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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를 찾아서(제44회)

I판도라I | 2014.01.04 07:10:06 댓글: 16 조회: 1243 추천: 7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2020176

44.

안돼...

 

나는 마음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주영진이 선포하려는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수 없었지만,그 내용이 나와 연관이 있다는것만은 어렴풋이 느낄수 있었다.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말하지 마...

 

나의 이 독백은 무기력한것이었다.짧게 숨을 들이킨후 주영진이 선포한 내용에 장내는 잠시 술렁였다.

 

유감스럽게도 퀸즈의 한해를 마무리 하는 오늘의 이 자리를 같이 하지 못하는 분이 한분 계십니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주영진의 다음 말이 오롯이 내 귀를 파고들어 나를 아프게 했다.

 

“저는 퀸즈 화남지사 전직원을 대표하여 지사 설립초기부터 회사와 영욕을 함께한 정동현부장님께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무엇때문일까,구경 무엇때문이었을까.왜 하필 그 사람이 회사를 떠나야 하는것일까.부단히 증폭되는 의혹속에서 주영진의 목소리가 더할나위없이 또렷하게 들렸다.

 

“....그리고 새로운 한해를 기약하는 이 자리에서 다음은 오늘 임시주주총회에서 결정한 새로운 임원직 명단을 선포해드리겠습니다.우선 올 한해 퀸즈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인터넷사업부 한정아 매니저님께 박수 부탁드립니다.축하해요,한부장님.”

 

주영진의 시선이 정확히 내 얼굴에 와 닿았다.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연 몇일 나를 불안하게 했던것이 무엇이었던지....이제야 알수 있을것 같았다.정동현부장이 떠나고,내가 인터넷사업부 부장이 되다니.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다들 내가 뭔가 겸양의 말이라도 할것을 기대하는 눈치었다.나는 조용히 앞으로 나갔다.그 순간 주영진의 곁에 앉은 전무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는것을 나는 보았다.

 

스테이지 위에서 잠깐 좌중을 둘러본후 나는 머리를 숙이고 짧게 웃음을 지었다.허한 웃음이었다.

 

퀸즈 지사 여러분...”

 

나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일단 눈앞의 상황을 정리해야 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대충 감이 잡혔다.

 

저는 오늘 답사를 하려고 이 자리에 나온것이 아닙니다.”

 

말을 내뱉는 순간 모두의 시선에 경이의 빛이 내비쳤다.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잠깐 숨을 들이켰다.

 

저는 사실...여러분들과 작별인사를 하러 이 자리에 나온것입니다.”

 

장내가 다시 술렁였다.줄곧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주영진의 얼굴에도 한순간 경악의 표정이 어렸다.

 

한정아씨...”

대표님,잠시 제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주영진을 보았다.내 눈빛이 전달하는 의지가 하도 간절해보였는지,그가 말없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바로 스테이지를 내려갔다.나는 몸을 돌려 눈익은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여러분은 파랑새의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습니까.”

 

다들 내가 무슨 말을 하냐는듯 당혹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있었다.고통스러운 표정의 전무마저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그들과 함께 했던 하루하루가 내 눈앞에서 얼른거렸다.내 어조가 한결 편안해졌다.

 

1906년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아동극입니다.후에 동화로 각색되어 전세계에 퍼졌구요...

 

차분한 어조로 서두를 뗀 나는 잠깐 기억에 젖어 이야기의 내용을 더듬었다.

이 동화의 내용을 본다면,소년 틸틸과 소녀 미틸에게 어느  늙은 요정이 찾아옵니다.요정은  아픈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파랑새가 필요하다며 남매에게 파랑새를 찾아 것을 부탁하죠.

그 동화 읽어본적이 있어요.”

누군가 불쑥 말했다가 금세 수그러들었다.나는 그쪽을 바라본후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요정은 틸틸과 미틸에게 다이아몬드가 박힌 모자를 건네고,모자를  아이들의 앞에 신기한 광경이 펼쳐집니다.늙은 요정이 젊고 아름답게 보였고,,우유,사탕,,,고양이,개의 영혼을 볼수 있게 거죠.그렇게 틸틸과 미틸은 이 수많은 영혼들과 함께 파랑새를 찾아 떠나고,시간의 안개를 뚫고 추억의 나라에 도착한 틸틸과 미틸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며,궁전과 숲,묘지 등 미래의 왕국을 전전하지만 그 어디에도 파랑새는 찾을수 없었습니다.”

