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4

xingyu | 2014.11.28 21:54:21 댓글: 13 조회: 3280 추천: 5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2480686



가슴은 여자의 자존심이다. 가슴이 작다고 자존심도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현명한 남자라면 그 자존심을 지켜줘야 한다. ㅋㅋ
평소에 알고 지내던 여자애가 있는데 한국애니고에 합격했다고 알려줬다. 경쟁률이 보통이 아닌 학교인데.... 아무튼 이쁘고 기특한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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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

버스정류장에서 십분정도 기다리다 버스를 탔고 자리에 앉았어도 나는 이어폰을 듣지 않았다. 멍하니 앞사람 뒷통수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뭔가 심각한 고민에 빠질 때만 나타나는 나만의 버릇이였다. 훈이는 그런 나를 멍청하게 보인다고 늘 비웃었다.

흩날리던 빗방울이 가끔 유리창을 후두둑 때리면 나는 다시 시선을 차창 밖으로 돌렸다.

아침 일찍 형이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 아님 내일이라도 좋으니 꼭 한번 들러달라고... 원래 집에 들르려고 했었지만 며칠 미뤄진다고 큰일 날것도 아니였다.

형이 뭐라고 할지 대충 미루어 짐작하면서 나는 카페문을 열었다.

음침한 날씨에 사람들은 모두 집에 있으려고 작정들을 했는지 카페에는 볼륨을 한껏 낮춘 음악만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신참은 게임에 푹 빠져 있었고 민우는 보이지 않았다. 형은 진열장에서 커피잔들을 꺼내어 하나하나 다시 정성껏 닦고 있는 중이였다. 그 커피잔들로 말하자면 형의 자식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였다. 그동안 형이 세계각지를 여행하면서 사들인것들인데 제법 값 비싼것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것도 많았다. 한번은 형이 일본여행에서 돌아와 노점에서 정말 맘에 드는 녀석을 골라왔다고 자랑을 했었다. 함께 포장을 뜯고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밑굽에 메딘 차이나라고 써있어서 형이 많이 당황했던적도 있었다.

" 형, 민우는요? "

" 어, 우리 강쥐가 왔어? 민우 오늘 휴가야.. "

" 아참. 형은... 내 나이가 이젠 서른 넘었는데 강쥐가 뭐얘요, 강쥐가... "

나는 신참을 슬그머니 쳐다보며 말했다. 신참은 나를 마주보고 웃었다, 궂은 날에 아주 해맑게.

" 미안. 자꾸 버릇이 되서 말이야.. 커피 한 잔 줄가? 니 특별전용컵으로 말이야.."

" 이제부터 니가 오면 이 컵으로만 줄게, 어때? "


형이 컵 하나를 내 앞에 내려 놓았다. 이누야샤가 가영이를 업고 한 쪽 어깨엔 자전거를 둘러메고 달리는 그림이였다. 그들 뒤로 산고와 미륵, 싯포가 키라라 등에 타고 쫓아오고 있었다. 이누야샤는 내가 미대를 가게 된데 큰 영향을 주었다.

" 컵이 참 이쁘네. "

" 그렇지? 나 이거 첨 봤을 때 딱 니꺼라고 생각했어. ㅎ 마시던걸루 줄가? "

" 아뇨. 코코아 한 잔 주세요.. "

내가 나의 등의자에 쿠션들을 재정비?하고 들어앉자 형이 코코아 한 잔을 내 손에 넘겨주었다.

" 많이 피곤해 보인다. "

" 조금. " 코코아 한 모금을 마시자 온 몸에 스며들었던 한기가 조금 물러나는 것 같았다.

" 훈이랑 연락하니? "

" 그럼요. " 하고 대답하면서 나는 피씩 웃었다. 그리고 형은 진짜 거짓말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형도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 그래. 사실 어제 훈이가 전화왔었어. 니가 무턱대고 이스라엘 간다고 좀 말려달라 그러더라. "

" 내가 뭐 어린앤가. .. "

" 하긴. 그렇긴 하지. "

형이 자세를 바꿔 앉으며 말했다.


" 이건 좀 딴 얘긴데... 난 늘 궁금했어. 니가 왜 훈이랑 멀쩡하게 잘 지내다 갑자기 그 집에서 나왔는지.. 혹 훈이 엄마가 찾아가셨니? "

" 형, 나랑 훈이 그런 사이 아니거든요? 걔랑 나랑 만나면 티격태격하는거 알잖아요. 그냥 녀석 잔소리가 지겨워서 나온 것 뿐이얘요. "

나는 약간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나는 형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다. 훈이와 한 집에 살 때 훈이 엄마가 다녀간적이 있었다. 훈이조차 모르는 일이였다.

훈이가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나가버린 어느 일요일날. 훈이 엄마가 찾아왔다. 문을 열어줄 수 밖에 없었다.

" 훈이 없는데... "

" 알고 있어요. " 훈이 엄마가 나를 얼핏 쳐다보고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소파에 앉아 멀뚱하니 서있는 나를 다시 자세히 훑어보았다.

