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2

xingyu | 2014.11.20 13:01:04 댓글: 4 조회: 3130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2469988

커피열매는 달다. 하지만 커피가 되는 그 씨앗은 쓰다.
씨앗은 커피가 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맛과 향으로 재탄생한다.
알고 보면 사랑도 커피 한 잔이다...


*********************************************************************************************************

D- 17

출판사에 갔다가 오랜만에 카페에 들렀다.

모든게 그대로였다. 흘러간 옛 팝송들이 변함없이 카페 구석구석을 메우고 있었다. 오래 앉아있으면 엉덩이에 굳은 살이 박힐 것만 같은 원목테이블과 의자들, 내가 제일 좋아하던 조롱박모양의 등나무의자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에 카페에서 일하고 있을 때 다른 손님이 오래 차지하고 있을가봐 몰래 쿠션들을 숨겨둔 적도 있었다. 쿠션없이는 도저히 앉을 수 없는 의자였다.

형은 그런 나를 보고 항상 웃었다.

< 형. 얘 콱 짤라버려요... > 훈이 녀석이 투덜거리면 형은 늘 웃으며 말했다. < 왜. 귀여운데.. ㅎㅎ 나가고 싶으면 니가 나가던가. > 그러면 훈이 녀석은 입을 잔뜩 부풀리고 인상을 찌프렸다.

형은 정말 나를 좋아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건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다. 그냥 이유없이 미운 사람과 좋은 사람이 갈리듯이. 나도 형이 이유없이 좋았다. 카페사장이라서가 아니라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가 좋고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며 기분좋게 하는 말투도 좋았다. 키도 크고 얼굴도 그만하면 훈남이지만 몸이 지나치게 마른게 흠이라면 흠이였다.

< 오랜만이얘요, 누나.. > 같이 일했었던 동생이 여직 카페에 남아 있었다. 신참으로 보이는 얼굴도 하나 있었다.

< 어, 서민우. 반갑다야.. 대체 얼마만이냐 이게... > 반가운 마음에 껴안고 한참 부산을 떨었다. 새내기와도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 근데 형은 어디 갔어? 안보이네... > 나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물었다.

< 사장님 요즘 연애해요, ㅎㅎ 오늘 여자친구랑 드라이브 나갔어요. > 민우가 웃으며 카운터를 돌아갔다. < 뭐 마실래요? 요즘 잘나가는 스페셜티 뽑아드릴게요~ ㅎ >

< 아니. 전에 마시던걸로 줘. > 나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아, 맞다. 사장님이 누나 오면 꼭 주려고 챙겨둔 원두가 있어요.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 펜시. 좀만 기다려요, 금방 내릴게요.. ㅎ>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나의 등의자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가 나왔다. 최고의 품질, 최상의 맛이다. 뭔가 2프로 부족한 느낌은 아마 내 기분탓이였을것이다.

내가 이 카페에서 일하게 된 것도 훈이 덕분이였다. 사장을 형이라고 부르는것도 훈이따라 부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였다. 형도 그렇게 부르는걸 좋아했다. 가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빠라 부르라 하기도 했지만.

나이트클럽에서 그렇게 짤리고 나와서 훈이랑 헤여지고 일년 쯤 지났을가. 정말 영화처럼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훈이를 만났다.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이어폰을 끼고 있었지만 나는 용케도 훈이를 알아보았다. 밀린 월세를 못내 쫓겨나서 트렁크 하나 끌고 이젠 집으로 들어갈 때가 됬나보다 서성이던 난 훈이가 구세주처럼 보였다.

< 훈아, 반가워. ㅎㅎ > 훈이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버스에 올라 맨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나도 트렁크를 끌고 올라가 얼른 그 옆에 앉았다.

< 그동안 뭐하구 지냈어? 지금 어디 가는데? >

< 일하러. >

< 무슨 일? >

< 카페. >

< 그래? 나두 커피 좋아하는데.. 거기 일자리 없어? >

< 없어. 그러니까 따라올 생각하지마. >

그런다고 못따라갈 내가 아니였다. 더이상 갈데도 없고 시간이 넘쳐흘렀으니깐. 훈이 뒤를 밟아 몰래 따라가보니 카페의 출입문에 직원구함이라고 큼지막하게 붙여있었다. 그것을 조심스레 뜯어가지고 들어갔다.

< 너! > 나를 발견한 훈이녀석이 깜짝 놀랬다. < 따라오지 말라했잖어! >

< 너 아는 사람이냐? > 형이 카운터에서 나오며 나를 훑어보았다.

< 아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야, 형 정말이야. > 훈이가 나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 알던 모르던 저도 상관없어요. 전 여기 취직하러 왔거든요. ㅎㅎ > 나는 손에 들린 A4용지를 흔들었다. 형이 씩 웃어주었다.

