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을 운다

동녘해 | 2014.03.05 12:58:05 댓글: 4 조회: 1192 추천: 2
분류수필·산문 https://life.moyiza.kr/mywriting/2093695

 

 

오늘도 날마다 맛이 달라지는 커피를 타서 덤덤하게 홀짝이며 대중없이 인터넷세계를 헤집다가 문뜩 나는 지금 무엇을 살고있는가?”라는 생각이 긴 꼬리를 그을며 날아내리는 류성처럼 뇌리에 떨어짐을 느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살고있는가?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참으로 재미없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갈마든다. 그 시간들은 하나같이 아침 출근, 저녁 퇴근, 또 아침 출근 또 저녁 퇴근의 반복이였다. 그러다 닷새마다 이틀씩 차례지는 주말휴식은 방콕!

굳어진 이 생활의 룰을 깨면 잘 정리된 공간이 흐트러질것만 같은 강박증 비슷한 두려움(?)을 느끼군 했다. 두려움을 느낄만치 나의 사상은 고루함에 길들여져있었고 두려움을 느낄만치 나의 뇌파는 경직되여있었다. 달마다 어김없이 카드에 날아드는 얼마 안되는 로임에 길들여져있었고 그 얼마 안되는 로임으로 가정 꾸리고 아들놈 뒤바라지 하고 그 와중에 몇푼 남겼다가 친구들과 맥주 한잔 즐기는 일상에 길들여지면서 내 마음의 맥박이 하루하루 경직되여갔던것이다. 그럴수록 사업효률은 낮아졌고 그럴수록 자신을 움츠리면서 상사의 눈치보기에 바빴던가싶다. 상사가 맡겨준 임무를 완성하고도 내가 왜 그렇게 했음을 강조하기보다는 상사가 어떻게 평가하는가에만 눈길을 돌리느라 힘들었었다.

그러느라 사업터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의 끓어번지던 정열은 식어버렸고 세상을 향해 머리를 내밀었던 인성의 모서리들은 문드러져 두리뭉실해졌다. 이게 바로 나라고 세상에 자랑할 모서리 하나 없이 누군가와 비슷하게 두리뭉실해져있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래 이렇게 살아야 편한거야.” 하고 스스로를 위안했었다. 그런 위안을 안주하며 나는 영원히 나대로의 편한 모습으로 살아갈것이라고 믿고있었다.

하지만 그새 내 몸은 되려 변화를 꾀하고있었다.

지난해 5월도 막바지로 달리던 어느날밤, 나는 갑자기 덮쳐드는 허리통에 그만 널부러지고 말았다. 난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동통이였다. 몸을 돌려눕기도 힘들었다. 안해가 외국에 나가있고 아들놈이 대학에 가있는 형편이라 일시 누구를 부를수도 없었다.

참자,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

이를 옥물고 두눈을 꾹 감았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동통이 인차 멎을 기미가 아니였다. 처음에 쿡쿡 쏘는것 같던 동통이 시간이 지나면서 칼로 뼈를 도려내는듯 극심해졌다. 그제야 나는 병원을 떠올리게 되였다. 옷장으로 벌벌 기여가 겨우 옷을 꺼내 입고 신을 주어 신었다. 층계란간에 몸을 의지하여 간신히 아빠트를 나섰고 세 걸음에 한번 쉬면서 끝내 거리에 나섰다. 지나가던 택시가 멈춰섰고 운전수가 고맙게도 나를 부축하여 택시에 올렸다.

요추간판탈출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장시간 사무실에 앉아 근무하는 직장인들에게 흔히 생기는 병이라고 했다.  

의사는 나의 허리며 엉뎅이며에 숱한 침을 꽂아주었다.

차가운 침들이 내 몸을 뚫고 들어가 있던 그 20분간 나는 처음으로 내가 무엇을 살고있는가를 물었다.

내가 나의 모서리를 둥글둥글 죽여가며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이 내 몸에서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모서리가 생겨나 내 몸을 뚫고 나오고있었던것이다.

그새 나는 행복했던가?

오늘 문뜩 커피잔에 빠진 내 얼굴을 살펴보니 나는 이미 꿈이 바랜 50살의 나그네로 변해있다. 대부분의 나날에 커피 한잔 앞에 놓고 긴긴 하루를 다 보내도 매달 19일이면 어김없이 얄팍한 로임봉투를 받아쥘수 있는 내 직장에 만족하면서도 울바자굽에 남아있는 초겨울의 호박대가리처럼 오글조글 말라가는 자신이 애달파 가끔 한숨도 짓는 그런 창백한 얼굴의 나그네로 변해있다. 나는 여기서 래일도 아침이면 커피 한잔 타들고 컴퓨터를 찾을것이고 모레도 군입거리를 찾는 그 무엇처럼 대중없이 인터넷세계를 헤집을것이며 글피도 커피잔에 빠져드는 뿌연 해빛오리들을 셀것이다. 그러다 가끔 커피잔을 손에 들고 우아한척 폼을 잡으면서 나는 과연 누구인가를 물을것이다.

돌을 삼켜도 소화해낼수 있을것만 같던 20대중반에 내 몸뚱이가 다른 어느 곳에 떨어졌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떤 나를 살고있을가?

