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마을

무학소사 | 2015.06.12 15:55:00 댓글: 6 조회: 1857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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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마을

안도현 룡정시 화룡시가 접경한 금삼각 지대에 하늘아래 첫동네로 불리우는 무학이라는 경치좋고 인품좋은 고장이 있다.멀리서 바라보면 산세가 마치 선학이 춤을 추는것 같다하여 무학(舞鹤)이라 하였다.마을 주위엔 뭇산들이 병풍을 치고 있었고 마을 남쪽과 북쪽 언덕아래로 맑은 시낸물이 졸졸 흘러내려가다가 마을 아래서 하나로 합쳐 동으로 쉼없이 흘러간다.은띠같은 시낸물이 Y자형으로 꽃망울을 받쳐든듯 멋진 고장이다.<<산도 첩첩 물도 겹겹 없다 했더니/버들숲 꽃밭속에 마을이 보이여라>> 륙유의 시에서처럼 묘사된 곳이 바로 내가 태여나 동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낸 살기좋은 고향마을이다.

호랑이 담배피우던 옛날에 쪽박차고 두만강을 건너온 우리 선조들이 이곳 산골짜기에 산재하여 있으면서 잡곡을 심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항일전쟁시기 일본놈들이 민중을 감시하고 항일련군과의 련계를 차단하기 위하여 이곳에다 집단부락을 세우고 골짜기에 산재하여 있는 농군들을 강제로 집결시켰다.그리고 마을 주위에 높은 담장을 쌓고 동서남북에다 대문을 내고 망을 보았는데 경계가 여간 삼엄하지 않았다고 한다.집단마을은 동서남북으로 줄을 맞춰 집을 지었는데 장소의 제한으로 아래웃집사이,앞뒤집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아 채소 심을 터밭조차 없었다.

지금은 담벽의 흔적조차 찾아볼수 없고 마을 모습도 많이 변했지만 산천은 예나제나 의구하고 력사도 대대로 내려오며 의구하다.마을 동남쪽에는 령을 하나 사이두고 일본놈들이 은동을 캐가던 탄광으로 유명짜한 천보산진(天宝山镇) 있다.서남으로는 멀리 백두산과 련결되는 산줄기가 련련이 뻗어있어 항일련군들이 유격전을 하기에 알맞춤한 고장이다.마을 로인들의 말에 의하면 항일전쟁시기 조선의 최현부대가 자주 출몰하였다 한다.연변일보사 김철호기자가 집필한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라는 글에 이런 단락이 있다.<<1940 1 3방면군 부대는 연길현 무학동에서 50여명 위만경찰과 교전하여 10여명을 격살했다.>>여기서 말하는 3방면군은 동북항일련군 1로군 3방면군인데 지휘에 연변출신의 항일명장 진한장이고 참모장에 박덕범이였다.옛날에는 연길현 석문구 무학촌으로 불리우다가 1958년부터 안도현에 귀속되여 석문인민공사 무학대대로 불리웠고 1985년부터 석문진 무학촌으로 개칭되여 지금까지 불리우고 있다.항일전쟁시기 동북항일련군들의 발자취가 잦았던 유서깊은 고장으로 중국조선족항일사에 이름이 떳떳이 올라있다.

백두산의 천갈래 만갈래 산줄기중의 하나인 무학의 산은 산세가 험하고 기복을 이룬 봉우리들이 들쑹날쑹 솟아있다.산에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꽉박아 서있고 깊은 골짜기에는 여러가지 잡목이 빼곡이 서있어 동물들이 서식하기에 알맞는 고장이다.,노루,메돼지는 흔한것들이고 흑곰과 동북범도 가끔 들려서 자취도 찾아볼수 있다.그리고 산에는 무학의 특산인 송이버섯이 많이 난다.예로부터 무학의 송이버섯은 중국은 물론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인기도가 높다.송이버섯은 까다로운 버섯이여서 지금까지 어느 나라에서도 인공재배를 성공한 사례가 없어선지 몸값이 떨어지지 않고 하냥 비싸다.송이버섯의 산량이 적을때 값이 한키로에 천원좌우까지 올라가는데 그것을 비행기로 운송하여 소비자들 손에 들어갈때에는 값이 엄청나게 비쌀것이다.그래서 송이버섯채집은 금캐기보다 낫다고 한다.송이버섯 풍년이 들면 무학촌의 송이총수입은 100만원좌우 된다.40일좌우에 한사람이 일년농사수입보다 많은 수입을 올린다.작은 무학촌으로 말하면 아주 높은 수입이여서 송이버섯채집은 촌의 첫째가는 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래서 촌민들은 일찍이 밭김을 끝내고 송이버섯이 돋아나기를 학수고대한다.

