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를 찾아서(에필로그)그후

I판도라I | 2014.03.13 15:56:46 댓글: 18 조회: 1726 추천: 9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2093739

에필로그

 

칠흑같이 어두운 밤,어느 대학 캠퍼스안으로 보이는 운동장에서 하얀 원피스차림의 한 여학생이 비틀거리며 걷고있었다.그뒤를 같은 나이또래로 되어보이는 여학생이 바싹 뒤따르며 푸념을 하고있었다.

 

한정아,너 그만 안들어갈래?술도 못마시는 애가 항상 이늘만 되면 이러더라?”

경이야...오늘이 나한텐 제일 특별한 날인데...이정도도 못봐주겠냐.”

 

하얀 원피스차림의 여학생은 몇걸음 더 걷더니 운동장 한복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달빛이 그녀의 몸위에 부서져 하얀 실루엣을 그려내고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투명한 눈물 한줄기가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오늘만...딱 오늘 하루만 모든걸 다 잊고 행복해지고 싶은데...난 그정도도 욕심인거야?”

오늘이 아니라 내일,모레,영원히 행복하게 살아도 욕심이 아니야.넌 행복할 자격이 있어.”

 

뒤따라온 여학생이 하는 말에도 하얀 원피스차림의 여학생은 미동하고 앉아있었다.그러던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서글프게 내려졌다.

 

나란 사람은...행복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우리 외할머니 말에 의하면...같이 차에 앉았다는데 왜 하필 나야?차라리 같이 갔을것을.내가 놀러 가자고 억지 부리지만 않았다면 그런 일도 안생겼잖아...”

또 바보같은 소릴.그냥 사고였어.네 탓이 아니야.”

외할머니 집에 있던 그 다롱이도,내가 먹이를 주고 창문살만 제대로 내려줬다면 고양이한테 안잡혀먹히웠을거야.”

어쭈...이제는 하다하다 한낱 새한테까지 자책하는거야?”

생명이야...생명은,아름다운거야...그 누구도 그 아름다움을 결속짓게 했다면 대가를 치뤄야 하거든.”

그래서 이렇게 자학을 하고있니?너 상담실은 제대로 다니고있는거 맞어?”

아무런 치료효과도 보이지 않는 나때문에 고통받고있는 상담선생님 시간을 줄여드리려고...안다닌지 꽤 됐어.”

중증이다...진짜.”

 

뒤에 서있던 여학생은 혀를 차면서 하얀 원피스차림의 여학생을 부축해 일으켰다.

 

이젠 들어가자.내일 귀신 봤다는 소문 돌기전에.너도 참 이상하다.생일에 하얀 원피스는 왜 꼭 입냐.”

넌 아무것도 몰라...이건...드레스야.울 엄마가 사준 드레스라고...원피스처럼 보이겠지만...드레스였어.”

그래그래...알았어.”

너 그거 알어?이거 어릴때는 발목까지 오는 드레스였는데...지금 내가 커버리는바람에 원피스처럼 보이는거야.그래도 드레스는 드레스야.무시하지 마.”

그래...이미 열몇번은 들은 얘기야.빨리 들어가자.”

 

어둠속에서 두 여학생의 모습이 멀어져갔다.하지만 하얀 원피스차림인 여학생의 중얼거림은 한동안 밤공기속에서 흩어질줄 몰랐다.

 

니가 뭘 알아...난 말야...앞으로 내게 하얀 드레스를 선물해주는 사람이 있다면,그 사람을 내 생의 반쪽으로 인정할거야.울 엄마처럼...내가 무엇을,어떤것을 좋아하는지 완벽하게 아는 사람이니까...”

 

......

 

어느 한적한 오피스텔안.

 

꽤 지친듯한 표정을 한 남자가 거실에 들어서더니 여행가방을 문뒤에 놓고 방으로 들어갔다.잠시후 현관문이 열리며 젊은 남자와 애티를 벗지 못한 여자가 거실에 들어섰다.여자는 품에 서류를 한가득 안고있었고 젊은 남자는 잠시 거실에 앉아있다가 밖으로 나갔다.뒤이어 서류를 작성하던 여자가 테이블위에 엎드려 잠들자,닫혔던 방문이 열리며 방안의 남자가 아연한 기색으로 여자가 있는쪽을 보았다.

 

뭐지...내가 오늘 도착한다는걸 몰랐나.”

 

남자의 발길이 테이블쪽을 향한다.그리고 잠깐 여자를 내려다보던 남자의 눈빛이 묘하게 흔들렸다.드디어 여자의 얼굴에서 시선을 뗀 남자가 여자가 마주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유심히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남자는 얼핏 입꼬리를 올리며 여자의 옆에 의자를 당겨놓고 앉아 소매를 걷는다.

 

일에선 아직 초보군.”

 

잠시후 프린트한 서류들을 스테이플러로 고정을 시킨 남자는 여자가 몸을 움찔하자 긴장한듯 여자를 보았다.하지만 여자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남자의 입꼬리가 또 한번 올라갔다.그는 잠시 뭔가 생각하다가 방안에 들어가 겉옷을 가지고 나와 잠든 여자의 어깨에 걸쳐주었다.여자가 몸을 뒤척였다.

 

고마워요.부장님...”

 

남자는 몸이 경직되었다.그렇게 한참 서있던 남자의 눈빛이 또 한번 흔들렸다.그 한마디를 끝으로 여자는 다시 잠에 빠져든듯 했고,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몇달후.

 

같은 장소인 거실에서 두 젊은 남자가 가볍게 와인잔을 부딪치고 있었다.준수하고 반듯해보이는 남자가 얼음을 깍아놓은듯 냉정하고 어딘가 까칠해보이는 남자에게 사람좋은 친근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와인은 떫어야 제맛이라고 내가 언젠가 말했을텐데.”

보통 레드와인 애호가는 더 부유하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는데 그 말이 틀린데 없군.”

 

냉정한 남자가 피씩 웃자 반듯한 남자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렇다고 화이트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현실적이고 수줍음 많다는 연구결과는 동현이 너한텐 안맞는거 같은데.”

그렇게 정색을 할 필요까지야.열정적이며 성공을 꿈꾸는 너한테는 레드와인이 어울린다는 얘기야.”

 

냉정한 남자는 와인을 한모금 마신후 웃는듯 마는듯한 표정으로 반듯한 남자를 보았다.

 

전에 데리고 왔던 친구는 레드와인과야?”

누구?혹시 한정아씨 그러는거야?”

한정아라...그래,그 친구.”

우리 회사 신입 마케터.일에 대한 열정이 좋고 뭐나 최선을 다하는 타입인데...그 아이는 레드와인과가 아니라 파랑새야.”

파랑새...?”

...자신의 희망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부단히 새출발하는,도전적이고 창의적인 모습이 파랑새랑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

내가 아는 파랑새의 의미는,장래의 희망만을 꿈꾸며 현실에 열정을 가지지 못하는 외로운 증후군인 경우가 더 많던데.”

그런 아이 같지 않아.그날 너도 봤겠지만...천하에 무심한 너한테까지 인상을 남길 정도의 사람이라면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을거야.”

네가 누군가를 내 집에까지 데리고 온적은 처음이기에 묻는거야.내게 남겼던 인상은 단지 그뿐이야.”

 

냉정한 남자가 언뜻 자조어린 표정을 지었다.반듯한 남자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모든 사람에 대한 너의 그런 비판적인 태도가 네 앞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길 바란다.친구.”

나같은 사람이 옆에 있어야 너의 인간성이 두드러져 보일게 아닌가.”

 

두 남자는 서로를 마주보다가 피씩 웃음을 터뜨리며 잔을 마주쳤다.그리고 반듯한 남자가 말했다.

 

네가 하도 여행을 좋아해서 나도 요즘은 그 아이랑 이곳저곳 다녀보는 중인데 나쁘지 않더라구.”

뭐야?벌써 여행까지 같이 다니는 사이가 됐어?”

 

냉정한 남자가 살짝 놀라운 표정으로 묻자,반듯한 남자는 입가 깊숙히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는 말야,보라색 튤립을 좋아하고,대추맛 우유를 찾아먹어.참치초밥을 좋아하고 술은 입에 대지도 못하면서 생일날엔 꼭 취해.언젠가 회식이 마침 생일이었는데 그 아이가 술에 취해서 하는 얘기가 가관이었어.”

머라고 했는데.”

선물로 하얀 드레스를 받고싶다고 하더라구.그게 어릴때부터 꿈이었대.제일 기다려왔던 선물이고.”

설마 그런 식으로 너한테 프로포즈 하는건 아니지?”

 

냉정한 남자가 씩 웃자 반듯한 남자도 따라 웃었다.

 

생각보다 유치한 친구였어.또 황산 광명정에 자물쇠를 걸자고 하더라구.그러면 소원이 이뤄진대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언젠간 넌 같이 갈거잖아.”

