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하는 안녕-취업고생(2)

레드체리 | 2015.01.20 14:27:50 댓글: 5 조회: 3812 추천: 3
분류실화 https://life.moyiza.kr/mywriting/2536300

고진감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라고 한다.

힘들 때 많이 생각나고 자주 듣는 사자성어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 힘든 일에 부딪혀 절망이 찾아 와 세상을 원망하고 한탄할 때

고진감래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근데 진짜 고생 끝에 낙이 오긴 오는 걸까요?


주위에 어릴 때 부모님이 외국으로 돈 벌러 가고 할머니집에서 살거나 친척집에서 눈치밥먹으며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런 친구들에 비해 정우와 정희는 아빠와는 오래 떨어져 살았지만 고등학교 3년 기숙사생활을 했던것 빼고 엄마랑은 늘 함께 생활했다. 정희도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기숙사생활을 시작하자 엄마는 정우가 다니는 대학이 있는 시내로 나와 아빠친구분의 식당주방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었다.

정우가 어릴 때 시내로 이사갔었던 적이 있다. 거기서 정희도 태여나고~정우는 학교도 시내에서 한동안 다녔었다. 엄마는 아침에 도매시장으로 달려가 삶은 옥수수, 딸기,살구등 제철 과일음식들을 가져다가 길거리에 커다란 주머니랑 대야에 담아서 팔면서 그렇게 푼돈을 모아가며 살았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던 아빠는 북한장사도 다니고 공장에 막일도 하다가 시골로 다시 내려가 농사일을 했다.

그리고 어느날, 한국에 있는 고모가 신부전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하는 큰 고모가 아빠한국에 갈수 있게 됐으니 수속을 하라고 서류를 보내왔다. 한국에 가기 힘들었던 그 시절 고모가 병치료를 해야하는데 자식도 남편도 없으니 동생이 한국에 가서 병간호를 하도록 허락한다는 그런 서류였다. 병간호가 필요없었던 큰 고모는 힘들게 사는 아빠가 한국에 올수있도록 그런 서류를 보낸것이고 그렇게 아빠는 남들보다 쉬운 방법으로 돈도 안들이고 한국으로 갈수있었다.

정우와 정희를 대학까지 갈수 있게 돈 열심히 벌어서 뒷바리지해주는 아빠와 곁에서 지켜준 엄마 그 고생을 너무나 잘 알기에 정우는 엄마한테 화를 낸 적도 말대꾸 한번 한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엄마에게 정우는 최고의 아들이고 늘 자랑거리인 아들이다. 대신 정희는 할말 다 하고 잘 삐지고 화도 잘 내고 그런 철부지 딸이다.

몇개월전에 아빠는 피검사에서 간수치가 너무 높아 일을 할수 없어서 병치료를 하러 중국으로 갔던것이다. 정우의 대학졸업장으로 엄마의 F-4비자를 할수있다는 말에 엄마도 이제 한국가서 남들처럼 돈 많이 벌겠다면서 비자를 신청하셨다. 몇개월동안 병원치료를 받고 많이 좋아진 아빠는 한국으로 가겠다는 엄마와 정우를 말리지 못했다. 아빠도 이제 일하시는게 고단하셨던 모양이다.

"장가갈 때 남들처럼 집도 차도 사줄 능력이 안되는구나. 그래도 결혼식은 내 돈으로 시켜줄수 있다. 결혼반지는 사주마"


그렇게 아빠는 정우의 한국행을 허락했다
.

"동무는 이제 한국가면 쉬고 싶은 날에 쉬고 내 옆에서 밥도 챙겨주고 너무 좋지? 그리고 셋이서 돈 열심히 모으면 금방 큰 돈이 모아질텐데 아들 결혼식 시키고 딸 시집보낼 돈만 모으고 집에 와서 농촌에서 앞마당에 오이심고 배추심고 고추심고 그렇게 손군들 키우면서 살아야지."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엄마의 계획인것같다. 망설임 없이 줄줄줄 외우듯이 말씀하는데 너무 행복한 얼굴로 웃으면서 어린애처럼 들떠있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우셨다.



한국에서
3일째

부스럭 부스럭...하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니 아빠가 화장실불빛을 빌어 주섬주섬 옷을 찾아 입고 계셨다. 정우는 제꺽 일어나 불을 켜드렸다.

"더 자라. 갔다올게"

"예 아버지"

정우는 현관문을 나서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대답 외에 아무말도 더 잇지를 못했다.