< 그럼 커피에 대해서 잘 알아요? >

< 조... 조끔.. > 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꾸했다.

< 알긴 개뿔. > 훈이가 선반에서 여러종류의 원두를 테이블 위에 늘여 놓았다. < 자, 골라봐. 어느 커피가 최상품인지.. >

이름도 생소한 커피들이 많았다. 내가 아는 커피는 그저 주문하면 주문한대로 나오는 커피였다. 카페모카, 카푸치노, 마키아토, 아메리카노...... 나름 심사숙고끝에 케냐 AA라는 커피를 골라들었다.

< 왜 이걸 골랐는데? > 훈이가 조롱섞인 말투로 물었다.

< 한우A++이 최고등급이자나. 그러니깐 커피도 AA가 최고등급 아닐가..ㅎㅎㅎ >

* 커피는 나라마다 등급을 정하는 기준이 다르다. 예를 들면 케냐는 원두의 크기에 따라 코스타리카는 재배지의 고도에 따라 에티오피아는 결점두의 개수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같은 품종이라도 나라에 따라 다르고 같은 나라라도 재배지에 따라 다르고 같은 재배지라도 농장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며 원두의 가공방법과 로스팅과정에 따라 맛과 품질이 달라지는 등.. 말하자면 끝도 없다. 여기까지.. ㅎ

훈이 녀석이 가소롭다는듯이 깔깔거렸다.

< 것봐. 내 그럴줄 알았어. 형, 얘 아무것도 모르니 당장 내보내자구. >

< 훈이 너 왜 그래? 너답지 않게... > 형이 다시 나를 돌아보며 어쩔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훈이랑 어떤 사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미안하게 됬어요. 우린 지금 바리스타를 찾고 있는 중이거든요.. >

< 네? 안되요! 오늘 여기 취직못하면 지하철역에서 종이박스 깔고 자야 되거든요... .그러니 제발 부탁드려요. 저 정말 잘할 자신 있어요. 뭐든 다 할게요, 네?? >

나는 정말 어느 구석에서 박스라도 찾아내야 할듯한 표정으로 형을 바라보았다. 형은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거의 거절을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형은 내가 거처를 마련할 때까지 며칠동안 카페에 머물러도 좋다고 했다. 훈이 녀석이 또 한바탕 투덜거렸지만 나는 잠시 머무를 곳을 찾게 되서 한시름을 놓았다.

생각밖에 손님들은 나를 많이 좋아했다. 그것은 내가 틈틈이 손님들의 차 마시는 모습을 드로잉해서 선물했던것이다. 일주일이 지나자 일부러 그림을 받으려고 오는 손님도 생겨났다. 나는 흔쾌히 그려주었다. 스케치북을 사다 그림을 그려서 여기저기 걸어두기도 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형이 말해주었다. 훈이 녀석도 약간 의외라는듯 더이상 나가라니말라니 말이 없었다.

형이 말했던 며칠이 2주가 되고 3주가 지나 한달이 되었다. 첫 월급을 주며 형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 정말 갈데가 없으면 우리 집에 와 있을래? 윗층이 텅 비여 있거든. 니가 불편하지만 않다면 난 상관없는데.. 어쨌든 가게에서 계속 자는건 좀 그래. >

이제 고시원이라도 찾아봐야 되나 생각하고 있는데 훈이 녀석이 한참 끙끙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 우리 이모네 집이 비였는데 그럼 거기 가 있던가... >

< 그래? 그럼 그러던가... > 형이 의외라는듯 훈이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렇게 훈이 이모네 집에서 살게 됬다, 훈이랑 같이...

훈이도 집에서 가출했던것이다. 훈이 말을 빌리자면 독립한셈이였다. 그것도 미국으로 이민가고 텅텅 비여있는 이모집에서... 엄마한테는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얻어내고야 못이기는 척 살고 있던 중이였다. 아마 형한테도 비밀로 했던 모양이였다. 형은 거짓말을 잘 못했다.처음부터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내가 훈이를 따라 나섰을가 생각도 해봤지만 어쩔수 없이 함께 형한테 거짓말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출근시간도 훈이 아님 내가 십분정도 먼저 도착하는 거짓말이 시작되였다. 내가 카페를 그만두기까지...

카페를 나설 때 꽤 늦은 시간이였다.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데이트가 꽤나 재밌는 모양이였다. 훈이 말대로 형은 바람둥이일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훈이가 늘 내게 하는 말이 있다, 넌 남자를 몰라.언젠가는 형네 가지 않은걸 다행으로 생각할거라고... 그런 훈이도 모르는게 있다. 훈이를 따라 이모네 집에 간걸 내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D-14

밤새 작업하고 아침 6시경 잠 들었다 오후 4시쯤 부시시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날까말까 씨름하는데 훈이 문자가 왔다.