니가 다녀와서 그렇게도 절찬했던 곳인데 안가면 안되지.”

 

반듯한 남자의 말에 냉정한 남자는 아무말 없이 웃어보였고 반듯한 남자는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광명정은 자물쇠보단,일출이 그렇게도 장관이라며?”

그래...장관이었지.눈물이 나올만큼.”

 

냉정한 남자가 약간은 허무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리고는 창문밖에 쏟아지는 별무리를 향해 낮게 되뇌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슬픔과 고통을 다 잊을만큼.”

 

......

 

진흑색 원목테이블과 검은 색상의 소파가 어우러져 원래도 어두운 분위기를 한결 무겁게 연출하고 있었다.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는 나이 지긋해보이는 중년남자의 얼굴에는 냉혹한 기색이 내비쳤고,그를 마주하고 앉은 젊은 남자의 얼굴은 참담하기만 했다.긴 침묵이 흐른 뒤 젊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상무님...”

상무라니...자넨 나를 전무라고 불러야 하네.퀸즈에 자네를 들였을때 내가 뭐라고 말했는가.”

“...”

나와의 인연은 비밀로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일도 있어서는 안된다 하지 않았는가.”

 

중년남자의 낮은 호통소리에 젊은 남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갈순 없습니다.게다가 장례식이라니요?아직 전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고로 추정된다고 여행사에서 일체 보험비를 떠안기로 했네.자넨 아직도 희망을 가지고있을셈인가.”

제 눈으로 확인하기전엔 안됩니다.그리고 오늘 제가 받은 문자도 석연치 않습니다.핸드폰이 혹시 악인의 손에 들어가서 그런 문자를 보내왔다 쳐도 저는 끝까지 추적하여 그 행방을 알고싶습니다.”

그 아인 내가 자기를 농락했다 해서 가출을 한 아이네.결별선언을 한다 해서 이상할것 없는 아일세.”

그러니 애초에...왜 그러셨습니까.꼭두각시로는 저 하나면 족하지 않습니까.그리고 이젠 퀸즈 전무자리면 충분하지 않습니까.이젠 그만 화위에서 몸을 빼십시오.”

손안에 다 들어온 권력을 이렇게 포기하라니?난 그 아이를 화위에,자네를 퀸즈에 들여서 그 어느 하나도 놓칠 생각이 없네.그리고 화위에서의 내 영향력 때문에 퀸즈 전무의 자리가 온전하다는걸 자네는 왜 모르는가.”

제가 힘쓰겠습니다.제가 최선을 다하여 퀸즈에서 전무님을 보필하겠습니다.그러니 제발...”

자네야말로 제발...더이상 나를 핍박하지 말게.”

 

문득 한손으로 얼굴을 가린 중년남자의 행동에 젊은 남자는 뜨아한 표정을 지었다.잠시후 중년남자의 손가락 사이로 굵은 눈물이 배어나왔다.그것을 보자 젊은 남자는 어쩔바를 몰라하며 소리를 낮추었다.

 

전무님...”

나라고 자식의 생사가 걱정되지 않는줄 아는가.나라고 아들의 결별문자에 절망하지 않은줄 아는가.”

“...”

하지만 내겐 해야 할 일이 있네.여기서 내가 할 일들을 모두 끝내면,그 아이가 정말로 잘못되었다면...언젠가는 이 늙은 한몸을 황산에 던져 자식을 찾아가겠네.그 전에는 자네가 날 무정하다고 해도 좋고,잔인하다고 해도 좋네.”

“...”

내가 손을 놓아버리면,화위와 퀸즈에서 날 지지하던 임원들은 몽땅 나앉게 될것이고,거기에 딸린 가족과 지인들이 얼마인지 자네는 아는가.십몇년동안 나 하나 바라보고 심혈을 기울인 사람들일세.”

“...”

동현이 자네...그러니 이젠 그 아이 몫까지 대신해서 나를 도와줘야 하네.자네가 그 아이를 얼마나 더 찾아다니던지 나는 막지 않겠네.다만 이 장례식만은 계획대로 추진해야겠네.이건 그 아이에겐 미안한 일이지만,그렇지 않으면 나를 주목하고있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 될테니 말일세.”

 

방문을 나선 젊은 남자의 안색이 창백했다.그는 맥없이 문옆에 기대어 휴드폰을 꺼냈다.그리고는 전송받은지 얼마 안되어보이는 몇줄의 문자를 재확인했다.

 

-니 말대로 광명정 일출은 장엄했어.눈물이 날만큼.그러나 슬픔과 고통을 잊을만큼은 아니었다.

-너 어디야.사람 미치게 하지 말고 연락 좀 받아...!!!

-아버지를,그리고 그 아이를 부탁해.

 

남자는 문자가 전송된 번호로 몇십번째 전화를 걸었으나 역시나 사용정지된 번호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휴대폰을 쥔 남자의 손이 맥없이 아래로 내려졌다.그리고 굳게 감은 남자의 눈사이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독한놈...마지막까지 너를 버린 사람들을 내게 부탁하다니...널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냐 대체.”

 

남자는 잠시 고개를 들어 눈물을 거두었다.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누구에게라고 할것 없이 중얼거렸다.

 

전무님은 니가 부탁하지 않더라도 내가 알아서 할께.하지만 그 아이는 어림도 없어.”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한번 들여다보고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것을 깊숙히 호주머니에 넣었다.

 

한정아라고 했지.”

 

......

 

자그마한 원룸.

 

술에 잔뜩 취한 여자를 등에 업은 냉정한 젊은 남자가 집안으로 들어섰다.그리고는 흐트러진 여자를 간신히 침대에 눕힌후 남자는 잠시 침대옆에서 여자를 내려다 보았다.

 

사람에 대해 이처럼 무방비 상태라니...아무에게나 자기 집 주소도 다 말할만큼.”

 

남자는 쓴웃음을 지어보인후 언뜻 차겁게 굳은 표정을 얼굴에 떠올렸다.

 

그 아이에게도 이랬겠지...이처럼 순진한 천사의 얼굴로 다가가서는...그 아이가 제일 힘든 시기에 가차없이 버려버린...”

 

냉혹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던 남자가 잠시 멈칫했다.그런 남자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화장대위의 색바랜 사진 한장이 눈에 띄였다.남자는 화장대위로 다가가서 그것을 집어들었다.남자의 눈빛이 사뭇 떨렸다.

 

이걸...왜 남겨뒀지.”

 

사진속의 남자와 여자는 등산코스에서 다정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사진을 들고있는 남자의 손이 떨렸다.그리고 다시 잠든 여자의 얼굴을 돌아다보는 그의 눈빛에 형언할수 없는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한정아,당신 대체 뭐야.”

 

......

 

서류 한묶음이 산산히 흩어져 젊은 남자의 발치에 떨어졌다.남자는 아연한 시선으로 발밑의 서류들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7년 세월이 남긴 주름살 깊은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남자를 건너다 본다.

 

호랑이를 굴에 끌어들이다니...니가 제정신이야?”

죄송합니다...”

 

남자가 깊숙히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언젠가는 이 날이 있으리라고 짐작한듯 남자의 기색은 침착하고 태연했다.그리고 그것이 상대방을 더 화나게 하는듯 했다.화를 내고있는 노인의 주름살이 더 깊어졌다.

 

대체 언제부터야?언제부터 입사했는데?”

입사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 돈이 들어온건 언제였어?”

대략 한달전인걸로 추정됩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인줄 몰랐다고?”

.저는 그 이름을 몰랐습니다.한정아씨 입사때 이력서에도 화위는 빠져있었구요.”

화위와 병합되자마자 사직했으니 당연히 화위는 쓰지 않았겠지.그렇다고 네가 그 아이를 몰라봐?”

전에도 저는 만난적이 없었으니까요.”

흐음...”

 

노인이 풀썩 의자에 주저않는다.뒤이어 머리를 젖히고 허공을 쳐다보던 노인이 드디어 뭔가 생각난듯 날카로운 눈길로 남자를 응시했다.그리고는 카드 한장을 꺼내어 남자의 앞에 던져놓았다.

 

일단은 저 돈은 돌려보내.”

.”

 

남자가 예상했다는듯 고개를 숙여보였다.그러나 노인의 다음 말에서 남자는 놀란듯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상가쪽은 동현이 니가 인수해.”

전무님,그건...”

.넌 내가 그 아이가 누군줄 알고도 곁에 둘수 있다고 생각했나.”

아닙니다.하지만 상가쪽 일은 그래도 다시 재고하시는게...”

내 아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내 곁에,아니 이 회사에 그대로 둘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도 이 일에는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인테리어쪽 담당자를 설득하지 못하면 책임을 지겠다고 했네.그거 하나면 충분하지 않는가.”