이래서 산을 끼면 산의 덕을 보고 물을 끼면 물의 혜택을 본다는 말이 나온듯 싶다.누군가 무학의 산에는 5원짜리 인민페가 한벌 깔렸다고 말했는데 말이 과연 허풍은 아닌것 같다.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감자,메밀,조이 잡곡을 심어 주식으로 하던 때의 일이다.아낙네들이 절구방아로 메밀을 찧고 키로 키질하여 껍질을 가려내고 가루를 내는 동안 남정들은 어둠을 타서 아주 그물을 가지고 좁은 들로 잡으러 간다.앞뒤좌우에서 그물을 빳빳이 당기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조금 누르면서 들판의 아래서부터 우로 100메터 속도로 달려가면서 고함을 치면 잠자던 꿩들이 깜짝 놀라 퍼더덕 퍼더덕 솟다가 그물에 걸리는데 뻘건 장꿩놈을 잡아다 국수물을 만든다. << >>자를 사발에다 국수를 말고 꿩고기 한줌씩 척척 놓는데 또한 별맛이여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내가 중학교를 다닐때만 하여도 통나무를 깎아 만든 분틀을 사용했는데 이민 1세가 점점 소실됨에 따라 나무분틀도 쇠분틀로 바뀌여졌다.지금도 귀한 손님이 오면 메밀국수를 눌러 대접하는데 먹어본 사람들은 엄지손가락을 내들며 칭찬이 자자하다.지금 연길의 복무대로 국수나 진달래 국수도 토배기 국수와 비기면 아마 두손을 들것이다.

2005년도 8월에 한국KBS방송국의 기자가 어떤 경로를 통해 왔는지는 몰라도 심심산천 무학에 와서 추석특집을 찍어갔다.이민 1세가 삶의 터전을 닦고 이민 2세가 가꾸고 이민 3세가 꽃피우며 몇십년 세월이 흘렀어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우리민족의 고유풍속을 생생한 화면으로 록화해갔다.올리훑고 내리훑어봐도 이민1세는 이미 저세상으로 간지도 까마득하고 이민2세도 몇분 안남은 상황이지만 이민3세들이 부모들에게서 물려받은 생황습성을 여전히 보존하고 있어 천만다행이다.중국이라는 대가정에서 조선민족의 긍지로 살며 민족의 풍속을 지키고 계승한다는것이 얼마나 어렵고 조련찮고 대견하고 보람찬 일이라고 생각된다.우리 민족의 대이동으로 한족에게 점점 동화되여 가는 현상태가 가슴 아프기도 하다.적막해가는 고향마을에 가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립고 떡메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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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모래 (♡.37.♡.102) - 2015/06/14 10:34:32

그 천하별미라는 메밀국수가 먹어보고싶네요~~ㅎㅎ

무학소사 (♡.161.♡.164) - 2015/06/17 20:41:24

인연이 되면 어느때 한그릇 대접하지요,
늘 건강하구 행복하세요

행복속의녀 (♡.247.♡.7) - 2015/06/14 16:19:05

계속 쭉 보존해 내려가야죠.우리전통 민속 습성 습관...

무학소사 (♡.161.♡.164) - 2015/06/17 20:44:00

점점 동화되여가는 현실이 우려됩니다,언제까지 보존할지...
댓글 넘 고맙습니다.

wuwanzhu68 (♡.218.♡.174) - 2015/06/15 14:19:30

真是好地方,梦中向往的地方,很想去看看,,,

무학소사 (♡.161.♡.164) - 2015/06/17 20:47:46

고향은 언제나 리향민의 가슴에 아름다운 산천으로 남아있는가 봅니다.
님의 고향도 梦中向往的地方 일테지요
언제나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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