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방울

하늘일기 | 2014.12.10 15:19:40 댓글: 34 조회: 4633 추천: 11
분류실화 https://life.moyiza.kr/mywriting/2493392




소중한 의미를 지녔던 무엇인가가 점점 색이 바래고 소멸되여 가는것을 지켜보는건 슬픈 일이야.

------------<색채가 없는 다자기쓰쿠루의 그가 순례를 떠난 >중에서.

<<보고 싶다.>>

한마디에 욱신 아파온다.

술취한 목소리로 내게 하는 .

보고 싶다 한마디.

그래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이미 끝나버린 우리 사이로, 이미 놓아버린 손가락 사이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흘러들어온다. 가끔은 나도 떠오를때가 있다. 서류상3년동안 남편으로 살던 사람이니까그러나 이미 끝나버린 사랑, 끝나버린 인연이다. 그래서 서글프다. 사람에게 너무 많은 희망을 걸었던 지난 모습에 마음이 아려온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연길의 봄은 언제나 춥다. 그해는 추웠는지도 모르겠다. 몸속에 파고드는 차가운 봄바람에 마음이 더욱더 시려오는 느낌이다. 그해 봄은 추웠다. 추웠을지도 모른다. 외박한 남편을 찾아 밤새 울며 연길 도심을 누비던 새벽시간들아마 추웠을것이다.

바스러지는 락엽이 아츠라하니 나무가지에 걸릴때 나는 이혼도장을 찍었다. 오랜 싸움의 끝에 결국 도장을 찍고 나섰지만 마음이 홀가분하지만은 않았다. 결혼 3주년 기념일이 지난지 사흘뒤였다.

<<행복하게 잘살아.>>

<<그래. 행복해야지.>>

이게 그와 나의 마지막 인사말이였다.

담담한듯 담담하지 않은듯, 그렇게 남남이 되여버렸다.

누군가가 그러더라. 아직 애가 없이 이혼한게 오히려 잘된일이라고

이날이 올줄 알아서 우리 아가도 내게 찾아오지 않았나보다.

2010 6.

나이 25살에 우리는 처음 만났다. 한창 월드컵으로 열기가 오르던 6.

축구는 우리 사이를 이어주었다. 맥주한잔 하며 축구경기를 보며 우리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공감하는 대화가 있다는게 서로에 대한 인상이였다. 그는 옆집오빠와 같은 푸근함으로 나를 대했다. 나보다 5 연상이였던 그는 무엇보다 든든한 정신기둥이 돼줄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25년동안 고이 지켜왔던 순결을 그에게 드렸다. 그는 내게 첫사랑은 아니였지만 첫남자였다. 그때의 철없이 순진하기만한 한낱 어린애였다. 첫순결에 그는 많이 당혹스러워했다.

<<내가 책임질게.>>

그는 한마디로 우리의 결혼을 일축했다.

우리는 뭔가에 쫓기는듯 결혼이 성급했다. 그는 나를 책임져야 하는 남자로, 나는 그의 말에 복종하는 여자로 우리는 만난지 석달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우리는 공통점이 많은 사이였다. 우리는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빠 동생사이로 착각할 만큼, 그렇게 우리는 처음부터 닮아있었고 서서히 서로에게 물들어갔다.

우리는 인연이였다. 닮은듯 닮지 않은듯 그렇게 우리는 인연이라는 울타리속에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급했던 시작은 인연을 악연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인연은 마치 잘못채워진 셔쯔 단추처럼 하나둘, 틀어지기 시작했다.

볶음 요리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 나와 달리 그는 김치에 된장국을 고집했다. 시아버지와의 생활도 어쩌면 우리사이가 멀어지는데 일축을 했는지도 모른다.

나이 25살에, 나는 시아버지를 모시는 며느리로 됐다. 시누이와 나는 16 차이였다. 그를 업어키우면서 많이 고생했다는 말에 되도록 나는 큰시누이의 말과 명령에 순순히 따르는 편이였다.

큰시누이는 사사건건 우리의 생활에 개입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벽지 무늬까지. 큰시누이는 하나에서 열까지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을 거역하지 않았다. 그게 시집에 대한 도리이고 존경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시누이는 사근사근한 성격에 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듯 했다. 작은 시누이에게는 시누이가 있었다. 그래서 본가집의 생활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 신혼생활을 시작한 그때. 그와 함께 시간보다 시아버지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는부부라기보다 그냥 동거인일뿐이였다.

2010 10

신혼여행을 다녀온지 사흘 되던 , 처음으로 그에게 실망과 함께 내가 선택한 결혼이 잘못됐음을 감지했다.

<<그래.>>

그가 전화를 받고 끊을때의 말이였다.

<<누구에요?>>

<< 몰라도 .>>

<<내가 몰라야 돼요? 와이프에요. 권리가 있지 않을가요?>>

여자의 직감이 알려줬다. 이건 분명 뭔가가 있는 통화라는걸 직감은 나를 캐묻게 만들었다.

쨍그랑 !

얼굴 옆으로 스쳐지나간 핸드폰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시끄러우니까 그만해!>>

그는 고함을 지르고 휑하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돌았다. 우리 분명 신혼인데, 우리 분명히 신혼인데 말이야

한참후 그는 드르렁 드르렁 코를 굴며 잠들어버렸다. 분리된 핸드폰을 끼워맞추자 요란한 벨소리와 함께 한국 번호가 떴다.

0082…

시어머니 번호는 아니였다.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오빠. 진짜 결혼한거야?>>

날카로운 여성의 음성이 들렸다.

<<말해봐. 나한테 뭐라도 해야 할거 아니야…>>

<<구세요?>>

목소리가 떨렸다.

<< 누구야?>>

상대방은 반말이였다.

<<와이프인데그쪽은 구인?>>

<<? 오빠 헤여진 여친.>>

순간 화가 치밀었다.

<<헤여졌음 끝날것이지 결혼한 남자한테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건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쪽팔리지 않아?>>

<<진짜 결혼했어? 증거 대봐.>>

<<내가 너한테 결혼했다는 증거를 대야 하는데?>>

<<. 당당하지 못하잖아. 호호호오빠는 나를 잊을 사람 아니거든. 화김에 헤여졌지만 우린 사랑하는 사이라고…>>

그녀의 가증스러운 웃음소리에 신경이 날카로와졌다.

<<헛소리 지끌이지 말고 그만해. 다시 전화하면 가만 놔두지 않을테니까.>>

<<그건 네가 말이 아니고 오빠가 말이지. 너랑 할말 없어. 오빠 바꿔봐.>>

그녀의 당당함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멍하니 있다가 종료버튼을 눌러버렸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지 사흘. 사흘만에 나는 그의 전여자와 통화를 했다. 찝찝한 기분이란 떨쳐버릴수없는 구정물을 기분이였다.

