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아해가 강을 건너오(1)

동녘해 | 2015.09.17 08:41:03 댓글: 0 조회: 1743 추천: 0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2822324

1

“점집”이 아니였다.

“무당집”도 아니였다.

문옆에는 분명 “우주철학관”이라고 쓴 간판이 버젓이 걸려있었다.

(맞구나, 점쟁이들이 사주나 보구 돈이나 사기치는 그런 허접한 곳은 아닌가보구나. 영팔이 그놈, 간만에 나를 위해 괜찮은 일을 한건 했네.)

정우는 이런 생각을 굴리며 우주철학관이라는 간판을 다시한번 한글자한글자 뜯어보았다. 정우는 “철학관”이라는 그 이름에 저으기 마음이 끌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평소 “철학”이라는“철”자마저 생각해본적이 없는 정우였다. 아니, 평소 “철학”에 대하여 생각해볼 겨를좇아 없이 삼동 간에 얼음우에서 팽이 돌아가듯 생계를 위해 너무도 분주하게 돌아치며 곤하게 살아온 정우였다. “철학”이란 언제나 두툼한 근시안경을 눈에 걸고 맨날 두툼한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박사”들이나 연구하는 대단한 학문인줄로 알고있는 정우였다.

어제밤, 정우가 하도 상심해서 강술만 들이켜자 영팔이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던것이다.

거기에나 한번 가보지그래.”

거기라니?”

정우가 호기심 끌린 눈길로 영팔이를 쳐다보자 그는 쩝쩝 마른 입을 몇번 다시더니 심드렁하게 말했다.

내 마누라 말이다. 심란한 일만 생기면 그리로 다녀. 흥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거기 매골이라구 있잖아? 거기 우주철학관이라고 있는데 그곳에 그렇게 용한 선녀가 있다나 뭐라나…”

어제밤까지는 별로 믿지 않았던 정우지만 밤새 내내 생각해도 별로 뾰족한 수수 없는 것 같아 아침에 무작정 매골로 떠났던것이다.

설마하고 왔는데 진짜로 그 “우주철학관이 눈앞에 떡 벝이고 서있는것을 보고 정우는 저도몰래 흠칫 몸을 떨었다. 비록 녹이 벌겋게 쓴 양철대문이 골목과 그 “관”을 갈라놓기는 했지만 정우는 그 “관”만 들어서면 꽉 막혀버린 텐널 같은 어두컴컴한 자기의 마음에 빛이 들고 앞이 훤하게 트여질것만 같았다.

(그래, “철학”이라잖아. 틀림없을거야. “철학”을 연구하는 “관”이라잖아, “관”에 들어서면 분명 무슨 답이 나올거야.)

정우는 크게 숨을 들이 쉬고는 얼굴이 지지벌개날 때까지 호흡을 딱 멈추었다가 후- 내뿜으며 오른손을 들어 철대문을 밀었다.

“삐이-익 꺽.

철대문이 열리며 가슴을 긁어내리는것 같은 금속 갈리는 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꺽! 하는 소리가 입에서 터져나갔고 방금 양철대문을 밀었던 오른손이 어느새 가슴께로 올라갔다.

“꺽. .

정우는 급히 오른발을 대문안에 들여놓으며 두눈을 꼭 감았다. 전처럼 “이 놈의 딸꾹질. 하는 히스테리적인 고함이 머리를 친것이 아니라 “삐이-익 꺽. 하던 철대문 열리는 소리가 다시 귀전에 울리는것 같았다.

(그래, “관”은 뭐가 달라도 다른거야, “관”에 단 문이라 “딸꾹질”도 할줄 알잖아. “꺽. . 그래 분명 나처럼 마지막에 “꺽” 했다니까. “삐이-익 꺽. 했다니까. 하마 이 양철대문두 “우주”씩이나 되는 “철학관”을 지키고 섰느라니 나처럼 가슴 터지게 갑갑할 때가 있는거겠지… - 도대체 어디로 간걸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는걸가? 여기서는 분명 답을 찾을수 있을거야, “관”에 계시는 선생님은 꼭 아실거야.)

“꺽. 꺽꺽.

찢어죽이고싶도록 얄미운 딸꾺질은 정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조금도 멈출념을 하지 않았다.

(안되지, 여기가 어디라구 여기서 딸꾹질을 해. 이 신성한 곳에서. 참아야지. 참아야 해.)

정우는 왼손 엄지로 오른손바닥을 힘껐 눌렀다. 왼손 엄지에 너무 힘을 준탓인지 순간 오른손바닥이 쨍 저려나며 숨이 꺽 막히는것 같았다. 정우는 그 기세를 따라 숨을 훅 들이 쉬였다가 꿀꺽, 꿀꺽, 꿀꺽 하고 세번 내리 누르고는 배에다 힘을 지그시 주었다. 순간 배속에 들어갔던 숨이 다시 올리 솟으며 꺼어-꺽 하고 트림이 터져나왔다.

