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밤나무집

나단비 | 2024.05.20 07:31:49 댓글: 0 조회: 134 추천: 0
분류명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9490
너도밤나무집 (The Adventure of the Copper Beeches ) 

 

 

봄이라고 하나 아직도 바람이 쌀쌀하게 부는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나와 홈즈는 베이커 거리에 있는 그의 방으로 가서 난로 옆에 앉아 있었다.

홈즈는 신문 광고란을 잠자코 읽고 있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꾸깃꾸깃 한 편지 한 통을 내게 내밀었다.

"오늘 아침에 온 편지인데,젊은 아가씨가 보낸 것 같네.한번 읽어 보지 않겠나?" 

그 편지는 어제 몬테규 우체국에서 부친 것으로서,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셜록 홈즈 선생님...

제게는 지금 가정 교사 자리가 한 군데 있습니다만 가도 될 것인지 어떤지를 선생님과 의논하고 싶어요. 

내일 아침 10시 반에 댁으로 찾아가려고 하는데 형편이 닿으시면 만나 주기기 바랍니다.     
 바이올릿 헌터 올림"

 

"전부터 아는 사람인가?"

"아니, 전혀 모른다네."

"어! 벌써 10시 반인데?"

"옳지, 벨이 울리는군. 아마 찾아온 모양이야."

잠시 뒤에 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옷차림은 수수했으나 단정하고 깨끗했으며, 얼굴표정이 밝고 매우 똑똑해 보이는 처녀였다.

"폐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누구와 의논을 하고 싶어도 부모님이나 친척이 없어서 이렇게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홈즈는 이 아가씨가 마음에 쏙 들었는지 얼른 의자를 권했다. 그 아가씨는 의장에 앉아서 침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5년 동안 스펜스 먼로 대령님 댁에서 가정 교사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 두 달 전에 대령님이 캐나다로 전근을 가시는 바람에 식구가 모두 그리로 이사를 가 버렸어요. 그래서 저는 갑자기 직업을 잃게 된 거지요. 저는 신문에 광고를 내고 또 웨스트 엔드에 있는 가정 교사 소개소에도 부탁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좀처럼 연락이 없고, 또 그 동안 조금씩 모아 두었던 돈도 거의 바닥이 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하던 중이었어요."

"저런, 무척 걱정이 되었겠군요."

"예, 저는 1주일에 한번씩 그 가정 교사 소개소에 들르곤 했지요. 지난 주에도 갔었어요. 소장실에는 소장인 스토퍼 부인과 몹시 뚱뚱하고 상냥한 중년 신사분이 함께 계셨어요. 제가 소장실로 들어가자마자 그분은 벌떡 일어서서 스토퍼 부인을 바라보면서 큰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거였어요.

"이분이 좋겠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그리고는 저를 보고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은 가정교사 자리를 원하신다고요?"

"예."

"급료는 얼마나 바라십니까?"

"얼마 전까지 먼로 대령님 댁에서 한 달에 4파운드씩 받았습니다."

"그건 너무 심하군!"

그 신사는 깜짝 놀란 듯이 두 팔을 쳐들고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처럼 교양 있는 처녀에게 그 정도밖에 주지 않다니, 세상에 그럴 수가..."

"아니에요, 교양은 뭐....저는 겨우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할 수 있을 뿐이고, 음악이나 그림은 전혀.... "

"원, 겸손의 말씀을...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중요한 것은 아가씨의 태도에 품위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 집에 와 주신다면 1년에 100파운드를 드리겠소."

그때 저는 아주 놀랐어요. 아무리 인심이 후하다고 해도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사람에게 100파운드나 급료를 주는 가정이 어디 있겠어요? 제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자 그분도 그것을 알아차리셨는지 급하게 지갑을 꺼내서 지폐 한 장을 뽑아 내셨어요.

"믿지 못하겠다는 거군요. 하지만 나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항상 약속된 급료의 절반을 먼저 드리고 있습니다. 여비와 필요한 물건을 마련하는 데 써 주십시오."

그분은 줄곧 웃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았어요. 저는 그렇게 자상한 분은 처음 보았답니다. 여기저기에 빚이 조금씩 있는 제게는 참으로 좋은 자리였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좀 뭣하긴 해도 결정하기 전에 몇 가지를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 그것 참 잘하셨습니다."

"그래서 우선 저는 이런 식으로 물어보았어요.

"실례입니다만, 살고 계신 곳이 어디입니까?"