나중에 큰시누이에게서, 그리고 그의 친구들에게서 그녀란 사람에 대해 알게 됐다.

그가 친구 결혼식에서 만난 여자란다. 뀀점에서 복무원을 하던 여자인데 시아버지가 계시는 집에서 함께 생활을 했단다. 집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신혼집이라고 했다. 시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그녀는 큰시누이에게 뺨을 맞고 떠났다고 한다. 그는 그녀가 한국에 갈수있도록 도왔고 한국에 그녀는 시어머니를 만나보라는 그의 당부를 뒤로 한채 이별을 고해왔다고 한다. 웃음이 나왔다. 아니, 액체가 깊은 곳에서 용솟음쳐 올라왔다는 표현이 맞을것이다.

2010 10월중순.

그녀의 전화가 온지 며칠 지난 , 그의 회사 동료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가 마작을 놀아서 5000원을 값으라는 독촉 전화였다. 말없이 은행카드를 내밀었다. 그래내가 믿어주자. 언젠가 변하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 사람도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곁에서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함께 하는 날이 오겠지

2010 11

결국 나는 그여자가 살던 집에서 살수가 없었다. 구정물을 뒤집어쓴듯한 더러운 기분때문에 집이 싫었다. 과거에 여자랑 같이 썼던 침대에서 내가 자야 한다는 끔찍함우리는 결국 큰시누이의 집에 이사를 했다. 그리고 한달동안 나는 남편이 없는것과 다름없는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저녁마다 아들을 찾는 시아버지와 전화를 받지 않는 사이에서 나는 못할 스트레스를 겪어야만 했다. 그는 매일 새벽 2~3시가 돼야 집에 들어왔고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우군 했다. 시아버지의 그를 찾는 잔소리와 전화 자체를 거부하는 사이에서 나는 불면증과 우울증을 시작하게 됐다.

2010 12

그는 슬슬 외박하군 했다. 내가 정말 싫다는 마작도 다시 놀기 시작했다. 낮에는 출근하고 퇴근과 함께 친구들과 마작을 놀고 술을 마시고 새벽에 집을 들어오는 그의 생활은 한결 같았다. 나는 그의 생활속에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이였다.

그가 외박하고 들어온 , 나는 미친듯이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돌아온건 차디찬 그의 랭소와 그의 생활을 이해못하냐고 아니꼬운 눈길로 보는 시아버지의 모습 뿐이였다. 그때부터 아마 맘이 식어갔는지도 모른다.

2011 1

그날은 그가 년말총결을 짓고 날이였다. 그는 단위에서 있었던 기분 나쁜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시고 왔다. 친구와 친구 남친을 불러 같이 술을 한잔 하기로 날이라 약속을 지킨다며 우리 넷이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나보다 다섯살 연상이였던 그는 나를 간나새끼로, 친구 남친은 벌거지(벌레)라고 부르며 술추태를 멈추지 않았다. 너무 창피하고 눈물이 났다. 그만하라고 소리 지르는 나에게 그는 처음으로 폭행을 휘둘렀다. 나를 막아선 친구도 나를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다. 얼마나 맞았을가… 120구급차가 오고 나서야 그는 폭행을 멈췄다. 맞아서 아픈것보다 친구앞에서 맞았다는 현실때문에 자존심이 무너졌다. 120차에 실려 병원에 가는 내내 나는 미치도록 마음이 아팠다.

2011 2.

우리의 다툼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새벽에 들어왔고 잠을 자지 못한 나는 흐리멍텅한 상태였다. 그와 결혼하면서 나는 생리균형을 잃어갔다. 달마다 꼬박꼬박 오던 생리는 어느 순간 석달에 한번씩 오는 꼴로 문란이 왔다.

미끄러운 길때문에 엉덩방아를 찧고 출근 .

자꾸만 흐르는 피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유산 되였습니다. 임신 5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마저 긁어내야 할거 같은데…>>

의사의 말에 하늘땅이 빙글빙글 돌았다.

내가 그에게 맞아서 병원에 실려가던 그때, 나는 이미 임신한 몸이였다. 몰랐을가? 임신인줄 몰랐을가?

임신한 자신의 몸조차 돌보지 못할 정도로 미련한 여자였다.

결국 펑펑 울며 수술대에 올랐고 그날부터 나는 말문을 닫았다.

남편이 밉고 세상이 싫었다.

아기를 따라 저세상에 가고 싶었던 그런 나날들이였다. 나는 임신한지조차 몰랐던 아기를 저세상에 보내버렸다. 그리고 나는 시들어져가고 있었다.

2011 3.

아기를 보내고 한달.

한달이 지나서야 나는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수 있었다. 잦은 외박과 늦은 귀가로 바쁜 남편을 만날 시간 조차 없었던 한달. 나에게는 최악의 한달이였고 눈물의 한달이였다.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아기가 있었는데 떠나갔다고그는 의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글펐다. 차라리 말하지 말걸, 그때 말을 했던것을 나중에 나는 후회만 했다.

그의 친구들은 우리집에 자주 놀러왔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의 오랜 친구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술이 거나하게 들어갈 즈음. 그가 화장실에 틈을 그의 친구가 얼굴을 만졌다.

<< 이러세요! 이손 치워요!>>

그의 친구는 내가 뿌리친 손으로 팔목을 잡고 또다시 얼굴을 만져댔다. 기분이 더러웠다. 송충이가 기여다니는것 같았다.

그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나는 그에게 친구의 행실을 고했다. 그러나 내게 돌아온건 그의 어처구니 없는 답변이였다.

<< 친구는 그럴 사람 아니야.>>

결국 그날도 다툼으로 하루가 끝났다.

한상 가득 차렸던 술상은 그가 엎어버려서 바닥 여기저기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노래방에 가버리고 엉망이된 집을 청소하며 나는 가슴을 쾅쾅 치며 펑펑 울었다.

2011 4.

그의 술먹는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추태는 우리 친정집까지 이어갔다. 그는 술에 잔뜩 취해 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심장병땜에 심장이 약한 엄마는 새벽에 고주망태로 전화를 사위때문에 크게 놀라셨다. 그러나 그동안의 결혼생활을 말할수가 없었다. 아직 끝나버린 사이가 아니였기에, 아직은 지키고 싶었던 가정이였기에, 언젠가 그가 변할것이라 믿었기에, 언젠가 묵묵히 지켜보고 참아온 진심이 전해지길 바랬기에

2011 5.