무거운 도구가방을 먼저 들고 밖으로 나온 옥자는 추운지 발을 동동 구른다.

"들어가오. 나오지말라니까 진짜"

영수는 기어코 고집피우며 추운 새벽에 밖에까지 따라나온 옥자가 못 마땅한 듯 한마디 한다.

"잘 갔다오쇼.

"."

옥자는 영수가 안보일 때까지 골목길을 지키고 서있다가 막 뛰여 집에 들어간다.

이불밑에서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고 있었지만 도무지 잠이 다시 오질않는다.

어제 낮에 친구랑 통화할 때 친구가 알려준 인력소개소를 오늘 찾아가봐야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정우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좀있다가 소개소 가보겠습니다."

"같이 가보자."

""


아침밥을 먹다가 꺼낸 정우의 말에 엄마도 소개소에 가보려고 생각했다는 듯이 제꺽 같이 가자고 말한다.

친구가 알려준 소개소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
어서오세요"


사무책상에 앉아 있던 아줌마 한 분이 인상좋게 웃으며 정우랑 옥자를 맞이 한다
. 일자리를 찾으러 왔다는 말에 외국인등록증 갖고 왔냐고 물어본다. 한국온지 3일째라고 하자 등록증없으면 일을 할수 없다면서 등록증나오면 다시 오라고 한다. 전화번호를 남기고 정우랑 옥자는 힘빠진 모습으로 소개소를 나섰다.

에휴~한국에 도착하면 다음날 부터 일이 척척 생겨서 돈벌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집으로 가는 길에 시장에 들려 반찬거리 사기로 했다. 시금치 한단, 귤 한망, 마늘쫑 한단, 계란 한판을 샀는데 13천원이란다.

", 만삼천원이면 얼마야?"

"?"

"만삼천원이면 중국돈으로 얼마야?"

"글쎄말임다."

옥자는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만삼천원을 중국돈으로 환산하고 있었다.

"어우~70! 너무 비싸다, 다른게 가볼까?"

"그냥 사고 가기쇼.가격이 다 비슷하던데 보니까"

정우의 한마디에 옥자는 건너쪽 가계도 힐끔 옆가계도 힐끔보면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 값을 지불하고 봉지에 넣은 물건을들 하나하나 뒤적이며 걷고 있다.


"
달걀이 왜 이리 비싸니. 이깟 마늘쫑은 또 ...휴 한국에서 어떻게 사니 이렇게 비싸서"

"..."


집에 돌아온 옥자는 가격의 충격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셨는지 연필과 종이를 꺼내놓고 계산을 다시 하고 있다
. 옥자의 한국돈 중국돈 환산하는 일은 물건 살 때마다 일어났고 그 일은 매번 반복됐다.



등록증이 나오려면
3주를 기다려야한다. 집에서 매일 이불과 베개와 싸움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답답한 마음도 들고 주말에 안산으로 놀러 오겠다던 외사촌누나가 생각나 정우가 전화를 걸어봤다.


"
누나 바쁘우?"

전화는 정우가 걸었지만 누나의 속사포질문에 하나하나 대답만 하다가 다음주에는 꼭 오겠다는 누나의 대답을 듣고 정우는 엄마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워이~홍매야."

옥자는 홍매를 무척 이뻐한다. 언니가 아이를 낳아 친정에 맡기고 일하러 다녔기에 처녀였던 옥자는 홍매를 딸처럼 키웠다. 그리고 시집가서 아이를 낳도 친정이랑 가까운곳에 살다보니 늘 홍매도 함께 키운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일찍 애들 떼여놓고 외국에 돈벌러 간 언니대신 또 홍매와 홍매동생 홍화까지 옥자가 그들의 엄마대신이였다. 그래서 홍매도 자기 엄마보다 옥자이모가 더 좋다고 한다. 그런 옥자가 한국에 왔는데 대구에 살고 있는 홍매는 일하느라 한달음에 안산으로 갈수 없는걸 아쉬워한다.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을까. 매일 전화통화를 하지만 누나와 엄마는 전화기를 놓을줄을 모른다.그런 모습이 이해가 안된다는 듯 정우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밖으로 바람쐬러 나간다.

-허니 허니 베이비 허니 허니 베이비-


오후
4시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을 집어든 정우는 모르는 번호가 뜨자 의아해하며 받는다.

"여보세요" (여기는 한국이니 모르는 번호가 뜨면 와이~하면 안되였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XXX소개소입니다. 등록증없이도 일할수 있는 일당 야간일거리가 있는데 혹시 갈수 있는지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네네 갈수있습니다."

