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죄수의사

더좋은래일 | 2024.04.28 12:55:31 댓글: 0 조회: 83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4681


소설


죄수의사


1

내과의사 현덕순이 반혁명현행범으로 징역 10년의 판결을 받고 감옥이란데를 오고보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사단은 이렇게 났었다. 동료 너덧이 모인 술좌석에서 취중진정발(醉中真正发)로

<<하지만 그가 쓴 "공산당원의 수양"은 잘못이 없잖은가.>>

한마디를 한것이 어느 고자쟁이의 밀고로 무시무사한 어른들귀에 입문이 된것이다. 그는 젊은 안해와 어린 자식이 보는 앞에서 수갑을 채우고 등을 밀리워 찌프차에 오르던 일이 고대 있었던 일처럼 새삼스럽게 생생히 머리속에 떠올랐다.

(내 일생두 인제 끝장이 났구나!)

이런 절망감이-저기압으로 내는 아궁이의 내굴처럼-그를 사정없이 휩샀다.

사람을 달달 볶는 두달 동안의 입감대(入监队) 생활이 겨우 끝이 나서 각 중대에 편입들이 되는데 현덕순이 편입된것은 제3중대-로약대(老弱队)였다. 로약대란 로쇠자, 병약자, 불구자들을 따로 모아놓은 중대였다. 로쇠도 병약도 불구도 다 아닌 현덕순을 로약대에 편입시킨것은 까닭이 있었다. 궐이 나는 중대의사로 배치한것이다. 죄수 150명으로 편성되는 각 중대에는 의사 하나씩이 배치되는데 그 의사는 반드시 복역중의 죄수가 담당해야 하므로 중대의사란 곧 죄수의사였다. 죄수의사의 소임은 <<범(犯)>>자가 찍힌 위생모, 위생복을 쓰고 입고 그리고 구급가방을 메고 작업을 나가는 중대를 따라다니는것이다.(<<범>>은 죄수라는 뜻이다) 전임의사가 감옥위생소로 승급되여가는 까닭에 현덕순이 그 빈자리를 메우는 판인데 인계인수를 하면서 신구의사는 간단하게 말마디를 주고받았다.

<<당신 무얼루 들어왔소?>>

<<반혁명으루.>>

<<반혁명? 반혁명은 본래 중대의사를 시키지 않는 법인데... 아마 당신은 특별히 잘 보인 모양이구려.>>

<<글쎄 모르겠소.>>

<<얼마 먹었소?>>

<<10년. 당신은?>>

<<난 7년... 녀자문제루... 인제 2년이 좀더 남았소.>>

<<그래 어떻소 여기 형편이?...>>

<<애먹소 이놈의 중대! 맨 병다리, 병신들뿐이니... 한번 지내보우. 머리가 세잖나!>>

<<여기... 정치범은 없소?>>

<<왜 없어. 정치범 30명, 형사범 90명... 3대1인데.>>

<<청진기는?>>

<<청진기는 내 이걸 물려줘두 좋겠지만 손때가 묻은거니... 내 위생소에 가서 다른걸 하나 타주리다.>>

현덕순이 뒤에 떨어져서 천천히 중대안을 한번 돌아보니 아름이 찼다. 한다리를 관속에 들이민 80살 이상의 늙다리가 넷이나 있고 그리고 팔병신, 다리병신이 열이 넘었다.

(이런데서... 한해두 아니구... 사람이 어떻게 산담!)

현덕순은 자기의 고된 운명이 새삼스레 저주스러웠다.


2

원망스러우리만큼 작은 강낭떡 한개와 안타까우리만큼 적은 배추국 한그릇을 게 눈 감추듯 재껴치우기가 바쁘게 벌써 밖에서는

<<정렬!>>

조장녀석의 웨치는 소리가 났다. 이날의 오전작업이 시작되는것이다. 낡은 재빛의 죄수복을 걸친 늙다리, 병신들이 간수를 향하고 석줄로 정렬을 하는데 현덕순도 구급가방을 걸메고 대렬꽁무니에 가 섰다. 거기가 중대의사의 서는 자리였다. 간수가

<<번호!>>

구령을 내려서

<<하나!>>, <<둘!>>, <<셋!>>, <<넷!>>...

