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그믐 전날부터 연락이 와서 설 쇠러 일찌감치 집에 오란다..
설 전날 가겠다고 대답 했다…
가고 싶기도 하고 가기 싫기도 한 집…
아버지 생각하면 하루빨리 가고 싶고 엄마 생각하면 가기 싫은 집,
혼자 있으니 고독해서 당연히 빨리 가고 싶은 집이지만…
엄마가 죽어야 만이 내가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집이라는 생각이 몸에 밴지 오래다.
그러나 그것도 모를 일 , 그런 날이 온다면 아버지만 남게 되는데 그때 가서 아버지와 나 사이가 지금처럼 친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
엄마라는 공동의 적이 중간에 끼여서 그나마 아버지와 내가 지금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 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그믐날 오후 세시쯤에 조양천에 도착해서 은행에 현금 찾으러 갔더니 ATM기에 돈이 없다고 뜬다. 맞은켠 중국은행에 가니 거기도 인출은 안된다고 붙여있다. 어차피 위챗으로 엄마한테 돈 드려야했다.

설날, 엄마가 내가 얼마전 집 나올 때 두고 간 4천원 봉투를 도로 내놓으면서 안 받겠다며 기어이 돌려주신다. 봉투가 원래보다 두꺼워서 세여보니 만원이 들어있었다. 엄마가 6천원을 더 넣은거다.

전에 엄마와 어떤 모순이 있었던지 이 순간만은 엄마는 그래도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는걸 느꼈고 그 울컥하는 감격에 비실거리는 체질임에도 두시간동안 집 청소를 해댔다. 당연히 돈은 서랍장에 숨겨놓고 안 가지기로 했고. 엄마 몰래 엄마 휴대폰으로 500원을 드렸다. (2020년2월 코로나로 회사에서 나온 뒤 수입이 끊기기를 5년째네.._)

그리고 이튿날 새벽 6시, 강아지를 데리고 나갔던 엄마가 밖이 하나도 안 추우니 지금 아버지 집에 가서 컵을 가져오라고 하신다. 그 전 날 ,엄마네 집에 안 쓰는 컵이 많으므로 몇개 가지려고 했는데 정작 마땅한게 없으니 엄마가 하는 말이 아버지 집에 컵이 많으니 거기 가서 가져가라고 하신다. 그래서 내가 내일이 일요일이여서 아버지 친구들이 아침부터 마작놀러 오겠구나 라는 말을 했던거 같다. 그래서 미리 오후에 아버지 집에 가서 컵 가져올려고 했는데 엄마가 주신 생강차를 먹고 오후 내내 어지름증이 심해서 결국 아버지 집에 못갔다. 아버지 친구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아침 7시부터 하루 종일 마작을 노는데 그날 컵을 못 가져오면 이튿날에 가져와도 되는데 나 더러 하루라도 더 놀다 가라는 마음이 있었더면 굳이 새벽 6시에 아버지 집에 가서 빨리 컵 가져오라는 말을 했을가 ? 오늘 내로 빨리 니 집에 돌아가라는 눈치가 뻔하니 하루 밤 더 자고 집에 갈려고 계획했는데 결국 엄마가 아침부터 이렇게 나오는 바람에 그날로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아침 식사하러 오신 아버지한테 오늘 마작 노는가 물으니 아버지께서 잘 알아듣지 못해서 뭐라고 ? 하며 되물으신다. 그러니 엄마가 오늘 마작 노는가고 내 물음을 중복하며 적극적으로 나선다. 아버지께서 안 논다고 하시니 안 논단다 하며 기뻐서 아버지 말을 나한테 또 중복한다…. 아버지가 마작을 안 노니까 오늘 컵 가지러 갈수 있으니 컵 가지고 빨리 니 집에 돌아가라는 기쁨 섞인 속셈이다

