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7권 17~18

나단비 | 2024.04.15 13:49:22 댓글: 0 조회: 59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1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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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또 승리






노먼 더글러스는 11월 첫째 주 일요일, 정말로 교회에 나왔고 자기 말대로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메러디스 목사는 교회 계단에서 그와 마주치자 멍하니 악수를 하면서 건성으로 더글러스 부인도 잘 계시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잘 계시지 못해요. 내가 10년 전에 땅에 묻었거든요. 하지만 그 사람은 지금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군요.”
노먼 씨의 천둥소리 같은 대답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겁을 먹기도 했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메러디스 목사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오직 그날 한 설교 마지막 부분이 듣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전달되었나 하는 것뿐이었지, 노먼 씨가 자기에게 한 이야기나 자기가 그에게 한 말은 조금도 없었다.
노먼은 정문 앞에서 페이스를 불러 세웠다.
“레드 로즈, 나는 약속을 지켰다. 약속을 지켰다고. 이제 12월 첫째 주 일요일까지는 자유야. 좋은 설교였어, 아주 좋은 설교였다고. 네 아버지는 얼굴보다는 머리에 든 것이 더 많은 사람 같더구나. 하지만 한 번은 모순된 말을 했다. 아버지께 전해드려라. 한 번은 말에 모순이 있었다고. 그리고 12월에는 유황이 펄펄 끓는 지옥에 관한 설교를 들으러 오겠다고 전하거라. 묵은해를 접고 새해를 맞이하기에 아주 좋은 설교지. 지옥의 맛과 함께 말이다. 새해에는 천당 이야기로 토론을 벌여볼까? 그것도 지옥 이야기만큼 재미있을 거다. 하지만 네 아버지 생각을 듣고 싶구나. 그 사람은 생각할 줄을 알아. 세상에 생각할 수 있는 머리를 가진 사람은 얼마 없지. 하지만 네 아버지 말에도 모순은 있었어. 아버지가 깨어 있을 때 이렇게 한번 물어보아라, 꼬마 아가씨. ‘하느님이 너무 커서 하느님도 들어 올리지 못할 만큼 큰 돌을 만들 수 있을까요?’하고 말이다. 잊지 말아라. 난 그 질문에 대한 네 아빠의 생각을 듣고 싶다. 내가 그 질문으로 목사들을 여럿 곤란하게 했었지.”
페이스는 그의 손에서 놓여나자 나 살려라 하고 집으로 달렸다. 문 옆에 서 있는 남자아이들 중에 댄 리즈가 보였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분명 입 모양으로 ‘돼지 계집애’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학교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놀렸다. 점심시간에 학교 뒤편 전나무 숲에서 페이스를 만나자 댄은 또다시 소리쳤다.
“돼지 계집애! 돼지 계집애! 수탉 계집애!”
전나무 숲 뒤 폭신한 이끼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월터 블라이드의 귀에도 그 소리가 들렸다. 월터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에는 불길이 일었다.
“너 입 다물어, 댄 리즈!”
월터가 말했다.
“아이고, 안녕, 미스 월터.”

댄이 외쳤다. 담장으로 뛰어올라 앉아서는 노래를 부르듯 모욕적인 말을 해댔다.

“겁쟁이, 겁쟁이 커스터드!
겨자 단지를 훔쳤대요.
겁쟁이, 겁쟁이 커스터드!”18)

“그 말은 바로 너와 부합해.”
월터는 경멸적으로 외쳤다. 월터는 부합이라는 말뜻을 어렴풋이 알았고, 댄은 전혀 알지 못해서 그 말이 틀림없이 욕이라고 생각했다.
“야, 겁쟁이! 네 엄마는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만 쓰고. 페이스 메러디스는 돼지 계집애야, 돼지 계집애, 돼지 계집애! 그리고 또 그 계집애는 수탉 계집애야, 수탉 계집애, 수탉 계집애! 겁쟁이, 겁쟁이, 바보야!”
댄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월터가 달려들어 한 방에 댄을 울타리 뒤로 자빠뜨렸기 때문이다. 미처 손쓸 겨를도 없이 댄이 당하고 말자 페이스는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댄은 벌떡 일어나더니 잔뜩 성이 나 자줏빛으로 변한 얼굴로 씨근거리며 나무 울타리로 다시 올라가려 했다. 그때 마침 종이 울렸다. 댄은 해저드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늦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끝마무리는 나중에 짓도록 하자, 겁쟁이.”

댄이 울부짖었다.
“언제라도 좋아.”
월터도 지지 않고 말했다.