불러내려가는중에 별안간 뒤줄에서

<<이놈아, 어딜 또 끼여들어!>>

<<썩 물러나지 못해?>>

<<왜들 이러우? 나두 일을 나가겠다는데!>>

<<같잖게 일은 다 뭐냐!>>

<<다리갱일 분질러놓기전에... 냉큼 물러나라!>>

<<왜들 헤살이야! 개코같이! 한번 나간다면 나가는줄 알아!>>

<<간수님, 이 자식이 또 끼여들었습니다! 괴물이 또 끼여들었습니다! 조춘생이가 또 끼여들었습니다!>>

<<그따위 교란분자는 당장... 삽가래루 쳐내라!>>

<<괴물!>>

<<키킥!... 킥킥...>>

간수가 곧 률기를 하고

<<조춘생!>>

큰소리를 부르니 대렬속에서 젊은 목소리가 선뜻

<<녜!>>

대답을 하였다.

<<넌 물러가라. 너 할 일은 없다.>>

<<아닙니다 간수님, 전 얼마든지 일을 할수 있습니다. 저런 늙다리들보다 몇곱절 더 잘할수 있습니다. 전 꼭 따라갈겁니다.>>

현덕순은 속으로 괴이쩍게 여겼다. 아득바득하는 놈을 못하게 밀막다니!

<<간수님, 제발 저를 좀 데리구 가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녜 간수님!>>

간수가 못마땅스레 미간을 찡그리고 혀를 한번 쯧 차더니 뱉듯이 분부하였다.

<<조장, 할수 없다. 그대루 데리구 가자.>>

<<녜!>>

<<봐라, 간수님이 허락하잖나! 괜히들 중뿔나게 나서서!>>

<<이놈아, 아가리 닥치구 줄이나 바로 서!>>

<<녜녜.>>

현덕순은 그 조춘생이라는 죄수에게 흥미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동안 유심히 살펴보았다. 작업은 겨울나이남새를 저장할 움을 파는것이였다. 조장이

<<야 괴물, 넌 저쪽을 파라!>>

하고 지휘하면

<<어디? 여기? 아, 좋소 좋소.>>

조춘생이는 군말없이 시키는대로 수굿수굿 일을 잘하였다. 누구나 그를 부를 때는 다들 <<괴물>>이라고 부르는것을 보니 괴물이 그의 별명인 모양이다. 나이는 스물네댓살 가량, 1.6메터 가량, 팔다리가 다 실하기는 하나 기형적으로 몽탁한데 얼굴에는 리성적인 슬기라는것이 전연 보이지를 않았다. 쉴참에 현덕순이 손짓하여 부르니 괴물 조춘생이는

<<나?>>

하고 손가락으로 제 코끝을 한번 가리켜보인 뒤 곧 쭈르르 달려왔다.

<<당신 새루 온 의사가 아니요?>>

싱글싱글 웃으며 조춘생이가 물었다.

<<그렇다.>>

<<그럼 나 약 좀 줄라우?>>

<<약? 무슨 약?>>

<<먹은게 삭지 않는 약.>>

<<그런 약이 어디 있어?>>

<<없소 그런 약이? 젠장할!>>

<<왜?>>

<<왜는 무슨 왜야! 먹은게 자꾸 꺼지니까 그러는게지!>>

<<배가 고프단 말이지?>>

<<그럼 당신은 안 고프우?>>

앞에서 누가

<<야 괴물, 저리 비켜라, 냄새난다!>>

하고 타박주어 쫓으니 괴물도 지지 않고 그 사람에게 눈을 흘기며

<<우쭐해서.>>

한마디를 뇌까리고 천천히 저쪽으로 가버렸다. 현덕순이 그 괴물을 쫓아버리던 죄숙에게

<<쟤 무얼루 들어왔소?>>

하고 물어보니 그 사람은

<<저 자식? 괴상망측한걸루 들어왔소. 차차 알게 될게요.>>

하고 빙글빙글 웃었다. 그리고 벌렁 나가누우며 혼자말을 지껄였다.