 

남자는 시선을 내리고 입술을 사려물었다.그러던 그가 뭔가 결심이라도 내린듯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전무님,한정아씨 이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노인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그런 노인의 의문 가득한 시선을 마주한채,남자는 애써 담담한 어조로 노인을 향해 말했다.

 

제가 방법을 대어,그 사람을 대처하겠습니다.”

어떻게.”

회사를 떠나게 하는건 너무 쉬운 보복이 아닙니까.우리가 괴로웠던만큼,그대로 되돌려줘야지요.”

...”

지금처럼 아무것도 아닌 자리를 잃는것은 고통스럽지 않습니다.어느정도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모든걸 잃게 해야 제대로 된 복수가 되는겁니다.”

자넬 믿어도 되겠는가.”

 

노인의 의심섞인 말투에 남자는 의연한 기색으로 머리를 끄덕였다.노인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았네.그리고 이제 곧 열릴 이사회에는 주대표의 대표이사 해임안을 올릴 예정인데,자넨 준비 잘하고있는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노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노인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보인후 문밖으로 물러나온 그의 입에서 알릴락말락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나왔다.

 

한정아,넌 대체 나한테 뭐냐.뭐가 되어서 이렇게...”

 

......

 

어스름한 달빛이 비쳐드는 길옆 자그마한 공지 벤취.

 

한 남자가 벤취에 그린듯 앉아서 한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남자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 한 여자의 가녀린 뒷모습이 언뜰거렸다.그리고 그 여자의 모습이 사라지자 단정한 모습의 젊은 남자가 조용히 남자곁으로 다가왔다.남자는 힐끗 고개를 들었으나 이내 무표정을 회복하고 다시 시선을 내렸다.

 

여기 계셨군요.”

 

단정한 남자는 남자가 권하지도 않았는데 그의 곁에 앉았다.그리고는 여자가 사라진쪽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궁금했는데 이제야 확신할수 있겠네요.”

“...”

정부장님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이유,바로 저사람 때문이죠?”

단지 그걸 확인하러 바쁜 걸음을 하셨습니까.”

 

남자의 어조가 사뭇 까칠하다.단정한 남자는 개의치 않는다는듯 피씩 미소를 지어보였다.

 

난 당신한테 선전포고를 하러 왔습니다.”

“...”

지금까진 대표이사 자리를 다투는 경쟁이었다면,앞으론 저 사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 될겁니다.”

“...”

절대 양보하지 마십시오.저 사람을 위해 이번에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것도 압니다.전무님 화 많이 나셨겠죠.”

당신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남자의 태도는 여전히 까칠했지만 어조는 살짝 누그러 들었다.

 

난 주영진씨와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왜요.내가 당신 적수가 되지 않을것 같아서요?”

 

단정한 남자의 얼굴에 언뜻 차거운 기색이 스쳤다.그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냉랭하게 들려왔다.

 

솔직히 나도 당신과 싸울 생각이 없었습니다.당신이란 사람은 하도 얼음같고 냉혈이어서 본능적으로 멀리하고싶은 사람이었으니까요.당신도 알겠죠.회사에 들어와서부터 난 줄곧 당신을 싫어했습니다.”

“...”

하지만 이번 일로 난 생각을 달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당신같은 사람도 그 누구를 위해 자신의 목적을 포기할줄 아는 모습이 있다는게 인간적으로 보였으니까요.당신이 위한 그 사람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일었구요.당신이 위하는 그 사람만 쟁취한다면,당신도 코 꿴 송아지처럼 끌려오지 않겠습니까.”

저한테 패배를 인정받으려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겠다는 말씀입니까.”

 

남자의 태도가 일순간 냉랭하게 변했다.단정한 남자는 피씩 코웃음을 쳤다.

 

당신과 전무님이 잘 써먹던 수법이 아닌가요.왜요?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가요.”

 

남자가 고개를 떨구었다.잠시 침묵을 지키고있던 남자가 다시 시선을 들어 앞을 보았다.

 

저 사람은,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 편을 들것입니다.굳이 그런 식으로 쟁취하지 않아두요...”

그건 당신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거구요.저번 홈쇼핑사건때 이진희씨 모델로 쓰라는 제안은 당신이 알려준것이 아닙니까.난 그걸 전달한것에 불과했구요.내가 한정아씨에게 신뢰를 얻은건 그 일때문이라는것을 나도 모르진 않습니다.”

“...”

이젠 당신 힘을 빌지 않은,온전한 내 힘으로 저 사람을 내편으로 만들것입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내가 무슨 방법으로 저 사람의 신뢰를 얻을지.”

글쎄요.”

 

남자는 무덤덤한 기색으로 대꾸했다.하지만 그의 눈에서 작게 스쳐지나는 불안감을 단정한 남자는 놓치지 않으려는듯 말했다.

 

바로 진실을 얘기해주는것입니다.”

주영진씨 신분을 저사람에게 얘기하려는건가요.”

 

남자의 말에 단정한 남자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건 지금 시점에선 당연히 얘기해야 하는 부분이구요.그뿐만 아니라 난 내가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것을 저 사람에게 알려주려고 왔어요.”

“...”

 

남자의 눈빛이 흔들렸다.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은채 그가 단정한 남자를 돌아보았다.

 

또 있습니까.”

그리고...당신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도 저 사람에게 알려주려구요.”

 

이번에는 남자의 표정도 살짝 흔들렸다.단정한 남자는 그제야 남자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저 사람 당신같은 사람에게 다칠수도 있다는걸,그래서 그전에 내가 먼저 다가가서 저 사람 마음을 얻으려구요.”

“...”

당신이 무슨 비밀을 감추고 어떤 이유로 저 사람에게 접근하는지 알수 없지만,분명한건 당신은 저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는거죠.저 사람의 마음은 나도 아직 알수 없어요.하지만 난 저 사람이 다치는걸 이대로 두고만 볼수 없습니다.이것이 바로 내가 정아씨를,그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니까요.”

 

남자가 움찔 벤취에서 일어섰다.그리고 크게 몇걸음 앞으로 내디딘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단정한 남자는 벤취에 미동하고 앉아있었고,남자는 그를 바라보다가 쓸쓸히 입꼬리를 올렸다.

 

만일 한정아가 당신 마음을 받아들인다면,”

 

단정한 남자가 조용히 시선을 들었다.남자는 바람을 맞받아 가벼운 한숨을 내쉰후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내가 퀸즈 물러나도록 하죠.”

 

남자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갔고,그의 뒤모습을 지켜보는 단정한 남자의 얼굴에는 전에없는 단호한 기색이 보였다.

 

......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일식집 단칸방.

 

노인과 남자가 마주해 앉고,젊은 여자 하나가 남자의 곁에 앉아있었다.남자는 애써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게 보였고,노인은 둘의 모습을 번갈아보다가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회장님은 잘 계시는가.”

아버진 항상 그렇죠.매일 여기저기 쑤신다고 하시구요.전무님 절반만큼 정정하셨으면 제가 걱정이 없겠어요.”

 

노인이 건네는 말을 젊은 여자가 웃으면서 받았다.남자는 경직된 자세로 단정히 앉아있었다.

 

동현인 왜 그러고 앉아있나.옆을 좀 챙기지도 않고.”

 

노인이 남자에게 눈짓을 하자,남자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앞에 놓인 청주병을 집어들었다.

 

한잔 받으시겠습니까.”

저야 좋은데 마셔줄 사람이 없네요.전무님은 술 끊으셨잖아요.”

 

여자가 아쉽다는 어조로 말하자,노인이 서둘러 그 말을 받았다.

 

우리 동현이가 같이 마셔줄텐데 뭐가 그리 걱정인가.”

그럼 주세요.제가 따라드리죠.”

 

여자가 남자에게서 술병을 받아들었다.그리고 남자의 잔에 찰찰 흐르게 술을 따라놓았다.그런 여자의 행동을 줄곧 흐뭇하게 바라보던 전무는 술이 한순배 돌자 문득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잠깐 볼일이 있어 이만 가봐야겠네.”

전무님...”

벌써 가시게요.”

 

남자의 만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가 배웅하려는듯 일어섰다.전무는 그대로 앉아있으라고 손을 들어보인후 남자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다.전무가 나가자 여자는 다시 남자의 곁에 앉았고,남자는 그런 여자에게서 멀어지려는듯 몸을 움찔거렸다.

 

동현씨는 상가쪽 일엔 크게 관심이 없나봐요.”

 

여자의 말에 섞인 뉘앙스를 남자는 바로 알아들은듯 했다.잠시 움직이던 몸이 다시 자세를 바로하고 앉자,여자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쪽 젊은 대표님이 아무리 만단의 준비를 갖추었다 해도,상가쪽에서 인테리어 매장 재임대가 어렵다고 하면 어쩔건데요.이번 일에서 그 대표님 아예 손털고 나앉게 저희가 조치를 다해놓으실거에요.”