"햄프셔 군입니다.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지요. 윈체스터에서 8km정도 들어와서 너도밤나무 집을 찾으면 됩니다."

"그런데 제가 할 일은요?"

"남자 아이가 한 녀석 있습니다. 올해 여섯 살 난 장난꾸러기지요."

"그럼, 제가 할 일은 그 아드님만 돌보아 드리면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틈이 있으면 집사람의 부탁도 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물론, 하인이나 하녀에게 시킬만한 일은 부탁드리지 않겠습니다."

"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흠! 그리고 말씀드리기가 좀 뭣한데....우리 집에는 좀 특이한 풍습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어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괜찮습니까?"

"괜찮아요. 그런 일 정도는...."

하고 저는 대답했습니다만, 어쩐지 매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날 기분에 따라 앉는 자리를 지정해 주어도 상관없습니까?"

"예, 물론이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 집에 오기 전에 아가씨 머리카락을 좀 짧게 잘라 주었으면 합니다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길고 아름다운 갈색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면서 까지 가정 교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저의 뜻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무척 실망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는 돌아가시더군요.

"그럼, 곤란한데요. 다른 점은 하나도 부족하지 않은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저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냥 돌아와 버렸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다시 생각하니 그렇게 좋은 자리를 놓치기가 어쩐지 아까워졌어요. 그래서 다음날 아침 일찍 스토퍼 부인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편지가 왔습니다. 여기 제가 가지고 왔는데 읽어 보겠어요.

 

 - 바이올릿 헌터 양..

느닷없이 편지를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소개소에 부탁해서 당신의 주소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번 일에 관하여 다시 잘 생각해서 승낙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실은 집에 돌아와서 집사람에게 당신 이야기를 했더니 몹시 좋아하면서 그런 분이라면 꼭 부탁해서 와 주시도록 권하라고 성화입니다. 보수도 1년에 120파운드를 드리겠습니다. 성격이 남다른 사람들만 모인 가족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좀 어색한 데게 있겠지만, 곧 재미있게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 구경 삼아 이곳으로 와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기차 시간만 알려 주시면 윈체스터 역으로 마중 나가겠습니다. 너도밤나무 집에서 제프로 루캐슬 -

 

이런 편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너도밤나무 집으로 가기로 결심했어요. 그러나 저쪽과 약속을 하기 전에 일단 홈즈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상의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온 거예요. 저는 일단 가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어쩐지 불안하고 초조해요. 혹시, 제가 위험한 일이 생기게 된다면 도움을 주셨으면 해요."

"알겠습니다. 뭔가 신변에 위험을 느끼거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전보로 알려 주십시오. 즉시 도우러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니 안심을 하고 갈 수 있겠어요. 오늘 밤에 머리카락을 자르고 내일은 윈체스터로 떠나겠습니다."

헌터 양은 얼굴에 웃음을 띠고는 몇 번 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나는 홈즈에게 말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매우 침착한 아가씨로군."

"그렇지 않았다면 가지 말라고 말렸을 텐데. 머지않아 저 아가씨에게 무슨 소식이 꼭 올 것이네."

홈즈의 이 추측은 적중했다. 2주일이 지난 어느 날 밤에, 그 처녀가 보낸 전보가 도착한 것이다. 홈즈는 한번 훑어보고는 내게 건네주었다.

"왓슨, 기차 시간표를 좀 알아봐 주게."

나는 먼저 전보를 읽어 보았다.

 

- 내일 정오 윈체스터의 블랙스완 호텔로 오시기 바람. 앞일이 막막함... 헌터 -

 

"자네도 꼭 함께 가세."

하고 홈즈가 말했다.

"물론이지. 아침 9시 반에 출발하는 열차가 있군. 이 기차를 타고 가면 윈체스터에는 11시 반에 닿을 것이네."

하고 내가 대답했다.

 

 

 

 

 

다음날 아침 11시에 우리가 탄 열차는 윈체스터 시 근처를 달리고 있었다.

화창한 봄 날씨답게 푸른 하늘에는 하얀 솜 같은 구름이 몇 조각 둥실 떠 있었다. 울긋 불긋한 지붕이 푸른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였다. 우리를 태운 열차는 잠시 뒤에 윈체스터 역으로 들어갔다.

블랙 스완 호텔은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며, 낡긴 했지만 꽤 유명한 호텔이었다. 