(그래, 해결된거야. 선수가 됐다니까. 요새 내가 딸꾹질을 떼는 도사가 됐다니까.)

정우는 선자리에서 기분 좋게 모두뜀을 하면서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빼여물었다. 철대문에 들어설 때와 모든게 달라진것이 없었지만 정우는 이 “우주철학관”에 들어섰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위안을 받았던지 꽉 막혔던 가슴에 한오리 실바람이 불어드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됐어. 인젠 된거야. 이렇게 곧추 저 “관”에 들어가서 “철학”을 하는거야.)

정우가 이렇게 생각을 굴리며 두눈을 지긋이 감고 마지막으로 한번 힘차게 모두뜀을 하고있을 때 갑자기 “이보세요. 하는 새된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정우는 꼭 감았던 두눈을 번쩍 뜨면서 목소리임자를 찾았다.

하얀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머리에 빨간댕기를 맨 20대쯤 되여 보이는 한 처녀가 매서운 눈매로 정우를 노려보고있었다. 정우의 얼굴이 확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저…저 말입니까?

“제갈선녀님이 말씀했슴다. 밖에서 청승을 떨지 말고 빨랑 들어오라구 말임다. 빨라당 들어와서 번호를 쥐여야잼까?

“네, 번호요?

“요…” 하면서 벌려진 정우의 입이 잠간 다물려 지지 않고 동그랗게 모양을 내고있었다. 녀자의 눈길이 홱 고패를 쳤다.

“번호 모름까? 번호. , , , 사 하는 번호. 사람들이 줄을 쭉 서서 순서를 기다릴 때 손에다가 꼭 쥐고있는 그 번호.

“아, . 그 번호를…”

“우리 제갈선녀님을 보는게 그리 쉬운줄 암까? 벌써 앞에 열사람두 넘게 파이뚜이()했씀다. 파이뚜이.

“아, 예…”

정우는 눈 멘 망아지 워낭소리 따라 가듯 녀자의 뒤를 따라 “우주철학관”으로 들어갔다.

“우주철학관”은 상상외로 우주적인데가 보이지 않았다. 구석구석 녀자의 손길을 느낄수 있을만치 먼지 한점 없이 깨끗하기는 했지만 “우주”에 걸맞는 가구 같은것은 두눈을 싹 씻고 찾아봐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조선식 솥 세개를 가지런히 얹은 부엌쪽의 널장판우에 가지각색의 옷차림을 한 아줌마들이 줄느런히 앉아있었는데 아니나다를가 모두 손에 종이를 한장씩 쥐고있었다.

(저게 번호인가보구나.)

정우는 나름대로 이런 생각을 굴리며 어디에 앉을가 하고 주춤거렸다.

“청승을 떨어요, 청승을 떨어. 하두 딱해서 이 제갈선녀님이 네놈을 먼저 불렀다.

웃방에서 카랑카랑한 한 녀인의 목소리가 부엌쪽으로 날아왔다. 그러자 널장판우에 앉아있던 녀인들의 눈길이 일제히 웃방으로 날아올라갔다가 목소리임자의 눈길을 따라 정우의 몸에 모였다. 순간 정우는 그 따가운 시선들을 느끼며 저도 몰래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웃방에 앉아있는 “제갈선녀”라고 하는 그 녀인의 정체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정우는 옆으로 머리를 꼬며 웃방에 앉은 그녀를 힐끔 곁눈질 했다. 당금이라도 활활 타오를듯한 불처럼 빨간 치마저고리를 차려입고 벽 한면을 다 가리운 련꽃그림앞에 앉아서 표독스러운 눈길로 정우를 노려보고있는 녀인은 40대를 넘긴듯 해보였다.

(나를 먼저 불렀다구? 내가 하두 딱해보였다구? 내가 청승을 떨고있었다구? 내가 과연 그랬나?)

정우가 속으로 중얼거리고있을 때 웃방에 앉은 제갈선녀가 또 부엌쪽을 향해 소리쳤다.

“뭐라고 섰어? 빨랑 올라오지 않구.

정우는 자기를 보고 하는 소리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선뜻 웃방쪽으로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너를 그런다. , 우두망찰 부옇게 서서 퉁방울 같은 눈깔을 펀들거리는 네놈을 그런다구.

“네? 저…저요?

정우가 오른손 식지를 뽑아 자기의 가슴을 가리키며 더듬거렸다.

“그럼, 거기 너 내놓구 또 너처럼 맹랑한 놈 또 있냐? 멍텅구리, 바보, 천치 같은 놈. 제 구실도 못하는 놈. 바람났어. 바람 난거야. 바람 나도 엄청 기막히게 난거야.

제갈선녀가 탕 하고 앞에 놓인 상을 내리쳤다. 그 바람에 상우에 놓여있던 딸랑이북이 부르르 떨었다. 그녀가 다시한번 손바닥으로 상을 내리치며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빨랑 앞에 와 앉으라니까. 우리 제갈님이 노하기전에.

“네? 제… 제갈님이요?