“아, 안 돼. 그러면 안 돼, 월터. 댄하고 싸우지 마. 그 애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괜찮아. 그런 아이와는 상관하고 싶지도 않아.”
페이스가 반대했다.
“저 자식은 너를 모욕하고 우리 엄마를 모욕했어. 오늘 밤 학교 끝나고 봐, 댄.”
월터도 댄 못지않게 싸늘한 태도로 말했다.
“우리 아빠가 학교 끝나면 곧바로 집에 와서 감자를 주워오라고 했어. 하지만 내일 저녁이면 괜찮아.”
댄이 샐쭉해서 말했다.
“좋아, 내일 저녁, 이 자리에서.”
월터는 승낙했다.
“계집애 같은 네 얼굴을 흠씬 두들겨줄 테다.”
댄이 장담했다.
월터는 몸을 떨었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추함과 야비함이 혐오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교실로 들어갔다. 페이스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페이스는 월터가 비겁한 댄과 싸울 것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월터는 너무 멋졌다. 그리고 월터가 싸움을 하려 한다. 바로 자기, 페이스 메러디스를 위해서. 자기를 모욕한 것에 복수로! 그리고 물론 월터는 승리할 것이다. 그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저녁 무렵이 되자 페이스는 월터의 신뢰감이 좀 흐려졌다. 월터가 그 뒤로 학교에서 너무도 조용하고 기운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젬이었다면 좋을 텐데. 젬은 싸움을 아주 잘하잖아. 댄 정도는 순식간에 쓰러뜨려 버릴 거야. 하지만 월터는 싸움을 못 하잖아.”
페이스가 묘지의 헤저키어 폴록의 묘석에 앉아 우나에게 한숨 섞어 말했다.
“난 월터가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이야.”
싸움을 싫어하는 우나가 한숨지었다. 페이스가 보이는 미묘하고 비밀스러운 흥분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선 안 되지. 월터는 댄보다 몸도 더 크잖아.”
페이스가 불편한 심기로 말했다.
“하지만 댄이 나이는 더 많아. 거의 한 살이나 더 나이가 많다고.”
우나가 말했다.
“댄도 알고 보면 싸움을 몇 번 안 해봤어. 사실은 겁쟁이야. 월터가 자기와 싸우려고 들지 자기도 몰랐을걸. 그럴 줄 알았으면, 월터 앞에서 욕을 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너도 댄을 노려보던 월터의 얼굴을 보았어야 해, 우나. 나는 너무 놀라서 몸이 달달 떨리기는 했지만 기분은 짜릿했어. 월터는 꼭 토요일에 아빠가 읽어준 시에 나오는 갤러헤드 경19)같았다고.”
“두 사람이 싸운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빠. 그만두게 했으면 좋겠어.”
우나가 말했다.
“그만두면 안 돼! 이건 명예가 걸린 일이라고. 절대로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마, 우나. 만일 말을 하면 다시는 너한테 비밀을 털어놓지 않을 거야.”
페이스가 외쳤다.
“말하지 않을게. 하지만 나는 내일 남아서 싸우는 것을 보지 않겠어. 바로 집에 올 거야.”
우나가 약속했다.
“그래, 좋아. 나는 거기 있어야 해. 월터는 나를 위해 싸우는데 내가 있어주지 않으면 내가 못된 애가 돼. 내 리본을 월터의 팔에 묶어줄 거야. 내 기사에게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블라이드 아주머니가 내 생일날 준 예쁜 파란색 머리 리본이 있어서 다행이야. 월터가 이겼으면 좋겠어. 만일 져버리면 정말 수치스러울 거야.”
페이스가 그때 자기의 챔피언을 보았더라면 승리에 대한 기대는 더욱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월터는 정의에 분노를 품고 학교에서 집으로 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분노가 잦아들고 대신 무척 불쾌한 기분이었다. 내일 저녁에 댄 리즈와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월터는 싸우는 걸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 생각에서 단 1분도 벗어날 수 없었다. 많이 아플까? 월터는 아플까 봐 몹시 걱정이었다. 져버리면 창피해서 어쩌지?
월터는 저녁도 먹을 수 없었다. 수잔이 월터가 좋아하는 커다란 원숭이 얼굴 모양의 과자를 주었지만 그것도 넘어가질 않고 목에서 걸려버렸다. 젬은 그것을 네 개나 먹었다. 월터는 젬이 어떻게 저렇게 잘 먹나 이해할 수 없었다. 모두들 어떻게 먹을 것이 목으로 넘어가지? 어떻게 저렇듯 유쾌하게 떠드는 거야? 엄마 얼굴도 분홍빛으로 빛나고 눈도 반짝거렸다. 자기 아들이 내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다. 만일 엄마가 그런 사실을 알아도 저렇게 즐거우실까? 월터는 우울한 기분으로 생각해보았다. 젬은 새로 산 사진기로 수잔의 사진을 찍어 모두들 돌려가며 보았다. 수잔은 그 일이 몹시 못마땅하다고 화를 냈다.