호텔에서는 헌터 양이 먼저 와서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방을 따로 하나 잡아 두고 식사 준비까지 해놓고 있었다. 헌터 양은 우리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어서 오세요. 와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고 있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처음부터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하고 홈즈가 말했다.

홈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헌터 양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말씀드리겠어요. 처음에 역에 도착하니까 루캐슬 씨가 마중을 나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루캐슬 씨의 마차를 타고 너도밤나무 집으로 갔습니다.

루캐슬 씨의 너도밤나무 집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물론 그 저택은 오래 되고 낡았습니다만 주위가 모두 너도밤나무 숲이기 때문인지 매우 경치가 좋았어요. 루캐슬 씨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제프로 부인과 아들을 만나게 해주셨어요.

부인은 말이 없고 얼굴이 창백했으며 루캐슬 씨보다는 훨씬 나이가 어려 보였어요. 루캐슬 씨는 50살 정도되어 보였는데, 부인은 아직 30살도 안된 것 같았어요.두 분은 약 7년전에 결혼을 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루캐슬 씨는 전 부인과의 사이에 따님 한 분을 두셨다고 하더군요. 그 따님은 앨리스라고 하는데 지금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살고 있다고 해요.

루캐슬 씨는 그 앨리스 양 때문에 지금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가끔 있다고 저에게 살짝 말해 주더군요. 제가 보기에 루캐슬 부인은 나이에 비해 무척 점잖기는 했지만, 어딘지 좀 차가운 사람 같았어요. 그러나 루캐슬 씨와 아들에게는 매우 다정하게 대해 주더군요."

"그 밖의 가족들은?"  

하고 홈즈가 물었다.

"하인 부부가 있어요. 하인은 별명이 호랑이라고 할 정도로 성격이 매우 거칠어요. 그런데다가 항상 술냄새를 풍기고 다녔어요.

그의 아내는 성격이 조금 까다롭지만 힘이 무척 센 여자에요. 루캐슬 부인이 불러도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않을 만큼 무뚝뚝한 여자에요. 이 하인 부부는 제 마음에 별로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저는 대게 그 집 아이의 방이나 제 방에서 지냈기 때문에, 그 하인 부부와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아이 방과 제 방은 건물 맨 끝에 나란히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았어요. 

도착한 날부터 이틀 동안은 아무 일 없이 잘 지냈어요.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아침이었어요. 저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소파에 앉아 있었어요. 그때, 루캐슬 부인이 2층에서 내려오더니 루캐슬 씨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하시더군요.   

그러자 루캐슬 씨는,

"응, 알았어."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헌터 양, 소중한 머리카락을 짧게 깎도록 부탁한데다가 또 변덕스러운 요청을 하게 되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당신 방에 옷을 준비해 두었으니 그 옷으로 갈아입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어요.

방에 갔더니 정말 침대 위에 푸른색 꽃무늬가 있는 옷이 놓여 있더군요. 누군가가 전에 입었던 옷이지만 아주 훌륭한 것이었어요. 입어 보니까 마치 맞추기라 한 것처럼 몸에 잘 맞았어요. 그 옷을 입고 나갔더니 루캐슬 씨 부부가 매우 좋아하시더군요."

"그래서요?"

"루캐슬 부부는 응접실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응접실은 건물 앞 쪽에 있고, 남향이며, 마루 쪽에 프랑스식 창문이 세 개나 있는 곳이지요.

응접실로 들어가 보니 가운데 창문 앞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어요. 루캐슬 씨는 제게 창문을 등지고 그 의자에 앉으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루캐슬 씨가 시키는 대로 의자에 걸터앉았어요. 그랬더니, 루캐슬 씨는 제 앞을 왔다갔다 하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하지만 부인은 조금도 웃지 않고 슬픈 얼굴로 가만히 앉아 계셨어요. 1시간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루캐슬 씨는 갑자기 제게 이제는 옷을 갈아입고 아이 방에 가 있으라고 하시더군요."

"허허 참! 정말 이상하군요. 자, 어서 계속하십시오."

"다음날도 저는 푸른 옷을 입고 응접실의 그 의자에 앉으라는 말을 듣고 전날과 같이 루캐슬 씨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들었습니까?"

"한 30분 정도 들었을 거예요. 그 다음날에는 루캐슬 씨가 제게 소설 한 권을 건네주면서 그것을 읽어 달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시키는 대로 소설을 읽었어요. 한 10분쯤 지나니까 갑자기 그만 읽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시더군요."

