감고 둥근테 안경을 쓴 여자가 치사토일까요?또살인을
저질럿는가?이것들이 상습범이구만.

단차 (♡.252.♡.103) - 2023/12/01 06:15:01

항상 돈이 문제죠. 그놈의 돈.ㅋㅋ 사랑없이 돈만 보고 한 결혼의 댓가죠.

뉘썬2뉘썬2 (♡.169.♡.51) - 2023/12/01 06:20:47

돈이 사람을 죽엿다살렷다 하네요.돈의작간 ㅋ

단차 (♡.252.♡.103) - 2023/12/01 06:22:54

돈은 귀신도 부린다잖아요. 뱃속의 애기도 손 내민다고 하고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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