아침 밥 먹으면서 너 오늘 돌아가겠니 ? 하고 엄마가 묻는다. 네….하고 대답 했더니 더 놀다가렴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신다. 점심에 닭밥을 해 먹을가 하시는걸 오전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아버지 집에 가서 둬시간 동안 집 청소를 해드리고 컵을 갖고 엄마집에 왔다가 짐 갖고 연길로 돌아왔다.
아버지 집에서 청소하는 동안 아버지는 음력설 야회 재방을 보고 계시면서 나더러 빨리 와서 보라고 몇번이나 재촉 하신다.
나는 전날 봤다고 말하며 청소를 다그쳤다.
일주일에 한번 친구들과 마작을 놀고 평일에는 딴 친구들과 오후에 장기를 두고 오전에는 혼자서 TV만 보고 계시면서
그나마 규칙적인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아버지, 오전 반나절이지만 분명 고독하셨을것이다.
누구라도 옆에서 같이 TV를 봐주셨으면 얼마나 좋으실가…
그러니 몇번이고 거실에서 나와서 나한테 청소를 관두고 빨리 와서 TV보라고 재촉 하시는거였다.
결국 엄마 때문에 아버지의 작은 소원도 들어주지 못하고 청소를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한심하고 마음 아프다.

아버지 소원을 들어줄려고 아버지랑 늘쩡늘쩡 음력설 야회 보다가 오전에 집에 안 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가?
오전에 간다던 내가 안 갔으니 엄마는 천방백계로 대체 언제 가는 가고 머리를 굴려가며 확답을 받아내려 할 것이다.
예하면 점심에 닭밥을 해 먹을가 고 물은 것은 오늘 가긴 가는데 데체 오전에 가느냐 오후에 가느냐를 알고 싶은 수작이였다.
그런 엄마를 보면 내 스트레스가 곱절이 되니 오전중에는 결사적으로 내 집에 돌아가야했다.

나하고 몇번 싸우고 나서 너한테는 아무말이나 하지말아야 겠다고 하시더니 예전보다 말도 적어지고 많이 조심하는 눈치다,
그 와중에도 우리를 싫어한다는 본성만은 꼭 드러내고야 마니 아무리 조심한들 여우의 꼬리는 감추지 못한다.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는 엄마, 그래서 친척들과는 화목하다. 친척들 사이의 모순은 따지고 보면 돈 때문인데 엄마는 돈을 잘 내 놓는 사람이니 누구나 엄마하고 만은 모순 없이 화목하다. 나 역시 돈 만원에 잠간 감격했지만 불과 하루만에 엄마는 정말로 우리가 집에 오는 걸 싫어한다는걸, 엄마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재삼 느낀다. 이건 백번을 험증해도 엄마는 우리가 집에 오는 걸 싫어한다.
내가 대추차 먹고 어지름증이 났을 때 어쩐지 안절부절 못하는 엄마, 내가 아프니까 근심돼서 그러는게 아니라 컵 가지러 아버지 집에 못 가게 되니 안절부절 하신 거였다.

외지서 회사 다닐 때는 구정에 집 오면 엄마가 싫어하든 말든 일주일동안 집에 있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바로 옆에 연길에 살면서도 설 쇠러 집에 갔다가 결국 하루 반 만에 엄마한테 쫓기워났다.

돌아올 때 예전체럼 나 한테 쇠고기, 김치, 과일을 잔뜩 챙겨주셨다
설날, 외삼촌이 왔다 갈 때도 외삼촌한테 잔뜩 챙겨 주셨다. 원래부터 남한테 퍼주기 좋아하는 엄마, 엄마가 우리한테 하는 것들은 전부다 남한테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남 한테 얼마만큼 하면 우리 한테도 딱 고만치 한다. 자식이라고 더 해준다는 느낌을 받은 적 없다. 외삼촌이나 사촌동생들 한테 대준 돈, 대충 계산해도 나한테 준 돈 보다 훨씬 많다.

죽었다 깨도 엄마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어느 틀에 맞춰도 맞춰지지 않는 사람이다.