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xingyu | 2014.11.11 20:08:22 댓글: 23 조회: 4803 추천: 10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2459226
내 글을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다. 처음엔 은근히 신경이 쓰였는데 이젠 아예 그 사람을 조금씩 내 글에 투영시킨다. 글 속에서 자신을 찾는것 또한 글 읽는 재미니까.. 이 사람으로 말하자면 언제든 이스라엘로 떠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고나 할가... ㅎㅎ 워낙 비밀스런 사람이니 이 정도만.
갑자기 카톡친구추가에 떠있던 어느 목사의 글이 떠오른다. <이스라엘이여, 영원하라! >.....
아직 추가하지 못했다. 왜냐면 내게 이스라엘은 너무 먼 땅이기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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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0

 

 

-- 나 다음 달 결혼해.

 

거의 3개월동안 문자 한 통 안하던 녀석이 갑자기 결혼한다는 카톡을 보내왔다.

서른 넘기 전엔 결혼같은것 생각도 하기 싫다던 녀석이 스물여덟에 웬말이냐?? 나는 레몬티를 홀짝거리며 입을 삐쭉거렸다.

 

책상 위의 액자속에서 웃고 있는 녀석을 쳐다보았다. 작년 스키장에서 나랑 함께 찍은 사진이였다. 일주일동안 리조트에 머물면서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주구장창 스키만 탔다. 마치 평생 다시는 스키를 못 탈 사람들처럼. 녀석은 스키를 타고 난 보드를 탔다. 녀석은 스키를 타야 시야가 더 넓게 들어온다 그러고 나는 보드를 타도 볼껀 다 본다고 했다. 녀석은 스키는 보드보다 안전하다그러고 나는 위험은 언제나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고  밀어붙였다.

 

 우린 사실 뭐하나 맞는것 없이 티격태격했지만 늘 붙어다녔다. 인간들은 짝을 지을  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를 고른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 둘 사이의 우정에도 작용하는것인지 모르겠다. 엄밀히 말하자면 순우정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왜냐면 우린 갈데까지 간 사이니까... 그리고 녀석은 나보다 4살이나 아래다. 그렇다고 녀석이 언제한번 누나라고 부른적도 없고 반말은 일상이였다. 내가 어린애 취급해도 전혀 꿀리는 기색없이 언제나 당당했다. 오히려 내가 애같고 함께 다닐라면 녀석이 어른스럽게 잘 챙겨주었다. 한마디로 잔소리가 많았다.

 

 어찌됬든 딱 한번의 작정한? 실수로 나는 우리사이의 우정에 씻지 못할 치욕을 남긴것 같아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게 정확히 일년전일이지만. .

 우리 사이의 우정은 변함없는 듯 했다. 적어도 겉보기엔 그랬다. 만나서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서점에 들러 각자 좋아하는 책을 고르기도 하고... 전처럼 야한 농담도 가끔 오갔지만 분명한건 서로 그날의 섹스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날의 섹스는 정말, 정말 최악이였다.

 나는 섹스를 제법 잘한다. 아니 섹스에 관해서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꼭 잠자리를 했던 남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칭찬해서가 아니라 그런건 스스로 알수 있었다. 그리고 녀석앞에서 전문가행세를 했다. 섹스전문가말이다... 녀석은 코웃음으로 일관했지만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여자들의 성감대와 올가즘에 대한 상식들을 내가 콕콕 찝어서 지적하면 말은 안했지만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러면 나는 더 기고만장해져서 있는것 없는것 죄다 끌어모아 횡설수설했다. 처음에 녀석은 한심하다는듯 가슴에 팔짱을 끼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나중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고글을 머리위로 올린채 하얗게 드러낸 완벽한 녀석의 치아를 들여다보며 손가락으로 액자를 탁 튕겼다. 녀석의 이마를 한대 튕겨준것 같아 속이 후련했다.

핸드폰이 몸서리치듯 책상 위에서 진동했다.

 

< 출판사인데요, 작가분이 삽화를 심플하게 해줬으면 해서요... >

< 네. 알겠습니다. 다음주까지 마감해서 갖다드릴게요. >

< 네, 그럼 수고하세요... >

 

언제는 디테일하게 해달라고 하더니....... 나는 나름 디테일하게 스케치한 그림 몇장을 쓰레기통에 처박아두었다. 저녁엔 뭘 먹을가 2초정도 고민하다. 씽크대 맨 위에서 육개장컵라면 하나를 꺼냈다.