바로 그 일 말입니다.”

 

남자가 자세를 단정히 하고 여자를 쳐다보았다.드디어 남자의 시선이 닿자 여자의 얼굴이 살짝 도화빛으로 물드는게 보였다.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예의 그 정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회장님께서 공적으로 처리해줍시사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여자가 눈을 깜빡거렸다.남자는 여자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동안 여러모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지만,부디 사적인 감정이 아닌 공적으로 그 일을 처리해주셨으면 합니다.부탁입니다.”

그런데...전무님께서...”

전무님과는 얘기가 다 된 상황입니다.전무님께서 왜 먼저 자리를 뜨셨는지 눈치채지 못하셨습니까.”

전과는 얘기가 틀린데요...왜 그런지 제가 알면 안되는건가요?”

 

여자는 결코 호락호락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남자는 이를 짐작했다는듯 입가에 침착한 미소를 띄웠다.

 

어차피 처음부터 저희가 맡았던 업무입니다.지금 와서 대표님을 궁지에 몰아봤자 본사에서 애초의 책임을 물을지도 모르니 저희까지 같이 궁지에 내몰릴수 있습니다.하여 전무님께서는 상가쪽 업무는 그냥 좋도록 처리하고 본사에서 따로 다른 지시를 내리길 기다리는 중입니다.그동안 협조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정 그렇다면야...”

 

여자는 술잔을 내려놓은후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희 일은 어떻게 되는건가요?저의 아버지와 전무님 뜻을 부장님은 모르시진 않겠죠?”

회장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만,저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고 이룬것도 없습니다.그리고...”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어요.”

 

여자가 재빨리 남자의 말을 막았다.그리고 긴 머리를 쓸어넘기며 그녀가 쓸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동현씨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죄송할것 없어요.시간 끌지 않고 이렇게 바로 말씀해주셔서 고맙네요.우린 인연이 아닌가보죠머.”

 

여자의 석연한 미소가 차분하고 아름다웠다.남자는 그런 여자를 향해 또 한번 깊숙히 고개를 숙였다.

 

......

 

.

 

남자는 묵묵히 고개를 숙인채 노인의 화난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벌건 손자욱이 난 한쪽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 내색도 내지 않고있었다.손을 내릴념도 않고 노인이 이를 갈았다.

 

네가 감히 배신을 때려?”

“...”

또 그아이때문이냐?”

“...”

내 허락도 없이 상가 일을 그렇게 마무리 짓다니?네가 간이 부어도 엄청 부었구나.”

“...”

벙어리가 되었더냐?왜 말을 못해?”

 

노인이 화를 눅잦히지 못하자 남자는 조용히 시선을 들었다.그런 남자의 덤덤한 반응에 노인은 억이 막힌 표정을 지었다.

 

동현이 니가 왜 이렇게 변했냐...뭐가 불만이냐.그 아이를 놔두라는 네 요구에 지금껏 참아왔거늘.”

이젠 그만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뭣이?”

전대표님과의 싸움 말입니다.반평생을 싸워왔는데 이젠 그만할때도 되지 않습니까.”

...”

 

차분한 표정의 남자와는 달리 노인은 입술을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남자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전대표님 지금 많이 편찮으십니다.아직 준비가 채 되지 않았지만 그분은 최선을 다해서 아들을 대표자리로 떠밀었습니다.그리고 지금 퀸즈는 한창 힘을 합쳐야 할 때입니다.대표이사 해임안으로 임원진 전체가 흔들린다면...”

애초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동현이 네가 대표가 되었어야 했어.내가 그렇게 밀어줬는데도 넌...”

저는 제 선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그런데도 대표가 되지 못했다면 이는 하늘이,운명이 저희 편이 아닌거라고 생각합니다.”

듣기 싫다.내가 그런 숙명론을 믿었다면 지금의 강전무가 있을수 없지.”

그래서...행복하십니까.”

?”

지금의 전무님은...행복하십니까.천륜도 사랑도 없는 삶이,진정 행복하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네 말인즉,지금의 너도 행복하지 못하단 얘기냐.”

 

남자는 말이 없었다.그리고 그런 남자의 침묵속에서 노인은 대답을 알아낸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래...난 행복하지 못했다.그래서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특히는 너도 니가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서는 행복해질 귄리가 없다.”

 

남자의 눈빛에 슬픈 기색이 어렸다.노인은 그런 남자를 지긋이 노려보다가 냉랭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된바엔,다음 단계로 가자.”

“...”

본사에 주주총회 소집을 신청할것이야.그리고 넌 감사로서 이 주주총회를 소집하게 될것이고.”

전무님...”

주주총회에 올릴 사안은 역시 대표이사 해임안이다.다만 네가 거절한다면,난 그 아이를 더이상 가만두지 않을것이다.”

그 사람을 회사에서 나가게 하는건 그리 쉽지 않을것입니다.지금 퀸즈에서의 인터넷사업부 역할을 전무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누가 퇴사를 시킨다냐.”

 

노인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에 한가닥 잔인한 웃음이 떠올랐다.남자는 흠칫 떨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건...안됩니다...”

이 세상에 진실만큼 사람 의지를 무너뜨릴수 있는 힘이 없다.너도 그걸 잘 알지 않느냐.”

 

남자의 눈에서 모든 의지가 거두어졌다.노인은 그것을 지켜보며 몸서리치도록 냉혹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속전속결하게.난 자네를 믿겠네.”

 

......

 

어두운 카텐이 내리드리운 거실안.

 

남자는 서랍에서 꺼낸지 얼마 안되는,탁자위에 놓인 앨범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앨범 첫장이 번져지면서 앳티나는 한 여자의 사진이 나타났다.그리고 남자와 다정히 찍은 반듯한 남자의 사진들도 차례로 나타났다.남자는 조심스럽게 그 사진들을 쓸어보다가 문득 앨범을 닫고 두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 세상에 진실만큼 사람 의지를 무너뜨릴수 있는 힘이 없다.너도 그걸 잘 알지 않느냐.”

 

노인의 이 한마디가 귀전을 맴돌았다.남자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그리고는 불현듯 뭔가 생각난듯 남자는 겉옷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퇴근후 잠깐 보자는 약속을 잊을뻔한것은 노인의 그 한마디가 준 충격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일이 어떻게 되든 오늘 그는 약속한 사람과 만나 함께 방도를 찾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사에 도착해서 본의아니게 목격한 장면은 노인의 그 한마디보다 더 큰 충격으로 안겨왔다.

 

두사람 여기서 뭐해.”

 

방안에 밀착해있던 두 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남자를 본다.여자의 눈빛이 순간 당황해지는것을 보며 그는 씁쓸히 몸을 돌렸다.그동안 여자에게 등한한것을 그자신도 잘 안다.하지만 그게 다 누구때문이었는데.

 

동현씨...”

 

주차장으로 나가는 로비에서 여자가 앞을 가로막는다.그리고 순간,그는 이성을 잃었다.그리고 걷잡을수 없이 독설을 내뱉었다.여자의 상처입은 눈빛에 얼핏 정신이 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냉혹한 표정으로 여자를 스쳐지나 주차장으로 향했다.

 

잠깐만요.”

 

이번에는 단정한 남자가 차를 가로막는다.그는 웃을듯말듯한 표정으로 단정한 남자를 바라보았다.단정한 남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그런 진지한 표정에 그의 머리속에 언뜻 뭔가 스쳐지났다.

 

당신이 오해한겁니다.우린 그냥...”

 

그는 천천히 머리를 가로저었다.단정한 남자는 그의 행동을 다르게 받아들인것이 분명했다.

 

그렇게도 자기 사람을 믿지 못하는겁니까?당신 참으로 못난 사람이군요.”

그러게요...내가 참으로 못났죠.”

 

그는 공허한 시선을 들어 장마비가 추적대는 밤거리를 내다 보았다.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한가지만 부탁합시다.”

“...”

이대로 제가 오해했다고 생각하게 나두세요.그 사람이,그렇게 생각하게 말입니다.”

비겁한 자식.”

 

단정한 남자가 주먹을 틀어쥐는게 보였다.그의 눈에 언뜻 옅은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다른건 몰라도,제가 사람은 제대로 보고 부탁한것 같긴 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이유라니...”

사람 버리려면 제대로 된 이유를 대세요.그렇게 비겁하게 남에게 죄를 덮씌우지 말구요.”

 

차츰 그의 눈빛이 이름못할 슬픔으로 변했다.그것을 보자 단정한 남자는 쥐고있던 주먹을 내렸다.

 

내게는 말할수 있지 않습니까.들어나 봅시다.그 잘난 이유.”

“...”

설마 내가 생각했던 그것입니까?당신이 가지고있던 비밀,그 비밀이 폭로될가봐 두려운건가요?”

