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을 하늘로 떠나보냈을 때, 간절히 바랬던 일이 물거품이 됐을 때, 두 손 모아 성공하길 바랬던 일이 실패했을 때 인간은 누구나 우울과 슬픔(sadness)이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마음 상태를 겪는다.
심지어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우울과 슬픔을 느낀다. 개나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동물들도 우울할 때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뿐만 아니라 포유류 전반에서 보이는 우울과 슬픔의 정동 상태는 오랜 진화적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는 상태 혹은 반성과 공상이 따르는 가벼운 슬픔. 우울의 사전적 정의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울이라는 용어는 슬프거나 저조한 기분에서부터 자살을 고려하게 만드는 심각한 감정 상태까지를 모두 일컫는다.
우울감은 불안감이나 분노처럼 몸에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우울감에 빠지면 점차 사는 것이 재미없어지고 불안감이 심해진다. 또한,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도 시들하고, 감정적 자극이 적어져 인생의 즐거움이나 의미를 찾지 못한다. 더 길어지면 식욕이 떨어지고 잠도 깊이 잘 수 없어 피로감을 쉽게 느끼게 된다. 여기서 더 발전하여 병적인 우울 상태에 이르면 스스로 헤어나오기 힘든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되는데, 이로 인해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렇게 힘든 상태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집단심리학과 자아분석>이라는 저서에서 우울의 원인으로 ‘대상의 상실’을 지목했다. 사랑하는 어떤 대상을 잃어버렸을 때 우울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모든 슬픔이 대상의 상실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우울감을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울과 슬픔은 어려운 상황에 빠진 자신에게 뇌가 보내는 일종의 ‘경고 신호’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주장으로 산후우울증을 설명할 수도 있다.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은 후, 슬픈 기분에 빠지곤 하는데, 워싱턴 주립대 인류학과의 에드워드 하겐(Edward Hagen)은 이런 산후우울증이 여성에게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을 줄여주어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고 남편의 도움을 불러 일으키는 기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군대나 새로운 직장과 같이 낯선 환경에 처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면서 우울감을 겪는다. 진화정신의학자 존 프라이스(John Price)는 우울감의 원인에 대한 사회적 경쟁 가설(Social competition hypothesis)을 주장했다.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처해지면 자신보다 힘이 세고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먼저 복종심을 보여주어 공격당할 가능성을 줄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낯선 곳에 얼른 적응하기 위해서는 성급하게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스스로를 낮추어서 새로운 집단의 규칙에 따르는 것이 유리하다. 이때 우울감이라는 정서는 공격성을 낮추는 등의 행동에 관여하여 결국 새로운 상황에 빨리 적응하도록 돕는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우리가 겪는 모든 우울감과 슬픔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쉽게 우울해지는데, 이는 위에 나열된 가설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유전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유전학적 연구에 의하면 우울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우울 유전자 외에도 더 잘 우울해지게 되는 요인이 또 있다. 자라온 환경이다. 유명한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는 우리의 마음에 ‘열린 프로그램(Open Programs)’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우리가 겪는 양육 환경에 따라서 마음의 모양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에 근거해서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존 볼비(John Bowlby)는 정서를 결정하는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을 주장했다. 즉 부모와의 안정적인 애착이 이루어지면 이후의 정서도 안정되고, 불안정한 애착이 일어나면 정서가 무감각해지거나 혹은 불안해진다는 것. 따라서 자라는 동안 부모와의 애착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이들이 상대적으로 우울감을 자주 느끼고 우울증으로 발전하기가 쉽다.
간혹 우울과 슬픔은 자연적인 감정의 반응이므로 약물치료나 정신치료를 하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랑니가 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아파도 치료하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이다. 심지어 동물들도 자신의 혀로 몸에 난 상처를 보듬고 핥는다. 이처럼 우리 인간도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돌보고 치유해야 한다. 더군다나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신의 우울한 정서를 이해하고 서로 위로하며 때로는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학업, 직장, 대인관계 등 스트레스로 우울감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현대 의학은 우울과 슬픔을 치료하는 효과적인 정신요법이나 약물을 만들어냈고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슬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감싸 안아 치유하는 것, 그것이 우울에 대한 가장 바른 답이자 내 마음에 대한 예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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