그는 잃었던 우리의 아기가 다른 남자의 애라고 주장했다. 너무 어이없고 기막혔지만 묵묵히 참아냈다. 세상 어디에서 소리를 질러도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사람이 없었다. 그는 세상 누구에게나 착한 사람이였다. 나쁜 소리 한마디 안하고 인간관계 일처리 잘하는 도움을 주는 배려심 깊은 남자였다. 그의 술주풍에 힘들어하는 모습은 세상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할것 같았다. 그의 이중적인 생활에 나는 지쳐만 갔다. 밖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집에서는 위선자로 지내는 그에게서 나는 점점 믿음을 잃어갔다.

새롭게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우리는 단둘의 생활을 갖기로 했다. 우리는 세집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2011 6.

그녀와 같이 살던 우리의 신혼집에서는 죽어도 살지 않겠다는 나와 세집에서 고생이냐는 그의 대립은 언제나 팽팽했다. 그는 리혼하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옷장에 있는 모든 짐을 싸들고 도망을 가버렸다.

그래그럼 끝내자.

결심을 먹는건 한순간이였다. 나에게는 미련밖에 남은것이 없었다.

시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이 마주 앉았다. 결국 그는 미안하다, 잘못했다로 일축하고 모든 일은 고요한 물속에 잠기듯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는 며칠 안돼 나를 쫓아냈다. 신혼집에서 살지 않으면 리혼하겠다는 그에게는 나의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안중에 우리 부모님도 없는듯 했다. 함께 식사를 하다가도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러는 그에게 나는 점점 지쳐만 갔다.

2011. 7.

7 30. 그날은 아마 평생 잊을수 없는 하루였을것이다.

그날은 부모님이 우리 부부를 보러 오셨다. 힘든 고비도 넘기면 잘살수 있다면서 그에게 소비돈을 하라고 천원을 쥐여주고 우리의 커플옷을 사주었다.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늙어버린 부모님을 보며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뿐이였다.

그날, 부모님과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시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그날 저녁, 그는 놀러간다고 나가버렸다. 그를 기다리는 밤은 언제나 무섭고 힘들었다. 계단에서 들려오는 쿵쿵 소리에 잠을 못이루기를 수백번, 그날 밤도 그렇게 저물어 갔다.

열두시가 되자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았는데 노래소리만 나왔다. 그가 부르는 노래였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소리와 여기 저기에서 건배를 웨치는 남자,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참후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쌉다? 에이~ 앉아서 머합다~ 빨리 나오쇼.>>

아양을 피우는 여자의 간드러진 목소리에 미간이 찌프러졌다.

어떤 사이기에 화장실도 같이 들어가는거지?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둘의 두런두런한 대화가 희미하게 들릴쯤, 전화는 끊겼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결국 새벽 네시가 돼서야 곤두레 만두레 상태로 집에 들어왔다. 몸도 바로 가누지 못하면서 집에 들어서자 마자 그는 밥상을 차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그랬다. 술마시고는 집에 돌아와 밥상을 차리라고 했다. 밥상을 차리거나, 아니면 내가 울어야만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면서 잠에 골아떨어지군 했다. 그러나 그날은 나도 달랐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나를 밀치는 그를 나도 있는 힘껏 밀쳐버렸다.

벌러덩 자빠지던 그는 씽하고 주방에 달려가 식칼을 들고 나왔다.

<<죽여버리겠다!>>

<<그래. 죽여봐라!>>

나도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을 스쳐지난 식칼은 모서리에 박혀버렸다.

씩씩 거리며 식칼을 뽑는 그의 옆에 시아버지가 나왔고 나에게 식칼을 들고 달려드는 그를 시아버지가 등뒤에서 안고 쏘파에 벌렁 넘어졌다. 순간 나는 핸드폰만 손에 쥔채 맨발 바람으로 미친듯이 도망을 쳤다. 어스름한 새벽이라 거리에는 택시도 없었다.

브라도 입지 않은 흰티에, 머리가 산발인 여자를 누가 차에 태울것인가.

미친듯이 큰길에 뛰여들어 택시 앞을 가로 막았다.

손님이 앉았던 택시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택시에 올라탔다.

도착하면 돈을 드릴테니 얼른 출발하자고 울면서 애원하던 나를 택시기사는 미친 여자를 보듯 하다가 손님에게 량해를 구하고 운전을 시작했다.

택시를 타고 엄마 집으로 가는 내내 다리 기운이 풀렸다.

집문을 열고 들어 순간 엄마의 얼굴을 보자 나는 정신을 잃었다.

엄마 말로는 내가 엄마를 보자 마자 <<엄마살려줘.>>라고 한마디만 하고 바로 쓰러졌다고 한다.

지금도 비가 오고 번개가 치는 날이면 눈앞에 스치던 식칼이 번쩍이던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라군 한다. 맨발바람으로 미친듯이 뛰여 나온 그날, 반바지는 생리피로 범벅이 되였고, 삼검불이 됐던 머리는 스포츠 머리로 잘라버렸다. 생리중이였던 그날 놀란 이후로 일년 동안 생리가 오지 않았다. 아마 내게는 최고로 충격이였던 날이였던것 같다.

2011 8.

그와 시부모님이 친정에 찾아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한다고 맹세하고, 나는 다시 악몽같은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치지 못했는지후회스럽기만 하다.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뭐가 두렵다고

그의 사촌동생이 사람을 때려 파출소에 들어가게 되자 이른 새벽 나와 그는 화룡으로 사촌동생을 꺼내주러 갔다. 그리고 나서 도움을 줬던 그의 친구에게 사는 , 우리의 인사치레는 마르는 날이 없었다.

외지에서 친구에게 사고 천원, 형님네 명절이라 천원, 친한 친구네 부부랑 동석하면 그가 계산하니까 천원등등

월급쟁이였던 우리 둘에게 그의 지인들을 향한 인사치례는 끝이 없었고 나는 경제적 압력때문에 신경질적이 돼갔다.

그러나 그는 변함이 없었다. 오늘은 이친구, 내일은 친구, 이번 주말은 축구하러, 다음 주말은 반디질 하러

결혼생활을 열심히 이어가자던 나도 그쯔음 부터 생활에서 손을 놓기 시작했다. 당뇨종합증때문에 아픈 시아버지 약값도, 링게값도 내겐 부담이기만 했다.

2011 9.

우리는 집을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결혼한지 오랜 시간이 지난 그때에야 나는 시누이가 신혼집 집조를 자기 엘리베이터 대콴때문에 방산에 눌러두고 있다는걸 알았다. 순간 나는 대체 집안 식구들에게 무엇이였고, 앞으로도 무엇일가 하는 허구픈 웃음만 나왔다.