"정말 이상한 일이군."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왜 그럴까 하고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어요. 그러다가, 문득 저는 루캐슬 씨 부부가 제가 창문 쪽을 돌아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호오, 정말 그렇겠군요."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까 무척 창 밖을 내다보고 싶어지더군요. 그렇지만 제 마음대로 창 밖을 내다보았다가는 저의 몸에 위험이 닥칠 것이라는 점을 루캐슬씨의 말이나 태도로 보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어요. 그때,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조그마한 손거울을 손수건 속에 숨겨 두고 웃을 때마다 입을 가리는 체하면서 창 밖을 비추어 보았어요."

"저런! 아주 기발한 생각이군요. 그래, 무엇을 보셨습니까?"

"처음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하면서 또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았더니, 글쎄 말이에요. 바깥 길에 어떤 남자가 서서 이쪽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거였어요.

회색 양복을 입은 젊은 청년이 담에 바짝 기대어 서서 이쪽을 살펴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새 부인께서 저의 행동을 눈치채셨는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루캐슬 씨에게...

"여보, 길가에 수상한 사람이 서서 이쪽을 보고 있어요."

하고 말하는 거였어요. 그러자 루캐슬 씨가 제 얼굴을 쳐다보면서..

"헌터 양, 당신과 아는 사이입니까?" 하고 묻는 거예요.

"아니에요. 저는 이 근처에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그렇다면 저 사람은 정말 예의 없는 사람이군. 당신이 저 사람에게 가라고 손짓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계속 저렇게 서성거린다면 우리가 곤란하니까요."

루캐슬 씨가 그렇게 말하니 저는 어쩔 수 없어서 시키는 대로 그 남자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어요. 그리고 나자, 부인이 커튼을 닫아 버리더군요.

이 일은 1주일 전에 있었던 것이에요. 그 뒤로는 창가에 앉으라고도 하지 않았고, 또 푸른 옷을 입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어요. 또, 그 청년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있군요. 자, 계속하십시오."

하고 홈즈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헌터 양에게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재촉했다.헌터 양은 슬쩍 손목시계를 보고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홈즈 선생님. 이 정도 일이라면 선생님을 여기까지 오시도록 부탁드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밖에도 몹시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요.

너도밤나무 집에 도착한 바로 그 날이었어요. 루캐슬 씨는 부엌밖에 있는 작은 창고로 저를 데리고 가더군요. 그 창고에서는 안에서 쇠사슬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서 뭔가 큰 동물이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여기로 한 번 들여다 보십시오."

루캐슬 씨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창고 벽의 널빤지 틈을 가리켰어요.

그곳으로 제가 들여다보니, 캄캄한 데에 뭔가 커다란 것이 웅크리고 앉아서 눈만 반짝이고 있는 거였어요. 제가 흠칫 놀라는 것을 보고 루캐슬 씨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더군요.

"하하하.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놈은 카를로라고 하는데, 마스티프 종으로 망을 아주 잘 봅니다. 내 것이긴 합니다만, 이 개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호랑이뿐입니다. 하루에 한 번씩만 먹이를 주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밤에는 호랑이가 사슬을 풀어 줍니다. 아마, 이놈이 집 밖으로 나가면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마구 덤벼 들 겁니다. 아가씨도 밤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외출하지 마십시오. 잘못하다가는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루캐슬 씨의 이야기대로였어요. 그 뒤, 이틀째 되는 밤이였어요. 2시경에 문득 잠이 깨어서 창 밖을 내다보니 바깥은 눈이 부시게 밝은 달밤이었어요. 정원의 잔디도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고 있어서 마치 대낮과 같았어요. 그런데 그때 너도밤나무 숲의 그늘 아래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어요.   

잠시 뒤에 그것이 어슬렁 어슬렁 거리며 달빛 아래로 나오더군요. 자세히 보니 그것은 몸집이 송아지만한 붉은 갈색의 개였는데 입 주위만 검은 색이였어요. 턱의 살은 축 늘어졌지만 다른 곳은 뼈가 앙상해서 보기만해도 소름이 끼치는 개였답니다. 

아마, 그 끔찍한 개에게 물린다면 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도 그만 손을 들고 말거예요."

하고 말하면서 헌터 양은 그 개의 모습이 생각나는지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여기로 오기 전날, 저는 런던에서 머리를 잘랐어요. 그런데 그 긴 머리카락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끈으로 묶어 트렁크 밑에 간수해 두었답니다.

