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을 회억하여 (17) - 큰 집 백모와 노 할아버지- 보민(輔珉)

영우맘 | 2014.11.07 19:28:42 댓글: 1 조회: 2070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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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집 백모와 노 할아버지- 보민(輔珉)

백모는 말도 재미있게 잘하며 우스개(농담)도 잘하고 타령도 잘하는 화기애애한 분이였다. 그래서 ‘김대포’란 별명을 가졌는데 백모가 가는 곳마다 그곳이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백모는 백부님도 돌아가셨고 시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지만 끝까지 시할아버지를 모셨었다. 노할아버지는 장수했는데 1952년에 84세나이로 세상을 뜨셨다.

노 할아버지는 내가 기억할만한 때에는 이미 년세가 많으셔서 우리 집에서 하는 모임에는 오지를 못했다. 내 기억속에 노할아버지 모습은 키도 크고 풍채도 있고 뚱뚱한 체격이였으며 얼굴에는 로년반점이 많이 나 있었다. 바깥출입은 평시에는 불편하셔서 다니시지 못하셨는데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바깥 널마루에 앉아 계셨던것은 많이 보았었다.

노 할아버지는 80여세에 우리에게 명언 한마디를 남기셨다. 그때 우리 큰집은 장풍동아래에 있고 우리 집은 번동아래에 있었는데 어느 한번은 쌀쌀한 겨울날이였는데 노할아버지가 지팽이를 짚고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 이때에 손비들과 증손들이 줄지어 마중나갔는데 어머니가 먼저 “이 추운날에 어떻게 오셨음두”? 하며 인사드리니 노할아버지는 유모아적으로 “야~ 내가 나이 어려서 요만한 추위에 못 오겠느냐” 하며 웃으시며 인사를 받았다 한다. 우리는 지금도 노할아버지가 웃기며 했던 유모아적인 이말을 외우군한다.

노할아버지는 술을 무척 즐거워하셨다(즐기셨다) 하는데 그때는 술을 집에서 고아서(빚어서) 마셨다. 어른들이 술이 맛있다고 하니 나도 무척 마시고 싶었다. 4-5살때 한번은 아마 백모집이였던것 같은데 내가 술을 마시고 싶어 하니 장난기 많은 백모가 어른들이 마시다 남은 술잔에 술을 부어 나에게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물처럼 쭉 들이마시다가 목구멍이 쩡하며 막히는 독한 술맛에 놀라 술잔까지 떨어뜨렸다. 그러자 백모는 ‘어! 참 맛있지? 한 사발 더 먹어라’ 하면서 주려했다. 이때 옆에 있던 누가 무어라 하는데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며 ‘애들은 저래야 철이 빨리 든다’라고 하시는 것이였다. 정말로 독을 독으로 다스리고도 웃게 만드는 재간있는 분이다.

백모는 늘 나에게 이런저런 장난을 쳤는데 한번은 또 "네 아버지는 어디 갔느냐"라고 하는것이다. 나는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나의 아버지만 보이지 않아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서울로 장사하러 갔는데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온다"고 하셨다. 나는 예전대로 백모와 맞서 "아버지는 서울로 장사하러 갔구덩. 돈을 많이 벌어 오구덩’ 했다. "돈을 많이 벌어 오면 이 맏아매게는 뭘 주겠느냐?  개눈깔 사탕 두개는 주겠지?" 하며 우스개를 하다가 멈추며 머리를 돌려 어머니를 보시더니 "인제는 애가 대앳(다 섯살)살 되는데 알려 주어야 하지 않는가?"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품에 꼭 끌어앉더니 한마디로 "네 아버지는 상세 났다(돌아가셨다)"라고 했다. 너무도 청천벽력같은 말인지라 나는 어린 나이에 평생 잊을수 없는 불행과 좌절감을 느꼈다. 그 충격이 얼마나 내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 그후로는 다시는 아버지란 말을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았다. 나는 결혼하여 애 아버지가 된 후에야 비로서 아버지란 말을 할수 있었다.

백모는 타령도 잘하고 광대놀이도 잘했다. 당시 장풍동에는 몇몇 성수군들이 계셨는데 그중 백모님을 위수(为首)로 하는 ‘8동갑’중년 녀성들이 제일 활기가 있었고 그들은 내 어머니보다는 년세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이였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털옷을 번져입고(뒤집어 입고) 얼굴에는 숱 검대기로 화장하고 성수군 한사람이 쌀함박에 물을 조금 담고 그곳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장구삼아 두드리며 백모가 타령하면 성수군 몇이 광대춤을 춘다.