폭로될가봐 두려운거 맞습니다.그것이 알려져서,그것으로 인해 저 사람이 다시 고통속에 허덕이는걸 참을수 없으니까요.”

 

그는 스스로 자신의 말에 놀랐다.항상 냉정하던 자신이,오늘은 무슨 영문일까.왜 이런 말을 남에게 털어놓아도 될 정도로 지친 느낌이 드는걸까.그가,항상 치밀하던 자신이 이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데에는 연일 이어진 전무의 위협과 방금전의 충격이 일조를 한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게 그렇게 무서운 비밀이라면,얘기하지 마십시오.그 누구에게도.”

 

단정한 남자의 말에 그는 시선을 들었다.두 사람은,처음으로 적의가 아닌 다른 감정의 눈빛으로 서로를 보았다.단정한 남자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그리고 한참 지난후에야 단정한 남자가 말했다.

 

내가 지키려는것과,당신이 지키려는것이 같은거라면 말입니다.얘기하지 마십시오,그 비밀.”

“...”

당신이 지키지 못한다 해도,내가 지켜줄것입니다.이제 그만 내려놓으십시오.그 사람은...행복해질 권리가 있는거니까요.”

 

단정한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섰다.그의 단호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자는 한참후에야 서글피 시선을 내렸다.

 

당신이 그 사람을 지켜줄수만 있다면,이번 주주총회,나도 당신을 지켜주는 길을 택해야겠지.”

 

......

 

회의실밖.

 

소란스러운 장내를 벗어난 한 남자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섰다.그의 옆으로 단정한 남자가 조용히 다가왔다.두 사람은 서로 언뜻 시선을 교환한후 회의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단정한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어쩌려는겁니까.일이 이렇게 되면 전무님이 가만 있겠습니까.”

 

남자는 소리없이 웃었다.그리고는 회의실쪽을 피끗 바라본후 단정한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사람은...”

조금 있다 파티가 시작되기전 인사발표를 하겠습니다.인터넷사업부 부장으로 발령이 날것입니다.”

 

남자는 머리를 끄덕였다.그리고는 석연한 눈빛으로 회의실쪽을 한참 바라보다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대표님.”

“...”

저는 사직한다고 발표해주십시오.”

?”

 

단정한 남자의 놀란 표정을,남자는 짧은 미소로 답했다.

 

그렇게도 제가 떠나기를 바랐던 분이 새삼스럽게 놀라긴요.”

그래도 이런 방식은 아닙니다.”

이것이 최선입니다.”

그래도...”

혹여나 그 사람을 지키는 대표님의 힘이 미치지 못할가봐,떠나기전 한가지 준비를 하고 가겠습니다.이것까지 있으면 전무님이 앞으로도 그 사람을 쉽게 건드리지 못할것입니다.”

만일 전무님이 당신의 비밀을 폭로한다면요?”

 

단정한 남자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처연하게 웃었다.

 

이제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정아씨가 당신 비밀을 알아도 괜찮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떠난 다음 알게 되겠죠.그래서 그 사람...대표님이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을 할지도 모릅니다.어쩌면 오늘 대표님께 부탁하는건,그것을 막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죠.”

 

단정한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떠나는 이유가 그것입니까.정아씨가 당신 비밀을 알면,받아들이지 않을가봐...”

이젠 저도 제가 하고싶은 일을 하고싶어서요.”

 

남자의 간단한 말에 단정한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던 그가 뭔가 생각난듯 지갑에서 카드 한장을 꺼내 남자에게 내밀었다.

 

어디로 가시든,언제 오시든,회사에서 휴가로 처리하겠습니다.이건 회사 신용카드입니다.”

저는 받을수 없습니다...”

한도가 얼마 되지 않는것이니 받으십시오.그동안 퀸즈 임원진에 오래 계셨는데 지분 수익률만 해도 이것보다 훨씬 많겠는데요.어디 떠날 때는 이런게 필요할것입니다.”

“...”

받으십시오.저를 대표로 인정하신다면 받으셔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남자가 고개숙여 인사하고 떠나자,그의 뒷모습을 주시하는 단정한 남자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

 

침침한 사무실안.

 

고개를 숙이고있는 남자를 향해 노인이 무거운 한숨을 내쉰다.

 

정녕 떠날셈인가.”

그동안 고마웠습니다.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 말들뿐인가.”

“...”

지분은.”

저의 지분만은 제 뜻대로 하게 해주십시오.마지막 부탁입니다.”

자넨 내게 부탁만 했네.대체 언제 내가 원하는걸 해준적이 있는가.”

“...”

내가 원하는건 자네의 그 지분이야.퀸즈에서 내게 유리한 의결권.그 지분을 어떻게 할셈인가.”

그건...”

설마 그 아이에게 줄텐가.”

“...”

내 짐작이 맞았군.”

 

노인은 벌떡 일어나서 뚜걱뚜걱 방안을 거닐었다.그의 얼굴에서 씻은듯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그러던 노인이 남자의 앞으로 다가와서 한참 그를 보았다.그리고는 홱 몸을 돌리며 노인이 성가신듯 말했다.

 

매일 밤샘을 하고 노력해서 축적한 지분들인데,그렇게 허무하게 증여할건가.”

“...”

맘대로 하게.그렇다고 내게 방법이 없을줄 아는가.”

죄송합니다.”

어디로 갈 생각인가.”

 

이제야 남자의 행방에 다소 궁금증이 생긴 모양이었다.남자는 그런 노인에게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7년전 못다한 일을 하러 갑니다.”

 

노인이 머리를 돌려 뚫어질듯 남자를 보았다.남자는 아무런 감정도 섞지 않은 눈빛으로 노인을 보았다.하지만 노인은 남자의 눈빛에서 그 무언가를 읽어낸 모양이었다.잠시 침묵을 지키고있던 노인이 맥없이 손을 저었다.

 

가봐.”

 

남자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남자가 문을 나설무렵,노인은 들릴락말락 그에게 한마디 던졌다.

 

소식 전해.”

 

남자의 입꼬리가 약간,아주 약간 올라갔다.

 

......

 

눈덮인 황산.

 

광명정이라고 씌여져있는 작은 정자위에서 남자는 무연한 설경을 마주하고 서있다.그러던 남자의 시선이 언뜻 한곳에 머물러 떠날줄을 몰랐다.광명정 난간에 매달아놓은,크고작은 자물쇠들이 남자의 눈길을 끌었던 모양으로,남자는 난간쪽으로 몇걸음 다가섰다.그러던 남자는 문득 핸드폰 문자알람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액정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남자의 눈빛이 짙어졌다.그리고 그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한정아...”

 

같은 시각.

 

대표이사라는 명패가 놓여있는 테이블을 마주하고 한 남자가 서류더미를 한쪽으로 밀어놓은채 오래동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있었다.한참 뭔가 생각하던 그는 드디어 핸드폰에 일련의 문자를 입력하고 전송버튼을 눌렀다.그리고는 긴 시간 지고있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듯한 표정으로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내가 당신보다 그 사람을 덜 사랑하는건 아니야.이건 다만 내 방식이었어.”

 

......

 

그후.

 

황산에서 돌아온후 나는 이사를 했다.새로 입주한 집의 먼지를 털어내고 카텐과 가구톤을 좀 밝게 바꾸는데 꼬박 열흘이 걸렸다.열흘이 지난후 나는 이진희의 성화에 못이겨 그녀가 일하고있는 곳으로 놀러 갔다.그리고 그날 우연히 국장의 눈에 들어 나는 몇일후 그 회사의 홈쇼핑MD로 일을 시작했다.

 

새로운 일은 내 적성에 맞았다.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들이 어떤것인지 찾아내고,그 상품을 기획하고 개발한후 적정한 가격을 붙여 시장에 유통시키는 등 동시다발적인 업무를 진행하고 처리하는것은 그동안 많은 회사를 전전하며 커리어를 쌓아왔던 나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일이기도 했다.두달도 채 되지 않아 나는 MD들중 팀장급으로 승급했고,그런 나에게 이진희는 다음 시즌에 기획할 상품으로 퀸즈의 제품을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모델이 이런 제안 함부로 해도 되는건가요?”

 

내가 농담처럼 던지자 이진희는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아니,정아씨는 아직 내가 업계에 유명한 스타일리스트라는걸 모르는가요?”

 

아무리 내가 굳이 엮이고싶지 않은 회사라 해도,지금 한창 기획과 유통에 적합한 봄신상 상품을 찾는 시점이어서 퀸즈를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나는 이진희를 통해 퀸즈와의 미팅약속을 잡았고,언제 날을 잡아 퀸즈를 방문하기로 했다.