혼전 재산이고 결혼전 집이라고 해도 적어도 내가 집조의 행방은 알아야 하지 않느냐는 말에 큰시누이는 << 집이 니까 무슨 상관 있다구 그러니.>>한마디를 쏘아붙였다.

여태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것도 나이고, 이젠 집을 기초로 우리도 우리 보금자리 만들겠다고 했다.

결국 시어머니, 큰시누이, 작은 시누이모두가 모였다.

계약서 한장을 내밀었다.

1: 방산 책정 결과 집은 어떠한 위치와 어떠한 조건으로 15만원으로 매매 될수 있음. (실제 20만에도 팔수 있었던 )

2. 집은 시누이가 사는것으로 하되 나중에 집은 시어머니가 생활 집이므로 십년뒤 자식 셋이서 똑같이 값을 분담하여야 .

3. 매매 5 안에 집조 이름을 바꿀시 세금은 우리 부부가 안는다. (집조 이름이 그의 이름이였고 시어머니의 이름으로 바꾸려면 세금이 나오는데 집조가 나온지 5년이 안됐을 경우 세금이 8000원에서 만원정도 나온다고 .)

4. 매매후 15 현금은 빠른 시일내로 몇단계 나눠서 돌려준다.

……….

11. 이상의 조건에 의견이 없을시 손도장과 이름 싸인.

계약서를 보는 내내 머리속에는 한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집안 식구들에게 대체 무엇이였을가?

식구들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였을가?

가족사이에 계약서라나는 대체 지금까지 노력을 했고 아글타글 했을가? 시집올때는 집이 있으니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라고 하더니 이젠 집이 너희 집이 아니라고 하면서 손도장까지 받아내니 기분이 착잡했다.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2011 10.

괜찮은 집이 생겨서 우리 부부의 공적금으로 집을 사기로 했다. 먼저 부동산 매매 값을 10만원 내기로 했다. 마지막 매매 날자가 와서야 큰시누이가 몇만원을 내주었다. 남은 돈은 먼저 친구한테서라도 빌려오라고 했다. 부동산 매매 첫가격을 무조건 날자에 내야 했기에 그는 친구에게서 3만원을 빌려왔다. 겨우 10만원을 맞춰서 부동산 매매에 등록했다.

2011 11

장식이 시작됐다. 그의 친구도 급히 돈이 있다고 독촉을 했다. 큰시누이에게 말했더니 그와 함께 은행으로 향했다. 3만원을 친구에게 보내는 수수료 50원까지 우리가 내야 했다. 많은 돈은 아니였지만 너무 서운했다.

새집 열쇠를 가지면서 만원, 관리비, 엘리베이터 등등 만원을 내고 나니 남은 돈이 3만원밖에 안되였다.

큰시누이는 천천히 집을 장식하라고 했다. 3만원도 오천원 한번, 이천원 한번, 팔천원 한번자질구레하게 나누면서 주었다.

결국 우리의 새집 장식은 장식 하다가 멈추고, 장식하다가 멈추고를 반복해갔다.

쥐여짜듯 3만원을 주고 나서는 이젠 줄돈이 없다고 하더니 우리 월급으로 장식을 하라고 했다. 너무 추웠던 겨울, 나는 페렴으로 앓으면서도 못이 부족하다 하면 못을 사가고, 나무판이 부족하다하면 나무판을 사가면서 악물고 버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는 순간 시누이는 나를 아래위로 흘겨보면서 아니꼽다는듯 한마디 쏘아붙였다.

<<아문데서나 살게지 무슨.>>

자기 자신은 엘리베이터 두개, 창고 달린 하나, 세를 주고 있는 영업집 하나, 별장 하나가 있으면서 말이다.

결국 지켜보다가 복장이 터진 엄마가 모든 것을 해결해버렸다. 20만원으로 남은 장식비, 가전제품, 차를 해결해주었다.

제발 우리 둘이 새집에서 추억을 갖고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면서 말이다.

2012 2.

우리는 새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시작은 무난했다. 처음으로 그와 , 단둘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홀로 집에 있으면서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의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였다.

해수로 이년에 접어든 결혼생활.

시댁에서도, 그도 애를 갖고 싶어했다. 아무래도 애가 필요할것 같았다.

거의 일년동안 오지 않던 생리를 돌아오게 하려고 엉덩이 주사부터 시작했다. 한달째 엉덩이 주사를 맞고 생리가 다음, 배란 일을 맞추느라 한달 내내 엉덩이 주사를 맞았다.

드디여 배란일을 맞춰 날자가 나왔다. 거의 백프로 확률인 그날, 나는 그에게 신신당부 했다.

그런데 그는 그날 외박을 해버렸다.

애를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그가, 시댁의 눈치가 싫다면서 애를 갖겠다던 그가, 결국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고 밉지도 않았다.

우리가 노력해서 변할수 있는것이 있고 노력해서 변할수가 없는것이 있다는것을 나는 그를 통해 알고 말았다.

나는 출근도 하지 않은채 담담하게 그를 기다렸다.

외박한 그는 점심에 친구들이랑 식사를 하고, 오후에 축구를 하고 저녁에 술을 먹고나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에게는 한달동안 엉덩이가 팅팅 부으면서도 애를 갖겠다고 엉덩이 주사를 맞던 모습같은것은 기억에조차 없는듯 싶었다.

잔소리조차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수가 없었다.

잔소리를 해봤자 나에게 돌아오는것은 그의 폭언과 폭행이라는것을 알기때문이였다. 조용히 마음을 접어갔다.

이젠 진짜 아니구나, 억지로 끼워맞춘대서 되는것이 아닌 결혼생활이였구나

나는 절실히 하나둘 깨닫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댁에 퍼부었던 정성들이 후회스러웠고 정성의 반만 우리 부모님한테 했을걸라는 후회가 갈마들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시간이였고 지나간 일이였다.

그렇게 마음을 접어갈 즈음, 그는 그의 유흥생활에 즐겁게 보냈고 나는 나의 조용히 기다리는 시간을 이어갔다.

2012 5.

폭풍전의 고요함이 무섭다고 우리는 몇달동안 조용히, 아무런 다툼조차 없이 지냈다.

그날은 가족행사때문에 우리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했을때였다. 저녁에 친정에 함께 그는 그날, 이상하리 만큼 술을 잔뜩 먹었다. 그리고 저녁, 그는 하지말아야 짓을 해버렸다.

그는 술에 취해 휘청거리면서 우리 엄마의 멱살을 잡아 끌고 거실 한구석에 엄마를 내동댕이 쳐버렸다.

