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가 93호(3)

동녘해 | 2015.03.22 12:30:49 댓글: 5 조회: 2146 추천: 4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2611766

3

넘어가고 있는 국자가 93, 앞에서 웃고 있는 양미. 사진은 저녁 6 30분이 지나 MMS를 통해 날아왔다.

떨어져 내리는 벽체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있는 양미가 맑아보였다.

엄숙해야죠, 력사적인 순간인데.”

양미에게서 핸드폰을 받아들고 활짝 웃는 양미의 모습을 렌즈에 잡아넣으면서 정우가 소리쳤다.

력사적인 순간이니 웃어야죠. 낡은 역사를 지우고 새로운 서광을 맞는 기쁨이 어찌 엄숙이라는 단어에 어울릴수 있겠어요?”

양미는 제법 손가락으로 V자까지 지어보이며 박씨같은 이발을 들어냈다.

정우로서는 전쟁터에 피여난 이라고 제목을 달면 맞춤하다고 생각되는 사진에 양미는 추억이라는 글자를 달아 MMS로 날려보낸 것이다.

추억? 과연 누구를 위한 추억이란 말인가?

순간 정우는 추억이라는 그 낱말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수 없었다. 어머니의 추억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양미의 웃음이 해맑았다. 어머니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기념사진을 찍는 딸의 입장이라면 그 웃음이 너무도 해맑다고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양미 자신의 추억을 위한 순간 같지도 않았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파가현장에서 하얀 적삼을 차려입고 손바닥이 땅에 쓰리워 피까지 흥건히 배인 양미로서는 맑은 웃음을 활짝 피워올릴만치 기분이 즐거울수는 없을것이였다. 그러한 추리끝에 나오는 결론이라면 양미는 그 순간을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새마을을 들먹일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은 흐려져있었어요. 직접 새마을에 살지도 않았다면서 왜 그렇게 그 이름에 집착하는지 궁금했어요. 어머니에게 새마을 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는게 아닌가고 물었어요. 새마을에 살수 없었다는게 콤플렉스라고 말했어요. 어머니는. 결국은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가는 새마을 두고 말입니다.”

사진을 찍고난 양미는 정우의 손에서 핸드폰을 받아쥐면서 이 말을 했고 그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아래말을 이었다.

딱 맞는 제목을 달아 폰으로 쏴드릴게요.”

말을 마친 양미는 자전거에 날아올라 페달을 밟았다.

딱 맞는 제목?”

정우는 사라져가는 양미의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딱 맞는 제목추억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정우였다.

이제 또 이 사진을 두고 그 순간을 추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을까?

장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세월이 아득히 흐른 어느날 다시 국자가 93호를 지나다가 문뜩 그 순간을 떠올리고 전쟁터 같은 파가현장에서 맑은 웃음을 날리던 양미라는 이름의 소녀를 떠올릴수도 있을 것 같았고 또 어쩌면 그냥 파가현장을 지나다 눈에 날아들었던 먼지를 씻어내듯 영원히 기억에서 지워버릴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추억, 제목까지 이렇게 거창하게 달아서 특별히 보내준 것으로 보아 양미는 이 순간을 내가 영원히 추억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정우의 머리에는 낮에 전화에서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 여자친구 있냐?”

아버지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왜 양미를 힐끗 훔쳐보았을까?

정우는 그 시각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얼른 여자친구를 사귀구 가정두 꾸려야지. 그래야 아버지 시름 놓을텐데.”

여자친구, 과연 나는 이제 어떤 여자친구를 만나게 될가?

정우는 두눈을 지긋이 감아았다.

눈이 크다고 생각되었다.

눈이 맑다고 생각되었다.

맑은 눈이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생각이 돌고돌아 여기까지 왔을까?

정우는 절레절래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양미의 크고 맑은 한쌍의 눈동자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정우는 크고 맑은 눈동자를 가진 양미의 사진이 박혀있는 핸드폰을 눈앞으로 당겨왔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정우는 와뜰 놀라 핸드폰을 가슴으로 당겨왔다가 천천히 눈앞으로 가져오며 번호를 살폈다.

아버지였다.

세번째?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였다. 종래로 있어본적이 없는 일이였다. 하루에 전화를 세번 한다는 것은 전화비가 나가는 것을 살점을 뜯기는 만치나 두려워 하는 아버지로서는 웬만 해서 없는 일이었다.

있구나. 무슨 일이 있구나.

정우는 괜히 긴장해서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드는 느낌이였다. 정우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가에 가져갔다.

정우야,”

, 아버지.”

전화 왔데?”

전화!