다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나는 쓸쓸한 미소를 얼굴 한가득 머금었다.

결국 손으로 집에 돌아온 틸틸과 미틸은 영혼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지는데,다음날 아침, 잠에서 틸틸과 미틸은 집안의 새장에 있던 새가 바로 파랑새라는것을 깨닫게 됩니다.틸틸과 미틸이 반가운 마음에 새장을 여는 순간,파랑새는 멀리 날아가 버리죠...”

모두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나는 고개를 떨구었다가 다시 기운을 추스르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야기 속에서 파랑새는 '행복' 의미합니다.틸틸과 미틸이 파랑새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지만 결국 자신들의 집안의 새장에서 파랑새를 찾게 되는 모습을 통해,우리는 우리의 행복은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얻게 됩니다.”

나는 좌중을 둘러보면서 조용히 이 이야기를 끝맺었다.

여러분들의 파랑새는 무엇입니까.그리고 그 파랑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왜 퀸즈를 떠나려는거에요?”

 

장내의 침묵을 뚫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나는 목소리의 임자를 찾아 또 한번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권혜경씨...여기 계신 분들께 파랑새는 퀸즈일지도 모르지만,적어도 제게는 퀸즈가 파랑새가 아니라는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떠나는겁니다."

"..."

"저는 저만의 파랑새를 찾아야지요.저때문에 마음고생 심하셨을텐데,저의 이 늦은 결정이 작게나마 보상이 되면 좋겠어요.”

 

말을 마친 나는 좌중을 향해 다시 깊숙히 허리를 굽혔다.

 

그동안 저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을 겪으셨다면 다시한번 사과 드립니다.퀸즈에 있는동...고마웠습니다.”

 

......

 

한매니저님....”

한정아씨...”

정아씨...”

 

파티장 입구로 우르르 따라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고개를 돌려보니 인터넷 사업부 팀원들뿐만 아니라 이진희까지 뒤에 따라나선게 보였다.

 

이렇게 가면 어떡해요...”

 

신입사원 향이가 나를 잡고 울먹거렸다.윤지영과 화숙이도 불안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나는 그들을 향해 최대한 밝게 웃어보였다.

 

다들 나 없어도 잘하시면서....향이 넌 회사 업무외의 일에 관심갖는 버릇은 좀 자제해.매니저가 아닌 선배언니로서 충고야.”

...”

지영씨 추진력은 좋은데 성격은 죽일 필요 있어요.진희씨니까 감당하지 다른 모델분들은 맞붙을거에요.”

“잘 알겠습니다.”

화숙씨는 도매거래처 사장님들을 유연하게 대처하는것도 좋지만 가끔 경우에 따라선 강하게 밀어붙일 기회도 잃지 마셨으면 해요.”

...명심할께요.”

령이와 은희는 업무 파트너로선 최상이니까 앞으로도 쭉 그 관계 유지해요.단독업무처리는 나중에 차차 보완하구요.”

.알겠어요.”

 

모두 어쩌면 이리도 고분고분하지 싶었다.나는 미소띈 얼굴로 권혜경을 돌아보았다.

 

권팀장님껜 제일 죄송해요.그날 그렇게 불쑥 찾아가서 본의아니게 무례한 말들을 했는데...”

제가 그동안 한 무례한 행동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그녀가 석연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바싹 그녀에게로 다가섰다.그리고 그녀의 귀가에 대고 나직히 속삭였다.

 

그날 제가 한 말들은...잊어줘요.”

걱정말아요.그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에요.”

 

우리는 서로의 손을 놓고 처음으로 홀가분하게 웃었다.모든 적대적인 감정을 내려놓은 웃음이었다.

 

연연해하는 그녀들을 떼어놓고 나는 이진희를 일별한후 담담히 고개를 돌렸다.파티장을 나와 택시를 잡으려는데 그녀가 어느샌가 바싹 뒤따라와 있었다.그리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채 입을 열었다.

 

이시간에 택시 잡기 힘들걸요.내 차로 가요.”

파티 안끝났어요.”

내 일은 끝난거 같아요.”