<<이런 제기, 담배구경을 못하구 살다니!>>

이때 저쪽에서 무슨 우습강스러운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하고 현덕순이 그쪽을 바라보니 고대 자기한테 왔다가 쫓겨난 괴물 조춘생이가 그 기형적으로 몽탁한 팔다리를 쳐들었다 놓았다하며 제 노래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고있었다. 그 모양이 우스워서 죄수들이 모두 키들키들 웃으니 작업장에서는 십장노릇을 하는 조장이 쫓아와서 괴물의 깃고대를 낚아채였다.

<<조신하게 앉았어! 간수님 사설하신다!>>

점심시간이 다되여 오전작업이 끝날 때까지 조춘생이는 혼자 빈들거리기만 하고 종내 일손을 다시 잡지 아니하였다. 다른 죄수가 그따위짓을 하였으면 주리대경을 쳐도 단단히 쳤을것인데 조춘생이만은 호외로 치는지 간수도 가랠 생각을 않고 가만 내버려두었다. 점심시간에 강낭떡들을 노나주는데 조춘생이가 허둥허둥 앞으로 대들며

<<내 두냥, 내 두냥! 나두 일했어! 내 두냥!>>

하고 소리치니 조장이 깔보는투로

<<옜다 이놈아, 어서 받아 처먹어라.>>

뇌까리고 두냥짜리 강낭떡 한개를 훌쩍 던져주었다.

감옥에서는 로동의 경중에 따라 식량의 공급량도 층하가 많았다. 일을 안하는자에게는 일률적으로 아침-2냥, 낮-3냥, 저녁-4냥이였다. 조춘생이같이 젊고 튼튼한 놈이 작은 크림통만한 2냥짜리 강낭떡 한개를 겨우 얻어먹고 점심때까지 기다리자면 허기증이 나서 하늘이 노래보인다. 그런데다가 또 점심에 3냥짜리 한개를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범 나비 잡아먹듯하고나면 간에 기별도 채 아니 가서 저녁때가지 기다리기가 참으로 난감하였다. 그런데 감옥의 규칙이 무릇 아무 일이나 일을 한자에게는 점심에 <<가량(加量)>>이라고 하여 2냥짜리 강낭떡 한개씩을 더 주게 되여있었다. 조춘생이가 일을 나가겠다고 머리악을 쓰는것은 바로 그때문이라는것이였다. 그리고 다른 사라들이 그를 작업에 참가하지 못하게 밀막는것은 그가 처음 얼마동안만 일을 하고 그 나머지는 다 춤추고 노래부르고 빈들거려서 일에 방해만 되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현덕순이 납득이 잘 안 가서

<<그렇다면 어째서 엄하게 단속을 안하우 감옥당국에서?>>

하고 조장에게 물어보니 조장은 말 같지 않게 여기는 모양으로

<<단속? 미치놈인데... 단속을 어떻게 하우?>>

하고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외쳤다.

<<걔가 미친놈이요?>>

<<그럼 당신 보기엔 성한 놈 같소?>>

위생소에 일을 보러 올라갔다가 전임의사를 만나서 현덕순은 다시한번 물어보았다.

<<여보, 우리 중대의 조춘생이가 그게 정신병자요?>>

<<괴물 말이지? 응.>>

<<전신병자라구? 아니 그럼 정신병자를 어떻게 감옥에 가두우?>>

<<그래두 정식으루 버젓이 10년판결을 받구 왔으니 어떡하우?>>

<<10년? 한두해두 아니구 10년씩이나!>>

<<어째, 당신이 개 대신 불평을 하는거요?>>

<<우리는 의사가 아니요? 직업적량심이...>>

<<<직업적량심이> 이보, 우리는 죄수요 죄수! 알았소? 프로레타리아독재의 대상이란 말이요 알겠소? 괜히 말 한마디 뻥긋 잘못했다간 가형(加刑)이 가려(可虑)요 가형이 가려야! 하물며 당신은 반혁명인데... 더더군다나. 그저 눈 지그시 감구 어물어물 무사주의루 살아나가는게... 이 감옥에서의 처세술이란 말이요. 그래 요만것두 당신 아직 모르구있소?>>