제가 도착한 날 밤, 아이가 잠이든 뒤에 저는 제 물건들을 옷장에 넣으려고 하나하나 정리를 했어요. 그런데 옷장 서랍이 자물쇠로 잠겨 있더군요.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던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열어 보았더니 운이 좋게 열렸어요. 그런데 그 옷장 서랍 안에 제 머리카락이 들어 있는게 아니겠어요? 저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들고 자세히 보니 색깔이며 길이가 저의 머리카락과 똑같았어요. 처음에는 아이가 장난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혹시나 하고 저의 트렁크를 열어 보았더니 저의 머리카락은 거기에 그대로 있는 것이었어요. 저는 머리카락 뭉치 두개를 나란히 놓고 자세히 살펴 보았어요. 아무리 보아도 어느 쪽이 저의 것인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은 것이 아니겠어요? 사실, 그때 저는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다시 서랍 안에 넣어 두고 너도밤나무 집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것 참 신기한 일이군요."

하고 말하면서 홈즈는 두 손을 깍지 끼고 눈을 꼭 감았다.

"홈즈 선생님. 그것보다도 더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어떤 일이었습니까?"

"너도밤나무 집 뒤뜰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건물 한 채가 있어요. 그런데 그리로 가려면 반드시 호랑이 하인이 살고 있는 오두막집을 가로질러 가야만 해요. 어느 날, 호랑이 하인에게 볼 일이 있어서 오두막 집 까지 간 김에 뒤뜰로 가 보았어요. 바로 문 앞까지 갔을 때 건물에서 루캐슬 씨가 열쇠 꾸러미를 들고 나오시더군요. 루캐슬 씨는 절 보면 언제나 미소를 지었는데 그때는 웬지 몹시 언짢은 얼굴을 하셨어요. 그리고는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 쪽으로 가 버리는 거였어요. 저는 그 건물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다음날 아이를 데리고 그 건물 쪽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 건물에는 창문 세 개가 나란히 있었어요. 가장 자리에 있는 창문 두 개는 먼지 투성이이고 별로 이상한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운데 창문에는 덧문이 있었어요. 저는 그 창문을 바라보면서 건물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언제 오셨는지 루캐슬 씨가 저의 뒤에 서 있지 않겠어요!"

"어허~! 정말 놀라셨겠습니다."

"예, 그런데 뜻밖에도 루캐슬 씨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이곳은 좀 컴컴한 곳이니까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건물에는 빈방이 많은 것 같군요."

"예, 내 취미가 사진을 찍는 겁니다. 그래서 저 건물에 암실을 차려 놓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당신은 정말 눈치가 빠르십니다. 하하하 " 하고 유쾌하게 웃었습니다만, 그때 루캐슬 씨가 저를 보는 눈빛은 정말 무서웠어요.

그때는 그것으로 끝났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덧문이 닫힌 방에 무슨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방에 들어가서 확인을 해 보기로 했어요."

"대단한 결심이군요."

"그런데 바로 어제 일입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거예요. 말씀을 미처 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호랑이 부부가 그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몇 번 보았어요. 어제 저녁때, 호랑이 하인이 잔뜩 술에 취해 뜲아 떨어진 틈을 타서 저는 몰래 뒤뜰에 있는 건물로 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문에 열쇠가 꽃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마 호랑이 하인이 열쇠 거는 것을 깜빡 잊었던 모양이에요. 

그때, 루캐슬 씨 부부는 거실에서 아이와 놀고 있었으므로 아주 좋은 기회였어요. 저는 슬그머니 열쇠를 돌리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들어가자마자 바로 앞에 계단이 있더군요. 좀 무섭기도 했지만 꾹 참고 계단을 올라가 보았어요. 2층 복도는 벽지도 바르지 않고 양탄자도 깔려 있지 않은 채로 아주 길게 뻗어 있었어요. 거미줄 투성이인 복도를 지나서 모퉁이로 돌아가자 방이 세 개나 나란히 있었어요. 첫번째와 세 번째는 방문이 열려 있어서 안으로 들여다보았더니, 모두 텅 비어 있었어요.  

