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5

xingyu | 2014.12.08 19:23:53 댓글: 10 조회: 2680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2491135


단언컨데 울 엄마는 다른 엄마와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달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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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

< 이스라엘? 니 아빠가 들으면 기절하겠구나. >

< 그러니깐 이스라엘 도착하기 전까지 비밀로 해줘요, 엄마... >

< 그러지뭐. 어차피 호주에서 돌아오면 넌 이미 떠나고 없을텐데. >

엄마는 시큰둥하니 대답하며 난잎을 세심히 닦고 있었다. 몇년 전만해도 옅은 볼터치를 살짝 했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안하니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그래서 그런가 얇은 쌍꺼풀눈이 더 얇아보였다.

푸른 진녹색을 띤 난잎은 내 얼굴보다 윤이 나고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이름이 뭔지 몰라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 숱한 난을 외우고 분별하고 키우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마 시작은 아빠였을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그랬다. 아빠가 대학교 강사로 취직되던 해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였다. 그 때 같은 과 교수님이 난 키우는 것이 취미라며 한 뿌리 얻어 왔는데 그 때부터 난을 키웠다. 시작은 아빠였는데 나중엔 엄마가 더 열성이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난 종류별로 창가 혹은 음달로 옮겨 놓아야 했다. 물주기는 여간 까다로운것이 아니여서 엄마는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았다. 계절에 따라 물 주는 주기도 달랐으며 양도 조절해야 한다. 참 까다로운 식물이다. 봄이면 대규모의 분갈이공사를 하게 되는데 집 나오기 전엔 어김없이 내 손이 필요한 일이였다. 지금은 아빠도 퇴직했으니 둘이서 느긋하게 하면 될 일이였다.

언젠가 훈이 한테 같은 란인데 군자란은 키우기 쉽더라는 말을 지나가듯 던진적이 있었다. 결국 또 훈이한테서 무식하단 소리를 들었다. 군자란은 난이 아니란다. 박박 우기다가 몰래 화장실 들어가서 폰으로 검색해보았다. 군자란은 수선화과라고 지식백과에서 알려주었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훈이 녀석은 나보다 아는 것이 훨씬 많았다.아빠가 생일선물로 군자란을 사다준적이 있었는데 키우기가 매우 쉬웠다. 그저 생각날 때마다 물을 한번 푹 주고나면 알아서 잘 자랐다. 그렇게 쉬운것도 두달동안 물주기를 깜빡해서 말려 죽였다는 사실은 훈이한테 무덤까지 비밀로 하기로 했다.



모든것이 그대로였다.

다분히 학자스럽게 꾸며진 서재에 달라진 것이라면 퇴직후의 느긋함이랄가 그런게 느껴졌다. 서재방 문 뒤에 걸어두었던 칠판에 여전히 내 우스꽝스러운 그림과 글들이 지워지지 않은채 걸려 있었다. 꼭 나의 성장일기 같았다.

--<사람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것일가...> 하는 물음아래에는 좀 과감한 삽화가 들어가 있다. 여자의 음부와 무덤자리 하나. 아마 중2때였을것이다. 여자의 은밀한 곳은 내게 있어서 은밀한것도 아니였다. 어릴적부터 엄마의 의학서적에서 수도없이 보아왔던 것들이기에... 아빠 또한 나의 이런 직설적인 표현들에 대해 극단적인 부정이나 긍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마 사춘기시절 자아의 표출로 여겼던것 같다.

그 옆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질문에는 파트라슈를 위해 종을 울리고 싶습니다라는 비뚤배뚤 큼지막하게 씌여진 글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이였나.. 그 밑에 또 하나의 답. 개는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렸다. 아마 조건반사와 무조건반사를 배우면서 남긴 글 같았다.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잊지 못할 종소리가 있었다.