나는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160근이나 되는 그를 머리끄뎅이를 잡아 집밖으로 쫓아내보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이젠, 때가 왔구나.) 라고.

2012 5 19. 나는 그를 법원에 기소를 했다. 법원을 찾은 네번째만의 기소였다. 그동안 힘들고 아팠어도 같은 법률업계에서 일하는 그에게 법원기소는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조용히 선안에서 해결하고 싶었다. 법원을 찾은 네번째 만에 나는 그를 법원에 기소하고 법원문을 나섰다.

법원 문을 나선 순간, 세발작 걸었을뿐인데 발끝으로 온몸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그런 느낌이 들어 아무말도 못하고 자리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나도 무엇이라 설명하지 못할 무언가가 온몸에서 빠져나가는 느낌. 살면서 첨이였다.

그리고 나는 잠적생활을 시작했다. 시내 한귀퉁이에 세집을 맡고 출퇴근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식으로 다녔다. 그렇게 별거를 시작한지 반년만에 그와 나는 법정에 마주섰다.

그는 술을 먹고 온듯 해보였다.

<< 일을 하는 나그내를 법정에 세우니까 좋니? 시원하야?>>

그는 이런 식이였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술먹어서 기억이 안난다는 핑계로 마무한채 모든 일의 책임은 나에게 물었다.

기소는 기각 되였다. 중국의 법률이 이렇단다. 기소는 기각하고 다시 별거 8개월을 해야 두번째 기소를 받아준다고 했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나 그가 나에게 연락이 왔다. 모든 재산을 포기하면 이혼해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기나긴 아픔을 간직한게 남남이 돼버렸다.

2013 28살에 이혼하고 돌싱녀가 됐다.

3년이란 시간동안 많이 아프기도 하고 많이 힘들었던 시간은 잊혀지지 않는, 지워지지 않는 과거로 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자꾸만 반복되는 잘못으로 인해 행복조차도 묻혀버렸던것이 아닌가 싶다. 너무 서툴렀던 25 새내기 색시였던 나와, 가족의 소중함을 몰랐던 30살의 그가 만나 3년이란 시간동안 서로를 핥퀴고 뜯으면서 우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과도기를 넘기지 못한것 같다. 누군가가 그랬다. 내가 살아온 3년이란 결혼생활은 남들이 30년의 시간동안 겪을 결혼생활을 함축해서 살았던거라고

결혼이라는 3년의 시간은 나를 성장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번개치는 비오는 날이면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바보스런 나를 만들었고 쿵쿵 하는 문두드리는 소리와 -하고 열리는 엘리베이터 소리는 나를 움찔움찔 놀라게 한다. 아마 그때의 충격이 많았던 결혼생활이 내게 불치병-후유증인것 같다.

그리고 지금, 그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날의 잘못을 번복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사람에게는 행복감과 안정감을 주길 진심으로 바랄뿐이다.

그리고 지금, 나도 그의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에게 오래동안 호감을 갖고 있던 연하남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돌싱인줄 알면서도 진심으로 다가온 남친에게 고맙고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면서 알콩달콩 살아보고 싶다.

소중한 의미를 지녔던 무엇인가가 점점 색이 바래고 소멸되여 가는것을 지켜보는건 슬픈 일이야.

------------<색채가 없는 다자기쓰쿠루의 그가 순례를 떠난 >중에서.

처음 시작했던 소중한 의미를 지녔던 사이가 색이 바래고 소멸되지 않도록사랑이란, 결혼이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아껴주고 서로에게 힘이 돼주는 자체가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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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꽃 (♡.172.♡.1) - 2014/12/10 16:22:57

이런 남자랑 어떻게 3년이나 살았나요??
완전 처죽이고 싶다...그리고 남편 친구가 지 안해얼굴을 만졌는데..가만 있나요??
와~~격분하네...나같으면 와이프가 거짓말을 했다해도 그 친구놈 손목을 잘라 버리던지...병신 만들어 놓구 말지...보는 내내 완전 격분했어요... 이혼하기 참 잘했어요...쓰레기 같은 놈이네...쪽지로 이름을 알려주세요...(남편이름...그리고 단위)

하늘일기 (♡.245.♡.28) - 2014/12/10 16:44:16

글로 쓰기에는 제한이 있어서 다 쓰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친구가 내 허리를 붙잡고 뒤에서 하는 동작해도 그냥 웃고 넘어갔구요. 노래방 가면 아가씨들은 앉아있게 하고 저한테 (야! 니 술 붓어라!) 이런 적두 있구요... 일일이 쓰기에는 너무 많아서 그냥 컸던 사건만 썼습니다. 세상 손가락질이 두려워서 이혼못하고 살다가 울면서 부모님께 부탁 드렸습니다. 이러다가 딸 죽는다고... 부모님이 받는 손가락질 까지 대신해서 나중에 잘 살겠다고, 안그럼 자살 하고 싶다고...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름과 단위는 한때 같이 살았던 사람에 대한 그나마 마지막 례의라 밝히지 않을게요... 댓글 고마워요~

선션 (♡.106.♡.2) - 2014/12/10 17:26:40

글로만 봐서는 인간이라 믿기 어렵네요... 읽는 내내 가슴아프고 화가 났습니다 앞으로는 좋은일만 생기기를 바랍니다

하늘일기 (♡.161.♡.149) - 2014/12/11 10:04:27

이젠 다 지나간 일. 많이 성숙되였고 많이 지웠습니다. 그래서 이젠 많이 행복해졌어요. 고맙습니다

달빛과약속 (♡.246.♡.14) - 2014/12/10 18:00:47

真心觉得你很“傻”,,,,其实不是每个人都能改。。他这样的人不适合你,你还一而再再而三原谅他。真不知道你的情商底还是。。。。。。
看着看着觉得特气人,,,还是珍惜现在吧,希望你的未来是美好的,加油!