한층 긴장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던 정우는 일당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0.5초의 망설임도 없이 큰소리로 대답을 했다. 통화를 끝내고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정우를 바라보는 옥자에게 설명을 해드렸다.

"밤일을 니가 해본적이 없는데 7시에 갔다가 아침 9시에 퇴근한다는게 괜찮겠니?"

"괜찮슴다. 젊었재 나는."


힘든 일을 해본적이 없는 아들이 그것도 밤잠을 못자며 아침까지 일을 하러 간다니 옥자는 무척이나 걱정되는 모양이다
. 연신 괜찮다며 옥자를 안심시킨 정우는 편한 운동복바지와 두터운 긴팔티를 챙겼고 옥자는 언능 밥을 지어야 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는 저녁7시가 조금 넘어야 집에 도착을 한다고 했으니 정우는 아빠를 기다리지 않고 6시반에 엄마가 해준 저녁밥을 먹고 소개소를 가려고 문을 나섰다. 밖에까지 따라 나온 엄마는 정우에게 힘들면 사장이 뭐라해도 화장실에 자주 가서 조금씩이라도 쉬라고, 추우니까 점퍼 벗지 말고 일하라고, 힘든 일 못해봤으니 너무 무리하게 하지말라고, 아직 어리니까 무거운거 너무 열심히 들지말라고 나중에 나이들면 뼈아파 고생한다면서 잔소리아닌 잔소리를 하신다.

그런 엄마의 긴긴 잔소리에도 정우는 그저 네네네 로 대답할 뿐이다.

소개소에 도착하자 아저씨 아줌마들이 많이 계신다. 정우가 들어서자 오전에 봤던 사무실아줌마가 정우한테 소파에 앉아 있는 한 아저씨를 가르키며 저분 따라 가면 된다고 알려준다.

저녁7, 남자 6명이 그 아저씨랑 같이 회색봉고차에 앉아 한시간을 달려 한 공장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커다란 박스들이 가득 쌓여있는 공장안에 들어가보니 기계들이 윙윙 소리내며 돌아가고 있었고 기계앞에 줄을 지어 서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얼핏 보니 기계앞에서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이 여자들이 였다. 여기서 뭘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2층으로 따라 올라갔다.기계옆에 돌돌 감겨져 놓인 원단을 박스에 차곡차곡 넣고 박스에 담아 차에 싣는 일이 라고 한다.

2명씩 한팀이 일을 나눠서 한다. 정우는 박스에 원단을 담는 일을 하라고 한다. 박스 나르는 일보다는 쉬울 것 같았다. ~돌돌 말려있는 원단을 번쩍 들었는데 이건 천쪼가리가 아니라 돌덩이였다.생각보다 무거웠다. 쉬지않고 2시간을 하니 허리가 아프다. 잠간 밖에 담배타임을 가졌다. 아저씨들이 너도 나도 생각보다 힘들다고 한다. 그렇게 밤새며 담고 나르고를 반복하니 졸리지도 않는다. 춥지도 않다. 박스 나르는 사람들 템포에 맞추려면 부지런히 담고 포장해야한다. 한번씩 허리를 펴고 서기도 한다. 태여나서 처음 이런 중노동을 밤패며 해보니 생각보다 힘든걸...


중학교 때 엄마를 따라 논밭에 가을걷이 하러 따라가보고 봄에 콩밭에 기음 매러 따라도 가보고 했었지만 그 때는 어려서 동생이랑 반은 장난치며 일했으니 정우가 해본 밭일은 일도 아니였다
.

아침8시 드디어 일끝나고 녹초가 되여 용역봉고차에 앉아 집으로 돌아 간다. 집에 들어서니 엄마가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신다. 집에 거의 도착한다고 전화를 했더니 이렇게 시간맞춰 밥상까지 챙겨주신다. 맛있게 아침밥을 먹고 정우는 그 자리에 뻗어버렸다.


쿨쿨쿨
~ 정신없이 잠자고 일어나니 오후 1시반이 넘었다. 아침 6시에 일하러 가신 아빠랑은 하루 24시간을 넘어 지금 얼굴을 못봤다. 일어나서 씻고 TV앞에 앉았는데 팔근육이 아프고 몸이 종아리근육이 땅땅해졌다. 짧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팔을 움직이고 허리를 돌리니 옆에서 보고 있던 옥자가 놀래서 묻는다.