 

그녀답지 않은 선문답이었다.나는 일단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운전을 하면서도 그녀는 내게 한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차안에서 무거운 침묵이 흐르다가 드디어 내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할 얘기가 있어서 나온게 아닌가요?”

맞아요.”

말해요.”

경추병은 좀 괜찮아졌어요?

“설마 그거 물어보려 나온건 아니죠?”

“...”

이러다 집 다 도착하겠는데요.”

정아씨가 회사 떠나는게...부장님때문인가요?”

 

드디어 던지는 그녀의 돌직구식 질문에 나는 언뜻 미간을 구겼다.그리고는 천천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닌데요.”

그러면 부장님이 회사 떠난게...정아씨때문인가요?”

왜 그렇게 묻죠?”

그분...그렇게 쉽게 퀸즈 포기하는 분 아니셨어요.”

 

운전대를 쥔 이진희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게 보였다.하지만 여전히 운전에 열중한채 그녀가 말했다.

 

내가 사심 품고 접근하는걸 번연히 알면서도,공과 사를 섞은 일 질색하는 분이면서도 퀸즈 위해서 내게 웃어준 사람이에요.직무해제를 당하고 허명만 남게 되었어도 회사 떠나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

그런 분이 갑자기 회사를 떠나는 결정을 하다니...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

그리고 파티장 나왔으면 그런 분을 찾아볼 생각도 안하고 집부터 가려는 정아씨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이진희의 말이 날카롭게 내 가슴을 찔렀다.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앞만 보았다.

 

그런 눈길로 날 보지 말아요.내가 그동안 화냈던게,고작 정아씨와 부장님의 그런 사이 알아서 그랬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아씨가 날 잘못 안거에요.”

“...”

내가 화난건,당신 그런 태도...친구를 친구처럼 대하지 않고,연인을 연인처럼 대하지 않는 그런 태도에요.친구라면 모든일 다 공유해야 하고,연인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관심해야 하는게 인지상정이 아닌가요.”

“....”

부장님 좋아한다면 내가 화낼거 같았어요?그래서 그렇게 되도록 말 못했던거에요?”

“...”

지금 부장님한테 간다면 누가 비웃을거 같았어요?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척 집으로 가는거에요?”

당신이 뭘 알아.”

 

내 눈에 차츰 물기가 어렸다.그것이 눈물이 되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눈에 힘을 주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내가 당신보다 더 잘 알아....그래서 불안했던거고,그래서 사표도 냈었어.꺽지 않으면 꺾이는 사람....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그리고 난 더이상 내 눈앞에서,그 누구도 그렇게 무너지는걸 원하지 않았어.그 사람....그걸 분명 알기때문에 모든걸 포기하고 자기가 떠나는거라고...”

 

내 목소리가 천천히 잦아들었다.이진희가 앞을 주시한채 잠깐 허탈한 미소를 짓는게 보였다.

 

그럼 내가 짐작한게 맞았네요.부장님은 당신때문에 이 회사 떠나는거 맞고.그리고 당신은 그걸 알면서도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파티 쫑내고 집으로 간다는거.”

당신이 따라나와서 그런거잖아!당신 눈치 보느라,내가 가고싶은곳도 못대잖아!”

 

나는 드디어 이성을 잃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급작스러운 내 태도변화에 이진희가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다.급히 길옆에 차를 세운 그녀를 나는 뚫어지게 노려보았다.그제야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마주했다.그리고 나는 발견했다.그녀 눈에 스치는 가벼운 웃음기를.내 어께에서 금세 힘이 빠졌다.

 

미안해요...”

아까처럼 반말해도 돼요.난 당신보다 두살이나 적은데.”

 

고개를 숙인 내게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야 한정아씨 답네요.난 당신 당당한 모습도 좋고,가끔씩 내게 주는 신선한 충격도 좋았어요.친구로서 제격이었어요.”

“...”

말해봐요,가고싶은 곳이 어딘데...거기로 바로 모셔다드리죠.”

“...”

내 눈치 보느라 할거 없다니까요.솔직히 그게 꽤 오랜 시간동안 고마웠긴 했지만.”

“...”

친구 눈치 보랴,회사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으랴...뭔 연애를 그리 힘들게 해요?이런건 진짜 비호감인데.”

 

내가 꽤 오랜 시간동안 아무 말이 없자 그녀는 답답하다는듯 한숨을 쉬었다.그리고는 시동을 걸었다.