도대체 무슨 전화가 아버지를 이렇게 공포로 몰아가는 것일가?

정우가 핸드폰에 대고 급히 소리쳤다.

아버지, 속이지 말고 말씀하세요. 도대체 무슨 전화를 기다리는 겁니까?”

정우야.”

아버지. 말씀하세요.”

정우야…

거친 숨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듣고 있습니다. 아버지.”

정우야, 어제 나…

컹컹…마른 기침을 깇는 소리가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 정우는 애타게 입술을 깜빨며 오른손에 쥐였던 핸드폰을 왼손에 바꾸어쥐였다.

저…정우야.”

, 아버지.”

어… 어제 말이다. , 그… 여자를 만났댔다.”

? 여자라니요?”

너… 에미.”

누구요?”

너… 너의 엄마 말이다.”

?!”

순간 정우의 머리가 하얗게 바래지는 싶었다.

애비하구 살아, 허수애비 같은 애비하구 살라구.”

엄마는 가지 말라고 다리에 동동 매달리는 정우를 매몰차게 차던지고는 가방 하나 챙겨들고 문을 나섰다.

엄마-엄마-

정우가 달려나가며 소리쳤지만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게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엄마는 나와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나갔을까?

정우는 크면서 문제를 떠올리군 했다. 세상물정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어릴 아버지와 엄마가 다툴 오가던 말들을 돌이켜보았다. 대체로 엄마는 아버지와 가짜이혼을 하고 한국 사람과 가짜결혼을 하여 한국 국적을 따겠다는 것이었고 아버지는 가짜이혼이 어디 있느냐며 기어코 동의할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출근하던 공장이 파산되였기에 마땅한 일자리 없어 삼륜차를 몰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모든 일에서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고 나은 생활을 갈망했던 어머니로서는 당시 아버지에 대한 희망이 무너지자 한국남자와 가짜결혼을 하는게 최상의 선택이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로부터 정우는 아버지의 전부였다. 지난 20년간 아버지는 오직 정우만을 바라고 홀로 살아오셨던 것이다. 가끔 밖에서 한잔 마시고 들어온 밤이면 아버지는 정우를 품에 안고 중얼거렸다.

누가 우리 정우 털끝 하나 건드리면 아버지는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혼뜨검을 내줄거다. , 누구도 우리 정우를 건드릴 없지.”

정우가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에 붙었던 그해, 아버지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대학에 들어가 숙소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자신은 한국에 나가 돈을 벌어다 정우 장가갈 준비를 한다는 것이었다. 금방 대학에 입학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정우는 아버지의 결정에 배놓아라 감놓아라 끼여들 형편도 아니였다.

그날 아버지의 행리를 들고 공항에 나갔을 아버지는 눈굽이 축축히 젖어 가지고 정우의 어깨를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인차인차 전화해라. 네가 진짜 힘들 너의 곁을 지켜줄 사람은 아버지 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세상 누구도 쉽게 믿어서는 된다.”

정우로서는 그게 아버지에게서 들은 제일 말이었다. 아버지도 정우 앞에서 그처럼 많은 말을 조리있게 하기는 처음이여서 그랬던지 목소리가 무시로 떨리고 있었다. 정우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놀라운 눈길로 뚫어지게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당시 48살이였던 아버지의 얼굴에 얼기설기 주름이 졌다는게 놀라왔다.

아버지가 언제 이렇게 늙으셨을까?

정우는 생각을 하면사 가슴이 알알해나는 것을 어쩔수 없었다. 눈굽이 촉촉히 젖어들었다.

시름놓으세요, 아버지. 저절로 알아서 할게요. 대학생인데요 . 한국 가서 조심하세요.”

그래, 그래. 어련히 하겠지.”

아버지는 정우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행리를 끌고 비행기를 탑승하러 나가셨다.

그것이 5년전의 아버지 모습이었고 그날 하신 말들은 아버지가 여직 하신 중에서 제일 엄숙한 말이었다. 그후로 전화가 와서는 언제나 먹었냐?” 부터 시작해서 아프지는 않느냐?”, “지난번에 보내준 생활비는 차실 없이 받았냐?” 하는 식으로 흐르다가 끝나군 했었다. 5년간 시종 그러한 대화로 이어지던 아버지의 전화였고 그런 전화내용에 습관된 정우였다.

그런데, 그런데…

엄마라니?

정우는 이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이름을 들으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일시 떠오르지 않았다.

정우야.”

, 아버지.”

핸드폰에서 휴- 하는 한숨소리가 들렸고 이어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가 고막을 쳤다.