“나는 미인이 아니에요, 사모님. 나도 그건 잘 알고 있죠.”
수잔이 기분이 상한 말투로 덧붙였다.
“하지만 이 사진만큼 그렇게 못생겼다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난 절대로 내가 이렇게 못생겼다고는 믿을 수 없어요.”
젬이 웃음을 터트렸고 앤도 따라 웃었다. 월터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벌떡 일어서서 자기 방으로 도망쳐버렸다.
“저 아이에게 뭔가 걱정이 있는 모양이에요, 사모님. 거의 먹지도 못했어요. 다른 시를 짓느라고 저럴까요?”
수잔이 말했다.
그때만큼은 가여운 월터의 기분이 황홀하게 반짝이는 시의 왕국과는 거리가 멀었다. 월터는 처량한 기분으로 열린 창가에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바닷가에 가자, 월터. 남자아이들이 오늘 밤 모래 언덕의 풀을 태운대. 아빠가 우리도 가도 된댔어.”
젬이 불쑥 들어와 소리쳤다.
다른 때 같았으면 월터도 신이 났을 것이다. 모래 언덕풀을 태우는 구경거리만큼 재미있는 일도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마디로 못 간다고 거절해버렸다. 같이 가자고 아무리 조르고 꼬드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젬은 실망으로 맥이 풀렸다. 포 윈즈 곶까지 그 먼 밤길을 혼자 걸어갈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젬은 자기만의 박물관 같은 다락방으로 들어가 책 속에 파묻혀버렸다. 실망감도 곧 잊어버리고 자기가 유명한 장군이 되어 위대한 전투에서 군대를 승리로 이끄는 장면을 상상하느라 간간이 책 읽기를 멈추기도 하면서 옛 모험의 낭만에 흠뻑 빠졌다.
월터는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그대로 창가에 앉아 있었다. 다이가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 조용히 들어왔다. 그러나 월터는 다이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다. 이 일을 털어놓으면 더 현실로 느껴지면서 도망치고 싶어질 것만 같았다. 생각만으로도 고문당하는 것 같았다. 창밖에서 마른 단풍나무 이파리들이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밋빛으로 물들었던 하늘에서 불꽃같던 빛이 사라지고 은빛으로 변하더니 커다란 보름달이 ‘무지개 골짜기’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 언덕 너머 지평선에는 숲이 붉게 빛나며 영광의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나는 소리도 똑똑히 들리는 차갑고 맑은 저녁 무렵이었다. 연못 저쪽에서는 여우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글렌 역에서는 기차가 증기를 품어내고, 단풍나무 숲에서는 어치가 소란스럽게 짹짹대고 있었다. 목사관 잔디밭에는 웃음소리가 퍼졌다. 사람들이 어쩌면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여우랑 어치, 기차는 어쩌면 저렇게 내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듯 행동할 수 있을까?
“아, 얼른 이 일이 끝나버렸으면 좋겠어.”
월터는 신음했다.
그날 밤 월터는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고, 아침 식탁에 앉아서도 수잔이 아끼지 않고 접시 한 가득 담아준 죽을 넘기느라 무진장 애를 써야 했다. 해저드 선생님도 그날만은 월터가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건성이기는 페이스 메러디스도 마찬가지였다. 댄 리즈는 자기 석판에 돼지 얼굴이랑 수탉 머리를 한 여자아이 그림을 그려 선생님 몰래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어디서 새어나갔는지 월터와 댄이 결투를 벌인다는 소문이 돌아 수업이 끝나자 남자아이들은 거의 모두 그리고 여자아이들도 많이 전나무 숲으로 모였다. 우나는 집으로 돌아가 버렸지만 페이스는 거기에 있다가 월터의 팔에 자기의 파란 리본을 매주었다.
월터는 구경꾼들 중에 젬이나 다이, 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에 안도했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소문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월터는 이제 꽤 용감하게 댄을 마주 노려보고 섰다. 마지막 순간이 되자 두려움은 사라졌으나 싸움이 싫고 혐오스럽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하지만 월터의 얼굴보다 댄의 주근깨투성이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상급반 남자아이의 신호로 댄이 먼저 월터의 얼굴을 쳤다.