<<그렇지만...>>

<<그렇지만은 무슨 그렇지만이야! -거기... 당신네 중대에... 렌트겐투시를 할치가 있다지? 이따 오후에 데리구 오우.>>

로약대에서는 다른 중대에서처럼 그렇게 로동을 세우지 않았다. 환자나 고령자들은 하면 하고 말면 마는 정도였다. 그래서 자연 죄수들끼리 한담할 기회도 다른 중대보다는 많았다. 여러 입을 통하여-본인의 종작없는 말꼬투리를 통하여-조춘생이의 범죄적사실을 알고 현덕순은 너무도 기가 막혀서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조춘생이는 한족으로서 교하현 농촌사람인데 일을 저지른것은 1971년 그가 21살 때의 일이였다.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숙부집에 얹혀사는데 소학교를 한 4년 다녀보아서 그는 쉬운 글자도 좀 알고있었다. 의지가지없는 신세에 인물마저 보잘것이 없다느니보다는 아주 기형적으로 생긴데다가 그는 항심까지 없었다. 들일을 계속 반나절도 채 못하고 진력이 나서 혼자 씨벌씨벌 지껄이며 온데로 돌아다니니가 일쑤였다. 그러한 그에게 딸을 줄 사람은 물론 이 세상에 하나도 있지 않았다. 하건만 그의 이성에 대한 욕구는 병적으로 왕성하여 도저히 억제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였다. 마침 이웃에 십팔구세 난 처녀 하나가 살고있어서 그는 속으로 은근히 그 처녀를 사모하였다. 하지만 처녀는 그의 그러한 속내를 알리도 없거니와 애당초부터 업신여겨서 그를 한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데 불행하게도 그 처녀가 무슨 병으로 이팔청춘 젊은 나이에 툭 죽어버렸다. 부모는 그 딸을 울며불며 뒤산에 갖다 묻었다. 이것을 눈여거둔 조춘생이가 혼자 속으로 궁리하였다.

(그 아까운 계집애를 땅속에 묻어두다니?)

(그럴것없이 내가 업어다 데리구 살자... 임자두 없는데.)

밤이 되기를 기다려서 조춘생이는 혼자 몰래 괭이 하나를 들고 뒤산으로 올라갔다.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빼개고 죽은 처녀를 들어내였다. 새신랑이 된 기분으로 시체를 업고 산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대로 업고 집안에 들어갔다가는 성미 괴까다로운 작은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을것 같았다. 그래서 업고 온 색시를 당분간 어디다 좀 감추어두기로 하였다. 성한 사람의짓이 아니다. 마땅한 자리가 얼른 떠오르지 않아서 림시 풋나무낟가리밑에다 뉘여두고 일단 집안에 들어와 고단한김에 네활개를 벌리고 한잠을 옳게 잤다. 아침 일찌기 작은어머니가 일어나 밥을 지으려고 마당에 나가서 풋나무단을 끌어들이려니까 그밑에-분명히 죽은걸로 아는-이웃집 처녀아이가 누워있다. 기절초풍한 작은어머니는 뒤로 벌렁 나자빠져서 다시는 깨여나지를 못하였다. 지병으로 심장병이 있었던 까닭에 너무 놀라는통에 그 충격으로 심장마비를 일으켰던것이였다. 령감이 아무리 기다려도 마누라가 아침밥을 짓는 동정이 없어서 끙끙거리며 밖에를 나가보니

(엉, 이게 웬 일이냐?)

마당에 송장 둘이 가로세로 누워있지 않는가!


<<그래서 저 자식은 지금두 자꾸 시부렁시부렁 저의 작은아버지를 원망하지요.>>

<<그럼 어떡허우 마누라가 갑작죽음을 했는데? 모르긴 해두 그령감 아마 대들보가 휘는것 같았을게요.>>

<<난 정말이지 이런 이야긴 난생처음 들어보우.>>

<<희한한 이야기지요.>>

<<분명히 미친놈의짓인데...>>

<<누가 아니라우.>>

(그렇다면?...)