" 저랑 훈이 그런 사이 아니얘요, 친구얘요.. 친구. 정말이얘요... " 날카롭고 차가운 그 눈빛에 찔려 나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훈이 엄마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 알고 있어요, 아가씬 절대 우리 훈이 타입이 아니얘요. "

훈이 타입이 아니라고? 거기에다 절대치까지 붙여져서?? 그러고보니 훈이는 엄마를 많이 닮아 있었다. 같은 말도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도 물려받은듯 했다.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부시시한 몰골이지만 무시하는듯한 노골적인 말투에 기분이 상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 부탁하러 왔어요. 지금 훈이가 바리스타 된다고 저러고 있는데 아가씨가 설득 좀 해줘요. 난 훈이가 하루빨리 복학했으면 해요. 한 집에 살고 있을 정도면 훈이랑 보통 친한 사이 아닌 것 같아 부탁하는거얘요. 오후에 재판이 있어서 지금 일어나야 해요, 아가씨만 믿을게요. "


훈이 엄마는 판사였고 훈이 아버지는 유명한 로펌회사 이사장이였다. 나중에 형한테 물어서 알게 된 사실이였다. 나는 훈이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사라질 때까지도 멍하니 말 한마디 못하고 그렇게 서있었다. 훈이를 설득해달라는 그 말보다는 훈이 타입이 아니얘요, 이 말만 뇌리에서 맴돌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도 나고 오기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것이 문제고 탈이였다. 그 때 그 말을 듣는 순간 잊어버렸어야 했다. 그 말도 안되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바람에 나는 더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던것이다.

그 날 훈이는 저녁늦게 돌아왔다. 나는 때마침 샤워를 끝내고 속옷바람으로 돌아다니던 중이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훈이 덕분에 난 커튼 뒤에 숨어있어야 했다.

" 너...넌 노크하는 법도 모르냐? "

" 웃겨. 너네 집이야? 그리구 여기가 니 방이냐? 거실은 엄연한 공동구역이라구... " 훈이가 비틀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 시끄럽구. 너 빨리 방으로 들어가! 아님 눈 감구 있던가... "

" 보라구 해도 안본다. 뭐 볼거라도 있어야 보지... " 훈이 녀석이 소파에 드러누워버렸다. 나는 훈이가 눈을 감았는지 재차 확인을 한 다음 잽싸게 방으로 뛰여들어갔다.

한 십분이 지났을까.. 핸드폰에 카톡메시지가 들어왔다.

" 니 팬티를 보여줘. " 훈이였다.

이게 술 처먹고 미쳤나, 하고 욕이나 한바탕 해주려다 그 순간 훈이 엄마가 떠올랐다. 결국 나는 황당하고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알몸으로 훈이 방으로 들어갔다. 차라리 그 때 훈이가 나가라고 소리라도 질렀으면 지금쯤 내 마음이 더 편해졌을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였다. 우린 정해진 수순마냥 그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차례를 밟아갔다. 솔찍히 순서따위도 기억나지 않는다. 훈이는 꽤 많이 취해 있었고 나는 극도로 긴장했었다. 어쩌면 우린 서로에게 흠이 될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리가 나눈 섹스에 관한 얘기들이 독이 되는 순간이였다. 그리고... 그리고 훈이는 내 가슴에 손도 대지 않았다. 아니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야말로 내 자존심에 가장 치명적인 타격이였음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 세상일은 미리 후회하는 법이 없다. 지나고나서 후회하는거지...

그런 어정쩡한 섹스를 끝내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고 방문을 닫으면서 난 울어버렸다. 훈이한테 화가 난건지, 내 작은 가슴때문에 속이 상한것인지 아님 둘 사이의 순수한 우정을 무너뜨린 내 자신이 미워졌는지 알수 없었다. 여튼 새볔에 난 그 집을 나와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우린 여전히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 마주보고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둘 사이엔 분명 달라진 것이 있엇다. 그 미묘한 차이를 형이 눈치챘을가...

" 너랑 훈이 한동안 연락 안하던 것두 이상하고 훈이가 갑자기 복학한것두 그렇구 결혼한다는것도 이상하구.. 둘이 뭔가 수상하단 말이야.. "

형이 누군가가 네팔에서 갖고 왔다는 커피를 내려서 한 모금 입에 물고 이리저리 굴렸다. 꼭 소믈리에마냥. 새로운 커피를 발견할 때마다 형은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하군 했다. 그 때마다 난 곁에서 저도몰래 입을 잔뜩 부풀리고 그 커피가 언제 목구멍을 넘어갈지 목젖을 달싹이며 안달이 났었다. 형이 드디여 커피를 삼키자 나는 안심이 되는 듯 입을 열었다.

" 이상하긴요. 결혼이 하고 싶으니깐 하는거겠죠. 글구 훈이랑 연락안하고 지낸 것도 다 제 잘못이얘요... 제가 좀 심한 장난을 했거든요. " 나는 피씩 웃으며 남아있는 코코아를 모두 마셔버렸다.

