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剪灯 6

xingyu | 2013.12.13 11:01:18 댓글: 8 조회: 900 추천: 3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1992145


                                      (  3  )

 

 

 한차례의 가을비가 지나간 뒤 바람은 부쩍 차가워졌다.

 아침나절부터 달래가 먼지털이를 한다고 부산을 떨었다. 그  바람에 군불을 지폈던

방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명월이는 반닫이를 열고 털배자를 꺼내 입었다. 겨울도 오기전 배자를 입는 일이 남

우세스럽지만 으슬으슬 추워지면 병이 도지는지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였다.

 바느질감을 끼고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이어 밀치고 당기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장지문을 와락 젖히고 들어섰다.

 허엽의 어미 마님 김씨였다. 가느다란 눈매, 얄팍한 입술에 한기는 여전한데 광대뼈

가 유난히도 튀여나와있었다.

 그간 맘고생이야 오죽했으랴. 한창 세도를 부리던 허씨가문이 한순간 몰락할줄이야.

것도 역모의 죄를 둘러쓰다니... 허대감에 이어 대들보같이 철썩 믿고 의지하던 아들

허엽마저 오라에 묶여가자 마님 김씨는 식음전폐하고 자리에 누워버렸다. 인심은 흉

흉하여 부리는 아랫것들마저 주인을 업수이 여기는것 같아 김씨는 심기가 많이 불편

하였다. 그러던 중 아랫것들이 수근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며느리가 기방출입을

한다는 망측한 소문이였다.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처에서 허씨가문을 옭아매오는

데 근신해도 모자잘 판국에 기방출입이라니... 김씨가 며느리를 불러다 크게  꾸짖으

니 눈물을 보이며 아버님과 지아비의 구명을 위한것이라 여차여차 해명을 하였다.

 자초지종을 듣고난 마님 김씨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이 어린 며느리도 구

설수를 무릅쓰고 기방출입도 마다않는데 시어미가 넋 놓고 지켜볼수만은 없었다. 하

여 김씨는 며느리 대신 명월이라는 기생을 만나러 온것이였다. 아들의 목숨줄이 달린

일이였다. 기생년이 아니라 저승사자라도 기꺼이 만나리라 마음을 굳게 먹고 왔었다.

허나 막상 명월이와 마주한 김씨 마님은 목석마냥 굳어져 메마른 입술이 저절로 헤벌

어졌다.

 

 " 제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습니다요... "

 

 

 달래가 마님 김씨 뒤에서 쭈삣하며 입을 실룩거렸다.

 

 " 됬다. 차를 들이거라. "

 " 들어오시지요. "

 

 명월이는 손에 들린 일감을 내려놓고 옷맵시를 바로 잡았다.

김씨 마님은 뭐에 홀린듯 멍하니 있다 장지문 닫히는 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몰래 허벅지를 꼬집어보니 생시인듯 싶었다. 명월이 가까이 다가가 그 곁에 놓인 바

느질꺼리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이 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찻잔을 잡은 김씨 마님의 손이 바르르 떨리었다.

 

 " 어인 일로 누추한 곳을 찾아오셨는지요... "

 

 마님 김씨는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으며 명월이를 다시 찬찬히 훑어보았다. 옥색저고

리에 미색치마를 받쳐입고 옥비녀를 꽂은 자태가 기녀라기엔 너무도 도도하고 요요한

모습이였다. 이미 종년티는 벗은지 오래다. 어디 그 뿐인가. 마주하고 앉은 자리도 뒤

바뀌었다. 세월은 그만치 많이 흘렀다.

 

 " 어찌 된 일인게냐, 네가 어찌 이 곳에 있는게냐? "

 " 마님께선 뭔 말씀을 하시는지... 쇤네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군요. "

 " 네 달이 아니더냐? "

 

 좀전만 하여도 곤혹스럽게 흔들리던 김씨 마님의 시선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 심신이 약하시어 헛것이라도 보이는겝니까. "

 " 허! "

 

 김씨 입에서 콧바람소리가 새여나왔다. 서슬 퍼런 눈초리가 다시 명월이를 쏘아보았

다. 찻잔을 든 명월이 모습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태연하다.

 

 " 그럼 내가 귀신을 본게로구나. "

 " 암요. 마님께서 손수 무덤까지 만들어주셨으니 아마 저승에서도

 감지덕지하고 있을겝니다. 허니 더는 불러내지 마세요. "

 " 하! 이런... "

 

 고얀년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용케도 집어삼키는 김씨다. 체통도 벗어

던지고 온 연유가 무엇이더란 말인가. 오직 아들 엽이의 구명만이 가장 중한것이였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나서 입을 열었다.

 

" 좋다. 내 실은 네게 청이 있어 왔네라. 들어준다면 사례는 후히 할것이야... "

" 저같이 미천한것한테 무슨 힘이 있다고 청을 하시는겝니까. "

" 좌의정대감이 너를 귀히 여긴다들었다만. "

" 가당치 않습니다. 아무리 귀히 여긴다하여도 일개 기녀따위가 감히

 정사를 입에 올릴수 있단 말... "

" 대감마님은 대시집행이니라. 허씨 문중의 장손인 엽이만큼은 살려내야

 하느니라. 엽이와의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

 

 그토록 두 사람을 갈라놓지 못하여 안달하던 그 입에서 정이란 소리를 끄집어내다니

... 명월이는 역겨움마저 느꼈다.