현덕순은 자기가 난문제에 부딪쳤다는것을 더욱더 강렬히 느꼈다. 그의 마음눈앞에서는 벌써 의사의 직업적량심과 반혁명인지 개나발인지 하는 어마한 마귀가 서로 노리며 맞겨룰 차비를 하고있었다.


3

현덕순은 로약대 150명 사람의 건강을 책임진 자기가 맡겨진 직무에 태만하다는것은 용서할수 없는 죄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정신병자를 징역을 살리는것은 국가의 수치라고 생각하였다. 의사가 그것을 알면서도 자기 일신의 안위를 고려하여 모르는체하는것은 범죄나 다를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제길할, 이런 말썽거리가... 하필이면... 내게 차례질건 뭐람!)

조춘생이가 정신병자라는것이 더는 의심할나위가 없게 되였을 때 현덕순은 위생소로 행정의사를 찾아갔다. 행정의사는 물론 국가의 간부다.

<<저의 중대... 3중대의 조춘생이를... 아무래두 한번 정신검사를 해봐야겠습니다.>>

<<누구를 정신검사를 해봐?>>

<<저 3중대... 로약대의... 조춘생이 말입니다. 괴물...>>

<<어, 그 녀석이 징역을 사는지가 벌써 몇해째인가? 한 네댓해 잘되잖았나!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무슨?...>>

<<아직 확진만 못 내렸지... 정신병이 대개 틀림없습니다.>>

행정의사가 근시안경너머로 주제넘은 죄수의사를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현연하게 불만이 어린 얼굴로 게먹었다.

<<다른 의사들은 다 눈이 멀었단 말인가?>>

<<아니올시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면 무슨 뜻인가?>>

<<저 단지...>>

<<저 단지 뭐?...>>

<<정신병자를 복역을 시킨다면 법적으루 봐서... 어떤가 해서 그러는겁니다. 의사의 립장으루... 몰랐으면 모르되... 일단 안 이상은...>>

<<시비거리를 장만하려는건가 앙?>>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언감생심...>>

<<돌아가서 다시한번 잘 생각해봐.>>

<<녜.>>

<<신분을 잊지 말두룩.>>

<<녜.>>

<<인민앞에 지은 죄를 철저히 한번 뉘우쳐보두룩.>>

<<녜.>>

현덕순은 코 떼서 주머니에 넣고 물러났다. 죄수의 신분이라는것을 뼈골에 사무치게 느꼈다.

<<직업적량심? 여보, 우리는 죄수요 죄수! 프로레타리아독재의 대상이란 말이요! 알았소?>> 하던 전임의사가

(과시 물계가 환한 대선배였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의기저상한 현덕순의 파김치적상태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는 본시 칠전팔기하는 만만찮은 의지의 소유자였었다.

(어떡하면 정신검사를 시켜볼수 있을가? 전문의사에게 한번 보이기만 하면 락자 없을텐데...)

(내가 이거 부질없는짓을 하는건 아닌가? 공연히 뾰족하게 굴다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지?)

(아니아니 그럴수없어. 끝까지 해봐야 해! 진리는 견지를 하는게 원칙이야!)

현덕순이 이와 같이 내심투쟁을 하고있을즈음 아무것도 모르고 그날그날 배고픈 세월을 보내는 조춘생이가 또 상식에 어그러진짓을 하여 다른 죄수들의 반축을 샀다.

감옥은 불야성이다. 죄수들의 탈옥을 경계하여 밤만 되면 어두운 구석이 없도록 사면팔방에 온통 전등불을 밝히기때문이다. 밤사이 그 전등불에 부나비들이 날아들었다가 떨어져죽은것이 아침에 일어나보니 땅바닥에 늘비하였다. 그 숱한 부나비를 조춘생이가 뽕나무밭에서 오디를 주어먹듯 허겁스레 싹 다 주어먹은것이다.