" 형도 알다싶이 내가 가끔 심한 장난을 하잖아요.. "

" 뭔 장난을 어떻게 한거야? "

" 핸드폰 주인이 방금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니 빨리 병원으로 와주세요! 하고 훈이한테 문자를 보냈거든요... "

" 야, 그건 좀 너무 심했다. "

" 네. 알아요, 나두. 그래서 문자 보내구 후회했어요. 다시 전화해서 장난이였다고 말해주려고 했는데 훈이가 전화를 안받더라구요. 이 녀석이 문자 보구나서 바로 병원으로 뛰쳐간거얘요. 어느 병원인지도 모르면서... 장난삼아 보낸거라 어느 병원이라 말하지 않았거든요. 형, 생각해봐요. 훈이같이 법대 다니는 수재가 병원이란 말만 듣구 뛰쳐나갔다는게 말이 되요? 그것두 밤새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은 다 뒤지다싶이 하면서요, 휴대폰은 왜 집에 두고 나갔는지... 어쨌든 그 뒤로 훈이랑 연락이 끊겼어요. 20일전 결혼할거라구 연락이 왔었구요. .. "

형이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 음.. 나라도 훈이처럼 했을거야. 사람이 충격을 받으면 머리가 그렇게 논리적으로 돌아가지 않거든. 아무튼 니가 잘못했어. "

" 알아요, 그래서 이젠 그런 장난 안하려구요. 나이두 있는데... " 나는 빈 컵을 내려다보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 어쭈. 아주 번데기 앞에 주름 잡아요.. 나한테 넌 영원히 강쥐야, ㅋㅋ " 형이 웃으며 몸을 반쯤 일으켰다. " 코코아 한 잔 더 줄가? "

내가 됬다고 하자 형은 다시 내려앉았다.

" 참 이스라엘 가는 일은 어떻게 됬어? "

" 우선 관광비자로 가기로 했어요. 뭐 따로 비자받을 필요도 없대요. 3개월 무비자 입국 가능하대요.. 티켓두 그 사람이 다 알아서 해준다고 했어요. 살다가 원하면 이스라엘국적도 취득할 수 있다고.."

" 그럼... 이스라엘에서 뭔 일 할껀데? "

아,... 그렇구나. 난 뭘해서 밥 먹구 살지?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렸다.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고 났더니 졸음이 마구 쏟아졌다. 나는 아예 등나무의자 속으로 몸을 웅크리고 누워버렸다. 눈이 저절로 감겨졌다.

잠결에 새내기한테 일찍 돌아가도 된다는 형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얇은 담요 한 장이 내 몸에 덮혀졌다. " 그래 한 잠 푹 자. 까짓거 정 안되면 이스라엘여군이 되지뭐... " 형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름모를 언덕아래로 멀리멀리 굴러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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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어른아이다......
IP: ♡.159.♡.18
따끈냉국 (♡.218.♡.202) - 2014/11/29 09:22:37

뭔가 안좋은 결과로 달려가는 느낌...이스라엘도 그렇고 훈이도 그렇고 서로가 아직도 더많이 희생해야 하나 봅니다.

xingyu (♡.36.♡.227) - 2014/12/02 18:07:07

살다보면 미지수가 너무 많아... ㅎㅎ 안그래요?? ^

쑥사랑 (♡.114.♡.18) - 2014/11/29 09:41:59

잘 보고 갑니다. 담집이 많이 기대되네요.

xingyu (♡.36.♡.227) - 2014/12/02 18:07:56

쑥이님 감사요~ㅎㅎ

북위60도 (♡.60.♡.229) - 2014/11/29 17:15:41

둘이 좋아하는것이 맞는같애요

xingyu (♡.36.♡.227) - 2014/12/02 18:09:57

그렇죠? 그런것 같지요?? ㅎㅎ 날이 많이 춥네요, 북위 60도만큼.ㅋㅋ

행운대박88 (♡.8.♡.217) - 2014/12/01 08:43:46

잘 보고갑니다 화이팅

xingyu (♡.36.♡.227) - 2014/12/02 18:10:48

넵.대박나세요 홧팅!ㅎㅎ

들래 (♡.69.♡.81) - 2014/12/01 13:59:54

엇갈린 운명?살짝 비극냄새가 솔솔...오늘도 추천~~

니 팬티를 보여줘.라 ㅋㅋㅋ
김아중 <나의 PS 파트너>란 영화에 나오는 대목 생각나네요...ㅎㅎㅎ

xingyu (♡.36.♡.227) - 2014/12/02 18:15:03

캬~ ㅎㅎ 누군가 요 대목을 콕 집어줬으면 했는데.. 그 님이 바로 님이군요 ㅎㅎ 저도 그 영화 보면서 그 한마디에 딱 꽂히더라구요 ㅋㅋ
조용한 카페..따뜻한 호박라떼~ 참 좋네요, 좋은 밤 되세요^^

몽길이 (♡.61.♡.111) - 2014/12/02 11:37:18

음 이야기에 빨려들어가네요. 계속 클릭하게 만드네요~

xingyu (♡.36.♡.227) - 2014/12/02 18:16:05

감사요, 죤밤 되세요~ ㅎㅎ

가슴앓이 (♡.68.♡.96) - 2014/12/03 10:44:15

너무 재밌음~~담집 빨리빨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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