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10년 추억....7...

푸른 장미 | 2015.02.01 23:22:44 댓글: 2 조회: 2826 추천: 2
분류실화 https://life.moyiza.kr/mywriting/2552510



전편에 이어...



고향에서 건강상태가 원래 많이 안좋으셨던 아버지는

청도에서 계속 혼자 계셔서 그런지 술을 많이 드셨다.

항상 언니랑 내가 집에가면 엄청 좋아하시고 머든 해주고 싶어했다.

예전 성격이 아니였다.전혀 변하실것같지않았던 우리아버지가

어머니 돌아가시고 고향을 떠나 여기에 오니 많이 힘들었던걸까?

성격도 많이 너그러워지시고 어머니의 빈자리도 채워주려고 노력하셨다.




우리가 빚에 죄책감은 들었지만

갑자기 1~2년 사이에 빚을 갚을수있는상황은 안되였다.

젤첫달에 나는 월급 천원정도밖에안되였고 아버지집세에

생활에 솔직히
돈이 모아 안졌다.

첨엔 돈많
이 벌어서 1년이면 빚을 갚을려고 했던 우리에 생각와는

달리 그렇게 안되였다..차츰 빚갚는걸 포기하고 청도에 자리잡을려고

애를 썻다...



그렇게 한 3년이 지났을까?우리통장에 3만원정도 저금이 있었고

고향에서 땅값이 35천원정도 나왔는데 빚군이 울삼촌집에까지

찾아갔다고 연락이 왔다.우리가 버리고 간 창고랑 집이랑 빚군이

다 팔았다고 한다.이제 조금 일부분만 남았으니 그거는 갚아달라고 했단다.

아버지는 고향에 가셔서 친구분한테 꾼 돈이랑 그리고 이자돈이랑

우리가 모아놓은 돈이랑 땅값으로 다 갚으셨다.

지금 계산해보니 총갚은금액을 다
23만원정도 되였다.




3만5천원을 빌려서 10년만에 23만원 갚았으니..

중국돈 23만원이면 솔직히 고향에선 집 몇채는 살수있고 머 해도 다 되엿을텐데..ㅠㅠ

큰어머니땜에 이돈을 그냥 날라 버렸으니...지금도 생각해보면 너무 아깝고


우리가 치른 댓가가 너무나 많은것같아서 지금도 때론 원망스럽기도 하다.

암튼 이렇게 빚을 물고 나니 그동안에 죄책감과 마음이 힘들었던거

다 사라지는것같아서 너무 기뻣다.이젠 돈모아서 잘살기만 하면 될것같았다.




그후2년지나서 내가 회사에서 자리도 잡았을때쯤

아버지는 계속 친구들만나 술이랑 마셨고 틈틈히 약을 챙겨드셨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우연히 된장을 파는 아버지보다 11살많은 누나분을 알게 되셨다.

그분은 딸두명에 아들하나를 두셨는데 3년전에 남편이 페암으로 돌아가셨다고하신다.

아버지는 그분이 참 좋다고 집에와서 여러번 얘기를 하신다.

음식도 맛잇게 하고 집안도 깨끗하게 청소도 하고 그리고 자식들도 다 한국에 있고

부담이 없으시고 좋다고하신다.나중에 알고 지낸지 3년있다가 아버지는 문뜩

이누나라는 분이랑 같이 살면 어떻겠냐고하신다.그냥 서로 의지를 하시면서

언니와 내가 출근을하면 혼자 집에 있으면 얼마나 외롭고 혼자 있으니 밥해먹기도

싫다고 하신다.그말을 여러번하셨다.그냥 서로 의지를 하고 서로 거두면서

같이 살면 어떻겠냐고 ...나랑 언니도 그분을 많이 좋아해서 아버지 편한대로 하라고 했다.




그래서 3년만에 아버지랑 같이 있게 됐다..난 평생 두분이 행복하게 잘살기만을 바랬다.

두분이 같이 있게 될쯤에 나는 소개로 한 남자를 알게 됐다.

수입이 일정하지않고 아직 자리도 잡히지않았고 집도 차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한국에 가셨다거나 그런상황도 아니였다.

하지만 난 이사람이 좋았다.그냥 결혼까지 생각도 안해보고 그냥 이사람이 좋았다.

난 솔직히 그때까지 모든수입이랑 통장 모두 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다.

내가 월급을 얼마 탔는지는 아버지가 더 정확하게 아셨다.




아버지는 모든지 다 아끼셨다.내가 친구만나겠다고 돈을 달라고 하면 딸랑 100원한장만 줬고

옷도 진짜 어디 공인애들처럼 아주 촌스러운것만 입고 다녔다.

그래서 남자친구는 내가 돈이 엄청 없을꺼란 생각밖에 못했다고 한다.

옷도 몇십원짜리만 입었고 100원짜리 옷사자고 해도 아까웠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만나는 남자친구가 맘에 안드셨고

여러번 맘에 안든다고 말을 했다.맨날 만나면 한달에 얼마버냐

부모님 머하냐하면서 자존심을 건드렸다.그래도 난 그냥 아무말도 안하고 난

좋다고 했다.그렇게 사귄지 5개월만에 나랑 남자친구 아버지랑 위에 말했던 아버지 누나된다는분이

즉 새엄마랑 분이랑 이렇게 넷이 살게 됐고 새엄마란 분은 내남친이 맘에 드셨던지

아버지한테 여러번 얘기를 하셨다.딸이 좋다고하면 그만이라고

언니는 그때쯤에 형부랑 결혼한 상태였다. 고향에서 땅값도 나오고

내가 모아둔돈도 있고 아버지는 집을 사자고 하신다.물론 대출을 끼고.