"
많이 아프니? 파스 붙여줄까?"

"괜찮슴다. 하루 일하고 무슨"

"안되겠다. 붙이자"

서랍에서 아빠가 쓰는 파스를 꺼내 기어코 정우를 끌어당겨서는 종아리에 한장, 어깨에 한장. 목뒤에 한장을 붙여주신다. 싫다는 말을 못하고 정우는 얌전히 파스를 붙이고 자리에 누웠다. 한참 지나니 파스를 붙인 곳이 시원하다.효과를 보는 건가? 그나저나 갑자기 일해서 놀라고 뭉친 근육은 좀 더 움직여서 풀어야 하는데 오늘 저녁에도 전화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내일 우리 공사현장에 나가보겠니?" 저녁밥상을 물리고 아빠가 정우에게 물어본다.

"등록증없어도 됩니까?"

"소장한테 얘기했더니 며칠 나와 일해도 된다는구나"

"예 그럼 내일 가겠습니다"

"밤일 하는 것보다는 낫지 싶다"

""

"며칠 쉬여라. 어제 그렇게 밤새고 갑자기 일해서 팔다리 다 아플텐데..."

옥자는 밤새고 들어온 아들이 아깝고 불쌍해 보여 며칠 더 쉬게 하고 싶은 마음에 부자지간의 대화중에 설거지를 하다 말고 끼어들었다.

"걱정마쇼. 엄마두 참~자고 일어나면 힘이 펄펄 남다. 난 젊었재 하하"

"이거바라 ㅉㅉ평생 끼고 살겠소? 며느리 들어오면 퍽두 좋아하겠다. 애들을 언제까지 손끝에서 키우겠소?ㅉㅉ 일하다보면 힘들고 그렇지 아니면 제 나가서 대신 일할게"

엄마의 걱정을 날려버리려고 정우는 크게 웃어 보였지만 아빠의 나무람에 엄마는 기분이 안좋으신지 휙~돌아져 싱크대를 마주하고 쟁그랑쟁그랑 그릇부딪히는 소리 심하게 내면서 설거지를 마저 하고 계신다.

아침 일찍 아빠따라 건설현장에 도착했다.일은 서툴고 생각처럼 몸은 잘 안 따라 주고 그런 정우의 마음을 아는지 영수는 묵묵히 정우의 몫을 도와준다. 하루종일 부지런히 일하느라고 했는데 일은 거의 영수가 다 한것같은 마음이 들었다. 정우는 앞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영수의 뒤를 도구가방을 둘러메고 천천히 뒤따른다.비오거나 눈오거나 그런 날 빼고는 매일 현장으로 일나가시는 아빠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을지 딱 하루 아빠따라 현장에 따라가서 직접 일하는 모습을 보고 그 때야 제대로 알게 되였다.

고맙지만 고맙다는 말이 입밖으로 안나온다. 미안하지만 미안하다는 말도 입밖으로 선뜻 나오지를 않는다. 그저 마음속으로 고마워하고 미안해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집 부자지간도 다 이럴까?

일주일을 건설현장에 다니던 정우는 매일 아들 챙기느라 일 두배로 하는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친구랑 다른 곳으로 같이 일하러 다니기로 했다고 말하고 소개소를 통해 주간일을 할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다.

주간일은 졸리지는 않지만 피곤은 덜 하지만 빡세긴 하다. 한 공장에 며칠씩 가서 일할 때도 있고 매일 다른 곳으로 가서 일할 때도 있고 간혹 고속도로에 가서 일할 때도 있고 먼지 펄펄 날리는 철거현장에 나가 일할 때도 있고 공원에 가서 땅 파고 나무를 심는 일을 할 때도 있다.용역일거리는 참 다양하다. 별의별 일들을 많이 접해 보는 것 같다.

그 사이 옥자도 용역을 통해 대부도음식점으로 식당일을 매일 나갔다. 하루 버는 돈은 적고 일은 힘들고 그렇지만 열심히 다녔다. 하루 4만원씩 받으면서 아침8시에 갔다가 저녁 10시넘어 집에 들어온다. 세식구는 그렇게 천천히 돈버는 전투에 참여하게 되였다.

주말에 온다고 하던 홍매는 2주뒤 금요일 저녁 고속버스를 타고 안산으로 왔다.

