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25회) 지아와 희애의 첫만남.
21년 전, 행복 보육원
[엉엉 어엉… 오빠… 엄마 아빠… 어엉…]
보육원의 구석 한편에서 긴 머리의 여자아이가 한참을 큰 소리를 내면서 울고 있다. 그 끝 쪽 방문으로 또 다른 짧은 머리 여자아이가 우는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원장님의 5살 친구가 왔다는 말에 정신없이 뛰어왔지만 너무 슬프게 우는 여자아이의 곁으로 가기에는 조금 망설여졌다.
[이지아?]
짧은 머리 여자아이는 용기를 내어 우는 여자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울던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자기 또래로 보이는 작은 여자아이가 밝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 너 5살이라며? 나도 5살이야. 우리 친구 하자.]
울음소리를 멈춘 여자아이는 활짝 웃는 여자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유리창 밖에서 지켜보던 원장과 직원들이 서로 마주 보며 안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어떻게 구슬려봐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던 아이였었다.
보육원 직원은 긴 머리 여자아이한테 짧은 머리 여자아이랑 똑같은 옷을 입혀주며 감탄했다.
[와아~ 이렇게 입으니 너네 진짜 쌍둥이 같다. 헤어스타일만 다르지 자세히 안 보면 한 엄마 뱃속에서 나온 줄?]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둘 다 뽀얀 피부에 계란형 얼굴. 동글동글한 눈과 앵두 같은 작은 입. 정말 닮았다.
[우리 그럼 쌍둥이인 거예요? 이름도 같으니까?]
짧은 머리 여자아이가 맑은 표정을 지으며 직원의 팔을 잡았다.
[쌍둥이는 이름은 같지 않지. 근데 쌍둥이 같아. 이런 일은 드문데 이름까지 같기는. 너희들을 어떻게 부르지? 음… 머리 길이가 다르니까 긴 머리 지아랑 짧은 머리 지아라고 불러야 하나?]
[긴 머리 지아?? 좋아요!!!]
짧은 머리 지아는 금방 지어 낸 이름이 좋아서 방방 뛰었다.
그리고 아직 얼떨떨한 표정으로 쭈볏거리는 긴 머리 지아를 발견한 지아는 그 아이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지아야. 너는 이제 긴 머리 지아고 나는 짧은 머리 지아야. 알겠지?]
긴 머리 지아는 짧은 머리 지아의 말에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너도 그 이름이 맘에 드는구나. 우리 나가서 같이 놀자. 우리 여기 언니 오빠들이 많아.]
그렇게 긴 머리 지아는 짧은 머리 지아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뛰쳐나갔다.
[너도 엄마 아빠가 없어? 가족이 없으면 여기에 있는 거야?]
그렇게 신나게 놀고 밤이 되어 짧은 머리 지아가 자기 옆에 나란히 누운 긴 머리 지아한테 물었다.
그 말은 들은 긴 머리 지아는 표정이 구겨지면서 바로 화를 내면서 울먹거렸다.
[난 엄마 아빠가 있어. 그리고 오빠도 있단 말이야. 언젠가는 날 데리러 올 거야.]
긴 머리 지아의 말에 짧은 머리 지아는 그 아이가 부러웠다. 자신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엄마 아빠가 있기나 한지도 알 수가 없었는데 이 아이는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오빠도 있다고 하니…
[이것 봐. 이건 우리 엄마가 나한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거야.]
긴 머리 지아는 옷 속에 숨겨져 있던 핑크 곰돌이 목걸이를 보여주면서 자랑했다.
[와아~]
짧은 머리 지아는 이불을 박차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만져봐도 돼?]
이렇게 이쁘고 귀여운 곰돌이는 처음 보았다.
[으응. 잠깐만 만져야 돼~]
긴 머리 지아가 목걸이를 만지게 허락해 주자 짧은 머리 지아는 무슨 보물을 만지듯이 조심스레 곰돌이를 어루만져 줬다. 그러다 뒤에 뭔가가 적혀있는 걸 보고 물었다.
[이게 뭐야?]
[응~ 이지아라고 내 이름을 각인시킨 거랬어.]
[부럽다…]
[넌 엄마 아빠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 아빠는 나한테 선물을 많이 줘.]