암튼 우여곡절끝에 청도에서 8번 이사끝에 자기집을 사게됐다.

난 그냥 이렇게 넷이 사는게 너무나 좋았다.근데 집을 살때

나한테 결혼안했다는 미혼증명서를 서류로 제출하라고 하신다.그때가 추석때쯤이였다.

원래 남자친구랑 시엄마시아버지뵈러 가기로 비행기표 다 예약한 상태라

미혼증명서를 떼려면 고향을 또 가야되는상황이고 머 어떻게 해야되냐고민할때

아파트파는업체에서 결혼증아니면 미혼증명서중 하나만 제출하라고 하신다.

아버지가 그말을 듣더니 그럼 가서 혼인신고 해서 결혼증을 제출하라고하신다.





솔직히 한달전부터 남친 은 이번에 가서 혼인신고 하자고 했는데 아버지한테 말하기가

힘들것같아서 안한다했는데 아버지가 얘기하시니 은근히 남자친구는 엄청 좋아하는 눈치다.

알았다고 얘기하고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그리고 나서 우리신랑 한국수속이 돼서 한국가게 됐고

암튼 다 잘 살꺼라고 생각했을때쯤에 울아버지 배가 임신 막달된사람처럼 계속 불어나서

숨이차기 시작했다.난 설마 혹시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아닐꺼야 라고 하면서 그냥 안심을

하려고 했지만 진짜였다 신랑이 한국가고 그땐 언니도 한국에 있을때 아버지는 병원에서

간검사했더니 간경화복수란다..빨리 병원입원하라고 하신다.난 신장이 안좋아서 아버지몸이

붓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당뇨병종합증에 간경화복수 배에 물이 찼단다.




난 한국에 언니한테 얘기안했다.걱정할것같았고 그러다가 또 나으면 괜히 놀라게 할필요없을것

같아서.교회목사님도 심방을 하셨다.견디기 힘들었지만 나는 나와 새엄마만 버틸려고 했었다.

그렇게 입원한지 일주일 하루에 3천 4천원씩 들어가는 돈이 아버지는 아까우셨다.

그래서 일주일만에 퇴원하겠다고 하신다.말리다 못해 그럼 언니한테 얘기하겠다고

겁줬지만 아버지의 고집을 꺽을수가없었다..병원에선 엄중하다고 얘기하지만 아버지는

그게 아니라고 하시다.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병원에서 돈벌자고 하는수작이라구.

어쩔수없이 언니한테 알렸다.언니도형편이 그리 안좋았다.한국에서 회사에 다녔는데 월120만원정도

벌고 있었다.언니는 왜 이재 얘기하냐면서 아버지를 말렸고 아버지는 그냥 퇴원하자고 하신다.

간경화복수에 백단백이란 점적주사가 있었는데 보통 물컵정도되는 양이 458원이던지 했었다.

그거 맞으면 복수가 좀 가라앉았는데 아버지는 퇴원해서 그것만 맞으면 된다고 하신다.

아버지고집을 꺽을수없어서 그냥 모시고 퇴원했다.이틀에 한번씩 주사를 맞았고

좀 나은것같았다.하지만 2개월이 지나 아버지는 오른쪽 눈이 점점 안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실명에 가까웠다.우리신랑은 설쇠러 집에 왔고 큰병원에 같이 가봤을땐 수술을 해야된다고

하신다 그래서 수술전 검사가 통과 돼야 수술을 할수있지만 아버지한테 통과 되기힘든게 많았다.

혈당수치도 높고 신장도 안좋고 간에 아주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였다.





아버지생각엔 안될것같다면서 그냥 고향에가서 치료받겠다고 한다.

아버지친구분이 유명한 중의였다.그래서 고향가서 치료받으라고 했다.

새엄마랑 아버지가 거의 6개월정도 고향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기간에 우리 신랑은 우리집 장식도 간단히 했다.


장식끝나고 빨리 오라고 했다.아버지가 집에 왔을때 엄청 기뻐했다 장식잘했다고

우리신랑 칭찬도 해주고 아버지는 고향에서 중약도 먹고 여러병원많이 다니셨다.


간경화복수는 나았다가 또 복수 차고 백단백 점적주사를 많이 맞아도 이젠 별 효과를 못봤다.

돈도 많이 썼고 난 때로는 지칠대로 지쳤다 아버지 당뇨병진단받고 13년동안

수도없이 병원다니고 수도없이 아프셨다...약방 병원은 거의 내집드나들듯이 다녔다

때로는 아프다는 아자만 들어도 이젠 너무 귀찮고 힘들다.


돈을 쓰고 좋은 약을 먹었으면 효과를 봐야되는데 안되니까 거의 내월급은

아버지 병원비 약값에 다 썼다.그때 한창 회사가 잘될때라 어쩌면 다행이였다.

가끔 난 그런생각도 했다..새엄마가 예전에 로씨야에서 장사도 했고 로씨야어도 좀할줄알고계셨다.

그래서 아버지랑 새엄마가 로씨야가서 물이라도 바뀌면 혹시라도 병이 나아지지않을까

그래서 로씨야 수속해서 보낼까?생각도 했었다.






추천 (2) 선물 (0명)
감사할줄아는자에게 더 크고 놀라운 감사하는일들이

생깁니다.
IP: ♡.75.♡.187
풀잎사귀 (♡.98.♡.216) - 2015/02/02 12:00:25

힘들게 사셨네요
잘이여냈으리라 믿습니다
좋은날이 오길 바랍니다

유까 (♡.31.♡.119) - 2015/02/03 15:36:01

ㅜ 잘썼어요... 고생했네요..
좋은날이 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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