 

 

 

D-23

 

 

< 청첩장 보냈는데.. 받았어? >

< 글쎄.. 아직 우편함을 확인하지 못해서. >

< 요즘 바쁜가봐... >

< 응, 이번주까지 일을 마무리해야 되서.. >

< 결혼식준비는 잘 되가 ? >

< 뭐 그럭저럭, >

< 그래? 시간내서 밥이나 먹자. 유부남 되기전에.. >

 

 오랜만에 하는 통화라 그런지 헤헤거리며 겨우 짜낸 내 웃음소리는 너무나 어색했다. 그러자는 대답과 함께 녀석이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에도 까칠했지만 더 까칠해진 느낌이였다.

 

녀석의 이름은 훈이다.

나와 훈이는 나이트클럽에서 알바를 하며 알게 되었다. 그때 훈이는 군대를 갓 제대하고 복학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장으로 제대해서 군기가 살짝 빠져 있었지만 그래도 꽤 귀여웠다. 의대 가기를 원하는 집안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미대를 고집하던 내가 가출을 감행하고 등록비와 생활비로 전전긍긍하던 때이기도 했다. 

 

나는 나대로 위장취업중이였다. 나이트클럽에서 남자만 채용한다기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면접갔더니 바로 통과였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가슴을 꽁꽁 동여매는 그런 일은 없었다. 갓 사춘기 접어든 초딩같은 내 가슴덕분이였다. 동생이 말하는 꽉찬 A컵은 커녕 그저 스몰컵을 하고 있어도 여유가 흘러넘치는 가슴이였다. 또 하나, 난 목소리변조에도 능했다. 한때 애니메이션에 빠져 동아리친구들과 더빙하는 일도 했었다.

 

그래도 여자는 어쩔 수 없는 여자다. 완벽할것만 같았던 위장취업은 일주일만에 끝이 나버렸다. 커피프린스에서 몇개월은 잘 버티는것 같던데...역시 드라마도 드라마인가보다. 그 재수없는 놈만 아니였으면 한달은 버텼을지도 모른다.

모든 일은 화장실에서 시작됬다. 내가 얼떨결에 여자화장실 뛰쳐들어가서 들통난건 절대 아니다. 나는 화장실조차 완벽하게 남자화장실을 이용했다. 물론 좌변기만.

그 날도 일을 보고 나와서 손을 씻고 있는데 한 남자가 계속 내 뒤에서 얼쩡거렸다. 비틀거리는 모습이 한눈에 봐도 많이 취한것 같았다.

 

< 어이, 이봐! 너 여자 맞지? >

< 아뇨. 잘못 보셨는데요. >

 

나는 속이 뜨끔하여 재빨리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 이봐! > 남자가 등뒤에서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 여자 맞네뭐... > 불쾌한 술냄새가 풍겨왔다.

<이것 좀 놔요, 왜 이러세요! > 술 취한 남자들은 다들 힘이 장사인지.. 내 힘으로는 좀처럼 그 팔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둘이 그렇게 실갱이질하는 사이 좁다란 로비에는 화장실을 오가던 손님들과 어느새 소문을 듣고 달려온 매니저도 있었다. 매니저와 이곳에서 꽤 오랜 경력을 갖고 있는 웨이터가 간신히 그 손님을 떼어냈다. 너무도 분하고 화가 난 나는 남자의 뺨을 갈겨주었다. 그러자 남자는 길길이 날뛰며 폭행죄로 고소하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바로 그 때, 혜성처럼 훈이가 나타났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좀 멋있긴 했던것 같았다.

 

< 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손님. 손님은 국민으로서 당연히 법적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형법 제260조에 의하면 폭행을 가한 자는 징역 2년 혹은 벌금 500만원,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할 수 있습니다. >

 

여기까지 듣고 난 남자는 더 우쭐해져서 가슴을 내밀었다. 나는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솔찍히 겁이 나기도 했다.

 

< 하지만... > 훈이가 다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 조사과정에서 성폭력 사실이 드러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약 전에도 비슷한 일로 고소당한 적이 있다면 법은 더 나쁘게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

< 누가 성폭력을 했다는거야! 잠깐 허리를 잡아당겼을 뿐인데... >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 상대방이 불쾌하게 느껴지면 모두 성폭력으로 인정됩니다. >

< 혹 손님이 신체접촉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까? > 훈이가 나를 보며 슬쩍 눈을 찡그렸다.

< 네. 있어요... 제 귀에 입김을 마구 불어넣고 제 엉덩이를 거시기다 바짝 붙이구... > 나는 말끝을 흐리며 훈이 눈치를 살폈다.

< 죄질이 안좋군요, 잘하면 전자발찌를 착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훈이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자 남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 당신, 당신이 뭔데 아는체야? 전자발찌 좋아하시네.. 흥! >

< s 대 법대 3학년입니다.. 아직 미흡한 점이 많으니 자세한건 두 분이 경찰서 가서 알아보세요. >

< 에익, 재수없는 ㄱㅖ집애... >

 

남자가 도망치듯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리고 우리 둘은 그날로 짤렸다. 둘이 궁상맞게 어묵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마주하고 앉았다.