월터가 좀 비틀거렸다. 잠시 아픔이 예리하게 온몸으로 퍼졌으나 곧 사라졌다. 전에는 결코 경험해본 적 없는 어떤 감정이 월터의 마음에 홍수처럼 몰려들었다. 월터의 얼굴에 붉은빛이 돌며 눈빛은 불길처럼 타올랐다. 글렌 세인트 메리 학교 학생들은 ‘미스 월터’가 이렇게 무섭게 돌변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월터는 몸을 홱 돌려 들고양이처럼 날쌔게 댄에게 덤벼들었다.
글렌의 남자아이들 싸움에는 특별한 규칙이 없었다. 그냥 서로 엉겨 붙어 치고 때리면 그만이었다. 월터는 야만스러운 분노를 내뿜으며 싸움을 즐겼고, 댄은 월터의 공격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승부는 곧 나고 말았다. 월터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으나 별안간 눈앞을 가렸던 붉은 안개가 걷히면서 자기가 댄의 몸을 타고 누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댄의 코에서는 끔찍하게도 새빨간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자, 이제 졌지?”
월터가 이를 악물고 따졌다.
댄은 마지못해 자기가 졌다고 인정했다.
“우리 엄마는 거짓말을 안 하지?”
“그래.”
“페이스 메러디스는 돼지 계집애가 아니지?”
“아니야.”
“수탉 계집애도 아니지?”
“아니라고.”
“내가 겁쟁이도 아니지?”
“아니야.”
월터는 ‘그럼 네가 거짓말쟁이지?’ 하고 물을 작정이었지만 더 이상은 댄을 놀리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피는 너무나도 보기 끔찍했다.
“그럼 가도 돼.”
월터가 경멸스럽다는 듯 말했다.
울타리 담장에 올라앉아 있던 남자아이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으나 여자아이들 중에는 울음을 터트린 아이들도 있었다. 너무 거친 싸움이었다. 학교 남자아이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는 것을 보기야 했지만 아까 월터가 댄의 멱살을 잡고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것 같은 일은 처음 보았다. 월터에게는 뭔가 무시무시한 면이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월터가 댄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싸움이 끝나자 모두들 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여전히 얼굴을 붉히고 긴장한 채 서 있는 페이스만 빼고.
월터는 그 자리에 머물러 승리의 기쁨을 맛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얼른 담장을 뛰어넘어 ‘무지개 골짜기’를 향해 가문비 언덕을 내려갔다. 승자의 기쁨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지만 의무를 다했고 명예를 회복했다는 어떤 평화로운 만족감은 있었다. 그러나 댄의 피투성이가 된 코가 생각나자 속이 메슥메슥해졌다. 그것은 너무나도 보기 흉했다. 월터는 보기 흉한 것이 싫었다.
월터는 자기 몸도 아프고 여기저기 상처가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술도 찢어져 부어올랐고 한쪽 눈도 느낌이 이상했다. ‘무지개 골짜기’에서 월터는 메러디스 목사님을 만났다. 오후에 웨스트 자매를 방문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엄숙한 신사가 월터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너 싸운 모양이구나, 월터?”
“네, 목사님.”
월터는 야단맞을 각오를 했다.
“무슨 일로 그랬는데?”
“댄 리즈가 우리 엄마가 거짓말을 하고 페이스는 돼지 계집애라고 해서요.”
월터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싸울 만도 했구나, 월터.”
“싸워도 괜찮다는 말씀이세요, 목사님?”
월터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항상은 아니지. 자주도 아니고, 가끔씩은 괜찮아. 그래, 가끔씩은. 예를 들어, 이번 일처럼 여자를 모욕했다거나 하면 말이다. 월터, 내 신조는 말이다. 꼭 싸움을 해야 할 때까지는 싸우지 않는다야. 하지만 한번 싸우기로 작정했다면 온 힘을 다해 싸워야지. 너도 여기저기 멍은 좀 들었지만, 내가 보기에 넌 잘 싸운 것 같구나.”
존 메러디스 목사님이 대답했다.
“네, 제가 다 갚아줬어요.”
“잘했다, 아주 잘했어. 난 네가 그렇게 잘 싸우는지 몰랐구나, 월터.”
“전에는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전 마지막까지 싸우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월터는 다 고백해버리기로 작정하고 말했다.
“그런데 싸우는 것이 기분이 좋았어요.”
메러디스 목사의 눈이 반짝거렸다.
“처음에는 좀 겁이 났지?”