<<야 괴물아, 맛있디?>>

<<맛이 아마 육포 같았을테지!>>

<<파리두 좀 잡아먹어보지?>>

<<영양보충이 과도해서 벌써 군턱이 졌구나. 어디 좀 만져보자, 이리 나서라.>>

<<왜들 이러우? 같잖게! 저리 좀 비켜서우!>>

<<괴물님 나오신다. 어서 길을 틔워드려라!>>

<<와하하!>>

<<킬킬!... 킬킬...>>

메마른 감옥살이에 진이 난 죄수들에게는 한바탕 심심풀이가 잘되였다.

이 사건이 현덕순의 결심을 더욱 굳혀주었다.

(어떻게 해서라두 해방을 시켜줘야지!)

중대는 중대장과 지도원 그리고 공안계통을 대표하는 간사 하나-이렇게 셋이서 맡고있었다. 그래 우선 중대장에게 반영을 해보기로 하였다.

<<뭐라구? 정신검사를 시키자구? 어째 행정의사한테 제의하잖고?>>

<<거기선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런걸 나한테 또 제의하는건 무슨 뜻이야?>>

<<무슨 별뜻이야 있겠습니까. 그저...>>

<<조심하라두. 정치범을 죄수의사를 시킨것 특전이란걸 잊지말라구. 공연히...>>

담벼락하고 말하는 셈이였다. 현덕순은 또 한번 뒤통수를 긁고 돌아서야 하였다.

(이런 제기!)


4

현덕순이 거듭되는 좌절에 고민을 하고있을즈음 아무것도 모르는 조춘생이는 상식에서 벗어난 우습강스러운짓으로 부단히 사람들을 웃기였다. 오락에 주린 죄수들은 그를 보기만 하면

<<야 괴물, 노래 한마디 불러라.>>

<<여 괴물, 춤 한번 더 춰라.>>

<<인석아, 네 그 업어온 색시가 널 보구 좋다던?>>

<<인물이 어떻나... 곱니?>>

이와 같이 부추기고 놀려먹는것으로 락을 삼았다. 전 감옥 일곱개 중대 천여명 죄수에 <<괴물>>을 모르는자는 하나도 없으리만큼 조춘생은 인기가 있었다. 감옥안에 없지 못할 명물로, 웃음가마리로 되였었다.

바깥사회에 있을 때 같으면 글 몇줄 끄적거리면 환자를 정신검사 한번 시키는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데 이 감옥에서는 그것이 하늘의 별따기였다. 안과 밖이 이 정도로 판이할줄은 그는 일찌기 몰랐다.

두고두고 궁리한 끝에 현덕순은 지도원을 찾아서 한번 최후의 호소를 해보기로 하였다.

<<무어야? 사회주의적인도주의에 대한 배려라구? 주제넘은 수작! 그래 이렇게 계속 반혁명독기를 뿜을 작정인가? 좋아 그럼... 돌아가 기다려!>>

제 입으로 빌어서 현덕순은 마침내 <<반성>>을 하게 되였다. 감옥안에서 반성이란 며칠이고 몇주일이고 꼼짝달싹 못하고 정좌를 하고 앉아서 자기의 저지른 죄를 반성하는것인데 주야로 옆에 감시인이 딱 붙어있는 까닭에 변소를 가는데도 그놈의 딴군녀석을 떼치지 못하고 그대로 달고 다녀야만 하였다. 반성을 하는 놈은 죄수중의 또 쥐수이므로 의례 보통죄수들의 하대와 업신여김을 받기 마련이였다. 언젠가 꾀병하는 놈에게 달라는 약을 주지 않은적이 있었는데 그놈이 잊지 않고 와서 현덕순을 씨까슬렀다.

<<의사랍시구 우쭐렁대더니만... 잘코사니구먼. 맛이 어때?>>

반성하는 놈은 주먹을 못 놀리는것은 더 말할것도 없거니와 말대꾸 한마디도 못하게 되여있었으므로 절대로 안전하였다. 우리에 갇힌 호랑이를 밖에 서서 막대기로 쑤시는거나 마찬가지였다.