“이런 무식한 놈 봤나? 이 선녀가 제갈님을 모신다는 소문도 못 들었어? 며칠전부터야? 며칠 안되지?

“네네, 이렇게 아예 지지…집을 나가버린것은 다다, 다…닷새전입니다.

정우가 더듬거리며 제갈선녀앞에 놓은 상앞에 꿇어앉았다.

제갈선녀가 두눈을 살포시 감고 오른손가락을 몇번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전에두 이렇게 들락날락은 했구먼그래.

제갈선녀가 아니냐는듯 정우를 힐끔 건너다보았다. 순간 정우의 동공이 커졌다.

(어떻게 알았을가? 그랬었지. 전에두 하루밤씩은 몇번 나가 잔적이 있었지. 그걸 어떻게 알았을가?나는 그 일을 아예 입도 뻥긋 안했는데.)

“그것두 모르면서 제갈님을 모시고 살가? 시건방을 떨지 말고 그년 사주나 한번 불러봐.

“네, 그 애 2000년 음력 5월 초닷새입니다?

“뭐?

이번에는 제갈선녀의 동공이 꼭뒤로 날아올랐다.

“세군, 세단 말이야, 너무, 너무 세단 말이야. 워낙 센 룡이 물까지 만난 상이니… 제구실두 못하는 놈이, 바보, 천치 같은 놈이. 애비가 돼가지구 자식새끼 이렇게 될 때까지 뭐하고 살았어?

“그 애 네살에 애 엄마와 리혼하고 그 애 하나 잘 키워보겠다구 내 별 일 다해보았습니다. 그러다 이곳에서는 아무래도 애 대학공부 시킬 돈도 벌겄 같지 못해서 애 아홉살에 그 애를 할머니에게 맡겨놓구 한국에 나가게 되였지요. 남자애니까 할머니가 밥만 제대로 해먹이면 알아서 건강하게 잘 클것이라 믿었지요. 평소 전화해서 그 애 공부 어떠냐고 물어보면 그 애 할머니는 늘 ‘수수하다’ 하고 말했지요. 그래서 난 시름놓았단 말입니다. 대부분 애들이 수수하잖아요, 잘하는 애들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아니였습니다. 아니였다구요. 애가 글쎄 한 40여명 되는 반에서 꺼꾸로 4등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억이 막혔지요, 너무 억이 막혀서…”

“이놈아.

제갈선녀가 정우의 말을 자르면서 상을 내리쳤다.

“여기가 뭐 네놈 신세타령이나 듣는 너네 마을 건조실앞마당이나 되는줄 아냐? 부적 하나 부쳐봐라.내 제갈님께 말해서 정성들여 한장 써주마.

제갈선녀는 앞에 놓인 상 서랍을 열더니 누렇게 뜬것 같은 종이 한장을 꺼내여 상우에 펼쳐놓았다.이어 그는 두눈을 감고 잠간 두손을 합장하고있더니 상우에 놓인 딸랑이북을 들고 흔들어대며 두런두런 주문을 걸기 시작했다.

령험하신 제갈님, 우리 제갈님/ 불쌍한 이 생령 굽어살펴주시와요/ 수리수리 무수리 아랑 무수리/ 길 잃은 아해가 강을 건너오/ 수리수리 무수리 아랑 무수리…

제갈선녀가 주문을 끊고 손바닥으로 다시한번 상을 탕 내리치더니 붓을 들어 누런 종이에 뭐라고 썩썩 써내려갔다. 정우는 누런 종이우에서 춤을 추는 붓끝을 홀린듯이 지켜보았다. 그 붓끝을 따라 누군가 허허벌판에서 허겁지겁 헤매고 다니는것만 같았다.

“빈이야, 빈이야. 너 어디 있니?

정우가 아픈 목소리를 토해냈다.

제갈선녀가 드디여 붓을 놓더니 알아볼수 없는 그림이 오려진 그 누런 종이를 곱게 접어 빨간 비단주머니에 넣고 빨간 실로 한땀한땀 깁기 시작했다. 잠간 사이였다. 제갈선녀가 깜찍하게 꾸며진 빨간 비단주머니를 정우 손에 정중히 쥐여주며 말했다.

“알아서 내놓구 가져가.

정우는 빨간 비단주머니를 돈지갑에 정히 넣고는 백원짜리 한장을 꺼내여 정중하게 상에 올려놓았다. 제갈선녀의 눈길이 사납게 홱 돌아갔다.

“이놈아, 제구실 좀 하구 살아라. 제구실을…”

정우는 순간 가슴이 썸찍해남을 느끼며 다시 지갑을 열고 백원짜리 한장을 더 꺼내여 상우에 얹었다. 제갈선녀가 상에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기다려봐. 인차 소식이 올거다.

그 순간 놀랍게도 정우의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기 시작했다.

“아…”

정우는 신음처럼 짧은 소리를 토하며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낮고 갈린 목소리가 신호를 타고 건너왔다.

아빠, 나 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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