“무척 겁이 났죠. 하지만 이제 다시는 겁나지 않을 것 같아요. 겁나는 마음이 실제로 당하는 일보다 더 나쁜 것 같아요. 내일 아빠에게 로브리지에 가서 이를 뽑겠다고 말할 거예요.”
월터는 정직하게 말했다.
“그래, 맞는 말이다. ‘두려움이 고통 그 자체보다 더 두려운 것이다.’라는 말이 있지. 누가 한 말인지 아니, 월터? 셰익스피어가 한 말이란다. 그 위대한 사람은 인간의 마음, 감정, 경험에 관해 모르는 일이 없었지. 집에 가면 엄마에게 내가 너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해드려라.”
그렇지만 월터는 엄마에게 그 말만 하지 않고 나머지 이야기는 모두 했다. 엄마는 월터의 마음을 이해했고 엄마와 페이스를 위해 용기를 내주어 기쁘다고 했다. 그리고 아픈 곳에 연고를 발라주고 아픈 머리를 향내 나는 것으로 문질러주었다.
“세상에 엄마처럼 좋은 엄마는 없을 거예요. 난 엄마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싸울 수 있어요.”
월터가 엄마를 껴안으며 말했다.
미스 코넬리아와 수잔은 거실에 있었는데 앤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모든 이야기를 해주자 즐겁게 귀를 기울였다. 특히 수잔이 무척 흡족해했다.
“월터가 그렇게 잘 싸웠다니 이렇게 흐뭇할 수가 없네요, 사모님. 이 일로 이제 월터는 시 나부랭이를 집어치울 수 있을 거예요. 나라도 그 댄 리즈 같은 못된 녀석은 참을 수 없었을 거예요, 절대로요. 불 가까이로 앉지 그래요,마셜 엘리엇 부인? 11월 저녁이면 꽤 추워요.”
“고마워요, 수잔. 그렇지만 난 안 추운걸요. 여기 오기 전에 목사관에 들러 몸을 녹이고 왔어요. 다른 곳엔 불이 없어서 부엌에서 몸을 녹였죠. 부엌이 꼭 부젓가락으로 쑤셔놓은 것처럼 온통 난장판이더라고요, 아, 정말이에요.메러디스 목사님은 안 계시더군요. 어디 갔는지 얘기는 못 들었지만 웨스트 자매 집에 갔다는 생각이 들어요. 있잖아요, 앤. 목사님은 올가을 내내 심심찮게 그곳에 가는데, 로즈마리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닐까 하고 모두들 말한답니다.”
“만약 목사님이 로즈마리와 결혼한다면 아주 멋진 아내를 얻게 되는 일일 텐데요. 그분은 참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아가씨였어요. 분명 요셉을 아는 종족임이 틀림없다고요.”
앤이 난로에 장작을 더 넣으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로즈마리는 감독교파예요. 물론 감독교파가 감리교인보다야 낫지만 난 메러디스 씨가 자기 교파 사람들 중에서도 좋은 아내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스 코넬리아가 회의적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죠. 내가 바로 한 달 전에도 메러디스 목사님에게 결혼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목사님은 내가 아주 부적절한 제안이나 했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제 아내는 무덤에 있습니다, 엘리엇 부인.’ 그러더군요. 아주 점잖고 성인군자다운 어조로요. 그래서 난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권유를 하지도 않았다고요.’ 하고 대꾸해주었어요. 그랬더니 더욱더 놀란 표정을 짓더군요. 그래서 내 생각엔 로즈마리 소문도 별 이야기 아닐 거라는 생각이에요. 혼자인 목사가 혼자 사는 여자 집에 두 번이나 방문했다면 곧바로 그 여자한테 청혼했다는 소문이 나기 마련이죠.”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메러디스 목사님이 너무 소심한 성격이라 두 번째 아내를 얻기 쉽지 않을 거예요.”
수잔이 엄숙하게 말했다.
“목사님은 수줍어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정말이라고요.”
미스 코넬리아가 말을 되받아쳤다.
“좀 얼이 빠져 있을 뿐이지요. 수줍어하는 것과는 달라요. 목사님이 그렇게 좀 멍하고 꿈속에서 사는 듯해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은 강하답니다. 사내들이 다 그렇죠, 뭐. 정신이 번쩍 났을 때는 여자에게 청혼하는 것쯤은 문제도 없어요. 다만 문제는 자기 심장을 땅에다 묻어버렸다고 믿고 산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처럼 목사님 심장도 자기 몸 안에서 팔딱팔딱 잘 뛰고 있는데도요. 목사님이 로즈마리 웨스트를 마음에 두고 있을지도 몰라요. 아닐 수도 있고요.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일을 잘 이용해야 해요. 로즈마리는 상냥하고 좋은 주부가 될 거예요. 그리고 저 가여운 버려진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줄 게 분명하고요.”