하늘일기 (♡.161.♡.149) - 2014/12/11 10:06:08

첫경험이였던 사람이였고 남편이였습니다. 행여나 그래도 변화가 오겠지 하는 마음에 진심으로 대했고 사람이라면 가능할거라 믿었구요. 그런데 변하지 않는것도 있더군요. 이젠 새행복을 찾아 떠났습니다. 응원 고마워요

마법의존재 (♡.136.♡.145) - 2014/12/10 20:05:46

햐~보다가 열 받아서 로그인 다 함다
완전 또라이다 못해 이건 개 망나니아님까
보니까 시집은 좀 괜찮게 사는거 같고 그기다 남자 직업까지 괜찮은거 같고
근데 인간성은 정말 최악인듯
친구가 허리 붙잡고 뒤에서 하는 동작해도 웃고 넘어간다 기막혀서
이혼할때도 끝까지 재산 포기하면 이혼해주고~
이런 개 망나니를 봤나
어디가 막 구부러다니는 돌째기 주서도 이 또라이보다 낫겠슴다
정말 글 보는 입장도 열받는데 본인은 오죽하겠슴까
진짜 진짜 개 망신 주고 싶슴다 이런 인간이 법정에 출근한다니

하늘일기 (♡.161.♡.149) - 2014/12/11 10:08:27

그래도 아마 자기 잘못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겁니다. 술먹고 한 일은 기억이 안난다고 하니까... 핑계라기에는 너무 어이없는 변명이라 이젠 제 인생에서 그 삼년조차 싸그리 파서 지우고 싶습니다. 그런데 호적이란게 그렇더라구요. 이혼녀. 어쩔수 없습니다. 사람들 시선은 그래도 여자도 잘못했길래 이혼하지... 이렇던데 이게 바로 우리 조선족 연변사회가 아닌가 싶어요.

핑크빛바램 (♡.208.♡.30) - 2014/12/10 20:27:38

와~이런 남자랑 어떻게 삼년 살았슴까?완전 쓰레기남자.........이혼 정말로 잘했슴다.....새삶은 이쁜 사랑만 가득하시길...

하늘일기 (♡.161.♡.149) - 2014/12/11 10:09:31

그 삼년을 어떻게 살았나 싶어요. 이젠, 그렇게 살라고 해도 못살거 같습니다. 뭐가 미련이 남고 뭐가 그렇게 놓기가 어려웠는지...

guo79 (♡.150.♡.58) - 2014/12/11 08:59:16

침묵은 자칫하면 묵인이 돼버리고,거듭되는 용서는 혼인에 대한 견지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방종이 될수도 있습니다.
이젠 좋은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사세요...

하늘일기 (♡.161.♡.149) - 2014/12/11 10:14:32

맞는 말입니다. 그를 사랑해서 거듭했던 용서는 그에게 <넌 이래도 넘어가는구나>이 정도로밖에 안되더군여. 축복 감사합니다

진달래8 (♡.36.♡.155) - 2014/12/11 09:31:57

보는 내내 울컥하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네요.
그래도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끝맺었으니 다행이네요. 이제라도 행복하게 사세요.
당신은 충분히 사랑 받을수 있는 사람입니다. ...

하늘일기 (♡.161.♡.149) - 2014/12/11 10:16:41

그때에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이정도 사람이다, 이런거 인정하고 싶지 않았었죠. 첫남자, 내 남편이 적어도 내게 실패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자존심때문이였습니다. 다 내려놓고 보니 홀가분한걸 왜 그때는 못했나 싶어요. 이젠 웃으면서 얘기할수 있는 단지 지나버린 일일뿐입니다. <당신은 충분히 사랑 받을수 있는 사람입니다>이 말에 왜 울컥하는지...잊고 살았었습니다. 나도 사랑받을수 있는 여자이고 사람이라는걸... 이젠 행복해지고 싶어요.

ytkim (♡.214.♡.206) - 2014/12/11 11:53:06

눈티만 하다면 너무 열받아서 그 개보다 못한 놈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충돌이 나네요 ..휴~~~
지금 세월에 마누라한테 개보다 못할 짓을 하는 남자가 있는가 싶네요.
좋은 선택을 했구요 .좋은 인연을 만났으니까 그전에 아픔을 모두 잃어버리고
행복한 생활을 하리라 믿습니다.
힘내시구요~~~

하늘일기 (♡.161.♡.149) - 2014/12/12 10:43:23

새시작을 해서 이젠 행복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약간의 결혼에 대한 공포심은 있습니다. 후유증이란 어쩔수 없는건가봐요 ㅎㅎ
응원 고맙습니다

북위60도 (♡.197.♡.69) - 2014/12/11 15:47:04

여기에 개보다 못한 남자때문에 흥분하는 남자분들때문에 그래도 좋은 남자가 더 많구나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런 2중성격자가 아마도 당신주변에도 있을수있지만 남의 시선과 용기때문에 여자분이 끝내지
못하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하여튼 다행이 마무리하셔서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새로운 사랑은 더 지켜보시고
천천히 움직이시기를. 아픈 상처가 다 치유된후에도 늦지 않으니깐요.

하늘일기 (♡.161.♡.149) - 2014/12/12 10:47:34

올해 29살, 담해면 30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젠 나이에 대한 압력도 생기는것 같아요. 여자다보니 언젠가는 애를 낳아야 할텐데 이러다 노산이 되면 어쩌냐고 닥달하는 주변 사람들도 있구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담담히 얘기할수 있는 지난 상처들에 많이 무덤덤해진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좋은 남편을 왜 버렸냐고 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그의 이중생활, 이중성격을 몰랐으니깐요. 세상의 손가락질이 제일 어렵고 두려웠습니다. 아시다싶이 연변은 작은 지역입니다. 부모님도, 저도 다 단위가 있는 사람들이라 수근대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신경을 끄고 나니 많이 편해졌습니다. 그래서 이젠 웃을수 있습니다. 내일은 아마 더 활짝 웃을수 있겠죠ㅎㅎ 따뜻한 말 감사합니다

才女 (♡.119.♡.112) - 2014/12/11 22:55:39

그래두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한다니까 좀 맴이 가벼워짐다.~~~~
앞으로는 잘 사는 일만 남은거 같슴다~~~ 화이팅~~~~~~~~~

才女 (♡.119.♡.112) - 2014/12/11 22:55:49

그래두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한다니까 좀 맴이 가벼워짐다.~~~~
앞으로는 잘 사는 일만 남은거 같슴다~~~ 화이팅~~~~~~~~~

하늘일기 (♡.161.♡.149) - 2014/12/12 10:51:18

새로운 만남에 많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전남편과의 일로 인해 세상 남자를 믿지 못하겠더라구요. 등기와 함께 180도 변해버린 전형적인 케이스였으니깐요. 천천히, 조심스레, 소심하게 새사랑을 키워가는 중입니다. ㅎㅎ 응원 고맙습니다

애심88 (♡.188.♡.31) - 2014/12/12 10:13:51

너무 아파서 아프게 마무리될줄 알았는데.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니 너무 다행이네요.

하늘일기님,착하고 바르고,좋은 여자이니까 이젠 행복하셔야 돼요.

부디 아픈 추억들을 떨쳐버리고,이쁜 사랑 하세요!

또박또박 열심히 적어올린글,끝까지 잘보았습니다.

추천 꾹 찍으면서 하늘일기님의 건강과 행운을 위해 간절히,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꼭 행복하세요!