 

당신이 못정하면 내가 정해드리죠.에이...이젠 탑모델인데 이런 기사노릇까지 해야 하고...젠장...”

 

나는 대답대신 좌석에 몸을 깊숙히 기댔다.열어젖힌 차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들어왔다.차는 이진희의 명쾌한 웃음을 싣고 바람을 가르며 내가 바라는 한 방향을 향해 질주했다.한참 머리를 식히던 나는 문득 어디선가 진동이 느껴져서 가방에 손을 넣었다.파티에 참석하느라 핸드폰 벨소리를 진동으로 바꿔놓았더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통 와있었다.나는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뭔일이야?집에 쌀이라도 떨어졌냐?이렇게 불티나게 전화한거 보면...”

"한정아...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핸드폰 저쪽에서 들려오는 경이의 떨리는듯한 목소리에 내 입가의 미소가 천천히,차갑게 굳어졌다.

 

......

 

하루사이,그것도 다만 몇시간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경험한 사람이 있다면,나는 당장 그 사람을 붙들고 한번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대체 그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어떻게 버텨왔냐고.

 

믿음과 배신,7년전에 똑같이 겪었던 일들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더이상 7년전의 한정아가 아니다.아니,어쩌면 7년전보다 더 취약하게,더 깊게 상처입는 인간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과거는 흘려보내면 되는줄 알았다.아무리 깊은 상처도 세월의 흔적앞에서는 색이 바래는줄 알았다.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추억이 7년후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을줄은,그리고 그토록 조심했던 내가 또한번 깊숙히 배신의 칼날에 베일줄은.그 날카로운 칼날은 내게 새로운 상처를 만들었을 뿐만아니라,지난날의 깊은 상처까지 끄집어내어 그 뿌리마저 낱낱이 도려내고 있었다.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에 나는 숨을 쉬기조차 버거웠다.

 

비틀비틀 회사에 도착한후 곧추 45층으로 향했다.층계를 에돌아 옥상으로 향한 문을 열었다.내 짐작대로 그의 모습이 보였다.여전히 낮은 난간앞에 서서,그는 불빛이 명멸하는 이 도시의 밤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때 한번 나를 숨막히게 했던 그의 슬픈 뒷모습이,이제는 그토록 가증스럽게만 보였다.

 

인기척소리에 그가 몸을 돌렸다.아마 뒤에 서있는 내 얼굴이 보기에도 무섭게 창백해보였는 모양인지,둬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그가 코트를 벗어 내 단촐한 어깨를 감쌌다.순간 울컥 하는 느낌과 함께 가슴 시리게 진한 아픔이 스친다.나는 잠깐 고개를 숙이고 표정을 추스렸다.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 차거운 시선을 들었다.

 

냉정하게 어깨를 떨쳐내며 그의 코트가 미끌어져 바닥에 떨어지는것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나의 결연한 모습에서 그가 뭔가를 눈치챈 모양이다.입꼬리가 살짝 비틀리며 그가 웃고있다.참담한 미소였다.

 

오늘 당신,유난히 예쁘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그의 영혼없는 칭찬을 뒷전으로 하고 말없이 옥상 난간으로 다가섰다.그의 표정이 일순간 경직되는것을 잠깐 바라본후 나는 시선을 돌렸다.낮은 난간앞에 서서 가만히 두팔을 벌리고 나는 눈을 감았다.입가에 묘한 미소를 담으며 두발을 살짝 든것은 언제부터 꼭 한번 하고싶은 행동이기도 했다.

 

안돼...”

 

뒤에서 와락 끌어안는 힘에 중심이 앞으로 쏠리며 내 심장이 한박자 놓친후 다시 크게 뛰었다.

그의 팔을 풀어낸후 돌아서서 말없이 그를 보았다.그리고는 손을 올려 사정없이 그의 귀쌈을 쳤다.

 

...”

 

그가 아무 말없이 나를 본다.모든것을 체념한 눈빛으로,그런 낯선 얼굴로 마주선 우리 사이로 차거운 겨울바람이 파고들었다.그를 노려보는 내 눈에서 천천히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리고 나는 보았다.그의 눈에 알릴락말락 번지는 물기를.내가 힘든만큼,그도 힘들었을까.이제는 드디어 이 모든것을 내려놓을 시간이 온것일까.