 

드디어 그날이 오자 나는 한껏 화사한 봄신상 패션으로 퀸즈를 방문했다.우선 카운터로 가서 황수민을 찾았으나 그녀는 그 자리에 없었다.신입사원으로 되어보이는 카운터 직원이 나를 안으로 안내했고,나는 인터넷사업부 파트쪽으로 다가가다가 어딘가 익숙한 챙챙한 목소리를 들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요.오늘 그 회사에서 유능한 새로운 MD가 온다고 했으니 저번처럼 이상한 제품 추천했다가 퀸즈이름 먹칠하지 말구요.”

디자인팀에서 추천할것이지 왜 하필 우리 인터넷사업부에 온대요?”

 

투덜대는 말투는 여전한걸 보아 윤지영이 틀림없었다.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고 곧 누군가의 딱딱한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디자인팀은 다 남자고 우린 다 여자니까.아무래도 그쪽 사업국에서도 다 여자MD들이여서 그런거지.”

팀장님 말씀대로라면 골치아프겠는데요.자고로 여자들끼린 뭐 제대로 하기전엔 기싸움부터 하니까.”

 

이번에 들리는 목소리는 령이 같아보였다.나는 조용히 파티션을 에돌아 그들을 마주하고 섰다.그들은 한쪽으로 일을 하면서 말을 하느라 누구도 나의 등장에 주의를 돌리지 못한듯 했다.내 입가의 미소가 깊어졌다.

 

안녕하세요.이번에 새로온 MD입니다.잘 부탁드려요.”

“...!!!”

 

다들 눈이 휘둥그래서 내쪽을 보았다.하지만 막상 그들을 마주하고는 오히려 내가 더 놀랐다.

 

수민씨...”

 

방금전 귀에 익숙한 챙챙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리고 그녀의 테이블에는 인터넷사업부 부장이라는 명패가 놓여져 있었다.나는 놀란 눈으로 권혜경쪽을 돌아보았고,권혜경은 얼굴 한가득 반가운 기색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이게 누군가요...세상에,이렇게 사람 놀래켜도 되는건가요.”

놀라게 했다면 죄송해요.”

 

내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다들 우르르 내곁으로 모여들었다.윤지영과 령이는 말할것 없고 평소 조용한 편이였던 화숙이와 은희도 반가운 기색으로 내 손을 잡았다.하지만 미처 회포도 풀기전에 황수민이 힐을 또각거리며 내앞으로 다가왔다.

 

한정아씨?”

.수민씨...오랜만이에요.”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반가웠다.하지만 그녀의 냉랭한 표정은 곧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게 했다.

 

회의실은 저쪽이에요.먼저 가서 기다리세요.저흰 조금 있다 갈테니까요.”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홱 돌리더니 다시 또각또각 사무실을 걸어나갔다.나는 아연한 표정으로 권혜경을 돌아보았다.권혜경의 표정은 살벌했다.그리고 굳게 다문 그녀의 입사이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낙하산.”

 

나는 허한 미소를 지을수밖에 없었다.

 

......

 

주영진은 무척 화가 난듯 보였지만 나는 전혀 두렵지 않다는듯 미소를 띄운채 그를 보았다.그리고 한참 방안을 거닐던 그가 드디어 내 맞은켠에 앉자 그제야 준비해온 서류를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뭡니까.”

퀸즈 제품에 대한 요구사항입니다.잘 체크해서 준비해주십시오.”

당신 진짜...”

 

그는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는 모습으로 나를 보았다.그러더니 서류를 밀치고 똑바로 나를 보았다.

 

언제 온겁니까.”

퀸즈에요?”

이 도시에요.”

두달쯤 되었나...”

 

그는 허공을 쳐다보며 억이 막힌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그가 다시 나를 보자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풋 웃어버렸다.그가 눈섭을 찡긋했다.

 

왜 웃어요.”

반갑다면 반갑다고 해요.그렇게 감정 눅잦히지 말고.”

티 많이 났어요?”

 

그가 드디어 환한 미소와 더불어 손을 내밀었다.나는 그의 손을 잡은후 앞으로 다가가 그를 안았다.

 

고마워요.”

 

그의 몸이 경직되는게 느껴졌다.나는 작게 웃으며 뒤로 한걸음 떨어져서 그를 보았다.

 

물론 이 한마디가 당신이 그동안 애써준거에 비하면 얼마나 가벼운줄은 잘 알지만.”

내겐 충분해요.당신이 회사 돌아오지 않았다는건 아직 화가 나지만 말입니다.”

 

그가 진지하게 말을 받았다.나는 고개를 끄덕인후 가지고 왔던 쇼핑백을 그에게 건넸다.그는 언제 진중했냐싶게 반색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뭡니까?선물?”

일찍 돌려드렸어야 하는데,그동안 이리저리 일이 많아서 경황이 없었어요.늦어서 죄송해요.”

 

쇼핑백을 들여다보던 그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그리고 그가 다시 쇼팽백을 내게 넘겨주었다.

 

제것이 아닌데요.”

물론 주영진씨건 아니죠.다만 제가 받을건 더 아닌거 같아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에요?전 이걸 준적 없는데요...”

?”

 

나는 쇼핑백을 열고 그때 파티장에서 입었던 이브닝드레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경이가 말했던것처럼 드레스는 꼭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이었다.그리고 나는 줄곧 그것이 주영진이 보냈다고 생각했던건데...

 

대표님,상가쪽 실장님이 찾으십니다.”

 

문득 문을 노크하는 카운터 비서의 목소리가 내 사색을 중단했다.비서의 말에 주영진은 미간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쩌다 회포 좀 풀려 했는데 진짜 사람 못살게 구네요,그분.”

누구신데 그래요?”

장팀장님 업무 인계받은 실장이에요.상가 회장님 따님이라는데 요즘 계속 찾아와서 성가시게 구네요.퀸즈는 상가쪽 업무 전혀 관심없다고 했는데 전의 일로 시간을 끌고 해결해줄 기미가 안보여요.”

상가쪽 일이 아직 마무리 안되었는가요?”

 

전에도 내가 맡았던 일이어서 어느정도 관심이 가는것은 어쩔수 없었다.하지만 주영진이 바빠보여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리고 내가 미처 문을 나서기도전에 노크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섰다.

 

대표님,오늘은 저와 제대로 된 협상을 해야 할것 같아요.”

 

보기에 차분해보이는 아름다운 여자였다.허락도 없이 문안에 불쑥 들어서는 저돌적인 행동은 그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주영진을 마주한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눈에 익어보였다.주영진은 허구픈 미소를 지었고 나는 잠깐 고개를 숙여보인후 조용히 그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어디서 봤던 여자인데...왜 기억이 안나는걸까.”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다시 쇼핑백을 내려다 보았다.

 

주영진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이걸...”

 

문득 뇌리를 스치는 기억에 나는 혼잣말을 중단했다.그날,주주총회가 있기전 그날 정동현-그가 와서 한 말이 기억에 떠올랐다.설마...하는 생각에 이어 그가 했던 말들이 어렴풋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내가 당신한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받고 가.그렇게 해.”

 

그동안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단지 지분증여로만 생각했던것인데...엄연히 말하면 지분증여는 사내에서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고,날자를 따져봐도 그것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칠수 없는것이 아닌가.한정아,그동안 넌 대체 얼마나 많은것을 놓치고 살았던걸까...나는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현관문 비번을 입력하다가 또 한번 손을 흠칫했다.그동안 내 머리속에 소장되었던 그 사람의 기일,그와 동일했던 비번 0717은 바로 내 생일이었다는 생각이 또 한번 뇌리를 스쳤던것이다.그러고보면 그 사람의 부고가 들려왔던 시점은 정확히 내 생일 사흘전 일이었고,나는 다만 그 소식을 내 생일날에야 알았다는 이유로 7년동안 내 생일을 기일로 정한셈이 되었던것이다.

 

집에 들어선 나는 오래동안,아주 오래동안 마음을 다잡을수 없었다.드디어 모든 일들이 꿰어져 하나의 완정한 이야기가 되었지만,그동안 이 모든것을 묵묵히 감내하며 지내왔을 그 누군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욱신거렸다.한참 지나 시계를 들여다본 나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리고 곧 하나의 성대한 준비에 서둘렀다.

 

정확히 밤 열시,현관쪽에서 비번을 입력하는 소리가 들렸다.나는 천천히 문쪽으로 향했다.몇걸음 되지 않는 거리인데도 심장이 세차게 뛰어 나는 걸음을 멈췄다.그리고 문이 열렸다.

 

긴 여행을 마친,그래서 다소 지친듯한 모습으로 그 사람이 문안에 들어섰다.그리고 그가 우뚝 멈췄다.순간 모든 시간이 정지된듯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서있었다.그의 눈동자에 순백색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이 오롯이 비쳤다.

 

당신...”

 

그가 말을 채 잇지 못했다.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옮겨져 아담하게 장식한 집안을 차례로 훑었다.차츰 그의 눈동자에 경이의 빛이 스쳤다.전혀 달라진 집의 모습,그리고 나의 모습에 그는 크게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정아...”