이어서 미스 코넬리아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결론지었다.
“우리 할머니도 감독교파였어요.”
18. 커스터드(우유·계란에 설탕·향료를 넣어서 구운 과자로 노란색)와 겨자(머스터드)모두 노란색이며, 겁쟁이를 나타내는 색은 노란색이므로 이런 노래가 생긴 듯하다.
19. 아서 왕 전설 속 원탁의 기사 중 한 명.





18
메리가 가져온 불길한 소식






엘리엇 부인의 심부름으로 목사관에 다녀온 메리 밴스는 ‘무지개 골짜기’를 기분 좋게 폴짝폴짝 뛰어 지났다. 토요일이니 ‘잉글사이드’에 가서 오후 내내 낸이랑 다이와 실컷 놀 작정이었다. 낸과 다이는 페이스랑 우나와 함께 목사관 숲에서 가문비나무 송진을 땄고, 이제 넷은 개울가 쓰러진 소나무 위에 걸터앉아 질겅질겅 열심히 송진을 씹고 있었다. 물론 송진 씹는 소리도 요란했다. ‘잉글사이드’ 쌍둥이가 송진을 씹을 수 있는 곳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무지개 골짜기’뿐이었지만, 페이스와 우나는 그런 규칙에 얽매어 있지 않아서 집에서든 밖에서든 마음껏 송진을 씹어 글렌 사람들의 눈총도 마음껏 받았다. 페이스는 교회에서도 송진을 씹은 적이 있었다. 제리가 보고 오빠로서 얼른 호되게 꾸지람을 해서 다시는 하지 않았지만.
“난 배가 고프단 말이야. 뭐라도 씹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오늘 아침 식사가 어땠는지 오빠도 잘 알잖아. 난 그렇게 졸아붙은 죽은 먹을 수 없어. 내 배 속이 비어서 이상한 느낌이 든다고. 송진이라도 씹으면 한결 나은데. 심하게 씹지도 않았어. 송진을 씹으면서 딱딱 소리도 내지 않았다고.”

페이스가 항의했다.
“어쨌거나 교회에서는 송진을 씹어선 안 돼. 다시 한 번만 그러다 걸렸단 봐라.”
제리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주 기도회에서 오빠도 송진을 씹었잖아.”
페이스가 외쳤다.
“그건 경우가 달라. 기도회는 일요일에 하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난 뒷줄 어두운 곳에 앉아 있어서 아무도 날 보지 못했어. 너는 맨 앞에 앉아서 모든 사람이 다 보고 있었잖아. 그리고 난 마지막 찬송가를 부를 때는 송진을 입에서 꺼내서 앞 의자에 붙여두었어. 그런데 그만 그걸 다시 떼어 갖고 오는 걸 잊어버렸어. 다음 날 아침에 가보았더니 누가 벌써 떼어가 버렸더라. 아마 로드 워런이 가져갔을 거야. 그거 정말 좋은 송진이었는데.”
메리 밴스는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무지개 골짜기’로 내려왔다. 붉은 조화 장미가 달린 파란색 새 벨벳 모자를 쓰고, 군청색 코트를 입고 귀여운 다람쥐 머프를 끼었다. 메리는 새 옷을 무척 의식하고 있었으며, 자기 모습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머리도 정성껏 곱슬곱슬하게 만들었고, 그새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 올랐으며 볼은 장밋빛에 하얀 눈은 반짝였다. 메러디스 아이들이 테일러 씨네 낡은 헛간에서 발견한 불쌍한 떠돌이 메리와는 너무나 달랐다.