 

< 아까는 고마워. 그리구 그 나쁜새끼 확 성추행으로 고소하는건데... 쒸! >

 

술을 잘 못하는 나는 알콜기운을 빌어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 고소? 솔찍히 그 비행기 활주로와 다름없는 가슴을 보고도 판사가 성추행으로  판단할지 의문이 들었어. 생각 좀 하고 살어. 폭력으로 뭐든 다 해결된다 생각해? >

<  뭐? 비행기 활주로? 너, 이것도 성폭력 맞지.. 거 뭐야 언어성폭력! >

< 그럼 어디 고소해보시던가... >

< 농담이야... ㅎㅎㅎ 너란 애 친구로 두면 쓸데가 많겠다. 흐흐흣>

 

나는 바보처럼 시물거리며 일어서서 엉덩이를 내밀며 말했다.

 

< 그래도 엉덩이는 봐줄만하지 않니? ㅋㅋㅋ >

< 배란기냐? 됬거든. 다시 보지 말자, 우리... >

 

훈이가 잔을 쭉 들이키고는 포장마차를 나가버렸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는데 우산도 없이 말이다... 하긴 나도  우산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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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어른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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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심88 (♡.188.♡.33) - 2014/11/12 09:20:43

ㅎㅎ.재밋게 잘 보앗습니다.

다음집 기대할게요.

xingyu (♡.36.♡.168) - 2014/11/13 11:26:34

감사요~ ㅎ

Miss 오 (♡.169.♡.18) - 2014/11/13 08:34:10

작가님 오셨네요..

xingyu (♡.36.♡.168) - 2014/11/13 11:28:37

에, 반가워요 ㅎㅎ

솜사탕520 (♡.56.♡.122) - 2014/11/13 10:10:02

오래만에 글쓰시네요 ~잼있게 잘 보고 갑니다.담집 기대할게용!~

xingyu (♡.36.♡.168) - 2014/11/13 11:29:21

그럼 담에 또 봐요~^^

따끈냉국 (♡.218.♡.25) - 2014/11/14 12:45:06

ㅎㅎㅎ 비행기활주로에 언어성폭력으로 인재이십니다.
뭘 신비스러운 결혼을 하길래 심상치 않은 결혼 倒计时 30일 기대합니다~

따끈냉국 (♡.218.♡.25) - 2014/11/14 12:46:01

오래 기다려서 보는 글에 추천은 필수.

xingyu (♡.159.♡.18) - 2014/11/16 21:32:10

ㅎㅎ 반가워요~

작은 도둑 (♡.64.♡.206) - 2014/11/14 13:35:40

재밌어요.

xingyu (♡.159.♡.18) - 2014/11/16 21:33:30

담집도 꼭 재밌어야 할텐데.. ㅋㅋ

사랑319 (♡.27.♡.28) - 2014/11/15 01:47:16

다음편 언제 나올가요? 넘 재밌어서 님 2년전 썼던 글도 다시 쭈욱 보게되었어요.. 다음집 기다릴게요^^*

xingyu (♡.159.♡.18) - 2014/11/16 21:35:14

저도 빨리 올리고 싶은데 일이 밀려서요..ㅠ 며칠만 기다리셔요 ㅎㅎ

lyl130 (♡.208.♡.117) - 2014/11/15 19:49:19

재밌게 잘보고 갑니다

xingyu (♡.159.♡.18) - 2014/11/16 21:36:14

에. 감사합니다~^

보라빛추억 (♡.55.♡.162) - 2014/11/16 15:37:10

다음집 기대할게요
잘보구 갑니다

xingyu (♡.159.♡.18) - 2014/11/16 21:37:27

며칠 뒤에 다시 봐요~;~

소정부동산 (♡.50.♡.159) - 2014/11/17 12:13:30

............

xingyu (♡.159.♡.18) - 2014/11/20 13:05:58

ㅎㅎ

아 이 쨩 (♡.175.♡.247) - 2014/11/17 13:44:59

오랫만에 넘~~잼있는 글 읽었습니다. 담집 기대할께요.

xingyu (♡.159.♡.18) - 2014/11/20 13:07:06

금방 올렸답니다. ㅎㅎ

진해마미 (♡.220.♡.206) - 2014/11/18 13:45:28

ㅋㅋㅋ 아주 완벽하게 남자로 위장했네요 화장실까지 좌변으로

xingyu (♡.159.♡.18) - 2014/11/20 13:08:14

ㅋㅋㅋㅋ 아무리 위장을 해도 여자는 여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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