현덕순이 어째서 반성을 하게 되였는지 알턱이 없는 조춘생이도 덩달아 구경을 와가지고

<<여보 의사, 당신두 도적질을 하우? 손버릇이 사납군그래.>>

<<이번에 아주 녹장이 나는구먼. 겉보기엔 멀쩡한게... 거참 모를 일이야.>>

이따위 소리를 지껄이며 헤식게 히죽히죽 웃는것이였다. 저능인 조춘생이는 감옥안에서 흔히 있듯이 현덕순도 도적질을 한것이 들통이 나서 반성을 하는줄로 지레짐작을 하고있었던것이다. 감시하는 딴군녀석(<<만주국>> 경찰출신)이

<<야 괴물 이놈아, 인제 고만 씨벌거리구 썩 물러가라, 또 이 옮길가봐 무섭다.>>

하고 타박을 주니 조춘생이는 입술을 비쭉 내밀며

<<내 이는 복이야. 달래두 안 주겠다. 체!>>

하고 어슬렁어슬렁 저쪽으로 가버렸다.

반성을 하고있는 현덕순은 그 꼴을 보고 한편 우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슬그머니 화도 좀 났다.

(저런걸 위해서 내가 이 단련을 받다니)

2주일의 반성이 끝나기도전에 새 죄수의사가 중대의사로 배치되여와서 현덕순은 원래 자리에서 밀려나서 일반죄수로 격하되였다. 그 지긋지긋한 반성이 풀린 뒤에 새로 온 의사와 인사수작을 나누었다.(반성중에는 서로 보고도 말을 못하였다) 새 의사는 대학시절의 후배로서 녀자문제로 징역 5년의 언도를 받았었다.

<<도대체 반성은... 무슨 일루 했습니까?>>

<<미친놈 정신검사 좀 시키자다가.>>

<<이 중대에... 그런게?>>

<<응.>>

<<답답하구먼요.>>

<<누가 아니래여.>>

그러나 하늘이 아주 무심하지는 않은 모양이였다. 강청이 일파가 권좌에서 나떨어졌다는 소식이 봄철의 우뢰비처럼 감옥의 지붕을 두드리고 높은 담을 두드리고 마당을 두드리고 그리고 사람들의 굳게 닫혀 녹이 쓸어버린 마음의 쇠문을 두드렸다. 현덕순은 미결수로 4년, 기결수로 3년-모두 7년의 령어생활을 치른 뒤에 무죄석방으로 명예를 회복하게 되였다. 무참하게 유린당하였던 인간의 존엄을 되찾았다.

현덕순은 마중온 안해와 아들을 대합실에 앉혀놓고(안해는 남편 없는 7년 동안의 고생살이에 주름살과 흰 머리카락이 부쩍 늘었고 그리고 아들은 몰라보리만큼 크고 또 로성해졌었다) 행정의사를 찾아보았다.

<<아 이거 현선생, 반갑습니다. 축하합니다.>>

손바닥을 뒤집은것 같은 행정의사의 태도에 현덕순은 속으로 쓴웃음을 웃었다. 그러나 곧

(세상이란 이런거라니.) 하고 석연히 초탈하였다.

<<저 다른게 아니구... 3중대 그 정신병자... 조춘생이 문제를 좀 어떻게...>>

현덕순이 말을 채 마치기도전에 행정의사는

<<아 념려 마십시오, 념려 마십시오. 그건 내가 책임지구 처리 할테니까... 현선생은 그런 일에 더 머리를 안 쓰셔두 됩니다. 가급적 속히 처리해서... 그 결과를 내 알려드리오리다. 워낙 법원에두 문제가 있습지요. 그런걸 글쎄 어떻게... 나 참! 현선생두 짐작하시다싶이... 여기 이렇게 말단단위에서 일을 하자면... 남모르는 고충이 정말이지 적잖습니다. 답답할 때가 많습지요.>>

하고 수다스레 발뺌수작을 늘어놓았다.