 

그동안 내게 왜 미안하다고 했는지...이제야 이해가 가네.”

 

애써 담담함을 가장하는 내 말에 그가 깊숙히 고개를 떨구었다.그러던 그가 잠시후 시선을 들었다.

 

여기 있는건 어떻게 알았지?”

당신 집에 갔었어.그리고 이것을 들춰왔지.”

 

나는 한손에 들고있던 묵직한 앨범을 그에게 들어보였다.그의 얼굴이 한결 더 참담해지는것을 보며 나는 온 세상을 다 잃은듯 텅 빈 미소를 지었다.그리고는 그것을 그의 발치에 메치듯 내려놓았다.

 

나에 대해 이처럼 철저하게 알고 있으면서,막상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건 아직 깨닫지 못했나보네.”

 

그의 발치에 흩어진 앨범이 다시 내 눈안에 들어왔다.그것이 내 눈을 자극하여 나는 시선을 돌렸다.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가 한 약속 기억나지?

...

이제 더이상 내게 숨기는 일은 하지 말아달라고.그것이 나를 위했든,그 누구를 위했든...”

“...”

그때 이 모든걸 얘기했더라도,나 어쩌면 당신 용서할수 있었을지도 몰라.”

“...”

뭐 당신같은 사람에겐,내가 용서하고 말고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닐테지만.”

“...”

매사 치밀하고 계산적이며 모든것을 계획하여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당신...당신같은 사람은,악마보다도 더한 사탄이야...!”

 

밤바람이 차가웠는지 그가 흠칫 몸을 떠는게 보였다.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그에게 모진 말을 하면 쾌감이 생길줄 알았는데 상황은 그와 정반대였다.내가 내뱉은 말이 그대로 고스란히 비수가 되어 내게 되돌아왔다.

 

피가 터지도록 입술을 씹다가 나는 단념하고 돌아섰다.더이상 어떤 말을 해도 돌려세울수 없다는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처음으로 하늘을 원망했다.그리고 내자신도...나는 왜 하필 7년후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까.

 

차거운 바람결에 흩어진 앨범속에서 빠져나온 사진 한장이 나의 앞으로 날려왔다.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사진속에서는 지금의 나보다는 훨씬 앳되어보이는 7년전의 익숙한 얼굴이 그토록 환하게 웃고있었다.

 

또 한번 눈앞이 흐릿해졌다.나는 색바랜 사진속의 나의 앳된 모습을 가로질러,그 어떤 미련을 자르려는듯 크게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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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새해인사 드립니다.^^*2014년 새해에 자작글 식구모두 몸 건강히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네요.

글이 어두운 방향으로 흘러가 다소 답답한 점이 있더라도 양해 부탁드려요.원래 여명전의 암흑이 제일 어둡다고 했으니까요.모든것이 밝혀지기 시작하니 우리 주인공들도 자기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가질거라 믿습니다.

새드라고 걱정하시는 분들,제 글 특성상 새드는 나오지 않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스포일러 드리겠습니다.

늦은 업뎃주기에도 회마다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항상 고맙습니다.올 한해도 행운이 깃들기를.^^


추천 (7) 선물 (0명)
IP: ♡.68.♡.176
핑크빛바램 (♡.208.♡.140) - 2014/01/04 08:22:16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I판도라I (♡.68.♡.176) - 2014/01/05 00:46:33

핑크빛바램님,매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피투데이 (♡.70.♡.7) - 2014/01/04 17:13:45

파티현장에서 떠날때 직원들과의 작별인사가 참 멋졌습니다.
역시... 한정아는 멋지고 파워 있는 매력적인 여성 같습니다.
7년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고비만 넘으면 해피엔딩이 될듯 싶은데...
솔찍히 50회까지 말고 좀 더 연장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매번 읽으면서 새로이 배우는게 많아서 끝나면 디게 아쉬울거 같습니다.
아무튼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 좋은 글들 많이 써주시길 바랍니다^^