이렇게 광대들이 온 동네를 일주하면 이것을 신호로 동네사람들이 서당집앞에 모여든다. 그리고 서당집 안팎과 사랑채에서는 여러가지 오락판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많다보니 오락내용도 다종다양하다. 그 여러가지 오락중에 달윷놀이는 제일 인끼있는 절목이다. 서당집은 동향집으로 오봉산위로 떠오르는 대보름달을 마주보며 달윳놀이를 시작한다. 마당에는 커다란 탄자를 펴 놓고 그 한쪽에 동그란 작은 도리상에 큰 사발에 랭수를 가득 부어놓고 보름달을 향해 두손을 마주하고 새해의 복을 빌면서 절하고는 엄지 손가락만큼 굵은 참나무가지를 쪼개여 만든 반뼘좌우길이의 달윷을 탄자위에 던진다.

백모를 비롯한 성수군들은 장구를 두드리며 윷가지 던지는 절주에 맞추어 쓩이야 캐야하며 흥을 돋구고 서당집 훈장할아버지는 커다란 낡은 책을 펼쳐놓고 돋보기를 쓰고 사람에 따라 쳐놓은 윷에 따라 책을 보며 풀이를 한다. 동네사람들은 이상분부터(어르신들부터) 너나 나나 할것없이 행운이 있기를 바라며 한번씩 던지고는 뜻풀이를 듣는데 결과도 결과지만 서당집 할아버지의 윷풀이는 조리있고 정연하게 높고 낮은 음성을 바꾸어가며 흥이나게 이야기를 하는데 마치 연출을 하는것 같아 다들 좋아했다.

달윷을 친 사람들이 계속 서당집할아버지의 그 재미있는 풀이를 듣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집에 들어가 놀음판에 가세하기도 한다. 때는 정월 대보름이라 장풍동이 산과 들은 온통 눈세계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꽁꽁 얼어붙은 눈길은 걸을 때면 빠그닥 빠그닥 소리가 나는데 어려서 달윳에는 흥취없고 옷을 꿍꿍 챙겨입고 떼를 지어 싸다니는 우리들한테는 그 소리는 반주소리같기도 했고 또 꽁꽁 얼어 반들반들해진 눈길은 좋다고 뛰여다니는 우리 아이들에게 엉덩이방아를 찧게 하는 즐거움도 선사한다.

더 재밋는건 달윷놀이가 끝나면 백모와 그 성수군들이 또 장구를 두드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동네를 일주하는데 그러다보면 몇 번씩이나 애들처럼 또 익살스레 엉덩이방아를 찧는다. 이것도 보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배를 끌어 않고 웃게해주는 재미있는 장면었다. 그때는 정월 대보름날에 일찍이 자면 눈썹이 흰다하여 모두들 자지않고 놀음판에서 재미있게 하루 밤을 보냈다.

나는 이글을 쓰며 "장풍동이 정말 재미있었지?’"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난다. 50년대는 집집마다 자물대가 없는 시기었다. 장풍동에서는 어느집이나 문을 잠그고 다니는 집이 없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말도 없었다. 이것이 평화롭고 오붓한 천하 제일의 마을이 아니겠는가?

그때 우리 마을에서 과일나무가 있는 집은 둘째숙부님집과 응선이 형님집, 그리고 조정한할아버지 집이었다. 집에 사람이 없어도 누구 하나 가만히 가서 과일 하나 뜯어 먹지 않았다. 만약 먹고 싶다면 주인 있을때 가면 주인은 마음대로 뜯어 자시라(드시라) 했다. 그리고 과일이 익어가는 때면 식구가 많고 적음에 따라 과일을 뜯어 온 동네 여러집에 모두 나누어 주었다. 당시 어떤 집에서 도마도, 참외 등 과일을 심어 놓아도 역시 누구하나 손대지 않았다.

나는 공자의 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는 명언이 생각난다. 나라의 임금이 임금같고 대신이 대신같고 집에서 아버지가 아버지같고 자식이 자식같으면 나라가 평화롭고 안정하며 가정이 화목하며 행복하다 했다. 그때 평화롭고 오붓한 우리 마을에도 공자의 말씀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이민으로 이루어진 우리 마을에는 유능한 인재가 많았다. 사실 이민으로 고향 떠난 사람들은 능력이 없으며 떠날 생각도 못한다. 우리 마을에는 서당집 윤 훈장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조정한 할아버지등 박식하고 위엄있으며 인자하고 점잖은 정의를 주장하는 분들이 중견인물로 계셨고 그아래는 유명한 목수 최성렬, 야장 리광선등 능인(能人)들이 선두에 있었으며 백모와 조동춘같은 성수군도 있었으며 더욱이 마음씨 고운 촌민들이 그 주위에 뭉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마을에 리씨와 조씨 두가지 성씨가 위주였는데 아주 단합이 잘되고 대립과 갈등없이 화목하게 지냈다. 그때에 맺어진 인연들은 년세많은 분들이 모두다 그 인연을 그리며 계속 래왕하다 돌아가신 지금에도 그때는 어렸던 우리가 아직까지 그 옛날, 그 잊을수 없던 정과 나날들을 추억하며 계속 래왕하고 있다.