주말에도 일나가야 된다고 하는 영수를 겨우 설득시키고 다음날 홍매는 정우네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 있는 L놀이공원을 찾았다. 연길공원은 비교도 안될만큼 잘만들어진 놀이공원이였다. 어릴 때는 연길공원 한번 가는 것도 벼르고 별러 몇년에 한번 어쩌다 가서 붕붕차타고 기차타고 인공폭포앞 가짜 범옆에서 독사진도 찍고 가족사진도 찍고 신났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영화에서만 봤던 짜릿한 자이로드롭,바이킹,아틀란티스,자이로스윙. 제일 신난건 정우다. 홍매와 정우는 놀이기구 타느라 정신이 없다. 옥자와 영수는 바이킹과 아트란티스를 타고는 다른건 죽어도 안타겠다며 바지에 오줌을 쌀것같다면서 막 기겁을 한다. 일당하면서 힘들고 지치고 스트레스 받았던걸 누나덕분에 확 날린것같아서 정우는 너무 즐겁고 좋았다.

어느덧 3주가 지나고 드디어 외국인등록증을 받아 쥐고 정우는 다시 소개소를 찾아가 일당이 아닌 회사일을 찾았다. 근데 F-4비자는 회사에서 잘 안쓴다고 하면서 당장은 일자리 찾기 힘들것같다고 한다. 일당을 다니면서 적당한 회사가 나오면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어쩔수 없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정우는 한달 넘게 일당을 열심히 다녔다.

옥자도 비자를 받아 쥐고 소개소를 찾아 갔지만 마땅히 할일이 없었다. 50살을 넘기니 회사에 취직하긴 힘들고 할수 있는 일이 음식점일이 였다. 어차피 새벽에 일나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남편과 아들 밥걱정도 되고 빨래도 해야되고 집청소도 해야되고 남편의 정기검진날에 같이 병원도 가줘야하고 옥자는 선뜻 다른 곳으로 남의 집 가정부로도 들어갈수 없었다. 파출부와 식당, 공장을 번갈아 가며 일 있는 곳을 가리지 않고 매일 일당을 뛰였다.

그 사이 정우가 시화공단에 위치한 자그마한 핸드폰부품회사에 취직을 했고 집에서 출퇴근을 하게 되였다. 옥자는 그런 아들이 굶고 다닐까봐 새벽같이 일어나 밥해서 먹여 출근시키고 옷챙겨입고 일하러 나가고 퇴근해서 집에 와서 밀린 빨래 하고 밑반찬몇가지 해서 놓고 잠자리에 들면 12시가 넘어 가고 또 새벽같이 일어나 밥하고 일나가고. 평일에는 공장에 나가 일하고 주말에는 대부도나 제부도 식당에 일나가고 쉬는 날 따로 없이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간다.

"미련하게 일하지마. 몸 챙기면서 일해.힘들면 쉬고 다 큰 아들이 밥 챙겨 못먹을가봐? 일주일에 하루는 쉬고 좀 그래. 넌 뭐 몸이 쇠로 만들었니? 아니면 먹고 자는 곳으로 가서 일하고 주말에 쉴때 집에 와서 반찬 빨래를 하면 되지. 돈벌러 외국까지 나와서 꼭 가족이 같이 모여서 알콩달콩 중국에 있을 때처럼 살아야돼? 눈뜨면 일나가고 해떨어지면 집에 오고. 밥은 거의 직장에서 먹고 집에서는 하루 한끼 먹으나 마나 한데. 주말에 모여서 쉬면서 맛있는것도 해먹고 놀러도 다니고 그러고 살아야지. 맨날 그게 뭐냐."

정우의 이모는 고생을 찾아 하는 동생 옥자가 못 마땅한 듯 앞에 앉혀놓고 한마디 한다.

"알았소,알았소." 대답은 늘 한결같지만 엄마의 그 고집은 아무도 꺽지를 못했다.

결국 정우는 월급도 적고 토일 다 쉬는 그 회사에서 나와 다른 회사를 찾았다. 다시 찾은 휴대폰렌즈조립회사는 주야간 2교대를 하면서 기숙사에서 지내기로 했다. 처음 다니던 회사는 월급이 한달에 얼마 되지도 않거니와 엄마가 매일 아침 밥챙겨주느라 일찍 일어나고 늦게 주무시고 조금이나마 엄마가 덜 피곤하게 해드리고 싶어서였다.

아빠는 3개월에 한번씩 정기검진을 받으면서 약 챙겨먹으며 매일 일하러 다니시고 엄마도 꿋꿋이 그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않고 고집을 꺽지 않고 매일 공장,식당을 번갈아가며 쉬지않고 일하러 다니고 정우도 반년동안 그 회사에 적응을 해가며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한국에 온지 어느덧 일년이 흘렀다.