천진난만한 긴 머리 지아의 자랑에 짧은 머리 지아는 토라져서는 그 아이한테 쏘아붙이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홱 돌아누웠다.
[나도 원장 엄마가 있어!]
엄마 아빠가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주 많이 기분 좋은 일인 거 같았다.
새벽 화장실을 가고 싶어 일어난 짧은 머리 지아는 화장실에 후딱 다녀오고 어데서 떠돌다 피곤해서 곤히 자고 있는
긴 머리 지아를 바라보았다. 숨겨 넣었던 곰돌이 목걸이가 비스듬히 스며나와 그 아이의 가슴 옆에 있었다.
지아는 자고 있는 아이가 깨지는 않는지 유심히 보다가 그 곰돌이를 조심스레 또 만져 보았다.
이쁘다…
갑자기 잠결에 움직이는 그 아이 때문에 깜짝 놀라 다시 이불을 뒤집어쓴 지아는 긴 머리 지아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서서히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여느 때보다 정말 많이 추운 겨울이었지만 둘은 친구처럼, 때로는 자매처럼 친해졌고 긴 머리 지아는 짧은 머리 지아가 있어서 그런지 처음엔 그리 찾던 부모님을 더 이상 그렇게 자주 찾지를 않았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날이 돌아왔다. 보육원 앞에 심었던 꽃들이 만개할 무렵, 보육원에는 두 쌍의 부부가 찾아왔다. 두 부부 중 남자들은 다 깔끔한 정장을 입었고 한 여자는 하얀 원피스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누가 봐도 고상한 여자였다. 그렇다고 옆에 같이 웃고 있는 여자가 어디 밀리는 건 아니었다. 하얗고 티끌 하나 없이 맑게 생긴 얼굴에 하얀 셔츠에 보라색 치마를 입은 그 여자는 멀리서 봐도 충분히 주목을 이끌만한 사람이었다.
긴 머리를 찰랑 거리며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처럼 친구같이 아이를 입양하러 오는 부부는 적을 꺼야. 그치? 희애야.]
[그렇겠지? 우리 둘 다 다른 건 부족할 게 없는데 천사 같은 아이가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워. 입양은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용기가 사실 없었거든. 너희 부부가 우리랑 같은 생각이라고 할 때 속으로 많이 기뻤어. 용기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
말하면서 방긋 미소를 짓는 그녀의 하얀 얼굴이 꽃들이랑 참 어우러져 더 화사하게 이뻤다.
[오셨어요?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보육원 원장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짤막한 인사들과 함께 이들 부부는 마침 보육원 마당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원장님. 저기 두 아이는 쌍둥이인가요?]
희애가 키 차이, 생김새가 비슷하면서 똑같은 옷차림의 여자아이들을 가리켰다.
[어? 나도 저 아이들을 보고 있었는데.]
그 말이 원장은 웃으면서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쌍둥이는 아닌데 나이는 똑같이 6살이에요. 후원자 중에 쌍둥이를 키우는 분이 계시는데 매번 똑같은 옷을 많이 보내주세요. 둘이 나이도 같고 또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이라 자세히 안 들여다보면 다들 쌍둥이로 알죠.]
[아…]
희애와 지은은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여보, 저 여자아이들 너무 맑고 귀엽지 않아요? ]
희애는 옆에 조용히 서 있는 남편을 쳐다보면서 아이들을 가리켰다.
[그래. 나도 아까부터 눈에 밟히더라고.]
공감하는 남편의 말에 희애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보니 친구 지은이도 남편이랑 그 아이들에 대해 말하는 거 같았다.
잠시 후,
이 부부들의 바람대로 두 아이를 이들 앞에 데려왔다.
[아이들한테 왜 여기에 계시는지 어느 정도는 말해줘서 알고 있어요. 편한 시간 가지세요.]
원장님은 간단히 전달하고 문밖으로 나갔다.
두 아이는 어색한지 먼발치에서 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특히 긴 머리 지아는 짧은 머리 지아의 떨어질세라 손을 꼭 잡고 한 발짝 물러선 뒤에서 몸을 숨기기 바빴다.
[아가들아. 이리 오렴. 너희들이 어떤 걸 좋아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간식들 사 왔는데 여기 앉아서 먹어도 돼.]