애심88 (♡.188.♡.239) - 2014/12/12 10:21:02

그리고 전남편도 두번째 사람한테는 더이상 상처와 고통을 주지 말고,

회개하고,거듭나면서 착한 남자가 됏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나보다도 불행한 아픔을 겪은 사람이 있나싶어서,

나자신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또한번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두번다시 헤어지는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하늘일기님,더구나 연하남이라고 하시니까,

잘 지켜보고 선택하세요.

꼭 행복하셔야 돼요!

파이팅!

하늘일기 (♡.161.♡.149) - 2014/12/12 10:58:48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실히 필요했나봅니다. 이혼녀가 되고 부모님의 눈치를 보면서 세상의 눈총과 싸우다보니 많이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남편의 좋은 모습만 봐왔던 친척들조차 그 좋은 사람을 버리고 니가 잘 살것 같냐는 따끔하게 아픈 말을 해서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나는 단지 정말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행복하고 싶어서 돌싱이 된것인데... 잘한거다, 참 잘한거다 그렇게 토닥여주는 그 한마디라면 그래, 나 내 인생 행복하자고 선택한거 잘한거다고 다짐하며 기운낼수 있었을텐데 그 한마디를 건네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들은 찌들어가던 내 삶을 잘 알지 못했으니깐요. 님의 따뜻한 말에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길고긴 험한 터널을 걸어나왔을때 참 잘했어, 라고 건넨 한마디 같은 그 따뜻함에 눈물이 나네요. 어둡고 컴컴한 터널을 혼자 걸어나올때의 그 공포감처럼 홀로 무섭고 어려웠던 선택을 하고나서 홀로서기를 하던 내게 님의 한마디가 그동안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네요.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축복 감사히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애심88 (♡.188.♡.41) - 2014/12/12 11:31:21

혹독한 시련을 견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무한한 축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3년동안 얼마나 끔직한 지옥살이를 했겟나요?

참 잘했어요.

가장 늦었을때까 가장 빠른때라는 말도 있듯이,

지금부터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사랑 하세요.

그리고 시련을 딛고 일어선 하늘일기님에게,

하나님이 반드시 건강하고,고운 아기를 선물할 날이 올거라고 믿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아파하지 마시고,

축복받은 아름다운 인생이 되세요!

하늘일기님,매일마다의 삶에에 기쁨과 환희가 흘러넘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늘일기 (♡.208.♡.236) - 2014/12/15 20:33:03

제가 성장한 인생의 삼년이라 생각합니다 행복해질거라 믿어요

I판도라I (♡.8.♡.94) - 2014/12/12 11:33:42

내용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주인공이 왜 그랬는지 알거 같어.지역적 제한때문에 주위 사람들 시선을 너무 의식한듯...내 삶은 내가 사는것인데...이제라도 그런 불구뎅이에서 헤어나온것에 안도의 숨이 나온다.29,30살 절대 노산이 아니니 급해하지 말고 순리에 맡겨~~그런 사람과의 아기가 되기 싫어서 천사가 안찾아온거니까.혼자 외로웠을때 주위에 조언줄만한 멘트라도 있었으면...

하늘일기 (♡.208.♡.236) - 2014/12/15 20:34:39

이젠 많이 나아졌어요, 웃으면서 말할수 있는 지난 일일뿐이에요. 그냥 끄적끄적 적고 나니 홀가분해진 기분입니다

안나수이 (♡.238.♡.145) - 2014/12/15 11:31:55

没有色彩的多崎作和他的巡礼之年 참 놀랍네요 제가 어제 보앗던 책이라서 그리고 3년 우울증 힘들고 괴로운 날들 비슷한 점이 참 많네요 고통을 이루 말할수 없을만큼 괴로운 시간들이엿네요~ 이 글에서 제가 느낀건...당신도 나처럼 자신을 사랑하지 않앗네요~ 세상에는 자신보다 소중한건 없는데 말이죠 남이 변하길 기다리는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는거 같아요 태생에 도덕과 인품을 두고 태여난 인간들이 참 만거든요 그리고 그 괴로웟던 시간만큼 깨달음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죠 하나님이 지켜보다가 하도 답답하여 그 사람을 보냇나 봅니다 분명 똑똑하고 착한 사람인데 바보같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님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워 햇을겁니다 그리고 결정적인건 님이 다소 자신을 神화 하는 경향이 잇는거 같습니다 이 결혼 생활에서 님은 그 분을 사랑하지 않앗네요 누군가 그랫죠 결혼전에 어떤 모습이면 결혼후 달라질거란 기대를 하지 말라 상대방의 本尊을 사랑할수 없다면 결혼 생활은 유지하기 힘들죠 결혼전 충분히 겪어보고 선택해야죠 필경 세속적인 도덕관념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리고 어떤 관계중에서 자신을 너무 神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잇는듯해요 {25살 새신부 새내기와 30살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는 남편}여기서 님은 자신을 아주 신성하게 묘사하엿고 남편에 대한 격멸을 표현햇죠 그 누구도 누구를 구제하거나 용서하거나 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아요 세상에서 오로지 당신이 겪은 일은 모두 因果에 주어진 결과였을것입니다 저는 3년을 연해하고 3년을 결혼생활을 하엿는데도 똑 같은 결말이 찾아왓는데 말입니다 결국 위 모든 얘기 또한 저에게 하는 얘기엿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냉철해질 필요가 잇습니다 어떤 관계에서 책임은 반반 이거든요 당신이 힘든 시간만큼 남편 또한 힘들엇을겁니다 아니면 맨날 술마시지 않거든요 외박하지도 않구요 집이 좋으면 와이프가 좋으면 외박을 왜 하겟습니까 그만큼 그 남편이란 사람한테도 힘들고 괴로웟을것입니다 태생에 나쁜 인간은 없답니다 다만 주어진 관계속에서 누구는 세속적인 눈속에 착하고 좋은 사람 누구는 세속에 대수롭지 않은 삶을 사는것...희생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어리석은 일중에 하나입니다 제가 돌아보니까 그렇더군요 저도 희생을 많이 햇거든요 시누의 벽지 칼라로 왈가왈부 전 시어머니가 사사건건 간섭햇거든요 신혼집 살림을 자기가 다 사왓거든요 솔직히 사왓다는건 좋은일입니다 그러지 못한 시어머니도 잇죠 근데 전 제가 사고싶은 살림 장만이 따로 잇엇는데 말입니다 옷입는것도 간섭하죠 그리고 옷을 직접 택배로 보내죠 이걸 입고 다니라구 니가 입는건 옷 같지 않다고 그 얼마나 자아가 없엇으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이럿듯 간섭할가 지금에야 새삼스레 깨달죠 그땐 저 또한 참고 넘어갓죠~ 참아서 쌓이고 쌓여서 곫죠~ 마음속 어느 구석에 미움과 원망과 불만 등을 쌓여가는 일이라 볼수 있습니다 그게 가끔씩 터지죠 어떤 방식으로든 새여나가죠 특히 남편한테 제가 얘기하고 싶은건 그뒤에 당신의 마음의 상처는 꽤나 오래갈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기억은 잔인하리만큼 잊혀지지 않거든요 마음의 치유를 할수 있는 방법과 생각들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새로운 관계를 가져 보앗자 반복되는 삶이 되죠~ 저 또한 치유하고 잇는중이고요 그냥 저의 경험을 비추어 비슷한 과거에 대한 넑두리라고 생각해 두시면 될거 같습니다 전편에 글을 읽엇는데 참 좋은 말 하나가 잇엇습니다 함께 있되 혼자 존재하라 무소유의 들풀처럼 ~ 관계에 잇어 가장 이상적인 건 혼자잇을때도 즐겁고 함께 할땐 더 행복해야 한다는것이죠 비로소 각자의 삶을 즐길수 잇는거 같습니다