25살에 입사하여 2년쯤 지났을 때일것이다. 내가 사는 도시에도 민족 대이동의 막이 서서히 열리고있었다. 하루 새롭게 누구는 직장을 버리고 외국으로 갔소, 누구는 직장을 버리고 장사를 떠났소 하는 소문이 나돌았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때는 더구나 외국에 나가 벌거나 장사로 버는 돈이 직장인들의 로임과는 비할수도 없이 많았다. 200원이 되나마나한 로임에 매워 힘겹게 직장생활을 하던 우리 젊은 직장인들에게 그런 소식은 유혹이 아닐수 없었다. 

어느날밤, 나는 잠 못 이루고 궁시렁거리다가 나도 나가보는거야!” 하고 결심을 내렸다. 하지만 날이 밝자 나는 또다시 출근길에 오르고 말았다. 힘들게 얻은 직장을 떠나가기 아쉬워서였다. 아니 어쩌면 떠나기 두려워서였다고 함이 나을것이다.

그후에도 나는 몇번인가 호수같이 고요한 직장을 벗어나 큰 바다에 뛰여들려고 생각했었지만 번마다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묵묵히 사무실을 지키면서 20여년을 살아왔다.

그새 나는 만족했던가?

커피잔에 비낀 나의 50살을 마주하고 이 물음에 선뜻 대답을 줄수없어 슬퍼지려고 한다. 슬퍼지려는 자신을 달래며 당당하게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지!”를 꿈 꿀수 없어 울고싶다.

《론어》위정편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였으며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리치를 깨달아 리해하게 되였고 일흔이 되여서는 무엇이든 하고싶은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나도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였다.”는 지천명의 나이 50살이 된것이다.

과연 하늘이 나에게 내린 명은 무엇이였을가?

오늘도 나는 나의 50살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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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7.♡.212
skhan (♡.93.♡.55) - 2014/03/05 14:24:42

50살의 평범한 나그네 인생 잘 읽었습니다.
너무 안일하게만 살아왔다고,너무 고요하게만 살아와서 넓고 깊은 바다에서의 못해본 자맥질을
한탄하는 마음이네요,인생자체가 어떻게 보내와도 한생인만큼 아쉽게 생각할수는 있지만 너무 서글프게만 생각하실 필요는 없지 않을가 싶습니다.
단지 이제부터라도 너무 많은,인생을 포기할 나이가 아닌만큼 뭔가 제대로 한가지 일에 취미와 열정을 키워 한몸 던져보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글 쓰신 분은 엄연한 문학가시네요,저도 아직은 몇년남았지만 바로 50을 바라보게 될 인생을 잠간 되돌아본다면 고요한 늪을 떠나서 바다에서 살지 않았나 봅니다만 결론은 크게 다를게 없다고 생각이 되네요, 안일한 가정, 건강한 심신만 간직한다면요...
오늘도 다시 힘내셔서 나머지 청춘을 한번 더 빛내가시길 바랍니다.

동녘해 (♡.27.♡.212) - 2014/03/05 16:21:01

감사합니다. 내내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skhan님.

개천왕 (♡.160.♡.133) - 2014/03/05 19:35:32

아....나에 인생을 닮아가는 모습이군요 나도 예전엔 몹시도 굼주림에 몸을 떨고 이겨내야지 하고 열사에나라에서 자연산 소금을 등에 만들며 2년세월 보낸적있지요...그것도 젊은 나이인 27세에 30을 안넘기고 들어와서 집사고 장사을 한다지만 가족들에 상처로 모두물거품 ...해님 도움에 글귀가 되시련지요 혹..이질감으로 받아들이셔도 괜찬읍니다 그건 본인에 자질이니요 지금 여러분들이이 오셔서 힘든환경에서 작은 급여에 근무하신다는 사실도 인지합니다 ..속된말로 약자에 서글픔이라 표현한다면은 조금 그렇겠지요 그러나 현실입니다 전 ...님보다 10년세월을 먼저살앗읍니다만.지금은 나도 밀려나서 한적한 시골에서 흙과 인생합니다 화이트 칼라새대라 흙인란 단어 생소합니다 만 3년차이니 조금 눈이보이내요 그렇읍니다 육신만 건강하시다면은 마음도 건강하게 키우십시요 돌아오는 시간은 님을 웃음으로 남기게 하리라봅니다 지나가려다 님에 넊두리?? 후담을 읽고는 저도 독짖어봅니다 건강지키시고 웃음을 넉넉히 지으세요 ......홧 팅 애늙은이가

북위60도 (♡.60.♡.229) - 2014/03/07 11:52:59

생각보다 년세가 높으시네요.하여튼 고요한 삶이던 풍상고초를 겪은 삶이던 50대에 들어서면
일단은 건강부터 챙기시고 운동도 열심이 하셔야겠지요.그리고 아직도 10년을 더 하셔야지
정년퇴직이시니 건강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이제부터는 오로지 나만 신경쓰시고 나 위주로 사셔야지 생각합니다.내가 있어야 모든게 있으니까요.백세시대 50은 아직 절반뿐이 못사셨으니
앞으로의 삶을 잘 정리하셔야 노년의 풍요로움을 만끽할수있다고 생각합니다.동녘해님은 역시
작가시네요.지금부터 꿈을 꾸어보세요 저는 아직도 소녀처럼 야무지게 꿈을 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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