어제 문뜩 나를 찾아왔더라. 고향 사람을 우연히 만나 소식을 듣구 전화번호를 알아서 찾아왔다나. 말로는 우리를 많이 생각했다면서… 20년간 너를 한시도 잊은적이 없다면서… 정우야.”

, 아버지.”

듣구 있냐? 여자가 나에게 너를 공부나 제대로 시켰는가고 묻길래 그만 밸김에 네가 대학 졸업하구 기자로 됐다구 소리 쳤더랬지. 그러구는 아차!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왜요?”

정우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담담하게 물었다. 잠간 가쁜 숨을 몰라쉬는 소리가 나더니 아버지가 말씀을 이으셨다.

밖에 모르는 사람이였잖니? 네가 기자로 되여 나가는 것을 알면 무슨 생각을 가질지 모르는 거구. 어제밤 한잠도 자구 후회했다. 절대 사람과 련계해서는 안된다. 잘살겠다구 버리고 나간 사람이 혹시 바쁜 일에 띠우면 너에게 손을 내밀지 말라는 법이 없을테니.”

아버지.”

정우는 시각 일인지 목이 메여 이상 말을 이를수 없었다.

정우야.”

, 아버지.”

혹시라두 사람이 전화오면 절대 받지 말구 끊어버려라. 사람 너의 일생에 도움이 없을 사람이니까. 빨리 온천한 여자 만나 가정 일궈야겠는데.”

알았어요, 아버지. 끊어요.”

정우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끝내고는 핸드폰을 던지고 맥없이 두눈을 감았다.

엄마, 엄마.

정우의 머리에서 엄마라는 낱말이 어지럽게 헤여다녔다.

엄마!

스물 다섯살의 정우는 시각 아무리 엄마의 얼굴을 떠올려도 도무지 생각나는 형상이 없었다. 지어 엄마의 이름이 무엇이였던지좇아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라는 이름을 더듬기 시작하면 귀전에는 애비하구 살아라, 허수애비 같은 애비하구 살라구.” 하던 차디찬 목소리만 울릴뿐이었다.

엄마가 나를 보고싶단다.

엄마가 나를 한시도 잊지 못하고 살았단다.

과연 그게 사실이였을까?

밖에 모르는 사람이였잖니…

너의 일생에 도움이 없을 사람이니까…

엄마, 엄마는 과연 어떤 사람이였을까?

빨리 온천한 여자 만나 가정 일궈야겠는데.”

가정? 여자?

하얗게 바래진 정우의 머리에 맑은 눈동자의 양미가 나타났다.

양미!

정우는 벌떡 일어나 앉아 핸드폰을 주어들었다. 순간 양미에게 무엇인가 수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비록 한번밖에 만난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세상을 희롱하듯 전쟁의 페헤같은 파가현장에서 밝게 웃을줄을 아는 양미에게라면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괴어오르는 많은 말들을 그대로 할수 있을 같았다.

정우는 급히 양미에게서 MMS를 찾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정우의 머리에 회오리처럼 한가지 생각이 스쳐지났다.

양미에게 나의 전화번호를 알려준적이 없는데?

순간 등이 섬찍해나며 손바닥에 식은 땀이 쫙 돋는것만 같았다.

그가 어디서 나의 핸드폰 번호를 알고 MMS을 보냈을까?

저녁에MMS를 받았을 때는 양미의 사진을 확인하기에만 급급해서 그 점을 소홀히 했던 것이다. 정우는 급히MMS에 찍힌 핸드폰번호를 확인했다. 136으로 시작되는 같은 지역 번호였다.

!

정우는 너무도 놀라 입을 떡 벌리고 굳어졌다.

그 번호였다. 바로 그 번호였다. 아침에 “8 30분 국자가 93호에서 만나자고 메세지를 보내왔던 바로 그 번호였다.

그러면 양미가 바로…

양미, 그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추천 (4) 선물 (0명)
IP: ♡.27.♡.212
flower1150 (♡.208.♡.229) - 2015/03/22 19:25:49

잘보구 갑니다. 담집도 기대할게요

Miss 오 (♡.97.♡.19) - 2015/03/23 12:45:40

잡지에 투고해도 되겠어요.. 추천

북위60도 (♡.225.♡.65) - 2015/03/24 14:59:25

추천.

애심88 (♡.238.♡.140) - 2015/03/24 18:33:31

잘 보앗습니다.

다음집 기대할게요.

ging (♡.225.♡.230) - 2015/03/26 19:18:42

오랜만에 선생님글을읽게됨다..
새마을....
80년대후반...북대에 4층짜리 층집들이 줄줄이 설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함다...
그집들을 다 허물고 높은집이 선다니...
동년이 그립슴다..
잘읽었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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