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회사 가까이 있는 뻐스정류소에서 내리니 회사마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20대중반의 조선족청년이 진작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만나자 바람으로 나에게 기차역까지 마중 나가지 못해서 연신 미안하다고 하였다. 워낙 시간을 맞추어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아무런 영문도 없이 나가지 말라는 지령에 되늦게나마 이곳에 나와서 기다린다고 하였다. 그러는 그에게 나는 괜찬다고 하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나의 무거운 행리를 그청년이 타고 온 자전거 짐받이에 싣고 나란히 회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는 자기의 이름은 김용(가명)이고 금년에 스물여섯인데 한달전에 이곳으로 입사하였다고 했다. 고향은 길림성 연길이고 시 모기계공장으로 출근하다가 공장이 문을 닫는바람에 집에서 그냥 눌러있을수 없어서 연길의 모 직업소개소에 소개비를 내고 이곳까지 찾아 왔단다. 그러면서 자기는 갖 결혼한 몸이란다. 그래서 안해는 고향에 두고 왔는가고 물으니 아니 함께 회사에 입사했다고 하였다. 그 말에 갑자기 나는 고향에 두고 온 처자생각이 불쑥 났다. 연길역에서 열차가 서서히 떠나는데 안해가 일곱살난 아들애를 한손에 안은채로 열차 따라 뛰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고향을 떠나 처음으로 안해와 아들애생각 나는 순간이다. 저도 몰래 코마루가 찡해났고 눈시울이 축축해 났다.
"저기 보이는것이 우리회사 입니다."
나는 이러는 김용을 외면한채로 슬그머니 손수건을 꺼냈다.
그러니까 큰길가에 있는 정착역으로 부터 도보로 5분밖에 안되는 가까운 거리다. 그런데 회사는 내가 상상하던것과 달리 규모가 너무나 작았다. 하지만 "새는 작아도 오장육부가 구전하다"고 회사 대문에 들어서면서 부터 회사가 너무나 정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장건물이 깨끗하였고 생산시설들도 알뜰히 정비하여 놓았다. 제품도 완성품과 반성품을 확실하게 갈라서 차곡차곡 쌓아올렸고 바닥에 나사못 하나 그울어 다닌것 마저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선진국인 인프라가 그대로 이곳에 도입 된것이였다.그리고 2층으로 된 사무실은 그렇게 완벽하게 잘 꾸려 놓았다. 대문가까이 위치한 아담한 2층 건물이였는데 1층 바로 대문곁은 경비실이 있었고 그곁에는 사장님 집무실과 회의실이 따로 있었고 서쪽칸은 직원 식당과 사우나실과 위생실 그리고 2층에는 사장님의 침실과 직원들의 기숙사가 그리고 위생실이 철저히 갈라져 있었다.
이렇게 김용과 회사를 한바퀴 돌아온 나는 김용과 함깨 경비실에 들어섰다.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의 조선족들이 모두 경비실에 모여와 반갑게 맞아 주었다. 김용은 먼저 자기 안해부터 인사시켰다. (이들부부는 경비실에서 함숙하고 있었다.)이름은 리화(가명)이고 회사 가공직장에서 관리원으로 일하고 있단다. 그담 사무실에서 재무관리를 한다는 장양(가명)을 소개해 주었는데 짙은 경상도 말씨에 나는 하마트면 서울여자로 착각할번 했다. 20대후반이고 고향은 흑룡강 모현에서 왔단다, 그리고 주방장 뚱보아줌마를 소개해 주는데 고향은 안도이고 나이를 물으니 나보다 한살 이상이다. 그담 조선족직원 가운데서 막내둥이 들인 왕청에서 온 봉호(가명)군과 훈춘에서 온 영화(가명)양을 만났는데 금방 20대에 들어선뜻 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죽자살자하는 커풀이란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 봉호 군은 회사의 모든 후근일을 영화 양은 제품관리원으로 일을 맡아보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알고보니 이들은 나이 어려도 전기적인 색채를 띤 담찬 인물들이였다. 글쎄 여자집 부모들이 미래사위감인 봉호 군이 맘에 탐탁하지 않아 한사코 반대하자 이에 반발한 영화 양이 담도 크게 집에서 거액의 돈을 말없이 꺼내 가지고 봉호 군과 함께 가출을 시도. 그곳이 바로 청도였다. 련 며칠간 먹고 노는데 탕진해 돈이 바닥이 나자 이 한쌍의 커풀은 "피박"에 못이겨 바로 여기"량산에 오른것이다." 귀가할 여비도 벌겸 말이다.
아무튼 돈벌러 왔든지 아니면 집이 싫어서 가출하여 왔든지 100명이나 되는 회사에 모인 조선족이 나까지 합하여도 모두 일곱명꼴이다. 나이를 따지니 뚱보아줌마가 맏이고 그담 내가 버금으로 가고 세번째는 장양, 그담 김용이네 부부 막내둥이로는 썽쓰랜(生死恋)을 하는 봉호 군과 영화 양이다. 소개를 다들은 나는 그들에게 공손히 인사말을 하였다.
"고향에서 우리 서로 모르고 지냈지만 여기선 모두 한 집안 식구처럼 보냅시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말임니다. 그리고 모르는것이 많으니 많이 가리켜 주십시요."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이 바로 음력으로 정월 대 보름날 이였다. 나는 뚱보아줌마 보고 저녁식사는 어느때 하는가고 물었다. 주방아줌마는 말없이 자기따라 오시란다. 그런데 널다란 식당안에 식객이란 나 혼자뿐이다. 알고보니 오늘은 대 보름날 이여서 직원들은 오전만 근무하고 오후에 휴식이란다. 그래서 주방장인 뚱보아줌마는 별도로 점심,저녁을 챙기지 않았단다.
날이 저무니 저쪽 멀리서 벌써 폭죽을 터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왔다. 나는 점심 아니 아침에 직원들이 먹다가 만 밀가루 만투(馒头)짠지를 놓고 식탁에 홀로 마주 앉았다. 갑자기 맘이 울적해났다. 그젯날 따뜻한 원소나 물만두를 함께 나누던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사무치게 그리워 났다. 장거리 전화라도 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저쪽 나의 집에는 전화기가 없었다. 밖에 나가 외식하고 싶은 생각도 났지만 돈 한푼이라도 헛쓰는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나는 묵은 만투와 짠지로 대충 허기진 배를 채우고 홀로 밖으로 나왔다. 보름 달이 벌써 저하늘 동쪽 반공중에 걸려있다.
타향의 달을 보는 순간 저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쯤이면 나의 아들애도 저 달을 보면서 아빠를 외우겠지?.
(다음에 제3부가 계속 이어 짐니다.기대하여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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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전화가 없는집이 많았지요.93년에 3천원을 내고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힘든 타향살이 시작하셨네요...
그래요.ㅎㅎㅎ 그때 직업 소개소에 등기할때 련계전화가 없어서 한 동네 단골로 다니는 상점집의 공용전화 번호를 썼던 생각이 떠 오름다. 상점에서 쓰는 공용전화번호를 련계전화번호 란에 썼으니. ㅠㅠㅠㅠ 한심하죠.
님의 글을 읽다보니 내가 95년도 잠간 청도에 갓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