50년대 그때, 매년 설날이 돌아오면 우리 마을 아이들은 줄을 지어 로인들이 계시는 집에 세배하러 다니였다. 우리가 세배를 하면 로인들은 아주 즐거워하시며 세배값으로 엿가락을 나누어 주었다. 이것 또한 재미있고 례절을 지키며 마을의 단합을 증진하는 하나의 절목이라 하겠다. 우리 마을에는 로인들이 여러분 계셨는데 한바퀴 돌고나면 받아 가져온 엿가락도 적지 않았다.

마을에는 한해에 몇번씩 청년남녀들의 결혼 잔치와 로인들이 환갑잔치, 애들이 돐생일 잔치가 있었는데 온 동네사람들이 모두 가서 축하해주었다. 특히 청년남녀들의 결혼잔치는 낮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가 축하하며 음복하고 저녁에는 축하의 노래가락을 불러 주며 노는데 그중 신랑신부의 과자분식은 아주 재미나는 절목이었다.

이러한 놀이는 1957년에 백모가 길림으로, 서당집할아버지가 조선으로 가면서 달윳놀이는 막을 내리였는데 후에 광대놀이는 백모 대신 윤실이부인이 이사오면서 다시 계속 되였다.

그리고 집체생산이 시작되면서 매년 일년을 총결하는 날이면 온 동네가 대축하하는 날이다. 그날에는 생산대에서 경비를 부담하고 음식을 차려 어른들은 년녕별로 꾸미를 짜 술을 마시며 오락판을 벌리고 녀자들과 아이들에게는 사탕과 과자를 나누어 주었다. 밤에는 남녀로소 모두 모여 놀았는데 윳놀이와 화토놀이는 장품(상품)이 걸려있는 오락판이었다.

한해는 어머니가 동네 윷놀이에서 일등을 하였는데 커다란 사기소래를 상으로 받았다. 어머니는 언제나 일이 많았고 놀음에는 흥취없어서 항상 집에 일을 마치고 늦어서야 놀음판에 찾아갔는데 마을에서는 늦게라도 찾아온 어머니에게 기회를 주어 어머니처럼 늦게 오신분과 겨루게하며 참가시켰었다.

그때 전 마을에는 28호, 120여명이 있었는데 극히 나이 많은 로인들과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 근 80명이 참가했다. 오락방법은 도태전으로 처음에는 사람이 많아 윷말씨를 두개 가지고 삼판이승으로 승부를 나누고 중 결승전부터는 여덟팀의 승부는 말씨를 네개 가지고 오판 삼승으로 일이삼등을 결정지었는데 그때 어머니의 말씨를 쓰는 참모는 환률이 외삼촌이었다. 어머니는 운이 좋아 외삼촌이 몽하고 소리치면 어머니는 몽을 치고 외삼촌이 컬하면 컬이 나오고 뒤똘하면 뒤똘이 나와 다시 말해 말 한대로 윳이 나와 행운으로 일등을 했다한다. 그때에 사기소래는 농촌에 아주 적었는데 이 소래는 우리집에 처음 있은 사기소래며 가격도 2원은 넘는 것 같다.

그때 장풍동에서는 례절없는 일이나 나쁜 일(남을 욕하거나 조롱하거나 남과 다투거나 싸우거나 남이 물건을 훔치거나 파손하거나)을 하면 극히 수치스럽고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사람으로 버림을 받았다. 이것이 어머니가 외우시며 그리던 장풍동이 재미있다던 또 하나의 측면이기도 하다.

백모는 1957년에 장풍동을 떠나 길림으로 이사갔다가 1975년경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 뜨기전 며칠전에 큰 형님이 뵈러갔었는데 반복 중풍으로 이미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였다고 한다. 또 그때 길림에는 친척이 없다보니 백모의 며느리인 6촌형수가 혼자서 중풍맞은 시어머니를 애타게 호리하셨다 한다. 


ps. 여기서 백모는 큰어머니, 즉 아버지 형님의 와이프, 연변말로는 마다매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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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달팽이 (♡.234.♡.53) - 2014/11/11 16:06:55

우리민족이동의 역사네요. 잘 봤습니다.
흥미롭고 신기합니다.
저희집에는 옛말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궁금했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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