 

나는 그를 향하여,그동안 나를 위해준 남자를 향하여,앞으로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줄 이 사람을 향하여 최대한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어서와,동현씨...여긴,우리 집이에요...”

 

......

 

5년후.

 

아침햇살이 자잘하게 부서지는 방안,나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두 남자때문에 매일 아침이 괴롭다.

 

산아,너 유치원 가야지?빨리 아빠 깨워.”

엄마,나 유치원 안가면 안돼?”

왜 또.”

으응...애들이 내 이름 촌스럽다고 놀린단 말이야.다른 애들 이름은 예쁜데 왜 나는 산이야?”

그건...”

지민이랑,수현이랑 이름 다 예쁜데 나만 산이야.애들이 매일 나보고 뭘 정산하냐고 놀린단말야.”

그건 놀리는 애들이 나쁜거지 니가 그걸 왜 신경쓰고 주눅들어야 하는건데.”

 

나는 궁시렁거리면서 아직도 꿈나라에 빠져있는 남자를 향해 베개를 날렸다.남자가 부시시 눈을 뜬다.

 

뭐야 당신,혹시 방금 가정폭력을 행사한건가.”

빨리 일어나서 씻고 산이 유치원 보내고 준비해요.오늘 무슨 날인지 당신 알잖아.”

 

나는 조용히 말했지만 말에 날을 세웠다.남자는 머리를 흔들더니 남자아이를 훌쩍 들어 가로안았다.

 

산아,엄마 화났으니 건드리지 말자.”

엄만 화난게 아니라 내 이름을 생각 못해서 짜증난거야.”

이름?”

,내가 엄마보고 이름 새로 지어달라고 했거든.”

산이가 어때서?아빤 우리 아들이 산처럼 크고 장엄하고 굳세고 드팀없는 사람이 되길 바란단다.”

그래?그럼 이름 새로 짓지 않을거야.엄마,짜증 안내도 돼요.산이는 그냥 산이 할거야.”

 

나는 두 남자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화내용이 멀어져가자 길게 한숨을 내쉬며 외출준비를 끝냈다.산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다시 조수석에 앉으며 나는 걱정어린 어조로 운전하는 그에게 말했다.

 

차가 밀려서 괜찮겠어요?그러게 빨리 일어나야 한다고 했는데 아침에 왜 그렇게 늦장 부렸어요.”

하루이틀인가.”

 

그가 싱긋 웃자 나는 그에게 살짝 눈을 흘겼다.

 

아침마다 사람 둘 깨우는 일이 고역이네요.산이는 그렇다치고 당신까지 왜 그렇게 잠이 많아요.”

당신이랑 같이 있으면서부터 그렇게 됐어.그러니까 당신이 책임져.”

거짓말,그전에도 항상 오후 다 되어서야 출근하셨잖아요.누가 모를줄 알고.퀸즈에선 왜 당신같은 사람을 상무이사직까지 줬는지 몰라...”

변명같겠지만 그전엔 항상 밤샘을 해서 늦은거고,지금은 하는 일이 적어져서 잠이 많아진거야.”

,피탈도 여러가지네요.”

 

나는 피씩 웃다가 다시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대표님도 오신댔죠?”

어제 통화했는데 오신댔어.그래도 반평생을 안 사인데 전무님 회갑잔치에 불참할수 있겠어.”

작년엔 상가 회장 따님을 며느님으로 들였겠다,당대엔 그렇다 쳐도 자녀들 싸움엔 주대표님이 이긴것 같은데요.전무님은 환갑 지나면 퀸즈 임원진에서도 사퇴하고 여행간다고 하셨다면서요.승자의 여유라는게...”

 

나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중단했다.그리고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그가 힐끗 곁눈질로 나를 보았다.

 

왜 갑자기 말을 하다말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지만 또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인파속에 파묻혔지만 분명 꽤 익숙한 모습이 언뜰했다.나는 내가 빗본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그러다가 뭔가 생각난듯 옆을 바라보았다.

 

한가지 궁금한게 있는데요...”

뭔데.”

그때 황산에서 만난후 나 혼자 돌아오게 하고 당신은 무려 두달동안 거기 계셨댔잖아요.”

그랬지.”

아무런 수확도 없었나요?”

 

그가 다시 힐끗 나를 보았다.하지만 나는 나의 질문을 그가 괴이쩍게 생각할가봐 차마 그와 시선을 부딪치지 못했다.나는 좌석벨트를 만지작거리면서 앞만 정시했다.그러면서도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그냥...궁금해서 물어본거에요.그때 돌아와서 당신은 더이상 황산을 가지 않았잖아요.그전엔 매년 갔었다면서요.”

“...”

포기...한거에요?아니면 그 어떤 수확이 있어서인가요?”

어느쪽이라고 생각해?”

 

그의 목소리가 문득 낮아졌다.나는 입술을 한번 추기고 고개를 돌려 그의 옆얼굴을 보았다.

 

당신 성격엔 포기할것 같진 않아서요...수확은 있는데 확실치 못해서 그런건지...”

만일 그때 수확이 있었다면 어떡할거야.”

 

그가 다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그의 목소리에 언뜻 작은 불안이 실렸다.나는 고개를 숙이고 석연한 미소를 지었다.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그의 팔을 부드럽게 감쌌다.

 

과거는 과거일뿐이에요.난 나의 과거를 공유하고,현재와 미래도 공유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길 바라구요.”

“...”

다만 12년을 한 주기로 태양폭발도 일어나고,12지간도 한번 다시 시작되는데,사람과 사람사이 관계는 과거의 원망을 버리고 새롭게 개선이 안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하물며 그것은 천륜인데...”

 

그가 문득 속도를 죽였다.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뭔가 말할듯한 표정인 그에게,나는 급히 눈짓을 했다.

 

“신호등 켜졌어요.늦겠어요,빨리 가요.”

 

그가 고개를 돌려 다시 운전을 시작하자,나는 더이상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차도에 차들이 적어지자 그가 한손을 내밀었고 나는 조용히 그의 손안에 내 손을 놓았다.방금전 방금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나는 잘 알고있었고,또 너무 잘 알고있어서 그것을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던것이다.예식장에 도착해서 하객들과 인사를 나눈후 우리는 반나절은 눈코뜰새없이 돌아쳤다.비록 곁사람들이 도와주긴 했지만 평소 전무의 아들이나 다름없다고 알려져있는 그였기에 환갑잔치에 오는 모든 사람들의 접대는 그가 도맡아야 했다.인간관계가 냉정하고 까칠했을 전무였지만 의외로 그의 환갑잔치에 참가한 하객수는 내 예상을 벗어나서 크다란 예식장을 꽉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술을 올리는 시간이 되었다.차례대로 빠짐없이 술을 붓고,심지어 평소 전무와 별로 왕래가 없는 사람들까지 술을 붓고 물러나자,사회자가 마이크에 대고 장내에 물었다.

 

더이상 술 부을 분 없으시죠?,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잠시만요.”

 

아득한 기억속의 한 목소리가 들렸다.나는 살짝,아주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아까 인파속에서 얼핏 본 모습이 결코 환각은 아니었다.나는 내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를 일별한후 고개를 돌렸다.활짝 열려진 예식장 문으로 한 사람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울컥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은 순수한 감동이었다.다시 시선을 들어 전무를 보니,술잔을 든 손을 허공에 멈춘 그의 아연해진 얼굴이 보였다.그리고 잠시후,굵은 눈물이 그의 얼굴 주름살을 꽉 메우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끝--


-----------------------------------------------------------------------------


지금까지 파랑새와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 다시한번 감사 인사 드립니다.

여태껏 쓴 글에서 제일 길고 지루하게 쓴 글인데 끝까지 따라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줄 알면서도 일상에 찌들려 글쓰기를 게을리 한 점 사과 드립니다.

앞부분이 기억나지 않아 깔아놓은 복선이 제대로 정리가 안되었을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최선입니다.^^


긴 여정을 끝마쳤으니 홀가분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연연한 감정도 분명 있네요...

언제 다시 올지는 모르겠지만 자작글 식구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해드립니다.^^*



추천 (9) 선물 (0명)
IP: ♡.147.♡.222
newsky (♡.239.♡.170) - 2014/03/13 17:21:59

에필로그까지 보고나니 그동안의 줄거리들이 다 맞춰진 느낌이네요.
스토리구성도 좋으시고 안타깝지만 어렵게 사랑하는 남여주인공의 로맨스도 좋았어요.
좋은 글 올려주시느라 너무 수고하셨어요.
저는 시간을 가지고 처음부터 다시 읽을 생각이예요~^^
또 좋은 글에서 판도라님을 만날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I판도라I (♡.64.♡.207) - 2014/03/13 21:34:12

newsky님,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오래 기다려주신 분들께는 죄송한 얘기지만 긴 글을 끝마치니 홀가분한 마음밖에 없네요.글을 시작할때 지금처럼 바쁠줄은 생각지 못했나 봅니다.^^당분간은 좀 길게 쉴 생각입니다.눈팅은 간간히 하고있으니 언제 님 좋은 글을 기대해도 될까요.^^

곰세마리 (♡.50.♡.39) - 2014/03/13 18:13:40

이동네 안온지 너무 오래돼서 글 본 소감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읽고나서 개인적으로 보고할게...ㅋㅋㅋ

곰세마리 (♡.50.♡.39) - 2014/03/13 18:15:56

아놔... 추천 깜빡했군...ㅠㅠ 별걸 다 까먹었어...