그날은 아빠가 날 데리러 오는 날이였다. 엄마는 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었고 격일로 오전 오후 진료를 하게 되있었다. 차 안은 히터의 열기로 훈훈했고 퇴근길 빽빽히 들어찬 길 가운데 꽤 오래 멈춰있었다.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캐롤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멈춰선 길 바로 옆에 구세군 종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머지 않은 곳에서 교통사고가 났는지 경찰과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 어, 웬일이야.. 지금 통화하기가 좀.. 딸애가 잠들어 있긴 하지만 나중에 통화해.>

< 응.. 나두 사랑해... >


나는 졸음이 와서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든 것은 아니였다. 열살의 나는 생각했다. 내가 들어서는 안될 통화의 상대는 누구일가... 그리고 엄마와 나를 빼고 아빠가 사랑해야 될 사람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집으로 오는내내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와 나 사이에 처음으로 벽 하나를 쌓았다. 나는 아빠에게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엄마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직감적으로 내 입을 다물게 했으며 나는 점점 과묵한 아이로 변해갔다.

아빠는 어떡하든 나를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전처럼 맘 놓고 즐겁지가 않았다. 엄마는 당신이 너무 병원에 얽매여 있어서 그런가싶었는지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엄마의 선배가 하는 병원건물 2층에 산부인과를 개설했다. 대학병원처럼 신생아를 받거나 제왕절개수술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간단한 진료만 하고 약처방을 주고 초음파를 봐주는 정도였다. 출퇴근도 칼같이 하고 토요일 일요일은 무조건 쉬었다.

덕분에 나는 그 일을 차차 잊어가고 안정을 찾았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자 가운을 입고 일하는 엄마의 모습이 꽤 근사해보였다. 그래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내 꿈은 의사였다. 엄마의 선배인가 하는 사람의 문자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주말 공연티켓 시간과 장소가 찍힌 메시지였다. 나는 그날 학원을 빼먹고 두 사람이 나란히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훔쳐보고야 말았다.

그 다음주 월요일날. 나는 엄마의 선배가 일하는 그 병원으로 찾아갔다. 아빠의 그 사람과 달리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아직은 이해가 가지 않는 어른들 세계에 대해 나름 납득이 갈 만한 핑계나 이유같은 것을 찾고 싶었다.

엄마의 선배라는 그 사람... 너무 멋있었다. 도저히 대놓고 미워할 수 없는 외모의 소유자.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적이고 사람을 매료시키는 중후한 외모에 희끗하게 세기 시작한 머리카락마저 너무 매력있었다. 내가 엄마의 딸이라 취향도 비슷하게 닮았는지 몰라도 열이면 열사람 싫어할 타입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 너 닥터 최 딸이구나. 어디 아프니? > 목소리마저 한 겨울 난로불 쬐듯 너무 따뜻하고 포근했다.

< 배가 좀 아파서...... > 나는 들릴락말락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그래. 어디 좀 보자... > 한참을 진찰하고나서 의사는 진단을 내렸다.

< 이거 어쩌나? 따뜻한 물 한 잔이면 될 것 같은데... > 의사는 웃으며 청진기를 목에 걸어두었다. 아마 학교 가기 싫어서 꾀병이라도 부리는 줄 알았나보다. 어찌됬든 병은 핑게였으니 나는 얼굴을 붉히며 엄마에겐 꼭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남자는 다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은 그렇게 무거운것 같지가 않았다.

그후 엄마와 뭔 대화들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병원을 다녀온 뒤로 엄마는 난 키우는 일에 더 열과 성을 다했다. 가끔 나는 그 병원이 있는 큰 길을 건너 학교로 갔다. 여전히 같은 건물 위 아래층에서 일하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의 벽을 나는 분명 보았다.

그 벽의 장본인이 나던 아니던 더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나는 결심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미대를 가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갔다.

이제와서 실토하는데 엄마의 선배라는 그 의사를 찾아가기 전 나는 별의별 악동같은 짓을 다 상상했었다. 이를테면 뭐 진찰도중 성추행했다던가.. 이런 모함을 씌워 망신을 주고 싶었다. 쌓아왔던 명예와 덕망을 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지 않은 것이 얼마나 천만다행인지 모르겠다.

무모한 짓은 한번만으로도 족했다. 아빠의 대학교 교수임명동의안이 결정되기 전이였다. 나는 아빠가 윤리적으로 부정한 사람이라는 투서를 대학측에 익명으로 보냈다. 그 결과 아빠의 교수임명은 몇 년 뒤로 늦춰졌다. 그것도 엄마의 적극적인 해명아래... 교수임명안이 보류되던 그 날 밤, 아빠는 몇년은 더 늙어보였다. 아빠는 홀로 식탁에서 술을 마셨고 엄마는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왠지 우울한 서재에서 거실로 다시 나왔다. 엄마는 잠시도 일손을 멈출 생각이 없는듯 보였다.