우나는 메리를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메리도 이제 새 벨벳 모자를 쓰고 나타났는데 페이스와 자기는 이번 겨울에도 낡아빠진 회색 베레모를 써야 했다. 자기 집에서는 아무도 새 모자를 사줄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아빠한테 사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돈도 없는 아빠를 걱정만 시킬까 봐 말도 꺼내볼 수 없었다. 메리가 전에 목사님들은 돈이 궁해서 근근이 살아가기도 힘들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 페이스와 우나는 아빠에게 뭘 사달라고 해서 걱정만 시키느니 그냥 누더기를 입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사실 옷이 초라하다고 해서 그리 마음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나는 메리 밴스도 저렇게 멋을 부리고 나타나서 뽐을 내는데, 자기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새 다람쥐 머프를 보고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페이스도 우나도 머프는 가져본 일조차 없고 구멍 나지 않은 장갑이라도 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장갑에 구멍이 나도 마사 이모할머니 눈에는 보이지도 않으니 우나가 나서 꿰매보았지만 그 결과는 참으로 봐주기 어려웠다. 그런 사정이니 둘은 메리를 보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넬 수 없었다. 하지만 메리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찌나 무딘 아이인지 오늘 우나가 좀 이상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메리는 소나무 의자에 훌쩍 올라앉더니 거추장스럽다는 듯 머프를 벗어 나뭇가지에 걸쳐놓았다. 머프에는 빨간 공단 안감을 대어 고무줄을 넣었고 빨간 술도 달려 있었다. 우나는 추위로 새파래진 자기의 거친 손을 내려다보며 나는 언제나 저런 머프를 끼어보나 하고 생각했다.
“나한테도 송진 좀 줘.”
메리가 친근한 얼굴로 말했다. 낸과 다이, 페이스가 동시에 주머니에서 호박색 송진 덩어리를 꺼내 메리에게 주었다. 하지만 우나는 앉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래 입어 꼭 끼는 낡은 웃옷 주머니에 굉장히 큰 송진 덩어리가 네 개나 들어 있었으나 메리 밴스에게는 한 개도 주고 싶지 않았다. 단 한 개도. 송진을 씹고 싶으면 자기가 가서 따다 씹으라지. 다람쥐 머프를 가졌다고 온 세상이 다 자기 것이나 되는 양 착각하면 안 된다고.
“날씨가 너무 좋다.”

메리가 다리를 덜렁덜렁 흔들며 말했다. 그렇게 하면 윗부분에 멋진 천이 대어진 새 부츠가 훨씬 잘 보일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우나는 자기 발을 오므려 감추었다. 구두 한쪽 앞부리에 구멍이 났고, 구두끈이 끊어진 것을 하도 여러 번 이어서 온통 이은 자국투성이였다. 그래도 이 구두가 우나의 가장 좋은 구두였다. 저 메리 밴스를 낡은 헛간에 그대로 버려두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우나는 ‘잉글사이드’ 쌍둥이에게는 자기나 페이스보다 옷차림이 더 낫다고 해서 기분이 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아이들은 예쁜 옷을 입었다고 뽐내지 않았고, 옷차림에 신경 쓰는 일도 없었다. 예쁜 옷으로 다른 사람을 초라하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리 밴스는 멋지게 차려입은 옷을 뽐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걸을 때도 자기 옷에 취해 걷고 다른 사람이 모두 자기 옷만 생각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우나는 그 12월의 아름다운 날 오후, 벌꿀 색깔로 햇살이 내리비치는 곳에 앉아서 비참한 마음으로 자기가 입고 있는 옷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색 바랜 베레모, 하지만 그것이 우나의 가장 좋은 모자였다. 꼭 끼는 재킷은 3년이나 입은 것이었다. 치마에도 구멍이 났고 부츠에도 구멍이 났다. 속에 입은 옷들도 불충분하고 초라해서 추위가 몸속까지 파고들었다. 물론 메리는 남의 집을 방문하러 나온 것이다. 하지만 우나는 어디를 방문한다 하더라도 차려입고 나설 더 나은 옷도 없었다. 바로 그런 사실이 우나의 가슴을 아프게 찔러왔다.
“이 송진은 정말 좋다. 내 송진 씹는 소리 좀 들어봐. 저 아래 포 윈즈에는 송진을 딸 수 있는 가문비나무도 없어. 가끔씩 정말 송진이 씹고 싶어. 하지만 엘리엇 아주머니는 송진을 못 씹게 해. 숙녀답지 못한 일이래. 그 숙녀다운 일이라는 걸 나는 모르겠어.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다 따라할 수가 없어. 그런데 우나, 너 무슨 일 있는 거야? 왜 아무 말도 안 해?”

메리가 물었다.
“아니야.” 
우나가 다람쥐 머프에서 눈을 떼지도 못한 채 말했다. 메리가 우나 앞으로 몸을 뻗어 머프를 집더니 우나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속에 잠깐 손을 넣고 있어. 꽉 끼지? 정말 멋있는 머프잖니? 지난주에 생일 선물로 엘리엇 아주머니께서 주셨어.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칼라를 받을 거야. 엘리엇 아주머니가 아저씨에게 하는 말을 들었거든.”
메리가 말했다.
“엘리엇 아주머니가 너한테 무척 친절하게 해주시는 모양이구나.” 페이스가 말했다.