두 번째 방은 밖에서 보았을 때 덧문이 있는 방이에요. 그 방만은 문이 잠겨 있었고 문에다 쇠막대기를 가로질러서 쇠사슬로 문고리에 묶어 두었더군요. 창문에는 덧문이 닫혀 있기 때문에 빛이 들어가지 않을텐데, 문 밑으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전등이 켜져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문 앞에 서서 이 방에는 도대체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하고 이리저리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안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거였어요. 그리고 문 밑으로 새어 나오는 빛 때문에 그림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도 보였어요. 저는 그것을 보고 덜컥 겁이 나서 호기심이고 뭐고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저는 정신 없이 복도를 빠져 나와 계단을 내려와서 건물 밖으로 뛰어나왔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루캐슬 씨가 우뚝 서서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음, 역시 당신있었군요.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당신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휴! 정말 놀랐어요."

저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간신히 말을 했지요.

"안심해요. 무엇을 보고 그렇게 놀랐습니까?"

 저는 루캐슬 씨가 무척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다정하게 대해 주셔서 더 긴장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정말 어리석었어요.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들어갔더니....어두컴컴해서 그만...." 하고 말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까?"

이런 말을 하면서 루캐슬 씨는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거였어요. 그래도 사실대로 이야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예, 그런데 또 무슨 일이...?"

"당신은 왜 내가 항상 이 건물에 자물쇠를 채워 놓는다고 생각했나요?"

"글쎄, 잘모르겠는데요."

"아무 볼일 없는 사람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젠 아셨습니까?"

루캐슬 씨는 싱글벙글 웃더니 곧 얼굴을 찡그리며 저를 노려봤어요.

"또다시 이 건물에 들어간다면 저 개집에 처넣겠소."

저는 너무 무서워서 곧장 제 방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때 바로 홈즈 선생님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빨리 오셔서 도와 달라는 전보를 치기로 결심했던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그 집에 있을 용기가 없었어요. 그때 나와 버려도 되었지만 제게는 공포심만큼이나 호기심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슬쩍 저택을 빠져 나와 1km쯤 떨어진 우체국으로 가서 선생님에게 전보를 쳤던 것이에요."

"음, 그건 그렇고 루캐슬 씨가 당신이 오늘 여기에 나오는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까?"

"머리가 아파서 약을 사러 가겠다는 핑계를 대고 나왔어요. 그리고 루캐슬 씨 부부는 오늘 오후 3시에 어느 집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어요. 아마 저녁 늦게나 돌아오실 거예요. 그래서 그때까지는 저택으로 돌아가서 아이를 돌봐 주어야 해요. 이제는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일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리고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요?"

홈즈가 물었다.

"호랑이 하인은 매일 저녁 술을 마십니까?"

"예, 그래요. 매일 해가 지기 전부터 술에 취해 있다가 오후 7시면 곯아떨어져요."

"루캐슬 씨 부부는 오늘 몇 시쯤에 돌아올 것 같습니까?"

"늦어질 것이라고만 말씀하셨어요."

"너도밤나무 집에는 자물쇠로 채워 두는 술 창고가 있습니까?"

"예, 있어요."

"헌터 양, 당신이 한 행동은 정말 용감하고 현명했습니다. 다른 아가씨라면 제가 이런 부탁을 드리지 않겠습니다만...."

"무슨 일인데요?"

"오늘밤 7시에 우리가 너도밤나무 집으로 가겠습니다. 그 시간이면 루캐슬 씨 부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테고, 하인은 술에 취해서 곯아떨어져 있을 겁니다. 문제는 하인의 아내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무슨 핑계를 대든지, 하인의 아내를 술 창고에 들여보낸 다음, 밖에서 자물쇠를 걸어 두십시오. 그렇게만 되면 우리가 훨씬 쉽게 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해보겠어요."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한 이야기로 보아,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루캐슬씨는 당신을 어떤 사람의 대역으로 삼기 위해서 가정 교사로 데리고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당신이 말한 그 비밀의 방에 갇혀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이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틀림없이 미국에 갔다는 앨리스 양일 겁니다. 그 아가씨는 당신과 키, 몸매, 그리고 머리카락 빛까지 똑같을 겁니다. 당신이 거울로 보았다는 길가에 서 있던 청년, 그는 앨리스가 알고 있는 사람, 어쩌면 약혼자가 아닐까요? 루캐슬 씨는 앨리스의 옷을 입고 자기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는 당신을 그 청년에게 보여줌으로써 당신을 앨리스로 착각하도록 한 겁니다. 루캐슬 씨는 그렇게 해서 당신을 앨리스로 착각시킨 다음, 당신에게 손짓을 하게 하여 그 청년이 앨리스를 단념하도록 만든 겁니다. 밤에 무서운 개를 풀어 놓은 까닭도 그 청년이 앨리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루캐슬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짓을 꾸미고 있는지는 머지 않아 곧 밝혀 질 것입니다. 그럼, 헌터 양. 몸 조심하십시오. 오늘 저녁 7시에 찾아가겠습니다."