< 엄마. 전에 우리 산부인과 아래층에서 일하시던 아저씨.. 아직도 연락해요? >

엄마의 손길이 잠시 멈추는듯 했으나 다시 부지런히 움직였다.

< 캐나다 이민 간 뒤 연락이 끊겼어. 갑자기 왜? >

< 아니. 그냥 생각나서... >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말끝을 흐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 엄마 나 갈게요. >

< 밥은? >

< 저녁약속 있어요. >

엄마가 현관으로 따라 나왔다.

< 얘! > 엄마가 날 불러 세웠다. < 피임은 잘 하고 있는거지? > 생뚱맞은 엄마의 작별인사에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닥터 최 나의 엄마, 나의 엄마 닥터 최.



추천 (2) 선물 (0명)
나는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어른아이다......
IP: ♡.159.♡.18
몽길이 (♡.61.♡.111) - 2014/12/09 15:04:40

재밋어 지는데요~

xingyu (♡.159.♡.18) - 2014/12/10 22:38:50

이제 곧 끝나가는데요~ ㅎ

몽길이 (♡.61.♡.111) - 2014/12/11 14:25:36

아쉽네요~

들래 (♡.69.♡.81) - 2014/12/10 09:44:22

우리 딸내미보고 ** 이쁘다~누구딸?하면 <엄마딸> 이래요...
요즘 이 멋에 살거든요...ㅋㅋㅋㅋ

여주도 <엄마딸>일 같으네요...엄마의 트라우마라...ㅎㅎ
결혼식장에서 남주의 손을 잡구 도망칠 막장상황은 벌어지기 힘든 일일 같네요...
좀 슬퍼질가 하면서...이스라엘에 그 남자의 베일이 벗겨지지 않으니 더 궁금...

아 그리고 군자란은 란이 아니다라 해서 네이버 찾아봤어요...잡학대가심!^^
저번날에 맥주는 술이 아니야 란 노래를 처음 접하고 넘 잼있어서 한참 뒤적거렸어요.ㅋㅋㅋ

아재 글보면 말이 많아지네요...수요일아침 첫일과 여기서 마치고~ 좋은 하루 되세요~~

xingyu (♡.159.♡.18) - 2014/12/10 22:58:07

<너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예전 사람들은 왜 하릴없이 이런 질문으로 애들을 괴롭혔나 모르겠어요 ㅋㅋ
한창 이쁜짓 할 때군요~~

다음집이면 끝날거얘요... 슬픔은 양념처럼 살면서 없어서는 안될 조미료라고나 할가. ㅎㅎ 필요합니다 슬픔,

글구 아재는 싫어요..ㅠ 아저씨가 낫겠어요 차라리 ..ㅋㅋㅋ 죤밤 되세요 ~~^^

들래 (♡.69.♡.81) - 2014/12/11 09:23:29

아저씨라니 그럴리가??
아기씨 이건 어때요??ㅋㅋㅋ

들래 (♡.69.♡.81) - 2014/12/10 09:45:11

플 길게 쓰다 추천 단추 누르는거 까먹었어요...ㅠㅠ
다시 들어와서~~^^*

솜사탕520 (♡.56.♡.122) - 2014/12/10 10:07:03

오늘도 어김 없이 xingyu라는 이름을 보고 클릭하였네요 ~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진짜 궁금해서 인데요.몇십대분이세요 ?글내용이 새롭기도 하면서 노련되어보여서요 .

xingyu (♡.159.♡.18) - 2014/12/10 23:19:13

저두 솜사탕 좋아하는 분이 궁금합니다. ㅎㅎ 글을 보고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는건 금물입니다, 글은 글일뿐이니까 ㅋㅋ
적당한 호기심은 건강에 좋아요...

쑥사랑 (♡.229.♡.193) - 2014/12/12 09:16:30

요즘 바쁘다 보니 인제야 댓글을 다네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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