I판도라I (♡.68.♡.176) - 2014/01/05 00:49:33

해피투데이님,한정아의 파랑새 이야기에 공감하시나요?^^7년전 일이 다음회에 본격적으로 밝혀질것 같습니다.다만 50회이상은 무리일것 같습니다.ㅋㅋ이 글 끝내면 시간여행 글 한편 시작하려고 하니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될거 같네요.다음 글은 조선 여시인 허란설헌의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자작글마당에 좋은 글 많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새해에도 건필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아이야 (♡.92.♡.154) - 2014/01/04 17:40:19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만입니다. ㅋ

I판도라I (♡.68.♡.176) - 2014/01/05 00:50:19

아이야님,오랜만입니다.님이 안보이셔서 저 혼자 옷을 대충 만들어 입었답니다.ㅋㅋ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빙점 (♡.124.♡.250) - 2014/01/05 22:12:24

올해도 대박나세요. 꼭마치 글속의 주인공이 쓴 실화같네요.
슬픔속에서 인생 돌이켜보면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 참 멋져요. 판도라님.

I판도라I (♡.65.♡.242) - 2014/01/06 16:56:46

빙점님,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건,어쩌면 우리의 파랑새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죠.멋지다고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newsky (♡.239.♡.170) - 2014/01/06 16:39:23

이제 서서히 과거스토리가 밝혀지는건가봐요.
판도라님의 글 구상능력은 참 좋으신것 같아요.
앤딩을 보기전까지는 전혀 예상을 할수가 없는게 또 다음집을 기다리게 되네요.
이번 회도 잘봤습니다~

I판도라I (♡.65.♡.242) - 2014/01/06 16:59:53

newsky님,다음회에는 그동안 참아왔던 답답함이 드디어 풀리게 되겠죠?ㅋㅋ이 글을 쓰면서 사건의 진상을 누구 입을 통해서 알게 되는게 가장 자연스러운지 생각해보았습니다.주인공이 직접 말하는건 좀 그렇더라구요.^^경이의 등장이 그 매개체가 될듯 합니다.다음집은 좀 빨리 업뎃하도록 할께요.

노벨과개미 (♡.214.♡.43) - 2014/01/07 17:01:28

정아씨는 뭐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걸가요 ..참 너무 힘드네요 ..부장님도
아마도 둘은 7년전에 알던 사이인것 같기고 하지만
인생 어떤때 너무 완벽함을 추구하면 넘 힘들것 같네요..
둘의 사이에 뭔가가 잇는것 같지만 그래도 이 두사람이 맺힌 앙금이 풀리고
두루두루 따지지 않고 행복하기만을 바랍니다
작가님 글은 항상 구성이 드라마를 보는 그런 느낌 눈앞에 다가오는데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같은 마니아층을 만드는 그런 느낌이 드네요

새로운 한해도 좋은 작품 기대합니다 ..항상 건필하세요

I판도라I (♡.65.♡.242) - 2014/01/08 00:24:58

노벨과개미님,우리 주인공들 좀 쉽게 가는 성격들이 아니죠?^^둘은 7년전 알던 사이이긴 하지만 서로는 아니었던것 같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은 싫어해서 과정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다보니 해피엔딩이어도 통쾌하지 못한 느낌을 줄거 같아요.^^암튼 그래도 해피라는걸 감안해서 참고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노희경작가 저도 좋아하는 작가입니다.말은 이리 하고있지만 작년봄과 올해봄엔 송재정작가의 드라마에만 빠지있긴 했지만요.^^올 한해 노벨님도 몸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기원해드릴께요.^^

천사LQve (♡.91.♡.65) - 2014/01/07 18:01:16

경이의 등장이라..... 7년전 그 사람이라....
진짜 다음집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고 또 궁금하고...
언니의 머리속은 어떻게 생겼는지 더 궁금하다눙..ㅋㅋㅋ
언냐,, 지난 한해 동안에도 수고 많았슴다...
올 한 해도 빠샤 하공..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

I판도라I (♡.65.♡.242) - 2014/01/08 00:26:49

천사동생,이번집 좀 터졌으니 다음집은 잔잔하게 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있어.^^이렇게 생각을 미리 알려주면 내 머리속을 연구하는 일이 없겠지?ㅋㅋ새해에 우리 천사동생에게 좋은 일들만 생기길 기원할께.^^

볼매여자 (♡.4.♡.114) - 2014/01/08 13:46:50

잘보고갑니다 ~~

I판도라I (♡.32.♡.153) - 2014/01/09 02:14:20

볼매여자님,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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