--피곤하다.

-- 어디야?

--백화점. 벌써 3시간째 침대 고르는 중...

--다른것도 아니고 침대잖아, 신중해야지. 소리가 나지는 않는지.. 한밤중에 무너지지는 않을지... ㅋㅋㅋ

--다 좋은데 꼭 캐노피 있는걸 사야되냔말이야. 거치장스럽게... 정말이지 이런 취향인줄 몰랐다. 휴~

--같이 침대 써봤을거 아니야, ㅋㅋ

-- 그때는 침대보다 욕구가 중요하니까 , 후유~

--ㅎㅎ 땅 꺼지겠어. 둘이 잘 의논해봐.

늘 결혼이 문제였다. 해도 걱정 안해도 걱정이다. 서로 인사하러 집으로 찾아가면 어른들이 맘에 들어할가 걱정, 상견례 자리에서 양가 어른들이 서로 뜻이 잘 맞을지 걱정, 서로 주고 받는 예단도 걱정,

하다못해 결혼식날 날씨도 걱정이다. 지금 훈이도 침대 하나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튼 결혼은 문제투성이라고 나는 생각하며 진저리 치듯 몸을 떨었다.

훈이가 여자친구 즉 지금의 예비신부를 만나게 된건 불과 6개월전이였다. 만난지 일주일이 지났을까 녀석이 갑자기 성상담을 해왔다. 섹스에 대해서 겁나게 자존심 내세우던 녀석이말이다.

< 여자들이.. 그러니깐 어떤 여자들은 흥분하게 되면 발을 막 비벼? 지금 사귀는 여자 내 다리에 발을 막 비벼대는데 그건 뭘가... > 전문가입장에서 보면 참 바보같은 질문이였다. 나는 웃음을 참고 녀석을 골려 주었다.

< 그건 말야, 여자가 발에 무좀이 생겨 가려워서 그러는거야. 몰랐구나, 너... >

< 뭐?! 물어본 내가 바보지, 어휴.. >

웃음이 빵 터져버린 나는 훈이와 통화를 끝내고나서 한참 지나서야 간신히 웃음을 멈출수 있었다.

잠깐 눈을 감고 훈이 녀석을 떠올렸다. 녀석은 아주 훌륭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적당한 근육에 약간 햇볕에 그을린듯한 매끈한 피부, 우리가 섹스를 시도하던 날. 솔찍히 녀석의 잘난 얼굴보다 잘생긴 몸매에 난 기가 좀 죽었던것 같다. 갑자기 훈이의 예비신부가 궁금해졌다. 몸매는 어떤지 얼굴은 이쁜지 . 아마 가슴은 적어도 C컵정도 되겠지.. 난 확신에 찬듯 천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훈이는 가슴이 큰 여자가 좋다고 했다.





추천 (2) 선물 (0명)
나는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어른아이다......
IP: ♡.159.♡.18
따끈냉국 (♡.61.♡.168) - 2014/11/20 14:50:33

무좀....ㅋㅋㅋ

xingyu (♡.159.♡.18) - 2014/11/23 21:21:39

ㅎㅎㅎ

쑥사랑 (♡.227.♡.249) - 2014/11/21 11:29:16

잘 읽고 갑니다.

xingyu (♡.159.♡.18) - 2014/11/23 21:22:17

감사요 ㅎㅎ

22,94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3
63034
안나수이
2014-12-01
2
2440
xingyu
2014-11-28
5
3277
칼과꽃
2014-11-28
33
13317
xingyu
2014-11-23
7
3568
Blue07
2014-11-22
4
2623
봉밀하
2014-11-20
3
3282
칼과꽃
2014-11-20
36
13656
xingyu
2014-11-20
2
3130
칼과꽃
2014-11-19
28
10943
칼과꽃
2014-11-18
30
11472
칼과꽃
2014-11-17
54
13300
파랑초원
2014-11-17
3
3240
hay15
2014-11-15
7
3702
hay15
2014-11-14
8
2654
파랑초원
2014-11-14
8
4250
hay15
2014-11-13
2
2491
애심88
2014-11-13
0
2019
파랑초원
2014-11-13
6
3366
xingyu
2014-11-11
10
4802
hay15
2014-11-10
5
2624
hay15
2014-11-09
3
2407
영우맘
2014-11-08
4
1820
칼과꽃
2014-11-08
20
10665
hay15
2014-11-07
3
2557
영우맘
2014-11-07
1
2069
소연나라
2014-11-07
1
2092
칼과꽃
2014-11-06
18
9820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