<<그럼 부탁합니다. 고맙습니다.>>

<<천만에 천만에, 그럼 우리 다시 만나십시다. 안녕히!>>

달포가량 지나서 현덕순은 병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 녜 그렇습니다. 누구시라구요? 아 오래간만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예예... 아 그래서요. 출옥은 했는데... 돌아갈 집이 없다구요? 그래서...>>

전화는 감옥의 행정의사가 걸어온것이데 조춘생이가 출옥은 하였으나 받아주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할수없이 <<취업대>>에 취업을 시키기로 결정하였다는것이였다. 취업대란 만기출옥을 한 사람으로 교양개조가 잘되지 못하였거나 또는 갈데가 없는 사람들을 수용하여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시설이였다.

<<그렇지만 정신병자를 그대루 둔다는 법은 없다니까... 우선 병부터 고쳐주려구...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천만에 천만에...>>

일요일날 현덕순이 과자 한봉지와 사탕 한봉지를 사가지고 정신병원으로 그 말썽 많던 감옥친구-조춘생이를 보러 왔다.

<<조춘생 면회!>>

간호원의 웨침소리와 함께 면회실에 들어서는 조춘생이를 보니 되는대로 걸친 환자옷에는 벌써 만국지도 쇰직하게 얼룩이 가 있었다. 혈색은 검붉은데 갓 깎은 상고머리가 눈을 끌었다.

<<조춘생, 너 날 알아보겠니?>>

<<그럼 몰라봐? 당신 의사가 아니요. 도적질하구 반성하던...>>

문어구에 섰던 간호원이 놀라서 현덕순을 새삼스레 훑어보았다. 그 눈에는 력연히 씌여있었다-

(알구보니 멀쩡한 도적놈이였구만!)

<<옳다 옳아!>>

하고 현덕순이 하하 웃으니 조춘생이는 좀 미심쩍은 얼굴로

<<그래 당신 여긴 왜 왔소?>>

하고 물었다.

<<너 보러 왔지 왜 왔겠니?>>

<<나를 보러 와? 무슨 일루?>>

<<이걸 갖다주려구.>>

<<그게 뭔데?>>

<<과자, 사탕.>>

조춘생의 두눈에 불이 반짝 켜졌다.

<<어서 이리 내우.>>

<<옜다.>>

<<히히!... 우리 의사가 제일이야.>>

조춘생이는 눅진눅진한 진과자를 게걸스레 입안에 쓸어넣고 한동안 꺼귀꺼귀 씹다가 문득 생각는듯이 두눈을 찌긋찌긋해가며

<<여보 의사, 다음번에 올 때두 좀 훔쳐다주우.>>

하고 아주 능갈치게 말하는것이였다.

현덕순은 거뜬한 기분으로 병원문을 나섰다.

추천 (1) 선물 (0명)
IP: ♡.162.♡.178
23,561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더좋은래일
2024-05-05
0
84
더좋은래일
2024-05-05
0
57
더좋은래일
2024-05-05
0
66
더좋은래일
2024-05-04
0
77
더좋은래일
2024-05-04
0
67
더좋은래일
2024-05-04
0
69
더좋은래일
2024-05-03
0
58
더좋은래일
2024-05-03
0
71
더좋은래일
2024-05-03
0
81
더좋은래일
2024-05-02
0
65
더좋은래일
2024-05-01
1
59
더좋은래일
2024-04-30
1
78
chillax
2024-04-30
0
77
더좋은래일
2024-04-29
1
118
더좋은래일
2024-04-29
1
80
chillax
2024-04-29
0
71
chillax
2024-04-29
0
67
chillax
2024-04-29
0
55
더좋은래일
2024-04-28
1
83
더좋은래일
2024-04-27
4
141
더좋은래일
2024-04-26
4
119
더좋은래일
2024-04-25
3
146
chillax
2024-04-25
1
95
더좋은래일
2024-04-24
3
133
더좋은래일
2024-04-24
3
103
더좋은래일
2024-04-24
3
119
chillax
2024-04-24
1
78
더좋은래일
2024-04-23
3
129
chillax
2024-04-23
1
134
더좋은래일
2024-04-22
3
341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