아빠가 번돈으로 정희의 학비와 생활비가 나가고 엄마가 버는 돈으로 생활비와 아빠 병원비가 나간다. 그리고 정우가 버는 돈은 정우의 휴대폰요금과 정우의 용돈빼고 전부 적금으로 은행에 저금하고 있었다.

"엄마~ㅜㅜ 살 너무 빠졌어. 내가 졸업하고 돈많이 벌어서 용돈 많이 줄게. 그때는 집에서 놀면서 편하게 살게 해주께"

겨울방학에 한국으로 놀러왔던 정희가 집으로 가는 공항에서 두 눈에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엄마 목을 끌어안고 울고 있다.

"이 가스나야. 엄마랑 떨어져 있어보니까 엄마 소중한게 알리든? 들어가 언능"

"오빠~노트북 땡큐! 나중에 오빠 결혼할 때 내가 차 한대 사줄께.기다려!"

"허이구~그 땐 내가 할아버지 되지않을가 싶은데..."

". 싫음 말어. 헤헤헤~근데 내 오빠 진짜 최고!"


학교다닐 때 갖고 싶은 물건이 많았지만 집형편을 잘 아니까 소학생들도 흔하게 들고 다니는 휴대폰도 사달라는 말 못했던 정우였다
. 휴대폰은 엄마가 너도 휴대폰 하나 만들어야지 하면서 알아서 사주셨었다.그 때 너무 좋아서 잠도 안와 밤새 휴대폰을 만졌던 생각이 나서 동생정희도 남들이 갖고 다니는걸 부러워할가봐 큰 마음 먹고 최신형 울트라노트북을 사줬다.

"파파,워 쩌우라(아빠.갈게요)~용돈 아껴서 쓸게용 약 잘 챙겨 드시고 몸조심하쇼"

누가 아빠딸 아니랄가봐 정희는 아빠팔짱을 끼고 딱 붙어서 애교를 부린다. 그런 정희가 이쁜 영수는 등을 톡톡 두드려주다가 빨리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먹고 싶은거 팍팍 사먹고 돈 아끼지마라. 우리 딸 굶으면 안되니까.살은 안빼도 된다."

울컥했는지 내 손에서 가방을 휙 나꿔채더니 출국심사하는 곳으로 씽씽 걸어간다. 오른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는걸 보니 눈물을 훔치고 있는듯 싶었다. 티켓과 여권 검사를 마치고 뒤도 안 돌아본 채 오른손을 들어 몇번 흔들어 보이고는 그대로 쑥 출국심사하는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ㅉㅉ 으이구 매정한 계집애!"

뒤 한번 안돌아봐주는 정희가 야속한지 엄마는 흔들던 손을 내리면서 한마디 하시고는 계속 그 쪽을 봐도 쓸데 없다는 식으로 아빠 팔을 잡아 당기며 어서 가자는 제스처를 취하신다. 아빠와 엄마가 나란히 공항문을 나선다. 부모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우는 정희가 몇번이고 하던 그 말이 다시 떠오른다.

맞네. 정희 말이 맞네.그러고 보니 정희 말이 확실히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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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03.♡.233
애심88 (♡.188.♡.113) - 2015/01/21 05:42:54

한국가서 고생만 하시다가 병치료도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서,보는내내 울엇답니다.

한가족이 참 화목하고 다정하네요.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잇습니다.

네 과거는 미약하엿지만,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심히 창대한 한가족을 일구어,잘사는 날을 맞이하세요.

잘 보앗습니다.

감사하고,추천은 필수구요.

레드체리 (♡.203.♡.233) - 2015/02/03 18:38:08

애심님 2회에도 어김없이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해야겠어요.
저도 님도 모두에게 좋은 날만 있었으면 좋겠어요.고맙습니다.

애심88 (♡.188.♡.123) - 2015/02/03 23:27:55

고맙습니다.

김유미 (♡.48.♡.132) - 2015/01/24 14:34:12

부지런하시네요~다들 열심히 사는모습보기좋습니다~추천요~

레드체리 (♡.203.♡.233) - 2015/02/03 18:39:31

다들 저렇게 살고 계실듯 싶습니다. 아니 이보다 더 힘들게 열심히 사시는 분들도 많을거에요.김유미님도 행복하게 사시길 바래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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