 

 

 

 

 

우리는 약속한대로 7시에 너도밤나무 집으로 갔다. 아직 날이 어둡지 않은데다가 너도밤나무들이 저택을 둘러싸고 있었으므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헌터 양은 반갑게 웃으면서 현관의 돌계단에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아까 부탁한 일은 잘 되었습니까?"

하고 홈즈가 물었다.

헌터 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어디선가 쿵쿵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하인의 아내가 술창고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거예요. 호랑이 하인은 벌써 부엌 마루 위에 누워서 코를 골고 있어요. 그리고 이것은 호랑이 하인이 가지고 있던 열쇠 꾸러미예요. 루캐슬 씨의 것과 똑같아요."

"그것 참 잘됐군요. 자,어서 안내를 해주십시오. 빨리 그 비밀의 방을 보고 싶습니다."

홈즈의 눈이 반짝 빛났다.

우리는 서둘러 뒤뜰로 돌아가서 깜깜한 건물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급히 계단을 올라가서 복도를 지나 비밀의 방 앞까지 왔다. 그리고 문에 가로질러 있는 쇠막대기를 뽑아 버리고, 열쇠 꾸러미에 달려 있는 열쇠로 문을 열려고 했으나, 거기 맞는 열쇠가 없었다. 그 동안에 방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 조용해서 홈즈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늦은 것 같군. 왓슨, 어깨를 빌려 주지 않겠나? 맞는 열쇠가 없으니 어떻게 하겠나. 같이 밀어 보세."

문이 낡았기 때문에 둘이서 한꺼번에 부딪쳤더니 쉽게 부서졌다. 문이 부서지면서 홈즈와 나는 방안으로 고꾸라져 들어갔다. 방안에는 침대 하나, 작은 탁자 하나, 그리고 속옷이나 요를 넣어 두는 바구니가 하나 있을 뿐, 다른 가구는 전혀 없었다. 물론, 사람도 없었다. 위를 쳐다보니 천장을 뚫어서 만든 창문이 하나 있었다. 그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사이로 밝은 달빛이 내리 쏟아지고 있었다.

"왓슨, 저거야. 루캐슬은 저 문으로 딸을 데리고 달아난 것이네."

홈즈는 곡예사처럼 창문을 빠져나가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참만에 돌아와서는,

"처마 끝에 사다리가 걸쳐 있더군. 아마 그걸 타고 내려간 것 같네."

"어머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루캐슬 씨가 외출하셨을 때는 저 사다리가 없었어요."

"나중에 몰래 돌아와서 했겠죠. 루캐슬을 정말 교활하고 악랄한 사람입니다. 앗! 계단에서 발소리가 나는군. 왓슨, 어서 권총을 꺼내 들게."

홈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뚱뚱하고 거친 남자가 지팡이를 들고 나타났다. 루캐슬이었다.

헌터 양은 그를 쳐다보더니 비명을 지르면서 창가로 물러섰다.

그러자 홈즈가 그의 앞으로 다가서서,

"당신 딸을 어디에 숨겨 두었소?"

하고 고함을 질렀다.

루캐슬은 흘끗 방안을 둘러보더니, 곧 열려 있는 천장의 창문에다 눈을 멈췄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이 악당 같은 놈들,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

루캐슬은 홱 돌아서더니 "쿵쿵" 발소리를 내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큰일 났어요. 루캐슬 씨는 틀림없이 개를 데리러 간 거예요!"

하고 헌터 양이 소리쳤다.

"마음을 놓으십시오. 우리는 권총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헌터 양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옳지! 계단 밑에 있는 문을 닫아두세."

홈즈의 말에 우리는 급히 계단 쪽으로 달려갔다. 우리가 문까지 갔을 때 갑자기 바깥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금방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소리였다. 문을 열자 술에 취해서 얼굴이 시뻘개진 남자가 비틀거리면서 들어왔다.

"큰일 났소! 좀 도와주시오! 개가 쇠사슬을 끊고 밖으로 나왔어요! 그놈은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소. 어서 붙잡아야 합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사람을 물어 죽일 것이오!"