[진짜 먹어도 돼요?]
지은의 자상한 말투에 짧은 머리 지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여기 와서 먹어.]
지은의 옆에 앉아 있던 희애도 웃으면서 아이들 보고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제야 안심이 된 짧은 머리 지아는 긴 머리 지아의 손을 잡고 의자에 가서 앉았다.
이것저것 고르면서 간식을 맛나게 먹는 아이들을 보며 두 쌍의 부부는 뭔지 모를 행복감을 느꼈다.
잠시 후 아이들의 식사시간,
원장이랑 두 쌍의 부부가 면담을 가졌다.
[저희 보육원은 애들의 정서도 고려해서 아이가 싫다고 거부를 하면 그 의견을 들어주려고 해요. 두 아이한테 잘 얘기는 해보겠지만 혹시나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도 이해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원장의 조심스레 전하는 말에 이들은 다들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한편, 밥을 먹고 있던 긴 머리 지아가 짧은 머리 지아한테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아야. 우리 그냥 여기 있을 거지?]
[아니, 난 갈 거야.]
[어디로???]
긴 머리 지아는 짧은 머리 지아의 말에 많이도 놀랐는지
입술을 삐쭉거리면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까 원장 엄마가 그랬어. 지금 원장 엄마는 우리 모두의 엄마인데 저 사람들 따라가면 나만의 엄마 아빠가 될 거래. 좋은 사람이라고 했어.]
[싫어. 난 여기서 지아랑 같이 있을래.]
긴 머리 지아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 짧은 머리 지아는 한숨을 내쉬더니 긴 머리 지아의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면서 그 아이를 타일렀다.
[ 너 아까 못 들었어? 그 아줌마들 친구래. 우리가 여기서 나가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거지.]
[진짜?]
[응!]
[그럼 지아 너는 어느 아줌마 선택할 건데?]
긴 머리 지아는 이 아이랑 같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나는… 하얀 치마를 입은 아줌마!]
왜냐면…치마가 이쁘니까.
[그럼 나도 그 아줌마!]
[아니야!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우리 같은 아줌마 선택하면 안 돼. ]
[왜? 왜 안되는데?]
긴 머리 지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아이랑 같이 가고 싶은데.
[몰라. 안된다고 했어.]
이제 6살밖에 안 된 아이들은 서로 이해가 부족한 채 같이 시무룩해 있다가 머리 긴 지아가 갑자기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내가 하얀 치마 입은 아줌마한테로 갈 거야.]
[안돼~~ 내가 먼저 간다고 했잖아.]
짧은 머리 지아가 쉽게 양보할 리가 없었다.
[싫어. 네가 먼저 날 버리고 간다고 했으니 네가 다른 아줌마한테 가.]
막무가내였다.
[싫은데…]
그러면서 창가 너머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부부들을 발견하게 된 짧은 머리 지아. 하얀 원피스를 입은 지은을 보다가 옆에 있는 희애를 쳐다보게 되었다. 그러다 희애랑 눈이 마주쳤고 그 희애는 지아를 보고 활짝 웃었다.
저 아줌마도… 괜찮을 거 같긴 해…
[양보하기 싫으면 … 음… ]
긴 머리 지아는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었다.
[대신 너 이거 가져. ]
[이건 네가 아끼는 거잖아!]
긴 머리 지아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하자 짧은 머리 지아는 속으로는 좋으면서도 이 아이가 또 나중에 빼앗아 갈까 봐 선뜻 손을 내밀지는 못했다.
[난 우리 엄마 보고 또 사달라고 하면 돼. 내가 저 아줌마랑 같이 살고 있으면 엄마 아빠가 다시 올 거야.]
[진… 짜?]
천진난만한 두 아이는 서로 마주보면서 웃었다.
그렇게 둘은 며칠이 지나고 서로 각자 선택한 집으로 입양이 되었다. 처음에는 친
구인 지은과 희애가 친
구인 덕에 아이들은 자주 만나서 같이 놀러도 자주 갔었다. 그러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머리 긴 지아네가 갑자기 외국으로 떠나게 되면서 다시는 만난 적이 없었다.
[우리 또 만나자.]
[응! 또 만나!]
분명히 그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던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