 

 " 쇤네는 모르는 일이옵니다. 굳이 정을 물으시려거든 무덤속에 들어

 앉은 달이와 그 뱃속에 품은 어린것에게 물으세요! "

 

 가냘프기만한 그 얼굴에서 살기마저 어린 눈빛을 읽는 순간 김씨 마님의 마지막 남은

한가닥 희망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 이런 몹쓸것, 배은망덕한것같으니라구... 애초에 거둬주는것이

 아니였거늘. 네 아비랑 역모죄로 죽게 내버려뒀어야 했는데... ... "

 

 절망의 나락으로 가라앉은 김씨의 입에서 주저없이 독설이 튀여나왔다.

 

 " 내 언제 니년 죽으라했더냐? 대감마님 가엽게 여기어 살려주었거늘

 귀신노릇하며 화냥질을 일삼는구나. 두고 볼것이야, 은혜도 모르는

 니년한테 하늘이 곧 천벌을 내릴게다! "

 

 비틀거리며 일어선 김씨 마님은 끝없이 저주를 퍼부으며 장지문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

 

 

  칠흙같이 어두운 밤.

 갓을 쓴 사내가 길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잠시후 초롱 든 어린 계집 하나 앞세우고

장옷을 뒤집어쓴  여인네가 골목길 끝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 기어이 만나야 하겠는가? "

 

 사내가 재차 묻자 여인네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머뭇거림도 잠시 일행은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어느덧 의금부의 여느 옥사앞에 당도하였다. 사내는 옥졸에게 호패를 보여주고 어린

계집아이만 남겨두고 여인네와 함께 옥사로 들어갔다.

 곰팡이 썩은 냄새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사내도 참기 어려운지 손으로 코를 싸

쥐었다. 군데군데 횃불이 걸려있긴 하나 어두운 구석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

워져 있었다. 앞장섰던 옥졸이 자리에 멈춰섰다.

 

 " 바로 이곳입니다요. "

 

 옥졸이 자리를 떠나자 장옷을 벗은 여인네가 나직히 부른다.

 

 " 도련님... "

 

 몇번이고 불렀으나 역시 기척이 없다.

 

 " 허엽이. "

 

 보다못한 사내가 이름을 부르자 허깨비마냥 벽에 붙어있던 허연 그림자가 움틀거리

더니 팔꿈치로 기여서 더 구석진 곳으로 숨어들었다. 다리가 부러진 모양이였다.

 

 " 이보게, 허... "

 

 사내의 도포자락을 잡으며 여인네는 그만하라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다시 옥사를 나선 두 사람.

 

 " 명월이 자네 괜찮은겐가? "

 

 사내는 초롱불에 희미하게 비치는 여인의 어지러운 눈빛을 바라보았다.

 

 " 어려운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청산나으리. "

 " 밤이 깊었네. 내 자네를 기방까지... "

 " 아닙니다. 저 아이와 함께 가면 됩니다. 나으리도 들어가셔서 쉬세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

 

 멀어져가는 명월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청산은 역시 괜한 부탁을 들어줬다 싶었다.

허엽. 청산의 죽마고우이자 또 하나의 당쟁의 피해자. 그는 이제 페인이 되었다. 고개

젖힌 청산의 두 눈에 어느덧 눈물이 맺혔다.

 

  

 

 

 

 

추천 (3) 선물 (0명)
나는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어른아이다......
IP: ♡.159.♡.18
세꼬 (♡.62.♡.51) - 2013/12/13 21:34:24

설마 여서 끝난건 아니겠지요... 오랜만입니다 xingyu님
쨴떵5까지 나왔을때 자작글방을 들러보고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답니다..이정도면 군을 뗄수 있을거라 생각했습죠 그리고 그뒤로 ...자꾸자꾸 이곳을 흘낏거리면서도 로그인이 귀찮아 댓글을 아꼇습니다

제가 어렷을 때는 이런 글풍들을 많이 본 것 같으나 요즘은 통 볼수가 없서서 그런 핑계로 드라마를 봅니다 하하하 그래도 어찌 글속에서 풍겨나오는 그 맛과 비교하겠습니까 그래서 님의 구수한 글들이 더 맘에 들고 기다려지나 봅니다 조미료없이 맛을 내는 글이 아주 진국입니다 ㅎㅎ 소녀 아 흠...소녀는 아니옵고 이 아줌니도 다음회 기다립니다 완전 본방사수 할것임돠~ ( ̄∇ ̄)づ

xingyu (♡.159.♡.18) - 2013/12/27 18:44:33

ㅎㅎ 세꼬님 늘 고마워요. 이렇듯 지켜봐주니 큰 힘이 되는군요.감사~ ^^

선션 (♡.106.♡.2) - 2013/12/17 14:43:36

단숨에 1회부터 쭈욱 봤습니다 역시나 xingyu님의 글은 재미가 있어요~

다음편 기다리겠습니다 ^^

xingyu (♡.159.♡.18) - 2013/12/27 18:45:15

감사합니다, 선션님~ ㅎㅎ

빛바랜 (♡.232.♡.199) - 2013/12/18 00:46:53

매회 고맙게 잘봅니다
잘 보았다구 인기척이라두 남기는게
그나마 맘이 편하군요 ㅎㅎ

xingyu (♡.159.♡.18) - 2013/12/27 18:47:14

뭐니해도 맘이 편해야지요 ㅎㅎ 고맙긴요, 제가 되려 고맙지요...

예의채 (♡.149.♡.162) - 2013/12/21 17:57:53

님의 글을 읽으면 소설가의 지문(地文)을 읽어가는 느낌입니다.그 바탕이 생활 분위기가 나고 부드럽고 제미 있습니다. 좋은 글 많이 올리세요.감사합니다.

xingyu (♡.159.♡.18) - 2013/12/27 18:49:53

과찬입니다. 그리고 ,, 고맙습니다 ㅎㅎ 틈나는대로 글을 올리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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