하늘일기 (♡.208.♡.236) - 2014/12/15 20:50:48

그래요 맞는 말입니다 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첫남자라는 리유로 덥썩 결혼했으니깐요. 적어도 내게 보여주던 그 진실한 모습을 믿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말이죠, 그 석달의 행복했던 추억때문에 그가 처음보여줬던 그 모습이 돌아오길 바랬습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절절하게 최선을 하지도 않았을것입니다. 저는 용서를 한다는 말도, 그가 죄를 지었단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님의 말대로라면 그럴 자격이 없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세상에는 수도없는 반복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등기와 함께 변한 사람, 어떻게 설명해야 할가요? 저에게는 그를 이해해줄만큼의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술을 마신 날이면 제가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컸으니깐요. 한달에 일찍 집에 들어오는건 세번정도가 될지 안될지 모르니깐요. 물론 예전에도 그는 그렇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그의 친구 와이프한테서 들었습니다. 설명정에 시댁에 가면요, 스무명도 넘는 친척들의 술상을 제가 일일이 다 차려야 했어요, 다들 손 까딱 하지 않더라구요, 쓴 웃음이 나면서도 참았습니다. 님도 많이 힘들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님과 같은 그런 상황이 많았으니깐요, 이젠 다 지나간 일이고 할수 있는 얘기입니다. 단지 끄적이고 나니 후련해지는 기분이랄가. 요즘 번개식 결혼하시는 분들이 꽤 있더라구요. 그들에게 경종이라도 주고 싶습니다, 물론 짧은 연애 기간을 갖고 행복하게 사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섣부른 결혼으로 후회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해요. 모든 일을 일일이 쓰기에는 저 또한 마음에 걸려서 큰 사건들만 적응 겁니다. 사사건건 다 따지고 살기에는 많이 피곤하니까... 제 글이 인상을 찌프리게 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제가 이렇게 살았으니 위로해주십쇼, 불쌍하게 봐주십쇼, 이럴려고 올린 글이 아닙니다. 단지 제가 살았던 그 삼년뒤로 성장한 내가 앞으로 감당할 일들에 대해 이것도 이겨냈는데 더한일을 못이기랴 싶어서 올린거구요, 맘속에 꽁꽁 숨겨놓았던 응어리를 터뜨린것뿐입니다. 님도 새 출발한것 같은데 힘내기 바래요. 힘내세요, 돌싱들도 행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지난 생활을 짚어보면서 잘 살고 있으니깐요

안나수이 (♡.238.♡.145) - 2014/12/16 12:29:45

ㅋㅋ 감사합니다 열심히 댓글 적어주셔서 저 또한 열심히 읽엇거든요 님 글을~ 그 어떤 동질감을 느꼇습니다 물론 자신이 겪은 상처는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아프지만 말입니다 그 누구한테 비교할수가 없죠 상처의 깊이는 자신만이 느끼고 온몸으로 겪는거니까요 당신은 축복 받은 사람이라고 믿으시길 바랍니다 신을 믿는지 모르겟지만 님 남편 또한 하나님이 보낸 천사엿을것입니다 ㅋ 이렇게 형용하면 이상할가요?천사가 악마되여 당신을 깨우러 온것입니다 더 이상 상처받으면서 살지 말라고 무자비하게 괴롭혓죠 하루 빨리 깨여나 자신을 사랑하는 날만 살아가라고 그거 아십니까 당신이 겪은 일들은 다른 유복한 사람들의 생활에 비해 훨신 의미 있는 일이엿을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저는 보앗거든요 님이 참을성 희생정신 효도하는 마음 사랑에 대한 믿음...등등을 아쉽고 안타까웟을것입니다 그런 사람과 살아서는 않될 고귀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니까요 어울리지 않으니 빨리 헤여짐이 좋죠 인생은 참 다양한 체험들을 하는거 같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는것이 잇고 상처가 아물기도 하지요 어두컴컴한 터미널속을 지나 해빛이 따스하게 비추네요 님 몸에서 광이 나고 잇습니다 부디 님 처럼 따뜻하고 고귀한 영혼을 지닌 사람을 만낫으면 합니다 그리고 행복하세요 꼭 !^^

하늘일기 (♡.161.♡.149) - 2014/12/17 09:35:34

왜 돌싱이 됐냐고 묻는다면 인젠 어떠어떠한 일로 왜서 그렇게 됐다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단지 행복해지고 싶어서, 새삶을 살고 싶어서 행복찾아 떠나는 길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님도 많이 아팠을테죠? 그 숨막히는 간섭들... 다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이해가 갑니다. 힘내세요. 행복한 삶이 기다린다고 생각하고 오늘도 웃으시길...

WENBIN (♡.203.♡.14) - 2014/12/29 14:35:07

참 가슴 아픈 혼인 경력이군요.
앞으로는 쭉 행복하시길...
추천 드립니다.

사랑차자 (♡.161.♡.47) - 2014/12/29 16:11:12

드라마인지 진짜 사실인지? 세상에 이런 남자도 있을가.. 남자로서 참 기분이 나빠집니다. 님 남편은 사실 인간의 자격을 상실한 집승보다 못한것만은 확실한데요. 이런 짐승하고 3년이나 같이 살았다는 님도 짜증납니다.하여간 뭐 지금이라고 갈라졌다고 하니 다행이구요 앞으로는 좋은 남자 만나 꼭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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