홈즈와 나는 재빨리 달려나가서 건물 모퉁이를 돌아 뛰어갔다. 호랑이 하인도 뒤뚱거리면서 따라왔다. 

그러자 정말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굶주릴 대로 굶주린 개가 루캐슬을 쓰러뜨리고 목을 물어뜯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옆으로 달려가서 그 개의 머리에 총을 한 방 쏘았다. 그러자 그렇게 사납던 개가 털썩 쓰러져 버렸다. 그런대도 루캐슬의 목덜미를 악착같이 물고서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홈즈와 함께 간신히 개를 떼어 놓았다. 그리고 호랑이 하인과 피투성이가 된 루캐슬을 저택의 응접실로 옮겼다. 그리고는 하인을 그의 아내에게 보내고, 나는 의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루캐슬을 치료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키가 크고 몸이 마른 여자가 들어왔다.

"앗, 아주머니!"  

하고 헌터 양이 놀라며 외쳤다.

"헌터 양, 주인님께서 돌아오시자마자 나를 술 창고에서 꺼내 주셨답니다. 당신이 일을 하기 전에 내게 미리 알려 주었더라면 쓸데없는 수고를 하지 안해도 되었을 텐데.,...."

"저런! 그렇다면 당신은 이 일에 대해서 알고 있었단 말입니까?"

하고 홈즈가 하인의 아내에게 말했다.

"예, 잘 알고 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 대로 모두 말씀을 드리겠어요."

"고맙습니다. 자, 여기에 앉아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사실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모조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원래부터 앨리스 아가씨 편이랍니다. 불쌍하게도 앨리스 아가씨는 주인님이 재혼하신 뒤로는 단 하루도 행복한 날이 없었습니다. 주인님께 아가씨는 매우 거추장스러운 존재였어요. 그런데도 앨리스 아가씨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어요. 아가씨가 폴러 씨와 알기 전까지는 그런 대로 큰일 없이 지냈어요.

제가 알기로 앨리스 아가씨는 어느 분에게서 유산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가씨는 그 유산을 모두 주인님께 맡겼다고 해요. 주인님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가씨가 주인님과 함께 있는 동안은 그 재산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아가씨가 결혼하게 되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주인님은 앨리스 아가씨가 결혼을 하더라도 그 유산을 자기가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는 증서를 앨리스 아가씨에게 받아 내려고 했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아가씨가 착하고 순하다지만 거기까지 승낙할리는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주인님은 날마다 아가씨를 조르고 괴롭혔던 거예요. 그 때문에 불쌍하게도 아가씨는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주일 정도 죽느냐 사느냐 하는 고비를 넘겼어요. 그 뒤에 그럭저럭 병은 나아졌지만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해서 몸은 몹시 야위었고, 아름다운 갈색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 참으로 초라하게 되었지요. 그런데도 선원출신인 폴러 씨는 어떻게든 앨리스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어했어요."

"됐습니다. 그 다음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겠습니다. 그 뒤로 루캐슬은 뒤뜰에 있는 건물에 앨리스 양을 가두어 버렸단 말이군요. 그런데도 폴러 청년은 끈질기게 이 집 주위를 서성거렸고요.

그러는 사이에 당신은 폴러 씨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두 사람은 앨리스 양을 구출하자고 서로 의논을 하셨겠지요?"

"어머! 선생님은 마치 보고 계셨던 것처럼 잘 알고 계시네요. 폴러 씨는 착하고 마음씨가 고운 분입니다."

"그 청년은 루캐슬이 외출하자 당신 남편에게 술을 잔뜩 먹여 놓고 사다리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했겠지요. 그리고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천장에 있는 창으로 앨리스 양을 끌어냈을 테고요."

"예, 맞습니다. 어쩌면 선생님은 그렇게 잘 알고 계시지요?"

이것으로서 너도밤나무 집의 괴상한 수수께끼는 모두 풀린 것이다.

나와 홈즈, 그리고 헌터 양은 마차를 타고 윈체스터 시로 갔다. 우리들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그 다음날 런던으로 돌아왔다. 소문에 의하면 루캐슬은 겨우 목숨만은 구했으나 완전히 폐인이 되었다고 한다.

앨리스 양과 폴러 청년은 너도밤나무 집에서 도망 나온 다음날 결혼식을 올리고, 그 뒤에 폴러 씨는 공무원이 되어 지금은 인도에 있다고 한다. 헌터 양은 다행이 어느 사립학교에 취직이 되어 학생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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