I판도라I (♡.64.♡.207) - 2014/03/13 21:35:29

오랜만에 댓글 달러 여기 다 오고 고맙다.^^좋은 글발 손놓지 말고 언제라도 좋으니 전처럼 주옥같은 글을 써내길.^^나는 당분간 쉬어야겠다.ㅋㅋ

(♡.165.♡.89) - 2014/03/14 09:26:49

그동안 재밌게 잘 읽었어요.
글솜씨가 참 대단하세요..

I판도라I (♡.147.♡.222) - 2014/03/15 14:34:30

풀님,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미흡한 글솜씨 칭찬해주셔서 부끄럽습니다.항상 행복하시길 바랄께요.^^

천사LQve (♡.87.♡.54) - 2014/03/14 11:35:58

하.... 에필로그 대박임다..!!!
마지막 결말에 온 몸이 짜릿해지는 순간이였슴다.. "파랑새를 찾앗따?"....ㅋㅋ
앞집에서 거북이님이 2011년부터 언니가 이 글 시작했다고 하던데...
정말 긴 여정이였네요. 언니 개인생활도 바쁘고 힘들었을텐데....T-T
끝까지 포기 않고 아름다운 한편의 드라마를 선물로 주셨다고 생각함다..
그동안 고생하셨고... 푹~ 쉬셨다가 다시 새로운 글로 언니와 만날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하며~

I판도라I (♡.147.♡.153) - 2014/03/16 23:01:23

천사동생,파랑새가 돌아왔다.ㅋㅋㅋ에필로그 올리고나니 이제야 실감이 나네.^^4년동안 끌다니 나도 좀 너무했다 싶어.이번엔 공백기간 좀 길어질거 같다.행복하게 잘 지내고 나중에 또 보자.^^

HAUS (♡.191.♡.27) - 2014/03/14 15:23:39

눈물없이 볼수 없는 너무 감동적이였슴다.
긍정적인 결말로 마무리되서 너무 좋았슴다.
의문하나~전무님의 아들은 7년동안 어디서 어떻게 살았을가요.
이건 또 작가님께서 독자들에게 주는 여운이 아닐까 싶슴다.
재밌게 잘 읽었구요,다음에도 또 좋은 글 올려주세요.

I판도라I (♡.147.♡.153) - 2014/03/16 23:03:12

HAUS님,감동적이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제가 해피엔딩을 좋아해서 새드로는 가지 않을겁니다.^^전무의 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그냥 흘려보내기로 하죠.^^상처받고 치유하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고 생각해주세요.^^다음글은 좀 늦게 올수도 있을것 같습니다.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항상 행복하세요.^^

해피투데이 (♡.70.♡.7) - 2014/03/14 21:17:25

에피소드를 읽고나니 그동안 흩어졌던 퍼즐들이
가쯘하게 쫘악 맟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중간중간 스쳐지났던 이야기들도 새록새록 떠올랐고...
아~ 이런 이유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전개되는거구나
하면서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정동현과 주영진, 어찌보면 연적사이인데
50회까지 한정아를 둘러싼 두 사람의 정면충돌이
어쩐지 너무 적었다 했습니다.
근데 에피소드를 보고 나니 역시 멋진 남자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것을 느꼈습니다 ㅎㅎ

그리고 마지막 그 장면은~~
완전... ...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어찌보면 전무의 무한정 욕심이 아들마저 버렸고,
그래서 전반 스토리가 시작된거였는데...
마지막 전무의 눈물이 지나간 자신의 행위에 대한 후회인지
아님 인간적으로 생겨나는 순수한 감정의 표현인지
것도 아님 진짜 행복을 몰랐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질책하는것인지
아들에 대한 미안함인지...?
아무튼 저한테는 너무도 많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감명받은바가 너무 많아서 두서없이 댓글 남깁니다.
그동안 수고 너무 많으셨고, 님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겠습니다...

I판도라I (♡.147.♡.153) - 2014/03/16 23:07:40

해피투데이님,사실은 그동안 허접하게 써서 에필로그에서 좀 수습을 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남자 주인공들을 멋지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마지막 장면에서 전무의 눈물은 글쎄요...전무의 인간다운 면을 보여준것이 아닌가 싶네요.아무리 냉혹하고 비정한 아버지라 해도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한데에는 자신만의 이유와 무가내가 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여기에서 제일 사연 많은 사람은 남여 주인공이겠지만,전무와 그 아들의 사연 또한 만만치 않다고 볼수도 있습니다.사연이 있고 악역이 없는 글,저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제대로 어필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루한 글 마지막까지 읽어주시고 긴 리플 남겨주신점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님도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빙점 (♡.246.♡.182) - 2014/03/16 21:33:47

수고많으셨어요. 늦게나마 추천드립니다. 아쉬움 남기지 않은 최고 멋진 글입니다. 죽 행복하세요.

I판도라I (♡.147.♡.153) - 2014/03/16 23:09:24

빙점님,항상 들려주시고 추천해주셔서 제가 고마워하고있다는걸 아시죠?과찬은 저를 부끄럽게 할뿐이구요,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 글에서 또 뵐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난세가인 (♡.36.♡.97) - 2014/03/17 18:12:37

드뎌 마무리 되었네요.. 오늘에야 밀려두었던 글들을 다 읽었어요.
작가님이 4년을 걸쳐서 이글을 썼다는건 또 다른 의미로 독자인 저도
인터넷에서 한 작품을 4년을 걸쳐서 읽었다는 얘기가 되겠군요..ㅋ
저한테도 두번 다시 없는 기록인데요?ㅋㅋ

그동안 글을 한편한편 읽으면서 그때그때 감상들이 있었죠
이렇게 막회까지 읽고 어떤 표현이 이 글에 대한 제 정확한 감상일까를 고민해봤어요.
그리고 생각해냈어요.. 치열함!! 치열함이야 말로 이 작품과 이 작품속의 인물들, 그리고
이 작품을 완성해온 작가님을 표현하는 단어 아닐까 싶네요. 적어도 저한테는 그래요.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치열하게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마음을 나누고
그렇게 삶의 행복을 향해서 치열하게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또 그과정에 가상이지만 그 세계를 치열하게 창조해낸 작가님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요.

그동안 정말 수고많으셨어요.
작가님의 파랑새도 항상 함께 하고 늘 건필하길 바래요.

I판도라I (♡.151.♡.196) - 2014/03/19 21:20:26

난세가인님,마지막까지 들려주셨군요.4년에 걸쳐 쓴 저도,읽으신 님도 좀은 유별나다는 생각을 잠깐 해봅니다.^^이 글을 시작할때 댓글 다셨던 분들과 마무리 할때 댓글 달아주신 분들이 매치가 안되는걸 보면서 저의 게으름이 너무 심했었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는데,님의 댓글이 묘하게 위로가 되네요.

글 업뎃주기는 게으르면서 님이 말씀하신대로 치열함을 묘사해낼수 있었다면 저로서는 다행입니다.어쩌면 그동안 제가 살아왔던 과정과 지금의 생활이 글의 전반 정서에 영향을 주었나 봅니다.누군가에겐 삶이란 참으로 치열한 몸부림일수도 있으니까요.그렇게 살아왔음에도,그런 삶이 아직은 질리지 않았나 봅니다.^^

제게 파랑새는 이런 치열한 삶속에서도 원동력을 잃지 않게 하는 저의 취미생활인듯 합니다.적어도 글을 쓸 때만은 행복했으니까요.또 그런 행복은 어쩌면 저의 글을 끝까지 봐주시는 님같은 분들이 계셔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몸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강니 (♡.226.♡.86) - 2014/05/18 16:05:05

오늘 아침부터 단숨에 따라왔어녀.
다 읽고 플 심을라 했더니 안되네...
간만에 로그인하느라 비번 3번 입력만에 로그인했다는ㅠㅠ
결말이 해피엔딩이라서 참 좋아.
친절하게 에필로그까지 적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앞에 거북언냐가 2011년에 이 글이 시작됐다는 말에 참 시간이 생각보다 좀 많이 흘렀구나 했네여. 난 이제 2년정도 되는줄 알았는데..
너무 늦게 찾아와서 읽었다고 삐지기 없기...
정동현 참 진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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