“응, 그래. 나도 엘리엇 아주머니께 상냥하게 대하고 있어. 아주머니가 편하게 지내도록 내가 열심히 일도 도와드린다고. 무슨 일이든 아주머니 마음에 들도록 하려고 해. 우리는 마음이 잘 맞는 동지 같아. 누구도 나만큼 엘리엇 아주머니와 잘 맞추어갈 수는 없을 거야. 엘리엇 아주머니는 무척 깔끔하셔. 그런데 나도 뭐든지 깨끗하게 하니까 서로 뜻이 맞는 거지.”
메리가 대답했다.
“아주머니가 절대로 널 때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내가 말했지.”
“그래, 내 몸에 손가락 하나도 대지 않아. 나도 엘리엇 아주머니께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았어. 단 한 번도 안 했어. 정말이야. 잔소리는 많이 하시지만 그런 건 금방 잊어버리고 표시도 나지 않는 거잖아. 오리 등에 물을 붓는 것처럼 다 튕겨져 나가버리거든. 우나, 왜 머프를 끼지 않는 거야?”
우나는 머프를 나뭇가지에 다시 걸쳐놓았다.
“고마워. 하지만 손이 시리지 않은걸.”
우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가 괜찮다면 됐어. 그런데 알렉 데이비스 부인이 아무 말도 없이 얌전히 교회에 돌아왔는데, 무슨 까닭인지 아무도 모른대. 그리고 노먼 더글러스를 교회에 나오게 한 사람은 페이스 너라고들 해. 그 집 가정부 말로는 네가 그 집에 가서 무서운 말로 겁을 주었다고 하던데, 정말 그랬니?”
“나는 교회에 다시 돌아와 달라고 부탁했을 뿐이야.”
페이스가 말했다.
“너 용기가 대단하다. 나 같으면 그런 일은 도저히 못 했을 거야. 내가 그다지 겁쟁이는 아니지만. 가정부 윌슨 부인의 말로는 둘이서 차마 귀담아 들을 수 없는 모진 말들을 퍼부었는데 네가 이겨서 노먼 더글러스 씨가 교회에 다시 나오게 되었대. 하지만 아마 널 잡아먹어 버리고 싶었을 거래. 그럼 너희 아빠는 내일도 여기서 설교할 수 있는 거니?”
메리가 말했다.
“아니, 샬럿타운의 페리 목사와 바꾸어서 설교를 하신대. 아빠는 아침 열차로 샬럿타운에 가셨고, 페리 목사님이 오늘 밤에 우리 집에 오셔.”
“그랬구나. 오늘 무슨 일이 있나 보다고 생각했어. 아무 일도 없는데 마사 할머니가 수탉을 죽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무슨 수탉? 무슨 말이야?”
페이스가 얼굴이 창백해져 물었다.
“무슨 수탉인지는 나도 몰라. 보지 않았으니까. 엘리엇 아주머니 심부름으로 버터를 갖다 주러 갔는데 마사 할머니가 내일 점심에 쓰려고 헛간에서 수탉을 죽이고 오는 길이라고 했어.”
“우리 애덤이야. 우리 집에는 수탉이 애덤밖에 없어. 마사 할머니가 애덤을 죽였어.”
페이스가 소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그렇게 화내지 마. 마사 할머니가 그랬는데 이번 주에 글렌 정육점에 고기가 없대. 고기가 필요한데 암탉은 모두 여위어서 쓸 수가 없다고 했어.”
“만일 애덤을 죽였다면 어쩌지.”
페이스는 언덕을 달려 올라갔다.
메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페이스는 지금 미치도록 슬플 거야. 애덤을 아주 좋아했잖아. 그놈의 애덤은 벌써 오래전에 냄비 속으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지금은 고기도 가죽처럼 질길걸. 하지만 마사 할머니의 처지는 되고 싶지 않군. 페이스가 화가 아주 많이 났는데. 우나야, 어서 가서 페이스를 달래주도록 해.”
메리가 블라이드 쌍둥이와 함께 몇 발짝 걸어갔을 때 우나가 별안간 메리를 쫓아왔다.
“이 송진 너 가져, 메리. 그리고 예쁜 머프를 선물 받아서 잘됐다.”

우나는 송진 네 덩이를 모두 메리 손에 쥐어주었다. 우나의 목소리에는 후회의 빛이 역력했다.
“고마워.” 
메리는 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메리는 우나가 가버린 뒤 블라이드 쌍둥이에게 말했다.
“우나는 좀 별난 구석이 있는 것 같지 않니? 그렇지만 내가 전부터 말했듯이 우나는 마음이 참 예쁜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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